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9화 (69/127)

十四장. 적과의 제휴. (2)

서서히 몸을 돌려오는 자이언트 리자드를 보며 상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우리를 노릴 줄 알았지. 저 놈 하나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하필이면······.”

자이언트 리자드의 뒤편으로 보이는 왜군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자이언트 리자드가 이쪽을 습격하면 여유 있게 양측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적을 치는 것으로 승리를 가로챌 게 뻔했다.

“그렇게 돌아가도록 할까보냐.”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에서 떠올려냈다.

상호는 자신의 계획을 주변에 있는 곽재우나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자네 제 정신인가?”

“네.”

곽재우는 상호의 계획을 듣자마자 격앙하며 되물었다.

그러한 반응에 상호는 담담히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임충 또한 우려를 담아 말했다.

“과연 저들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줄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어려운 일이라고 포기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 법이다.

상호는 자신의 판단을 믿기로 하고 행동을 옮기고자 했다.

“···좋아. 이번만큼은 자네의 계획에 따라주지.”

“감사합니다.”

가장 반대했던 곽재우도 지금 상호의 계획만이 유일하게 자신과 부하들을 살릴 길임을 알고 마뜩찮아 하면서도 행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완전히 방향을 바꾼 자이언트 리자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놈의 앞으로 상호를 비롯한 몇 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다.

쉬리리릭!

성인 남성보다 두 배나 큰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무척이나 긴 혀가 뽑아져 나왔다.

고개를 높게 들어야 보일 만큼 높은 자이언트 리자드의 머리를 보며 상호부터 접근을 시도했다.

그것을 발견한 자이언트 리자드는 그대로 입을 벌린 채 아래로 머리를 처박았다.

“위험하군, 위험해.”

미리 대비했어도 까닥했으면 잡아먹힐 뻔 했다.

진흙 바닥을 굴러 진흙투성이가 된 상태로 상호는 막 묻혀 있다가 나오는 자이언트 리자드의 주둥이 위로 올라탔다.

“흐라차!”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미간 부분을 후려쳤다.

꽤 충격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인지 자이언트 리자드는 머리를 다시 땅으로 떨어트렸다.

이러한 것을 기다렸던 율과 임충이 거리를 좁힌 다음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카아앗!”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자이언트 리자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얼굴에 난 상처는 덩치에 비한다면 크지 않았다.

아픔을 느낀 것에 화가 치솟은 것일까.

이내 살기어린 눈빛을 취하며 자이언트 리자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 큰 입을 쩍 벌리고 세 사람을 향해 어마어마한 불꽃 세례를 뿜어냈다.

“모두 내 옆으로 모여!”

상호의 외침에 두 사람은 바짝 다가와 붙었다.

바닥의 진흙마저도 딱딱하게 굳도록 만드는 고열의 불길은 곧 세 사람이 있는 곳을 덮쳤다.

“하아아앗!”

상호는 남겨둔 정신력을 소모해 바닥의 진흙에서 물기를 빨아올려 주변에 물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불길과 물이 격하게 맞부딪치면서 막대한 수증기를 발생하였고 상호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수증기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빠르게 움직이는 게 포착되었다.

그것을 발견한 자이언트 리자드는 고개를 돌리며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인 놈이 향한 방향은 공교롭게도 왜군들이 자리한 쪽이었다.

“어엇?”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오는 수수께끼의 인영을 보고 왜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단 더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려고 몇몇 조총병들이 다가오는 인영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총탄이 정면에서 날아옴에도 인영은 전혀 주춤거리지 않고 계속 달려올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조총과 창을 내민 왜병들 앞에서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허억!”

“어, 어디로 사라졌어?”

공중으로 뛰었던 인영을 쫓아 왜병들은 자신들의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방금 전까지 보였던 그 인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왜병들의 귀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괴물이 온다!”

“우와아악!”

인영을 쫓아 자이언트 리자드를 발견한 왜병들은 비명을 질렀다.

처음만 해도 조선인들을 향해 자이언트 리자드가 향하는 것을 보고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상황을 하려했던 왜군으로선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것을 주도한 장본인은 한바탕 난장판을 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후우, 자네 말대로 하기는 했네만 정녕 저들과 손을 잡을 셈인가?”

방금 전에 마지막 정신력까지 짜내서 자이언트 리자드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분신을 만들어냈던 곽재우는 상호에게 말했다.

이러한 그를 보며 상호는 답했다.

“자이언트 리자드의 공격 대상이 우리가 아닌 왜군 쪽으로 넘겼지만 그건 일시적으로 고비를 넘긴 것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자이언트 리자드의 공격 대상을 이쪽이 아닌 왜군이 되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교란 작전을 치른 게 아니다.

왜군과 자이언트 리자드를 충돌시켜 서로 상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힘들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서 날뛰는 자이언트 리자드는 상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왜군은 전멸할 테고 다시 처음대로 이쪽을 표적 삼아 놈이 공격해 올 게 분명했다.

왜군에 의해 퇴로가 봉쇄된 만큼,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결국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리된다면 결과는 어떨까?

‘능력자 정도만 생환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겠지.’

냉정하게 생각해 내린 결과였다.

물론 자이언트 리자드를 쓰러뜨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원석 탄환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놈을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문제는 차원석 탄환은 위력이 너무 강력한 까닭에 사용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까도 보았듯이 폭발력이 엄청나 자칫 아군 오폭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려면 왜군과 일시적인 동맹을 해야만 했다.

“자네, 나하고 같이 가지.”

“예? 저 말입니까?”

