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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이 질문 세례를 멈추자 박수호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데뷔 준비에만 집중하래요.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네요.”
순간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이야?”
“그럼, 전교 10등 안에 안 들어도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서찬휘와 우시원이 동시에 박수호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옆에 있던 주현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찬휘를 바라봤다.
“형, 전교 10등 안에는 못 들어도 차트 10위 안에는 들어야 하는 거 알죠? 그건 약속과 관계없이 저희가 지켜야 할 목표에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무는 주현빈을 본 서찬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찬휘는 연습실 밖에서 연습실 안을 바라보는 도훈을 바라봤다.
서찬휘는 자신도 모르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이건 진심에서 나오는 인사였다.
도훈이 없었더라면 지금 데뷔를 꿈꾸기는커녕 소속사를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서찬휘의 행동을 본 나머지 멤버들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도훈은 연습실 밖에서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모른 척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뭘 고마워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을 처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욕망과 그들의 욕망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어색하게 웃자 옆에서 지켜보던 황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뭐라고 하신 거예요? 실장님이 문자 보내고 수호 엄마가 달라진 것 같은데요.”
“난 별말 안 했는데…….”
“뭐라고 했는데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그냥 매니저 일에 집중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헉, 그건 협박이잖아요.”
황수영은 도훈을 쏘아봤다.
이전이라면 모르지만, 박수호의 엄마인 장미령은 도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훈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었다.
도훈은 씩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조금 협박하면 어때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참,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요.”
도훈이 빙긋 웃으며 계단을 내려가자 황수영이 외쳤다.
“같이 가요.”
* * *
보름 후.
블랙홀의 데뷔 준비는 차질 없이 준비되었다.
데뷔를 보름 앞둔 시점이기에 그들은 모두 연습실에 모여 있었다.
장선우와 주현빈 그리고 박수호도 오늘부터는 단체 행동을 해야 했다.
타이틀곡은 아윌비백이지만, 그다음 곡도 틈틈이 연습해야 했다.
덕분에 연습실 유리창은 그들의 땀으로 뿌옇게 김이 서렸다.
그들은 연습도 잊은 멍하니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이었다.
짧은 준비 기간 덕분에 본래 디지털로만 발매하기로 했지만, 홍보용 앨범 때문에 이렇게 실물을 찍어 내야 했다.
도훈은 자신의 앨범을 손에 쥐고 멍하니 있는 블랙홀 맴버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번 생에는 처음 데뷔시키는 그룹이었다.
거기에 백 퍼센트 확실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기도 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덜컹.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감동을 만끽하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강시혁이 콧김을 뿜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까지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첫 앨범이 나온 경사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시혁의 표정은 너무 이상했다.
느낌이 싸했는지 눈치 빠른 서찬휘가 재빨리 달려들었다.
“선생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순간 강시혁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넌, 아직도 선생님이야? 왜 나는 선생님이고 이 실장은 형인데?”
“그야…….”
서찬휘가 대답을 못 하자 도훈이 나섰다.
“강 피디는 아무래도 연륜이 있어 보이잖아. 그러니까 선생님이지.”
“그거 욕 아니야?”
“욕이라니 이 사람이 나를 뭘 보고…….”
도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자 강시혁은 못 믿겠다는 듯 노려봤다.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인상을 쓰는데?”
“내 말 들어봐. 내가 너튜브 채널을 쭉 둘러봤거든. 그런데 우리 음원이 벌써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블랙홀 첫 앨범을 유출한 것 같아. 너튜브뿐이 아니야. 각종 커뮤니티에도 우리 애들 음원 출시하기 전인데 누구 노래냐고 다들 의견이 분분하더라고.”
“그거 좋은 거 아니야?”
“관심을 두는 건 좋은 데 이렇게…….”
“홍보해 준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없잖아. 후크송 부분만 떼다가 홍보해주는 건데,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 앨범인데…….”
강시혁은 말끝을 흐리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는데?”
“후크송 부분만 유통되는 걸 이 실장은 어떻게 알고 있어?”
“강 피디가 아는 걸 내가 왜 모른다고 생각하지?”
“음, 아무래도 수상한데?”
“어쨌든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회식이나…….”
“아니야, 음원 발매 날까지는 외식은 참아야 해.”
강시혁이 주먹을 불끈 쥐자 도훈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혁이 회식이라는 말에 발끈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강시혁이 작업하는 앨범에 참여하는 가수들은 꼭 음식 때문에 탈이 났다.
처음에 한두 번이면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이건 하나의 법칙이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서찬휘가 둘의 대화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제가 봤을 때는 앨범 유출된 건 호재 같아요.”
“호재라고?”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서찬휘가 말을 이었다.
“지금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데요, 여기 보세요.”
서찬휘는 태블릿을 들고는 몇 번 클릭한 후 내용을 보여 줬다.
