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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68화 (68/127)

十四장. 적과의 제휴. (1)

겨우 가까스로 리자드맨 토벌을 끝마친 마당에 수백에 달하는 왜군을 마주하다니.

이 기막힌 우연에 상호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려면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책을 떠올리고자 했다.

‘탈출구는? 지금이라면 왜군을 피해 달아날 수 있을까?’

불가였다.

리자드맨 집단을 소탕하기 위해 양쪽으로 거대한 늪이 있는 사이를 지나왔기에 왜군들이 오는 길목만이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헤엄쳐 탈출한다는 수단도 무리였다.

이 많은 인원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것을 왜군이 보지 못할 리도 없을뿐더러 아직 등장하지 않은 우포늪의 괴물을 포함한 위험 요소가 늪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낼 수 있는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의 퇴로가 끊긴 이상 리자드맨들의 본거지를 거점으로 방어를 굳혀 버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좋을 것 같군.”

곽재우 역시 지금 상황에서 상호가 제시한 방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알고 그 뜻을 받아들였다.

서둘러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리자드맨들의 본거지로 물러나 왜군을 싸울 준비를 서둘러 완료했다.

이윽고 모리 테루모토의 왜군 부대는 당도하고 양측은 서로를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모리 테루모토는 자신들이 섬멸하려 했던 괴물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고 그 대신 조선 의병들이 잔뜩 가시를 세우고 이쪽을 맞이한 것을 보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그를 향해 가신 중 한 명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던 괴물들을 저 조선 놈들이 토벌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다. 그보다는 대체 왜 저 작자들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일을 했냐는 것이다.”

“그, 그것은······.”

“에에잇! 됐다! 차라리 잘 되었어. 괴물 토벌의 공과 더불어 저 도적놈들까지 일망타진한 공을 더하면 내 이름값이 오르겠지.”

모리 테루모토는 의병들을 섬멸하여 공을 모조리 독차지할 야욕을 불태웠다.

이런 그의 명령에 500여 명의 왜병들은 진형을 갖추고 늪지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조선군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옵니다.”

“아직 기다려.”

리자드맨들의 움막을 헐어 임시로 총탄을 막을 방패로 삼고 상호와 그리고 다른 이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쪽은 부상자를 빼면 싸울 수 있는 자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능력자가 네 명이 있기는 하지만 앞서 치른 격전으로 힘을 거의 다 써버리고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조준은 내가 하지.”

“네.”

조인환으로부터 불랑기포를 인수받은 상호는 자포에 투명한 구슬 탄환을 넣고자 했다.

그것은 석공에게 부탁해 크기와 표면을 다듬은 차원석 탄환이었다.

“인간을 상대로 쓰기에는 아깝지만 상황이 안 좋으니 할 수 없지.”

상호는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차원석 탄환을 손에 쥐고 의식을 집중했다.

몸에 깃든 몬스터 코어의 힘이 차원석에 공명하면서 구슬의 색이 점차 검게 변했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너무 과도하게 힘을 주입하면 바로 그 자리서 폭발할 수도 있었기에 더 검게 변하기 전에 힘을 주입하는 것을 멈췄다.

차원석의 막대한 에너지와 상호가 집어넣은 이능의 힘이 섞이면서 당장 폭발할 상태가 되었다.

이제 이 상태에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1분 정도 지나면 한계에 도달해 대폭발을 일으키게 될 것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상호는 신중하게 폭발 직전의 차원석 탄환을 자포에 장전하고 모포와 결합을 마쳤다.

바로 이 때, 앞을 살피던 조인환이 모두에게 들리게끔 소리쳤다.

“앗! 놈들이 이쪽을 향해 쏘려고 합니다.”

“다들 몸을 숙여라!”

모두가 진흙과 풀로 뭉친 무릎까지 올라오는 방벽 뒤에 엎드렸다.

그 순간, 요란한 총성과 함께 수십 발의 총탄이 방벽을 두들겼다.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연속 사격이 이뤄지는 가운데, 보병들은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오메!”

