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도 사업입니다-328화 (328/341)

주사위 (5)

“후우.”

그가 숨을 내쉬니 매캐한 담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갔다.

희끄무레한 연초 연기 또한 제 친구 따라 바람을 타고 휘휘 사라졌다.

재떨이에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 새로 장초를 뽑자,

아직 21세기 현대 담배에 비하면 가공이 덜 된 탓에 곱게 갈린 담뱃잎 일부가 종이 밖으로 투둑 떨어졌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잎을 눈으로 좇았다.

세상에 저게 다 돈인데, 아까워라 – 하고 생각할 테지. 30년을 모셨는데 그것 하나 모를까.

“······하.”

그가 우습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장초를 구부려 부러뜨리고 그냥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그의 성격상 당연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는 일부러 쓰레기통 한쪽 면을 맞고 그대로 들어가는 담배에서 시선을 떼었다.

이 악물고 안 보려 한 것 같은데.

문득, 그가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 정상인의 사고 회로가 아니야.”

···그러면 사장님이 비정상이지 정상입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슬금슬금 내려갔다. 짬바가 얼만데 그거 하나 못 참겠나.

그나저나 사장님은 설마 지금까지 자길 정상인이라고 생각하셨던 건가. 객관적 성찰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데카르트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드려야 할 듯 싶다.

“우습지 않습니까? 플로리앙?”

“무얼 말씀이십니까, 사장님.”

“한 국가를, 거기 사는 사람들 인생을, 재산을 훅 뒤집어엎으려는 인간이 담배 한 개비에 아깝다는 감정이 드는 게 우습지 않냔 말입니다.”

“···글쎄요.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인간적이다?”

“인간은 본디 ‘남’과 ‘자신’의 바운더리가 확실한 동물 아닙니까.”

만물의 영장, 이성을 지닌 지적 생명체인 인간은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남의 일에는 낙관적이고 허황된 조언을 늘어놓으면서도 자기 일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나오는 게 인간 아니겠는가.

이유를 들은 사장님은 헛헛하게 웃었다.

“···이거 참. 이유가 좀 슬픈데.”

“하지만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에 사장님이 고개를 돌렸다.

“남에게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도 인간이란 동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만물의 영장, 감정을 지닌 지적 생명체인 인간은 금수와 다르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기꺼이 건설적인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며, 구걸하는 빈자에게 은화 한 닢을, 고아에게 따듯하게 지낼 곳을 마련해 주는 게 인간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겁니다. 사장님이.”

“······.”

“남과 자기를 가르면서도 남을 완전히 마음 밖으로 밀어내지는 못하시잖습니까.”

“······.”

자신의 말을 들은 사장님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아침 해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뭐하십니까?”

“뭐하긴. 아깝잖아요.”

“더럽습니다.”

“에헤이 괜찮아 괜찮아. 오늘 아침에 빡빡 청소한 거라 아직 괜찮다 이겁니다.”

그는 쓰레기통에 들어간 장초를 꺼내 끄트머리를 잘라내고 후후-불어 혹시 있을지 모를 먼지를 털어냈다.

“진짜 피우시려구요?”

“하하, 글쎄요.”

그는 잠시 손에 든 담배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플로리앙 씨.”

“예, 사장님.”

“내가 왜 팔자에도 없는 사업을 한 줄 아세요?”

“···팔자에 없다기엔 천성 같습니다만.”

분위기가 무겁게 가는 것 같아 던져본 농이었건만, 사장님은 쥐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더 무거운 말을 던져댔다.

“안 하면 죽을 거 같아서 했습니다.”

“누가요?”

“모릅니다. 그냥, ···그냥 사람이 많이 죽을 거 같아서.”

내가 돈이라도 있으면, 내가 이미지라도 좋으면 혹시나 누군가를 구명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릴지 모르니까.

“그랬던 내가, 지금은 1천만 명의 삶을 저 지하 무저갱에 처박으려고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죄가 있는 이보다 죄가 없는 이가 더 많을 텐데.”

“···모순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30년 전, 공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플로리앙은 매일매일 있는 자들을 저주했다.

모두 한통속이라고. 사람의 피를 빨아 사는 모기,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돼지나 다름없는 이들이라고.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다르게, ‘있는 자’ 중에는 그러지 아니한 이들 또한 있었다.

플로리앙 또한 그런 ‘있는 자’의 손을 잡고 ‘있는 자’가 되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면 30년 전의 플로리앙이 봤을 때, 지금의 플로리앙은 변절자나 기회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보이겠지.

