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
꿈틀대는 눈썹을 보니 일단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가만히 이도훈을 보고 있던 장경자가 호미로 집을 가리켰다.
“뭘 그렇게 보나, 퍼뜩 들어가지 않고.”
그 모습에 도훈은 다급하게 표정을 수습했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니 묘하게 감정이 꿈틀댔다.
거기에 저 말투는 가족들에게만 쓰는 말투였다.
다른 이들을 대할 때와 가족을 대할 때는 묘하게 말투가 바뀌는 장경자.
도훈은 할머니가 밉지는 않았다.
자신을 쫓아낸 것은 장경자가 쓰러진 후였다.
아마 장경자가 건재했다면 도훈의 인생은 달라졌을 터다.
“네, 회장님.”
도훈은 다시 고개를 숙인 뒤 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법 깔끔하게 가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나무 식탁에 나무 의자.
그리고 재래식 주방에서는 두 여인이 땀을 흘리며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부인들, 즉 이도훈에게는 숙모였다.
그녀들이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슬쩍 눈인사를 건네지만, 눈빛만은 먹이를 앞에 둔 독사였다.
오늘 이렇게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아침 식사.
이 집에 있는 직원들의 휴무일이다.
장경자의 오른팔인 엄지연만 빼고 말이다.
그 휴무일에는 며느리들이 와서 아침을 차려야 하는 게 이 집의 관례였다.
오늘 도훈은 임원 후보가 된 기념으로 초대를 받았다.
만일 다른 이라면 꽤나 긴장을 했을 터다.
하지만 도훈은 조용히 그들을 관찰했다.
도훈에게 그들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큰 구렁이 작은 구렁이로 보일 뿐이었다.
전생에는 남은 재산마저 탈탈 털어 쫓아낸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같은 핏줄은 맞긴 맞나?
이것은 전생에도 들었던 의문이었다.
그 당시 결론은 남보다도 못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도훈이 밟고 올라가야 할 계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윽고 장경자와 아들 그리고 손자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장경자는 상석에 그리고 두 아들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장경자의 큰아들은 이세훈, 둘째는 이세형이었다.
두 명의 숙부를 확인한 이도훈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도훈은 자신의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은 자리에 숟가락이 놓인 곳은 한곳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장경자의 두 아들과는 한 칸 떨어진 자리.
자리에 앉자 장경자가 유기그릇을 숟가락으로 쳤다.
퉁.
그 울림에 두 아들은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유기그릇이 내던 여운이 사라지자 장경자가 말했다.
“큰 대표부터 말해 본나!”
숟가락으로 큰아들인 이세훈을 가리키자 그는 재빨리 태블릿 하나를 꺼냈다.
“JK유통의 전체적인 업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JK유통의 마트와 편의점을 합친 리테일 분야 매출은 총 50억 규모이며 이외에 운송 쪽 매출이…….”
이세훈의 보고가 계속될수록 장경자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누가 봐도 마음에 안 드는 상황.
표정을 구긴 장경자는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탁 머리의 법칙과 먹이사슬이 분명한 현실판 동물의 왕국.
장경자가 숟가락을 들자 둘째 이세형도 형의 업무 보고와는 관계없이 숟가락을 든다.
도훈도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장경자의 비서인 엄지연은 식사에는 관심 없다는 듯 이세훈의 업무 보고를 메모했다.
비서 엄지연은 검은 원피스에 단정히 말아 올린 머리는 검은색 망사로 정리했다.
거기에 남들보다 큰 눈은 검은 동공이 빛나고 있었다.
메모하는 모습이 얼마나 한결같은지 볼펜을 굴리는 속도가 일정했다.
그 모습은 마치 로봇 같은 모습이었다.
도훈은 시선을 돌려 조용히 식탁을 바라봤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둘째인 이세형의 젓가락질이 이상했다.
딱 두 군데에는 젓가락이 향하고 있지 않았다.
장경자의 앞에 있는 굴비와 그 옆에 있는 불고기였다.
그때 이세훈의 업무 보고가 끝났다.
“이상입니다. 이번 주는 밥값했으니, 굴비 한 점…….”
젓가락을 잡고 굴비로 향하던 이세훈의 동작이 멈췄다.
탁.
장경자가 그의 젓가락을 막은 것이다.
“뒈질 놈, 네가 이걸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이번 주는…….”
“너, 홍어 거시기라고 아나?”
“홍어라면…….”
“네가 만지고 있는 게 홍어 거시기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머님.”
“업무 보고 할 때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홍어 중에는 가장 쓸모없는 부위가 거시기다. 가시만 많아서리 먹지도 못하고 손질할 때도 난감하고 한마디로 처치 곤란이지. 어부가 잡으면 가장 먼저 떼어 내는 게 홍어의 거시기다. 그런데 지들끼리는 거시기가 꼭 필요하지? 거시기가 없다면 홍어는 씨가 말라 버리겠지.”
“…….”
“네가 홍어냐? 아니면 어부냐?”
“저는…….”
“네가 내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대체 뭐냐? 이택진 이사가 써 준 재무제표 말고 네 호주머니에 들어간 걸 뒤집어 봐라. 홍어 거시기는 다 떼고 필요한 것만 보여 달란 말이다.”
“그건…….”
