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
영혼이 된 자신의 귓가에 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인가?
도훈은 힐끔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저승사자가 웃으며 손가락을 편다.
일곱 개의 손가락.
저승사자가 말한 일곱 명이 마지막으로 온 이지유 덕분에 충족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의문은 저승사자가 말한 다시 시작하게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저승사자님…….”
도훈은 말을 맺지 못했다.
저승사자는 이미 눈앞에 없었다.
대신 자신의 가슴이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넣어 놓는 수첩이 있는 곳이었다.
순간 눈앞에 캄캄해졌다.
눈을 뜨고 있는데 눈앞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이 펼쳐져 있었다.
* * *
암흑 속에서 귓가에 묘한 노래가 들린다.
―세이 미, 세이 미. ♬♪♩
―치지직.
―내 마음속에……. ♬♪♬♩
―치지직.
귓가에 노이즈와 함께 들려오는 음악.
40세에 들었던 노래.
30세에 들었던 노래.
20세에 들었던 노래가 차례대로 지나간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그것은 바로 노래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어쨌든 이 노래가 끝나면 무엇이 보일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뭐, 깜깜한 암흑이 아니면 다음 생이 보일 것이 분명했다.
개꿈이 아니라면 실제 상황일 테니까.
도훈은 여유 있게 음악을 감상했다.
그때였다, 끝날 줄 알았던 음악은 점점 커졌다.
쿵, 쿵.
머리가 흔들릴 정도의 강한 비트에 도훈은 눈을 떴다.
눈앞이 환해지면서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도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팔목까지 걷어 올린 사람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 분주히 움직인다.
이게 뭐지?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저승사자의 말을 떠올렸다.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환생인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행이 지난 모니터였다.
모니터의 우측 하단에는 이해 안 되는 숫자가 떠 있었다.
<오후 12:27>
<2012-03-25>
도훈은 고개를 돌려 단서를 찾았다.
파티션 쪽에 조그맣게 적혀 있는 직책과 이름.
<과장 이도훈>
“헉.”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이곳은 다름 아닌 JK네트워크.
편의점과 대형 마트를 경영하는 JK유통의 자회사였다.
그렇다면…….
이게 꿈이 아니라면 도훈은 과거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도훈이 2012년이라면 미라클 그룹에서 쫓겨나기 일 년 전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도훈의 어깨를 톡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서는 익숙한 얼굴이 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도훈의 사촌 형인 이도준이었다.
직급은 본부장이지만, 이곳 JK네트워크의 모회사인 JK유통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가문에서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쳤던 인물.
살짝 떨리는 도훈의 어깨.
이도준은 사람 좋은 얼굴로 도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도훈아, 괜찮은 거냐? 아프면 일찍 들어가 보고.”
그 목소리에 도훈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 살가운 목소리 속에 서슬 퍼런 칼날을 숨기고 있는 것이 사촌 형 이도준이었다.
앞으로 몇 개월만 지나면 가문에서 도훈을 몰아내기 위한 계획이 시작되니…….
생각도 잠시 도훈은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형님이 신경 써 주시는 데 밥값이라도 해야죠.”
“밥값을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건 아니지. 증명을 하기 위해 있는 거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훈이 뒷머리를 긁었다.
증명이라?
이도준의 말이 맞았다.
도훈은 가문에서 정당한 지분을 받기 위한 과정으로 지금 증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도훈의 할머니이자 미라클 그룹의 회장인 장경자의 방식이었다.
누구도 공짜로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 장경자의 원칙.
문제는 늑대의 무리 안에 양을 넣어 놨다는 것이다.
도훈은 할머니에게 한번 묻고 싶었다.
늑대의 무리 안에 있는 양이 과연 제 실력을 발휘할까?
물론 이제는 그 대답이 필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도훈이 양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늑대의 목을 물 정도의 이빨은 전생에 갈고 닦았다.
도훈의 웃는 모습에 이도준은 천사처럼 웃었다.
“그래, 쉬엄쉬엄해. 내가 할머니한테는 잘 말해 둘 테니. 참, 내일 임원 적성검사에는 늦지 말고.”
* * *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책상 위에 턱을 괴고 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회귀라?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은 보너스 인생.
보너스 인생이라면 거기에 걸맞게 살아가면 되었다.
그때였다.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뭐지?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순간 도훈의 손끝에 딸려 나오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헉, 대체 이게 왜 여기에!”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전생에 자신이 썼던 물건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몸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물건도 같이 가지고 왔다니?
그 물건은 바로 수첩이었다.
은혜와 원한이 고스란히 적혀 있던 수첩.
도훈은 그 수첩을 펼쳐 봤다.
