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4화 (4/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4)

지금 장경자가 보고 있는 결과는 인적성 검사였다.

문제는 이도준이 제출한 결과였다.

결과 대로라고 하면 큰 손자인 이도준은 완벽한 사이코패스였다.

장경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이도준이 도훈의 답안지를 빼앗아 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둘의 답안지가 달랐다.

웃긴 것은 도훈의 답안지는 정상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장경자의 머릿속에 답안지를 넘기며 놀라던 설미현의 모습에 떠올랐다.

“참, 그때 놀랐던 게 이것 때문이야, 설 팀장?”

“네, 맞아요. 처음에는 백지였거든요. 그런데 답안지를 낼 때는 완벽하게 마킹되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말해 봐, 설 팀장.”

“여분 답안지를 가져갈 때 한 장만 가져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렇다면…….”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죠.”

“…….”

장경자는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험 장면만 보았을 때는 도훈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설미현의 설명대로라면 임원 후보에 오르기에 충분했다.

장경자가 도훈에게 실망한 것은 자기 것을 빼앗기는 장면이었다.

자기 것도 못 지키는 자가 어찌 그룹을 지키겠는가?

어찌 다른 사람의 밥줄을 지키겠는가?

임원이란 자리는 지킬 것이 많은 자리였다.

장경자의 눈에는 도훈이 순한 양으로만 보였던 것이 사실.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경자는 두 번째 서류를 확인했다.

두 번째 서류는 마지막 날 평가의 결과였다.

서류를 읽어 나가던 장경자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이건 대체…….”

“회장님도 놀라셨네요. 이렇게 완벽한 답안지는 저도 처음 봐요.”

설미현이 서류를 가리켰다.

설미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기존의 시험에서 백 점을 맞는 경우는 많이 봤다.

인재들이 몰려드는 대기업에서는 흔한 일.

하지만 이것은 기존에 없던 시험이었다.

연수 과정에 있던 동료를 알아야지만 풀 수 있는 시험.

과연 경쟁자에게 이리 관심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니, 경쟁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더라도 그것은 자신이 상대를 밟고 올라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한 착각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알아야 할 것이 상대의 능력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장경자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아야 준비가 된 것이라 봤다.

장경자는 머릿속에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조용히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은 다급하게 시선을 돌린다.

그 모습에 장경자가 말을 이었다.

“긴장 풀고. 이제부터는 연수 과정 중 있었던 얘기나 해 보라고.”

“…….”

“먼저 김현조 부장이 말해 봐, 이번 연수 과정이 어땠는지 말이야.”

“그러니까, 이도준 본부장의 경우…….”

“잠시만 평가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연수 과정에 있었던 일 말해 보라고.”

“아, 그럼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김현조 부장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김현조 부장의 표정을 풀렸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속내를 털어놨고…….

그런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당연히 도훈이었다.

장경자는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까지 도훈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장경자의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마음속에 짐이 있었다.

막내아들이 남긴 자식인 손자 도훈에게 어느 정도의 지분을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양에게 호랑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바뀐 것이다.

장경자가 보기에 이도준이 늑대라면 도훈은 호랑이였다.

아직 힘이 미약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 대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장경자의 결심을 달라지지 않았다.

* * *

검은색 그랜지오 차량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이름은 한민국.

한민국은 도훈의 운전 기사였다.

도훈은 한민국과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옛 기억까지 차근차근 떠올랐다.

대화를 나누던 도훈은 슬쩍 룸미러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한민국은 룸미러를 통해 도훈을 힐끔힐끔 확인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살짝 불안해 보이자 도훈이 물었다.

“한민국 씨 왜 그렇게 자꾸 쳐다봐?”

“걱정돼서 그러죠.”

“무슨 걱정이 되는데?”

“흠…….”

말을 못 하는 한민국의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갑자기 내가 불려가니까 불안해서 그래?”

“뭐, 그렇다기보다는…….”

살짝 말끝을 흐리는 한민국.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그와 추억이 많지 않은 이유는 오래지 않아 도훈이 가문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생의 기억이 많이 정리되었다.

오늘 장경자가 부른 것은 화보다는 복에 가까울 것이었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오늘 불려가는 것은 자신이 아닌 이도준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이도준이 임원 후보가 된다.

그러고는 얼마 후 JK 유통의 본부장에서 부사장으로 진급한다.

하지만 이제 미래는 바뀔 것이었다.

물론,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자리가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태는 그냥 임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도훈은 연수원에서의 답안지를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피어났다.

바닥부터 박박 기었던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사람들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을 터였다.