갑작스런 호출에 조인환은 당황하며 상호를 보았다.

상호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조인환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그대로 왜군과 자이언트 리자드가 싸우는 장소로 달려갔다.

타타탕!

조총이 불을 뿜자 자이언트 리자드의 머리와 상체에 총격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 공격은 도리어 자이언트 리자드 성질만 돋울 뿐이었다.

거기에 찔러진 장창은 비늘을 뚫지 못하고 부러져나갔고 왜도 역시 칼날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물러나지 마라!”

“도망가면 목을 칠 것이다!”

한 명씩 잡아먹히고 발에 짓밟히는 가운데,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는 병졸을 무사들이 검으로 협박했다.

한 편, 지휘관인 모리 테루모토는 황급히 이곳을 탈출하려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이 버젓이 존재하다니. 이 조선 땅은 마경인 것인가.”

“주군, 어서 탈출을!”

“그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모리와 휘하 가신들.

그러나 자신이 찍은 사냥감을 그냥 보낼 리 없는 자이언트 리자드는 불을 내뿜어 모리 테루모토가 가려던 앞쪽을 태웠다.

공교롭게도 그 지역엔 다량의 갈대가 자라있었고 큰 화재가 일어나 퇴로를 막았다.

“이런!”

“주군, 조선 놈들이 옵니다.”

한 가신이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상호와 그의 어깨에 걸쳐져 오는 조인환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모리 테루모토는 궁지에 몰린 절박감에 휩싸여 자신을 호위하는 무사들을 다그쳤다.

“저 놈들이 내게 오지 못하게 막지 않고 뭐하느냐.”

“네!”

명령에 대여섯이나 되는 무사들이 상호를 막기 위해 나섰다.

이를 달려오면서 본 상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비켜.”

물론 이러한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고 또 알았다고 해도 그냥 보낼 리 만무했다.

상호는 곧장 정면에서 뻗어 나오는 왜도를 피하면서 몸으로 앞을 막는 무사들을 밀쳤다.

받힌 무사들은 갑옷을 입은 상태였지만 붕 떠서 수 미터나 날아가 처박혔다.

휘잉!

“어이쿠.”

수평으로 오는 칼날을 몸을 낮춰 피하면서 상호는 여유 있는 왼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 주먹에 턱을 얻어맞은 무사의 투구가 부서지고 몸이 붕 떠올랐다.

“괴, 괴물이다!”

“어떻게 저런 괴력이?!”

상호의 힘을 본 무사들은 막을 의지를 잃었다.

일방적으로 길을 여는데 성공한 상호는 마침내 모리 테루모토가 있는 근처에 당도했다.

이어 어깨에 맨 조인환을 옆에 내려놓고는 말을 꺼냈다.

“자네가 저 왜장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다고 전하게.”

“알, 알겠습니다.”

조인환은 상호의 지시에 따라 유창한 왜어를 구사해 모리 테루모토에게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말을 들은 모리 테루모토는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물론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상호는 조인환의 해석을 기다렸다.

곧 조인환은 해석한 모리 테루모토의 말을 들려주었다.

“갑자기 적인 우리에게 제안을 해오다니 무슨 속셈이냐고 말해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이 말을 그대로 전하게. 지금 퇴로가 막힌 그쪽이나 우리 모두 저 요괴에게 몰살당하게 생겼으니 임시로라도 동맹을 맺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야.”

시키는 대로 조인환은 말을 전달했다.

이에 모리 테루모토는 잠시 대답을 미루고 생각에 몰두했다.

지금도 그의 부하들은 자이언트 리자드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었고 유일한 퇴로도 화재로 인해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 방도가 있다면 아까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던 수수께끼의 무기를 가진 이들 조선인들과 협력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는 것을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서로 피터지게 싸우던 사이인지라 단번에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렇게 고민하는 모리 테루모토의 모습을 보고 상호는 조인환을 통해 한 마디를 전했다.

“부하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정할 참인가.”

“놈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그 뒤에 한 쪽이 약속을 깬다면 그 때는 어찌할 참이냐?”

“처음부터 적인 사이인데 신뢰 같은 게 있을 것 같나. 만약 그쪽에서 싸움이 끝나고 우릴 공격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전해주지.”

통역을 통해서였지만 상호는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모리 테루모토에게 전했다.

그리고 동시에 저 왜장은 자신의 제안을 따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기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작자다. 분명히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이러한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모리 테루모토는 말했다.

“좋다. 한시적이지만 너희 조선인들과 협력하마.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나 모리 테루모토는 모리 가의 이름을 걸고 그대들 조선인들을 무사히 보내도록 하겠다.”

“좋다.”

이렇게 상호간에 교섭이 완료되고 상호는 조인환과 함께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그를 맞아 임충이 말했다.

“저들이 정말 우리를 순순히 보내줄까요?”

“그럴 리가. 아마도 오늘 당한 일을 외부에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살려 보내지 않을 걸.”

“그렇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러겠죠. 따라서 싸움의 완급을 우리가 주도해서 끌어 저쪽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내고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쉽게 될까요? 저쪽도 그것을 노릴 텐데요.”

“후후, 저한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상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것을 본 임충은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일들을 기억하고 신뢰를 실은 눈빛을 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악!”

여태까지도 자이언트 리자드에게 박살나던 왜군을 보며 상호는 곧 구체적으로 싸울 수 있는 인원들에게 작전을 전했다.

정신력을 다 쓴 곽재우가 빠지고 총 삼인의 능력자와 열두 명의 인원이 왜군이 돕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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