―와 이 노래 누가 부른 거야? 귀에 쏙쏙 박히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목소리가 신인 같아.
―신인이라고? 말도 안 된다.
―그런데 그 랩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아?
―스타플레이어에서 나온 거잖아.
―그럼 SW의 스타플레이가 부른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음.
쭉 읽어 본 강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음원 발표 전인데도 완전히 떴어요. ……물론 우리 이름도 모르지만요. 유출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천재예요.”
서찬휘의 말이 도훈은 살짝 움찔거렸다.
하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도훈은 조용히 자신이 핸드폰에 적힌 날짜를 바라봤다.
도훈이 홍보를 위해 이런 술수를 쓴 이유는 하나였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구성된 팀인 SW엔터의 스타플레이와 정면 승부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상태로는 승부 자체도 되지 않았다.
데뷔 직전이면 어느 정도 팬층을 깔고 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스타플레이가 모든 팬층을 싹싹 흡수하고 가는 형국이었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힘이었다.
마지막까지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멤버들에게 시청자들은 모든 감정이입을 했다.
덕분에 정공법이 아닌 이런 틈새 마케팅으로 블랙홀의 인지도를 서서히 올려야 했다.
힐끔 강시혁의 표정을 살펴보니 만족한 듯 입꼬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서찬휘가 고개를 갸웃한다.
“실장 형, 이거 조금 이상한데요.”
“뭐가?”
“여기 보세요. 갑자기 비슷한 아이디들이 저희 노래가 스타플레이가 부른 거라도 하고 있는데요.”
“어디 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자 서찬휘가 손가락을 펴서 모두에게 보여 준다.
―그거 스타플레이가 준비한 곡 맞음.
―그 랩도 4화에서 나온 거잖아. 누가 불렀는지 정확히 안 밝힌 건 일부러 떡밥을 흘리고 간 거지.
―대충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도훈이 서찬휘에게 말했다.
“다른 커뮤니티도 봐.”
“다른 곳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댓글 알바라도 풀었는지 우리 노래가 스타플레이 거라고 확언을 하네요. 이거 미친놈들 아닌가요?”
“흠, 이건 분명히…….”
도훈은 살짝 말끝을 흐리며 입맛을 다셨다.
남의 밥상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숟가락을 올려놓는 전략은 왜인지 눈에 많이 익었다.
전생에 도훈의 등에 칼을 꽂았던 그 배신자의 수법이 맞았다.
아무래도 그 배신자가 SW의 전면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서찬휘가 끊임없이 보여 주는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면 블랙홀의 신곡은 졸지에 다른 팀의 노래가 되어 있었다.
활짝 폈던 강시혁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 모습에 도훈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실망하지 마, 상대방에서 우리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놨으면 우리는 그쪽 밥상에 있는 음식을 먹어 치우면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실장.”
“솔직히 우리는 간식도 안 되잖아, 정확히 말하면 잔치를 벌인 것은 SW 쪽이지. 서로 밥상을 바꾸면 누가 손해 보겠어.”
“밥상을 누가 바꿔?”
“잠시만 기다려 봐.”
도훈은 핸드폰을 꺼내며 구석으로 걸어갔다.
잠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던 도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물었다.
“지금 뭐 한 거야?”
“남의 밥상에서 밥 먹을 준비해야지.”
“밥 먹을 준비한다고?”
“내가 배 터지도록 먹게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
“이 실장이 먹여 준다는 거…….”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그래. 그렇게 의심 가득한 눈은 부담스럽다고.”
“배불리 먹을 게 꼭 음식이 아닌 욕이 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러지.”
강시혁은 도훈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도훈이 움직이면 일이 해결되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만큼 일이 커졌다.
찬사를 100만큼 받으면 욕 10 정도는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팬덤이 존재하면 그에 비례해서 안티들이 늘어나는 것은 법칙이었다.
* * *
강시혁은 아침부터 일찍 출근해서 기사와 커뮤니티의 반응을 체크했다.
반응을 살피기 위해 연습실이 아닌 유레카의 7팀으로 출근했다.
일찍 출근해서 반응도 살피고 자세한 내용을 도훈에게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한참을 확인하던 강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어제 도훈이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떠벌려서 강시혁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서 기사를 비롯한 온라인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경천동지할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강시혁은 생수를 들이켠 후 한숨을 뱉어 냈다.
“휴, 이 실장이 이번에는 그냥 떠벌린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때였다.
강시혁의 핸드폰에서 상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따다다, 따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강시혁이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전화를 받고 난 강시혁은 재빨리 사무실 문을 열고 회의실로 걸어갔다.
회의실에는 벌써 도훈이 나와 있었다.
순간 강시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계획의 시작이 바로 회의실에서부터 시작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씩 살폈다.
순간 가늘게 떴던 강시혁의 눈이 커졌다.
강시혁이 생각하기에 블랙홀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로만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