도훈은 창밖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얼굴이 붉어져 있을 이도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같은 시간 JK 유통의 본부장실.

쾅.

거칠게 문이 닫히고 누군가가 콧김을 내뿜으며 걸어갔다.

물론, 그는 이 방의 주인인 이도준이었다.

의자가 부서질 정도로 거칠게 자리에 앉은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쿵.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문자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이번 임원 후보 과정의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이도준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잡고 뒤틀었다.

핸드폰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부서졌다.

꽈직.

폴더폰은 상하가 분리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가 이리 분노하는 이유는 임원 후보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이도준은 현재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측근들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번 연수 과정에서는 반드시 임원 후보 한 명을 뽑는다고 들었다.

어리숙한 사촌 동생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공채로 입사한 인물 중 하나가 임원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도준은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뒹구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감히!”

이도준이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의 탈락을 문자로 전해 온 인사팀장 설미현 때문이었다.

아무리 할머니의 지시라지만, 일개 팀장이 미라클의 후계자인 자신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도준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의 고통을 머리에 새겨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시간만 지나면 어차피 미라클의 주인은 자신이 될 터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렸다.

덜컹.

동시에 이도준의 비서가 번개처럼 달려왔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이도준의 앞에 섰다.

숨까지 몰아쉬는 비서의 모습에 이도준은 표정을 수습하고 손을 내저었다.

“다 아니까. 얘기 안 해도 돼.”

“아셨습니까? 그래서 대표님의 전화를 안 받으신 겁니까?”

비서의 말에 이도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대표라면 자신의 아버지 이세훈이었다.

“지금 아버지한테 전화 왔다고 한 거야?”

“네, 아버지가 전할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얘긴데?”

“그, 그게…….”

다급히 뛰어왔지만, 본론을 말하기 뭐한 듯 어물쩡거리는 비서의 모습에 이도준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냥 말해. 성질 돋우지 말고.”

“각오하시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JK 네트워크에 이도훈 본부장이 새로운 임원 후보가 된 것 때문에…….”

“지금 뭐라고 했어?”

“임원 후보…….”

“아니, 누가 됐다고?”

“이도훈 본부장이요. 다 들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말을 마친 비서는 재빨리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도준의 얼굴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불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비서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비서가 나가자 본부장실에서는 폭주 기관차가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쾅, 쾅, 쾅.

비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집기를 다시 장만해야 하기에 미리 계산해 두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비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운 임원 후보의 선출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강동구와 하남시의 중간에 있는 미현동.

서울 외곽에 있는 덕분인지 자연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곳이었다.

소똥 냄새를 맡으며 조금 들어가자 멀리 대문 하나가 보였다.

저곳이 장경자 회장이 사는 집이었다.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낡은 집.

저 집만 본다면 평범한 농가의 집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 전체가 장경자 회장의 소유라고 생각한다면 대부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다.

신선한 바람이 좋다고 몇백 배로 자산을 뻥튀기할 수 있는데 재개발에 반대한 인물.

돈을 그렇게 밝히면서도 그 돈을 신선한 공기와는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 괴짜.

재벌가에서 그런 괴짜는 없었다.

그때 검은색 세단이 장경자 회장의 집 앞에서 멈췄다.

도훈은 뒷좌석에서 문을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한민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본부장님, 혹시 급한 일이라도…….”

“…….”

도훈은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고 전생의 버릇이 튀어나왔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는 시간이 금이라는 신조로 기사가 문을 열기 전에 자신이 항상 열었다.

기다려서 얻는 품격보다 시간이 소중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의 시간은 죽음을 경험하기 전의 시간보다 더 소중했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친구들을 모두 정상에 올려놓고 싶었다.

그러려면 장경자의 재력도 필요하지만, 시간을 아껴 써야 했다.

전생에는 노력하는 범재였지만, 지금은 노력하는 천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소망을 이룰 수 있으니까.

“한 기사. 앞으로는 그냥 내가 내릴 테니 문 열어 줄 필요 없어.”

전과는 다른 도훈의 태도에 한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와 말투가 일주일 전과는 딴판이었다.

이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정문을 향했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평범한 등산복 복장의 할머니가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조금 다른 것은 지팡이 대신 호미를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훈은 재빨리 달려가서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저 왔습니다.”

“…….”

장경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도훈은 평상시에 혼나면서도 계속 할머니란 호칭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장경자에게 손자가 아닌 이도훈이라는 사업가를 보여 줘야 했다.

자리 하나 따먹자고 온 게 아니라 소원을 이룰 배경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