자신의 뒤통수를 쳤던 인간들이 쫘르륵 나왔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승사자의 조건을 달성시켜 줬던 빈소를 지켜 준 일곱 명의 친구들도 적혀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볼펜을 들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빈소에는 오지 않았지만, 전생에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
이도준과 배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도훈은 이내 펜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내용을 다 적고 난 도훈은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건 마치 은원을 기록해 놓은 장부 같았다.
이렇게 이름을 적고 나니, 원한보다는 은혜에 목적의식이 더 뚜렷해졌다.
이번 생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도훈은 수첩을 책상 위에 두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였다.
도훈은 머릿속에 자신의 장례식장을 지켜 준 친구들을 떠올렸다.
첫 번째 목적은 이들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줄 것이었다.
순간 수첩이 반짝였다.
하지만 도훈은 눈을 감고 있었기에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 * *
삼 일 후.
경기도 이천의 미라클 그룹 연수원.
도훈이 이곳에 온 것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미라클 그룹에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예비 임원 검증 과정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임원 검증 과정이라?
이것은 다른 기업에서는 없는 과정이었다.
미라클의 회장 장경자의 근본은 사채업이었다.
그룹 서열로 따진다면 겨우 100위 안에 들까 말까 했지만, 장경자가 재계에 미치는 영향은 부동의 재계 1위인 무성 그룹보다도 더 강했다.
현금 부자 장경자의 경영 철학이라면?
사업이라는 건 말아먹는 데 일 년이면 족하다.
하지만 돈은 단 일 초라는 시간만 준다면 모두 날릴 수 있다.
이것이 장경자의 지론이었다.
장경자는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돈을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돈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
그것이 임원 검증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점이었다.
순간 도훈은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돌아가신 도훈의 부친은 후계자감이었다.
묘한 구석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부친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꽂혀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유산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훈은 이제부터 부친의 유산을 찾아야 했다.
그 시작이 바로 이번 연수 과정.
차에서 내린 도훈은 연수원을 바라봤다.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미라클 그룹의 연수원은 마치 폐교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라면 몇백 명의 임직원이 한꺼번에 이곳에 입소하지만, 이번에 교육 고작 일곱 명이었다.
이번 과정이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일곱 명 중 과연 얼마나 될까?
도훈은 천천히 다가가자 건물 입구에서 경비원이 뛰어나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번 연수 과정에 입소하려고 왔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앗, 그럼 장경자 회장님의…….”
“저는 그냥 연수생일 뿐입니다. 말씀 낮추세요.”
“제가 어떻게…….”
“아닙니다. 연수원에서의 경력은 선배님이잖아요. 그리고 나이도 그렇고…… 그냥 편안하게 이 본이라고 부르세요.”
“이 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다.”
“이 본부장의 줄인 말입니다.”
“하하.”
경비원이 활짝 웃는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번 연수 과정의 팁 같은 거 아시는 거 있을까요? 아무래도 여기에서 오래 근무하셨을 테니, 아시는 꿀팁 같은 게 있으실 거 같아서요.”
“흠.”
“어려울까요?”
“편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다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말입니다. 건강하게 퇴소하시는 거죠.”
“네, 감사해요. 아저씨.”
도훈이 꾸벅 허리를 숙이자 경비원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는 도훈이 다시 일어나자 바로 사라졌다.
* * *
잠시 후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간 도훈은 주변을 살폈다.
이번 과정에 입소한 이는 공채로 입사한 인재 다섯 명과 장경자의 손자 둘이었다.
손자 중 하나가 도훈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이도준이었다.
공채로 입사했던 간부들은 이미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훈은 천천히 다가가 그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김 부장님.”
“……본부장님 오셨습니까?”
미라클 본사의 김 부장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하긴 전생에는 김 부장에게 말조차도 건넬 생각을 못 했으니까.
도훈의 웃음에 김 부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것도 잠시 김 부장의 웃음이 끊겼다. 동시에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도훈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아마 식당에 이도준이 내려왔을 터다.
도훈과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반역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뒤쪽에서 울리는 이도준의 기척.
터벅터벅.
기척이 가까워지자 도훈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예상대로 이도준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도훈도 마주 웃었다.
전생에는 안 보였던 이도준의 웃음의 의미가 이제는 정확하게 보였다.
상대가 입에는 꿀을 바르고 안에는 칼을 숨긴다면 도훈도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해야 했다.
도훈의 앞에 다가온 이도준은 활짝 웃었다.
“우리 도훈이 왔네. 일단 자리부터 잡자.”
이도준은 다른 이들이 있는 테이블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몇 걸음 따라가던 도훈이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형님, 저는 저분들하고 같이 앉을게요.”
“…….”
“며칠 동안은 같은 연수생이잖아요.”
“흠.”
이도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그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앉은 도훈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강 부장님은 아이들이 몇이에요?”
“저는…….”
도훈의 말에 대답은 하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그들.
도훈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이도준은 그런 도훈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도훈은 그들과의 대화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