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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2화 (22/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2)

그녀의 탄성이 잦아들기 전에 도훈이 물었다.

“혹시 평소에 봉사 활동 같은 거 가세요?”

“…….”

이지유는 아무 말 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의 계획은 간단했다.

전생처럼 십 년이란 세월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가고 여론이 변할 때까지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그 모습이 모이고 모이면 여론도 이지유의 억울함에 몇 배 더 공감하게 되어 있었다.

뭐, 문제는 앞으로의 진로였다.

전생에는 약간의 푼수 끼에 가끔씩 터지는 재치 있는 입담 덕분에 리포터를 거쳐 MC 쪽으로 꽤나 성공을 거뒀었다.

하지만, 그때의 연륜을 지금 보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이지유를 바라보던 도훈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계약부터 하고 계획은 다음에!’

* * *

이틀 뒤.

한지혜로부터 희소식이 도착했다.

그녀가 취재한 영상이 일주일 뒤 방영된다는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대응이었다.

지금 그들은 한민국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들이 탄 승합차는 한참을 달려가다가 풀 향기가 흠씬 풍기는 곳에서 멈췄다.

도훈은 차에서 내려 정문에 달려 있는 낡은 나무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은혜 보육원]

도훈이 승합차에서 안 내리고 있는 이들을 향해 외쳤다.

“다 같이 짐 좀 옮기자고.”

순간 한민국이 번개처럼 박스를 아래로 쌓았다.

도훈은 한민국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 민국 씨는 박스보다는 이걸 좀 들어 줘.”

“이게 뭐예요?”

“캠코더. 이 정도면 무게가 부담스럽지는 않을 거야, 오늘 하루는 고생 좀 해 줘.”

“다들 무거운 걸 나르는데, 저만 이렇게 편한 걸 해도 될까요?”

“여기까지 운전하는데 고생했잖아. 그리고 카메라 들기 전에 이것 좀 입고.”

도훈은 한민국에게 구멍이 숭숭 뚫린 조끼를 건넸다.

“그게 뭔데요?”

“양쪽 주머니에 캠코더 배터리 두 개씩 넣어 놨고. 가슴 쪽 주머니에는 렌즈 클리너 준비해 놨으니 충분할 거야.”

“그러니까 이걸 입고 완벽한 카메라맨이 되라는 거죠?”

“그래, 일단 실시.”

“일단 입어 볼게요.”

조끼를 입고 난 한민국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힘들더라도 하루만 고생해.”

“아, 생각보다 무거운데 바꾸면 안 될까요?”

“너 이지유 씨 현역 때 직캠도 잘 찍었다면서?”

“아, 그건 비밀인데.”

“그러니까, 팬심을 듬뿍 담아서 오늘 좀 수고해. 절대 흔들리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일단 해 볼게요.”

말을 마친 한민국은 당당한 카메라맨으로 변신했다.

한민국은 벌써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작업이라 쉬워 보여도 저렇게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어깨가 성치 못할 것이었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훈에게는 따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지유도 재빨리 내려와서 박스를 옮기기 시작했다.

짐을 아래로 다 옮겼을 때 마침 보육원 문이 열리고 원장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어제 전화 주신 분들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도훈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주원영이에요. 일단 들어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잠시 후.

도훈 일행과 주원영 원장은 조그만 사무실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도훈뿐.

사실 이곳은 전생에 이지유가 봉사 활동을 하던 곳이었다.

잠시 커피 홀짝거리는 소리만 들릴 때 도훈이 입을 열었다.

“원장님, 어제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봉사 활동 하는 장면 좀 촬영해도 되겠죠?”

“네, 물론이죠.”

주원영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도훈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능한 한 아이들 얼굴은 나오지 않게 찍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고맙죠.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아신 거죠? 처음 통화에서 정기적으로 후원하시겠다고 하시는 분은 처음이라서요…….”

“뭐, 제가 느낌을 좀 믿는 편이라서요. 처음 통화에서 느낌이 왔습니다.”

“호호, 진짜 농담을 진심처럼 하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그런데…….”

주원영 원장이 도훈을 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시죠? 혹시 밥풀이라도 묻었나요?”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요.”

“원장님과 처음인데 저를 보셨을 리가 없죠.”

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원영을 슬쩍 살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번 생애는 말이다.

그때 주원영 원장이 짝짝 손뼉을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책상으로 황급히 뛰어가는 주원영.

모두가 주원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할 때 그녀가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주원영이 가지고 온 것은 의외로 태블릿 PC였다.

그녀는 태블릿을 툭툭 치더니 사진 하나를 띄웠다.

그러고는 검지로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맞죠?”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도훈이 눈을 크게 뜨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주원영이 태블릿에 띄운 사진은 얼마 전 강영웅의 딸 다미를 구해 줄 때 찍힌 사진이었다.

“아, 진짜네요, 진짜. 용감한 시민상도 거부하셨다던데.”

“네, 그럴 만한 사정이 조금 있어서요.”

도훈은 어색한 웃음을 이어 나갔다.

그럴 만한 사정이라는 건 간단하다.

강영웅과 계약을 했지만, 아직 언론에 발표를 안 한 상태였다.

유레카와 계약하면서 딸이 있다는 것도 세상에 발표하기로 강영웅은 결심했다.