“솔직히 마이너스지? 화려한 회계장부 뒤에 숨겨야 하는 약점은 밖으로나 보이는 거고. 내가 핫바지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우리 동네 생선 가게 이 씨도 너보다는 더 장사를 잘할 거라 안 그랬나! 너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해 보자, 그거 가지고 이 굴비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굴비가 나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나?”
“그건 저도 잘…….”
“일 년이다, 일 년. 일 년 동안 바닷바람을 맞추고 여름에는 냉동고로 옮겨 놓고. 일 년에 백 두름밖에 안 나오는 굴비라고 안 했나? 아직은 자격이 없다.”
“그럼 이거라도…….”
그의 젓가락이 이번에는 불고기를 노렸다.
그 모습에 장경자의 젓가락이 그 아래쪽 파전을 가리켰다.
“오늘은 딱 거기까지다.”
이세훈의 젓가락이 힘없이 방향을 바꿨다.
장경자의 시선이 이세형과 이도훈을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는 됐다, 오늘은 그냥 조용히 밥 먹자.”
그때 이세형의 부인이 조심스럽게 장경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머님, 저희 양반도 보고할 게…….”
“작은 아가한테 보고 할 껀덕지가 있다고 하나? 그럼 해 봐라.”
장경자가 숟가락으로 둘째인 이세형을 가리켰다.
이세형은 자신의 부인을 쏘아보며 비키라 턱짓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길 기도했는데, 자신의 부인이 사고를 친 것이다.
전날 잘나간다고 집에서 큰소리를 친 것이 화근인 것 같았다.
“일단 하이샘가구의 특이 사항부터 말씀드리면 주방 쪽 매출이 전 주에 비해…… 죄송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입니다.”
“그래도 형보다는 낫군.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는 알아. 너는 불고기까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부족해서 탈락이다.”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솔직하게 보고드렸는데…….”
“네가 부족한 건 밥상머리 예절이다.”
“제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요?”
“그건 알아서 찾거라, 이제 밥 먹자.”
살벌한 업무 보고가 끝나자 이제 모두가 편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큰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한 명이 빠진 것 같은데요.”
장경자는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도훈을 살피고 있었다.
이번 연수 과정에서 보여 준 도훈의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떠먹여 주고 싶어도 자격이 안 되어서 외면했던 손자 도훈이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도훈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 대신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다.
이도훈이 맡은 사업부는 이름만 있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가 맡고 있는 곳은 JK 네트워크.
정확히는 미라클 그룹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사업부.
부동산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잠시 돈이 쉬었다 가는 곳이었다.
거기에 이도훈은 명목상의 책임자에 불과했다.
놀고먹는 한량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도훈은 할머니 장경자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막내아들에게 돌아갈 애정을 모두 쏟았지만, 그 노력의 천분의 일도 기대에 못 미쳤다.
그때 첫째 이세훈이 말을 덧붙였다.
“도훈이도 이제 여기서 한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경자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첫째가 자신의 조카를 물 먹이려고 하는 게 너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장경자가 입을 열었다.
“뭐, 기회는 공평해야 하는 법이지. 막내도 말해 봐라.”
모두의 시선이 이도훈에게 꽂혔다.
기대감은 조금도 없는 황량한 시선.
도훈도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금 도훈이 맡고 있는 부분은 돈만 스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과연 보고할 내용이 있을까?
뭐, 저 불고기와 굴비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번에는 이 자리에서 뻔지르르한 대답을 늘어놨다가 장경자에게 깨졌다.
그게 장경자의 본마음이든 아니든 이도훈은 그때부터 장경자와 멀어진다.
옆에서 독사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두 작은아버지는 아군이었던 적이 없었다. 장경자가 세상을 떠나고 도훈은 길 잃은 고양이 신세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덕분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흘러 들어갔었다.
처음에는 도훈이 그 분야에 그렇게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재벌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나오자 이도훈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승승장구했다.
물론 친구의 배신만 없었다면 해피앤딩으로 끝났을 테지만, 뭐…… 그랬다면 이렇게 회귀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 상황이 참 묘했다.
어쨌든 지금의 대답이 중요했다.
앞으로 장경자와의 관계를 다질 초석이 될 테니까.
어찌 보면 지금 장경자는 도훈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도훈은 정공법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솔직함에 솔직함을 더하기로 결심한 도훈은 입을 열었다.
“매출 몇 프로, 이익 얼마,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장경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도훈은 그 눈빛을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뭐,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업무 보고만을 하는 것은 섀도복싱이랑 똑같다는 겁니다. 비교를 해야죠.”
“그래, 그럼 너는 어떤 기업과 비교할 테냐?”
목소리마저 서늘해지자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경자의 재산 중 눈곱만큼의 지분도 조카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조카에게 갈 지분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가 되든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 주고 싶기 때문이다.
장경자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모두가 기대감을 잔뜩 피워 올릴 때 도훈이 입을 열었다.
“제가 비교할 곳은 한국은행입니다.”
“한국은행?”
장경자가 호기심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은 시선을 돌려 처음에 자신에게 질문하도록 부추긴 첫째 형수를 바라봤다.
“숙모님은 한국은행이 어디 있는 줄 아세요?”
“그건 서울 시내에…….”
“네, 본점은 중구에 있죠. 뭐, 인터넷 검색만 하면 나옵니다. 그런데 미라클이 돈을 넣어 두는 진짜 은행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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