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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성이 보여 준 문자 메시지에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다름 아닌 미디어 패스의 박수진 기자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그것은 MBS의 대처에 관한 기사였다.
사장 빼고 스타플레이어의 시청자 투표 조작과 관련된 모든 임직원을 퇴사 조치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중 예능국장은 SW 엔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넌지시 전해 왔다.
거기에 스타플레이어의 숨은 공신이라고 해서 20호실의 연습생에 관한 기사가 나간다고 했다.
“흠.”
도훈이 작게 침음을 흘리자 박창성이 물었다.
“이 실장님은 못마땅한 표정이네요.”
“못마땅하죠. 문동훈에게 부탁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없잖아요.”
“그, 그건 그렇죠. 그래도 이게 웬 떡입니까? 이 정도 이슈면 다음 달부터 방영할 아이돌 메이커는 대박 각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고요. 참, 저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비밀로 하다니요?”
“마음이 붕 뜨면 연습하는 데 지장 있을까 봐요.”
그때였다.
장선우가 슬금슬금 도훈 쪽으로 다 갔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는데? 장선우.”
“찬휘 형이 배고프대요.”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 배고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
도훈은 시계를 가리킬 때였다.
장선우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휴, 할 수 없지. 다들 준비하라고 해.”
“그럼, 지금 식당으로 내려가면 되는 거예요?”
“아니, 일단 테스트부터 하고 내려가자.”
“네?”
장선우가 화들짝 놀라 뒤쪽으로 물러났다.
녀석은 갑자기 테스트라고 하니 눈빛이 떨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잠시만 기다려. 신 선생님하고 강 피디 모시고 올게.”
도훈이 돌아서자 뒤쪽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졌다.
물론 도훈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아, 형은 왜 물어보라고 해서…….”
“그러니까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요?”
“아이, 미치겠네. 서찬휘가 또 사고 쳤네.”
모든 원망은 장선우를 시켜 도훈에게 물어본 서찬휘가 들어야 했다.
* * *
잠시 후.
블랙홀의 멤버들은 연습실의 가운데에 일렬로 섰다.
그들을 본 신서희는 오디오의 버튼을 눌렀다.
순간 온종일 습관처럼 듣던 리듬이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클래식을 연상시키는 전주가 끝나자 강렬한 비트가 귓가를 때린다.
딴따다.
바로 아윌비백의 초반부였다.
음악에 맞춰서 멤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서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도 잠시, 신서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명의 동작에 집중했다.
도훈은 신서희의 표정에 집중했다.
도훈이 긴장하는 이유는 바로 장선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추지만, 신서희가 주목하는 멤버가 바로 장선우였다.
이제 아윌비백의 중반부였다.
과격한 동작 덕분에 모든 멤버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저 상태에서 라이브로 노래까지 소화해야 하는 것이 저들의 한 달 뒤 운명이었다.
이 정도 춤에 버벅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훈이 생각해도 지금의 안무는 조금 과격했다.
이전에 스타플레이어에서 소화했던 안무에서 살짝 변형되었다.
그때는 삼인조였지만, 지금은 다섯 명의 멤버에게 안무를 분배해야 했다.
다섯 명으로 안무를 펼치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이 분산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동작을 추가한 덕분에 그들의 동작은 더욱 과격해졌다.
살짝 호흡이 거칠어지자 문제가 나타났다.
턴을 하던 장선우가 살짝 휘청거렸다.
순간 신서희는 오디오를 끄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도훈도 신서희의 연설을 같이 들어야 했다.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멤버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서희가 안무의 수준을 점점 높이다 보니 어느 순간 그의 재능이 한계에 부딪힌 것.
그 후에도 신서희는 계속 같은 곡을 반복했다.
네 번째 시도 만에 블랙홀 멤버들은 신서희의 테스트에 통과했다.
“여기까지. 이제 다들 쉬어.”
“네, 선생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쿵.
뭔가 쓰러지는 소리에 도훈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새로 들어온 박수호가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은 재빨리 그에게 뛰어갔다.
박수호는 일자로 뻗어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밤톨만 한 혹이 나 있다.
머리부터 넘어진 것이 분명했다.
정신이 든 박수호가 말했다.
“괘, 괜찮아요. 갑자기 다리가 꼬여서요.”
“한 달 뒤가 데뷔인데 얼굴이 그게 뭐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
그 모습에 신서희가 다가와 말했다.
“제 레슨이 너무 하드했나 봐요, 미안해요.”
선서희가 어찌할 줄 모르자 뒤쪽에 있던 주현빈이 다가왔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얘가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잠을 못 자?”
신서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주현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수호랑 방을 같이 쓰잖아요. 그런데…….”
주현빈은 박수호가 숙소에 온 첫날부터 시작해서 빠짐없이 그의 행동을 보고 했다.
주현빈을 말을 듣고 나니 박수호가 이제까지 쓰러지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박수호는 지금 데뷔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 공부도 같이하고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공부한다는 수준이 아닌 이를 악물고 있던 것이다.