“이 잡놈들이!”

빗발치는 총탄 때문에 반격을 할 수 없는 의병들은 그저 왜병에 대한 욕설만 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장전을 마친 상호가 엎드린 상태로 방벽을 지지대 삼아 불랑기포를 거치했다.

“좋았어. 이쪽에서 호된 맛을 보여주지.”

상호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랑기포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곧 심지가 검게 타들어가고 블랑기포의 포신에서 폭음과 함께 차원석 탄환이 쏘아졌다.

번쩍!

방벽 위로 강렬한 빛이 뿜어지더니 일순간 이전까지보다 훨씬 큰 폭발음이 일어났다.

차원석 탄환이 터질 때 일어난 폭발은 대략 현대 무기인 155mm 자주포로 고폭탄을 쏠 때의 폭발력을 맞먹었다.

“와우.”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차원석을 폭탄으로 써보거나 그렇게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상호는 엄청난 위력에 충격 섞인 탄성을 터트렸다.

폭발이 걷히고 위를 올려보니 방금까지 왜병들이 돌격해오던 그 자리에 커다란 폭발 구덩이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 아아 이럴 수가!”

뒤에서 대기한 덕에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던 모리 테루모토는 낙마하여 진흙범벅이가 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참혹한 현장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돌격해가던 보병과 뒤에서 엄호 사격을 하던 조총병들 사이로 떨어진 차원석 탄환으로 인해 모리 테루모토의 부대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숫자가 죽거나 전투 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도 조준을 제대로 하지 않고 쏜 탄환이었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밀집된 곳을 노리고 쐈다면 병력 전체가 몰살당했을 것이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어서 부축을.”

“대체···조선 놈들이 무엇을 쓴 것이냐? 어떻게 이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충격과 두려움에 반쯤 횡설수설하듯 말하는 모리 테루모토를 보며 여기까지 따라온 가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폭발에 의해 지면에 쓰러졌던 왜병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지만 다들 정신을 다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위력이라니. 도대체 자네는 무슨 수를 쓴 건인가.”

“쉽게 쓸 수 없는 수단을 썼다고밖에 말씀 드릴 말이 없군요.”

차원석을 폭탄으로 쓸 수 있다는 정보는 함부로 발설할 것이 못되어서 대충 이렇게 얼버무렸다.

다행히 곽재우는 더 채근해서 묻지 않고 충격에 빠져 행동을 멈춘 왜군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호기일세. 당장 돌격해서 놈들을 섬멸하세나.”

“안 됩니다.”

상당히 피해를 줬지만 그래도 저쪽의 전력은 이쪽보다 우위였다.

하여 상호는 섣불리 공격하는 것보다 지금 공격으로 사기가 완전히 꺾인 왜군이 더는 싸울 의지를 버리고 철퇴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기다리면 저들은 알아서 물러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아니 될 말이지.”

“장군?”

“저들을 보낸다면 앞으로 또 죄 없는 우리 백성을 죽이고 다닐 게 분명하네. 그런 놈들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 말하면 곽재우는 기어코 무력하게 있는 왜군을 향해 돌격해갔다.

이에 다른 의병들은 합심해서 달려가니 만류하던 상호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료들과 함께 가세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놈들이 온다.”

“우와악!”

아까 일로 크게 데인 탓일까.

겨우 스무 명이 돌격해오는 것을 보고도 살아남은 왜병들은 너나할 것 없이 겁에 질려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러한 광경에 모리 테루모토는 팔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적을 안 막고 뭣들 하는 것이야! 어서 저들을 막아라!”

“에이잇! 주군을 지켜라!”

일반 병사들과 다르게 모리 테루모토를 주군으로 섬기는 무사들은 왜도를 뽑아들고 달려오는 의병들을 상대하고자 했다.

이윽고 양측은 충돌하였다.

“하아압!”

무사의 왜도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피하며 곽재우가 옆으로 달려가며 환도로 상대를 베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른 무사가 고함을 지르며 덤볐다.

이때, 곽재우는 옆으로 움직였는데 순간 그의 모습은 셋으로 보였다.