그 발표 전까지는 도훈이 다미를 구한 것을 일단 비밀로 하기로 했다.

거기에 더해 기자들이 파고든다면 도훈이 유레카의 실질적인 대표인 것도 어쩌면 드러나게 된다.

여러모로 숨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에 용감한 시민상까지 거절한 것.

뭐, 별다른 뜻은 없었다.

“저,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실장님.”

살짝 친근한 어조로 묻는 주원영 원장에게 도훈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이지유를 잡아끌어 주원영 원장 옆에 앉혔다.

“셀카보다는 제가 찍어 주는 게 좋겠죠. 핸드폰 주세요, 원장님.”

“아, 그게 아니라…….”

“혹시 제 걸로 찍고 전송해 드릴까요?”

“아니, 저는 실장님하고 찍고 싶어서…… 물론 지유 씨와도 찍고 싶지만요, 호호.”

다급하게 이지유의 팔짱을 끼는 주원영 원장이 브이 자를 그린다.

도훈이 찰칵 사진을 찍고 이번에는 이지유가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도훈과 사진을 찍은 주원영 원장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도훈 실장님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웅이거든요.”

“영웅이요?”

“여기에 있는 아이들이 저기 나와 있는 아이 또래예요. 비슷한 또래다 보니 묘하게 감정이입이 되나 봐요.”

“아, 그렇군요.”

“이 사진도 아이들이 확대한 것이에요. 아이들은 슈퍼맨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아직도 이 사진을 자기들의 소중한 물건에 붙여 놔요. 위험한 일이 일어나도 슈퍼맨 아저씨가 구해 줄 거라고 믿고 있죠.”

주원영 원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어쩌다 보니 제가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네요.”

“아이들한테는 그 이상이에요. 한번 버림받은 아이들이기에 의지할 데가 필요한 거죠.”

“제가 아이들한테 의지가 된다니 영광이네요.”

“저희가 영광이죠. 이따 아이들이 이도훈 실장님을 알아볼지도 몰라요. 그러면 부탁인데…….”

“말씀해 보세요.”

“제가 실장님이 슈퍼맨 아저씨라는 건 비밀로 할 건데 혹시라도 아이들이 알아보게 되면 모른 척하지 말고 슈퍼맨 아저씨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아이들이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원영 원장이야 어른이고 태블릿을 통해 확대해 봤으니 알게 된 것이고 아이들이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시 후 원장실에서 나온 도훈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도훈의 소매를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이지유다.

이지유가 말할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인다.

도훈이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말해 봐.”

“원장님이 하신 말씀 진짜예요?”

“진짜야, 사정이 있어서 아직 말할 수는 없지만.”

“와.”

탄성과 함께 묘한 웃음을 짓는 이지유.

도훈이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이제 준비하자는 신호였다.

도훈은 슬슬 땀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 한민국을 바라봤다.

“민국아, 괜찮은 거 맞지. 오늘 믿어도 되는 거지?”

한민국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을 팡팡 쳤다.

잠시 후.

주원영 원장의 안내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 앞에 섰다.

주원영 원장이 이지유를 슬쩍 보더니 물었다.

“혹시 아이들한테 공연 같은 거 준비한 거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제가 시간에 맞춰서 준비해 놓을 테니까요.”

“공연이요?”

이지유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주원영 원장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제가 해 달라는 건 아니고요, 지난번에도 연예인분이 오셨는데, 잠깐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하시겠다고 하셔서…….”

“아, 그랬군요.”

“그런데 제가 준비를 못 해서 얼마나 난감하던지. 옆에 강당이 있긴 한데 평소에는 창고로 쓰는 데라 하시겠다고 하면 제가 거기라도 치워 놓으려고요.”

“혹시 그 연예인이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황리나라는 분이셨어요. 그때는 촬영 팀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도 그렇고 저도 당황했었거든요. 갑자기 공연하시겠다고 하시니…….”

“할게요, 저도 할게요.”

이지유는 주원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원영은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당황한 듯 탄성을 흘렸다.

“아.”

“저 꼭 할 거예요. 그리고 무대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저 방 안에서 하면 되죠, 뭐.”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제가 더 고마워요. 그런데 황리나가 어떤 공연을 하고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커버 댄스에 립싱크 정도요? 그때 촬영 오신 분이 그랬어요. 그런데 어찌나 입 모양이 딱딱 맞던지. 아이들이 진짜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다니까요.”

“네, 알았어요. 저는 더 빡세게 준비할게요.”

“빡세게요?”

주원영 원장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이지유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열심히요.”

이지유가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도훈이 삼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지유의 전투 본능이 살아난 것 같기 때문이다.

주원영 원장이 말한 황리나는 블랙앤화이트, 줄여서 블앤의 멤버였던 친구다.

블앤이 깨지게 된 원인을 제공했지만, 방송에 나와서는 모든 것이 지유의 책임이라 떠넘기곤 했다.

도훈은 그제야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보육원에 가서 봉사한 이야기를 미담으로 꾸며서 방송에 내보냈었다.

이곳에서 십 년간 인연을 맺고 봉사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딱 두 번 방문했었다.

첫해에 방송을 위해 방문하고 십 년 후에 또다시 방송을 위해 두 번째로 방문했다.

십 년을 두고 방문했으니 십 년간 봉사했었다는 기사가 아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넘어갈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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