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
중년의 사내가 회전문을 열고 빌딩에서 나왔다.
사내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빌딩은 마치 공룡처럼 보인다.
입맛에 당기지 않는 먹이는 뱉어 내는 버릇 나쁜 공룡.
사내는 피식 웃었다.
자신은 입맛에 맞지 않는 먹이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진하게 내려온 다크서클에 말라비틀어진 입술.
구겨진 와이셔츠.
누가 봐도 초췌한 몰골이었다.
생존 게임 패배한 인물의 이름은 이도훈.
그는 짙은 한숨을 뱉어 냈다.
“휴.”
복잡한 감정이 담긴 한숨이었다.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부모를 잃었다.
변명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충격으로 목표 없이 살아갔다.
뭐, 그게 도훈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국내 최고의 현금 부자인 할머니라는 배경이 있었으니까. 그리 살아도 문제는 없었다.
그것도 잠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도훈은 가문에서 빈털터리로 쫓겨났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데…….
도훈이 빈털터리로 가문에서 쫓겨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반년.
방황도 잠시, 도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뜻밖에 능력을 발견했다.
그것은 스타를 알아보고 키워 내는 감.
도훈은 특유의 촉으로 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급기야는 후발주자로서는 드물게 상장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도훈의 동업자가 배신을 때린 것.
도훈은 동업자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자신을 가문에서 쫓아냈던 바로 그 작자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키운 연예인들마저도 등을 돌렸다는 점이었다.
모든 것은 돈이 문제였다.
도훈은 슬쩍 자신이 들고 있는 짐을 바라봤다.
짐의 가장 위쪽에는 수첩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도훈은 수첩에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인물들을 적어 놨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뒤통수친 놈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도훈은 수첩을 집었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걱정이 되는 듯 조심스럽게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를 확인한 도훈은 혼잣말을 뱉었다.
“이제 3차전인가?”
도훈은 입꼬리를 올렸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시원하게 놈들의 뒤통수를 날려 줄 예정이었다.
도훈이 미소짓고 있던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긱!
마치 쇠가 부러지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
고개를 올려다보니 근처 아파트 공사장의 크레인이 기울어지고 있다.
방향이 조금 묘했다.
하필이면 도훈이 있는 쪽이었다.
도훈이 몸을 피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도훈의 눈에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인이 보였다.
백발 때문인지 유난히 눈에 띄는 노인.
도훈은 재빨리 달려가서 노인을 잡았다.
탁.
시선이 마주친 노인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도훈은 설명할 틈이 없었다.
그를 소매를 잡고 뛰었다.
타다닥.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위험한 순간에는 알 수 없는 힘이 나온다더니 지금이 그런 경우 같았다.
순간 뒤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쾅.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도훈은 크레인이 떨어진 도로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순간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남을 걱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건가?”
“여유가 없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도훈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구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참담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디 다치신 데라도…….”
“나는 괜찮네, 그런데 지금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자네 말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 아래를 보게.”
“…….”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노인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었다.
크레인에 깔리지도 않았는데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환상일까?
도훈은 몇 번이고 눈을 비볐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서 있는 자신은 뭐란 말인가?
그때 노인이 말을 이었다.
“허허, 저승사자 삼백 년 동안, 날 구하려고 몸을 던진 친구는 처음이네. 일단 설명을 해 줘야겠지. 그러니까…….”
노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한 발음과 빠른 속도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노인은 도훈을 마중 나온 저승사자라고 소개했다.
중요한 것은 도훈은 본래 오늘 죽을 운명이었다고 했다.
사망 원인은 크레인 사고가 아닌 뇌출혈.
크레인이 무너지지 않았어도 도훈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
도훈은 노인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지금 노인의 복장이 조금 이상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색의 정장이 묘했다.
거기에 외모도 일반인과는 달랐다.
피부는 그의 백발보다도 하얗게 보였다.
도훈은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휴, 저 진짜 죽은 겁니까?”
“이번 생에는…….”
묘하게 여운을 남기며 뒷말을 흐리는 노인.
도훈은 재빨리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를 구했으니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한테 기회를 주겠네.”
“기회라니요?”
“자네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 일곱 명만 있으면 다시 시작하게 해 주겠네.”
“왜 일곱 명입니까?”
“인상 세상에서는 칠이 행운의 숫자라지? 뭐, 그것 말고 별 뜻은 없네.”
“일곱이라…….”
도훈은 말끝을 흐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 다섯이 없을까?
그때 노인이 말을 이었다.
“단, 슬퍼해 줄 사람은, 자네를 일 년 이상 알고 지내던 사람이어야 하네.”
말을 마친 노인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순간 노인의 몸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물론 도훈의 몸도…….
* * *
서울 호산 병원 장례식장.
그중에서도 가장 조그만 구석의 빈소.
영정 사진이 걸려 있는 방 안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쭈그리고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듯한 여인이 말했다.
“이놈들이 너무하네. 키워 준 게 누군데 한 새끼도 안 와?”
“누나 그러지 마세요, 다 각자 사정이 있는 거잖아요.”
중년의 사내가 손을 내저으며 여인을 말렸다.
“사정은 무슨 사정이 있어, 그냥 줄타기하는 거지. 나름 스타라는 놈들이…….”