출석 일수 때문에 등교하는 것은 주현빈이나 장선우도 똑같았다.
그렇다면 박수호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박수호는 바로 성적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러 문제 때문에 박수호는 1시간이 떨어진 기존 학교로 등하교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정 때문에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 날은 친구에게 수업 내용을 받아서 그날그날 보충한다고 한다.
데뷔와 학교 성적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생활하던 것.
도훈은 20호실에서 박수호와 같이 생활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새벽까지 손전등을 켜고 뭔가를 외우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가사인 줄 알았다.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바로 학교 공부였다.
주현빈의 설명이 끝나자 모두가 박수호를 바라봤다.
따가운 시선을 받은 박수호가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니에요, 다들 그러고 사는데요, 뭐.”
“…….”
모두는 서로를 바라봤다.
녀석이 하는 말이 너무 어른스러웠다.
도훈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박수호, 다들 그러고 살지는 않거든. 내가 보기에 너는 한계를 넘어섰어.”
“그런데 그게 약속인걸요.”
“무슨 약속?”
“아이돌을 꿈꾸면서 엄마랑 약속했거든요. 전교 10등 밖으로 빠져나가면 그만두기로요.”
녀석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헉, 그게 무슨 말이야, 박수호.”
“연습생 생활하면서 어떻게 10등 안에 들어?”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을 때 도훈이 미간을 좁혔다.
“수호가 연습생 생활이 몇 년이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니까, 올해로 3년이에요.”
“그럼 그동안 계속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는 거야?”
“……그, 그거야 당연하죠.”
순간 여기저기서 다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전의 탄성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장 과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서찬휘였다.
녀석은 박수호의 옆에 앉아서 어깨동무했다.
“와, 진짜 미쳤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고? 나는 출석 일수 채우는 것도 부담스럽던데…….”
서찬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박수호를 바라볼 때였다.
도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 데뷔를 하게 되면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건 그거대로 별도로 약속을 했어요.”
“무슨 약속인지 물어봐도 될까?”
“다른 약속은 아니고 데뷔하고 나서는 발표하는 곡이 10위 안에 들면 된다는 게 조건이었어요.”
“흠.”
도훈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박수호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뭐, 잘못이라기보다는 너무 데뷔를 만만하게 본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네.”
“그게 무슨 말씀…….”
“생각해 봐, 너는 지금 솔로로 활동하는 게 아니잖아.”
“…….”
“네 주변을 봐.”
도훈은 박수호의 주변을 가리켰다.
박수호의 주변에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멤버들이 있었다.
도훈은 그들과 일일이 시선을 마주친 뒤 말을 이었다.
“만약에 네가 무대에서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
박수호는 이번에도 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쓰러지면 너를 받쳐 줄 친구들이야. 그런데 너도 저 친구들이 쓰러지면 받쳐 줄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해. 그러니까 조금의 여유는 남겨 두라고.”
“아, 알았어요, 실장 형.”
“그럼, 다른 테스트로 넘어가 볼까?”
순간 모두는 도훈을 악마처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도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데뷔 전까지는 숨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박수호의 문제는 숨 쉴 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보컬 테스트가 시작되자 박수호의 표정은 어느덧 정상으로 돌아왔다.
약속이야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그 약속이 팀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도훈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들었다.
톡, 톡.
몇 번 핸드폰을 두드린 도훈은 시선을 다시 그들에게 돌렸다.
박수호의 이마는 마치 루돌프의 코처럼 빨개졌다.
하지만 그들의 열기에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들은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테스트가 모두 끝나고 이제는 진짜 식사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연습실을 나갈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한 명이 아직도 중앙에서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그는 바로 서찬휘였다.
장선우가 달려가서 물었다.
“형, 아까는 배고프다면서요?”
“내가 수호 보면서 느낀 게 많아. 나는 조금 더 연습할 테니 먼저 내려가.”
“헉, 그럼 저도 조금만 더 연습하다 갈래요. 형.”
그게 시작이었다.
나머지 블랙홀의 멤버들이 텔레포트 하듯 연습실의 중앙에 모였다.
그때였다.
앞에 모아놨던 핸드폰 중 하나가 거칠게 진동음을 토해 냈다.
지징, 지징.
앞으로 가서 핸드폰을 확인한 서찬휘가 고개를 돌렸다.
“박수호, 너희 엄마가 전화 달라고 문자 왔다.”
“엄마가요?”
박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찬휘에게 핸드폰을 받아 연습실 구석에서 통화하던 박수호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 정말로요? 갑자기 왜…….”
그 목소리에 멤버들이 박수호에게 달려가 귀를 쫑긋 세웠다.
박수호에 사정을 듣고 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탁.
박수호가 통화를 종료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지금 뭐라고 하셔? 혹시 성적 나왔데?”
“박수호, 드디어 전교 10등 밖으로 벗어난 거야?”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박수호는 손을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