“아닛?!”

무사는 눈앞에 벌어진 기괴한 일에 당황했고 그것은 곧 결정적인 틈을 보이게 되었다.

서컥!

두 명의 잔영이 사라지는 사이에 벼락같이 검을 내지른 곽재우는 무척 피로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곽재우는 완성된 분신을 만들기엔 정신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잠시 잠깐 환영처럼 만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적을 쓰러뜨린 것이다.

그것을 본 상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분신 능력을 저렇게 다른 방식으로 운용하다니.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건가.’

상호는 바로 앞에서 오는 무사의 모습을 보고 대뜸 달려간 다음 발로 걷어찼다.

발에 걷어차인 무사는 그대로 날아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쳐부수자는 심정으로 상호는 계속해서 검뿐만 아니라 손발을 휘둘러 왜병들을 계속해서 쓰러뜨려갔다.

곽재우나 상호뿐만 아니었다.

능력자인 임충과 율 또한 선두에서 맹활약을 하였기에 검으로 먹고 산다는 무사들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연달아 격퇴되었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여기까지였다.

타타탕!

도망쳤던 조총병들 중 일부가 무사들에 의해 붙들려 다시 사격을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첫 사격은 윽박지름에 어쩔 수 없이 쏜 것이라 조준이 형편없었고 이에 맞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사격에 상호는 급히 상대하던 왜병을 쓰러뜨리면서 속으로 이리 생각했다.

‘저들의 태세가 정비되고 있다. 무턱대고 더 들어가는 것은 위험해.’

더 공격해가는 이들을 막고자 상호가 나서려던 그 때였다.

푸화학!

느닷없이 양측이 싸우는 곳의 측면에 자리한 늪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물기둥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온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으아아악!”

“우악!”

한 번에 터져 나오는 비명.

무려 수명에 달하는 왜병들이 선혈을 낭자하며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엄청나게 큰 턱을 가진 거대한 파충류였다.

“역시 저 놈이 늪의 괴물이었나?”

곽재우의 설명을 통해 내내 추측하고 있던 괴물의 정체는 바로 자이언트 리자드였다.

전체적으로 코모도 도마뱀과 악어를 섞은 외모의 이 괴물은 딱히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호는 놈이 이곳 우포늪의 괴물임을 확신했다.

“분명 별 것 아닌 괴물이지만 코어를 품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보통 자이언트 리자드의 몇 배에 달하는 덩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충격적인 등장과 함께 서너 명의 사람을 날카로운 이빨을 찢어발기고 삼킨 자이언트 리자드는 양쪽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죄 없는 양민들을 살육한 당사자가 나오니 곽재우는 불같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호는 그의 마음은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만류해야 했기에 어깨를 강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왜군과 놈을 동시에 상대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일단 물러나지요.”

“으음.”

상호의 설득에 곽재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뒤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졸지에 양측의 싸움은 멈췄고 낮은 소리를 내며 상체를 늪 밖으로 내민 자이언트 리자드를 피해 왜군과 조선 의병들 모두 반대편으로 슬금슬금 피했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저 놈이 나타날 줄이야. 이러면 형국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겠는 걸.’

상호는 몬스터 코어로 강화된 자이언트 리자드와 왜군을 사이에 두고 이쪽이 살아남을 길을 열심히 생각하였다.

한 편, 왜군들도 물러나기 했지만 마냥 도망치지는 않았다.

“이런 피해를 내고서는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한 채 물러날 수는 없다. 당장 병사들을 점고해서 전투태세를 취해라.”

“하잇!”

모리 테루모토의 말에 그의 가신인 무사들은 두려움에 빠진 병사들을 반쯤 협박하면서 싸울 준비를 취했다.

이렇게 양측의 인간 세력들이 물러나지 않자 고개를 좌우를 돌리며 뭔가를 갈등하던 자이언트 리자드는 마침내 다음 사냥 대상을 골랐다.

“칫! 우리를 사냥감으로 삼은 건가.”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선택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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