“하긴 그렇죠. 우리나 쟤네나 키워 준 건 전부 선생님이시잖아요. 우리를 케어한 것도 선생님이시고요.”
“그래 맞아.”
“우리끼리만 있으니 아쉽네요, 언니. 선생님 빈소가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요.”
모두는 눈을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궜다.
모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가장 어이없어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바로 도훈이었다.
도훈은 영정 사진 뒤에서 어이없어하며 이 장면을 바라봤다.
자신이 발굴한 스타들이 한둘이던가?
그들 중 대부분이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신경 써 주지 않았던 몇몇이 빈소에서 밤을 새우고 있을 뿐이었다.
영정 사진 뒤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도훈은 본능적으로 재킷 속에 수첩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썼다.
강영웅.
정마리.
…….
이름을 수첩에 다 적고 난 도훈은 입맛을 다셨다.
“흠.”
“그 수첩에는 원수만 적어 놓는 거 아니었나?”
저승사자가 묻자 도훈이 웃었다.
“하하, 지금 보니까 제가 원수만 알고 은혜는 모르는 인간이었더라고요.”
“자신을 안다는 건 힘든 일이지. 인간들 대부분이 죽고 나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지. 그런데 아깝지 않아?”
“뭐가 아깝습니까?”
“한 명만 더 오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잖나?”
“괜찮습니다. 다음 생에 은혜와 원수를 갚도록 하죠.”
도훈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은혜와 원수를 꼭 기억하겠다는 표시였다.
도훈은 다시 빈소를 지키는 이들을 바라봤다.
참, 묘한 것이 자신이 신경 쓰지도 않았던 이들이 이렇게 찾아올 줄을 몰랐다.
나머지 사람들은 배신자와 그 위에 있는 거대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얼굴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웃긴 것은 여기 모인 이들은 딱 여섯 명이었다.
저승사자가 말한 일곱 명에서 딱 한 명이 모자란 것이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저승사자를 바라봤다.
아마 저승사자는 지금의 일까지 모두 예상하고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었다.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저승사자가 물었다.
“자네 왜 웃나?”
“그냥요, 이제 딱 30분 남았네요.”
“조금 있으면 저승으로 가야 하는데 웃겨?”
“아니, 이 상황을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저승사자와 인터뷰한 작가가 어디 있겠어요? 저기 있는 친구가 드라마 작가거든요.”
“인간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재미있는 친구군. 이제 준비하게.”
저승사자가 위쪽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빈소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기척을 눈치챈 여인이 힐끔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지유, 그래도 넌 왔구나?”
“당연히 와야죠.”
“그래, 그래, 알았다.”
여인이 손사래를 치자 이지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저 여기에 온 건 매니저한테도 비밀이에요.”
“허…….”
여인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때 이지유가 조용히 일어났다.
“그럼 저는 선생님께 인사드릴게요.”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핸드폰이었다.
그것을 본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왜 꺼내?”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그러셨어요.”
“뭐라고 하셨는데?”
“생애 마지막에는 제 목소리로 이걸 부르는 걸 듣고 싶다고요.”
“아, 그렇다고…….”
“이건 그냥 노래가 아니에요. 선생님의 숨결이 들어가 있는 유작이에요. 선생님이 섭외한 작곡가에 선생님이 직접 가사를 써 주셨다고요.”
이지유의 눈가에는 살짝 물기가 차올랐다.
여인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영정 사진에는 깔끔한 외모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이도훈.
그는 여기 모인 이들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흙 속에 묻혀 있는 그들을 발굴해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스타들에게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이었으며 때로는 그들의 자상한 부모의 역할도 했었다.
덕분에 자신에게는 1%의 시간도 안 쓴 인물이었다.
최고의 사업가는 아니지만, 그에게 탑매니저란 명칭을 붙이는 데는 누구도 주저치 않았다.
이지유가 영정 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그의 영정 사진 앞에 핸드폰을 공손히 올려놨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던 이지유가 음악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잔잔한 인트로 부분이 흘러나왔다.
들릴 듯 말 듯 한 음악 사이로 이지유의 목소리가 비집고 나온다.
조용히 눈을 감은 이지유가 어깨를 들썩였다.
“흑흑.”
잔잔한 멜로디에 이지유의 목소리 그리고 실제의 울음소리가 전해지자 빈소에 모인 스타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
“대표님.”
각자 부르고 싶은 호칭으로 목 놓아 도훈을 불렀다.
그들이 흐느끼고 있을 때 도훈의 영정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영정 사진 속 도훈의 영혼이 아직 빈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정 사진 속에서 자신을 추모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찌릿했다.
묘한 것은 그들은 자신이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친구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전력 외!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몇날 밤을 새우며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
도훈은 한숨을 뱉었다.
그때 이지유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와 빈소에 퍼져 나갔다.
―내일이 있다면…… 내일이 있다면…….
마지막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도훈의 영혼도 잠시 노래에 빠져들었다.
‘어쭈 편곡까지 해 왔네. 많이 늘었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도훈은 생각을 멈췄다.
마지막까지 일에 매달리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그때 이지유의 노래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나 다음 생에서…….
동시에 빈소에서 조용히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눈물을 터뜨렸다.
이지유의 노래가 그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다.
순간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묘한 느낌이 든 것이었다.
쿵, 쿵.
이상한 소리도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 보니 이것은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