“분명히 곧게 살아 온 거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굽이굽이 휘어져 있는 게 인생이고 삶 아니겠습니까. 그 굽어져 있는 구간마다 ‘모순’이 있는 것이죠.”

“······.”

“비록 사장님보다 머리 돌아가는 건 떨어지지만, 몇 년 더 산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삶이란 그 굽어져 있는 부분을 돌아보고, 바르게 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테라스에 나와 대화하던 두 사람의 얼굴에도 빛이 넘실넘실 흘러와 몸을 뉘었다.

사장님은 언뜻 과거를 차츰차츰 떠올리는 듯 싶다가, 손에 든 장초를 다시 쓰레기통에 슝-하고 던져넣었다.

“안 피우십니까?”

“하핫. 피고 싶은 기분이 없어져서요. 자, 일하러 갑시다.”

“좋지요.”

벌려놓은 일을 다 끝내려면 쉴 시간은 빠듯하니까.

***

후대가 이날을 어떻게 부를까, 날 어떻게 생각할까.

적어도 좋은 말은 안 나오겠지.

그래도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고민한다 한들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속이 좀 편해졌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까짓거 좋네. 돈 많이 벌었으니까 정승 마냥 뿌리면서 살지 뭐.

여하튼 내가 폭탄 뇌관을 터트린 건 월요일.

왜 하필 월요일이냐 하면 바로 이 19세기 초의 빈약한 통신수단 때문이다.

파리-런던까지 하루.

런던-리버풀까지 하루.

리버풀-맨체스터까지 반나절.

맨체스터-버밍엄까지 또 반나절.

적당히 정보가 오고 가는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인데, 돈과 재산이 순식간에 왔다갔다하는 내용이면 얼마나 더 하겠나.

엥? 돈 관련이면 더 빨라지지 왜 더 느려지냐고?

그야... 내가 먼저 팔아야 안 물리는걸? 내가 다 팔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이 정보를 몰라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넉넉잡고 월요일에 뿌렸다. 대충 영국 전체에 정보가 전달되려면 금요일 정도 될 테고 금요일이면 주말에 장이 마감하니까 금요일에 정보를 얻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뇌내에서 공포감을 펑펑 증폭시키겠지.

그럼 뭐, 다음 월요일 장 개시와 동시에 영국 증권거래소는 카와이한 별 모양으로 폭발사산이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내가 수십 년간 매설해놓은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

1814년 7월 18일, 월요일.

<머시기 머시기 약관에 의해 우리는 님들에게 더 이상의 배당금 지급 의무가 읎슴. 수고링> - 이라는 이삭의 민족, 국제 철도주식회사의 메시지가 처음으로 도버 해협을 넘었다.

“뭐야?”

“머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임?”

으레 그렇듯, 대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무슨 동네 개잡주도 아니고 이삭의 민족 아닌가. 이삭의 민족.

지금까지는 사고 싶어서 증권거래소까지 가도 ‘물량이 없는데요’ 소리만 듣고 돌아오기 일쑤였건만, 그런 대장주가 배당금 지급 유예라니?

“쯧쯔. 우리 정부가 제재를 넣으니 프랑스 놈들도 힘든 게지.”

“그러게 왜 깝쳐?”

“곧 관계가 정상화되면 다시 밀린 것부터 정산해주겠지요.”

대부분은 영-불 관계가 경색되며 이삭의 민족 또한 타격을 받았으리라 짐작했으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년 동안 따박따박 입에 돈을 넣어주며 쌓은 신뢰의 벽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싹 다 청산해.”

“예? 이걸 전부... 말씀이십니까?”

“귀에 장어파이를 처넣었나, 왜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듣나.”

“죄, 죄송합니다.”

“아직 패닉이 오지 않았어. 다들 단기적인 악재로 생각하고 장기적으로는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게지.”

“···그러면 딱히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주식은 결국 대중의 흐름이잖습니까.”

“멍청한 놈. 그 기욤 드 툴롱이 대금 지급을 유예하는 건 30년 이삭의 민족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

속에 뱀을 수천 마리는 기르고 있을 괴물 자본가이자 금융가, 사업가.

계산은 칼 같이, 은원도 칼 같이, 한 번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동지’로 인정받으면 결코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꽁꽁 묶어버리고, 허튼 생각도 하지 못하게 달달한 먹거리를 조교 하듯 던져주는 무서운 자.

“그런 자가 배당금 지급 유예를 선언했다? ···기욤은 지금 대영제국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야. 전쟁이라고.”

“전, 전쟁이요? 그러면 빨리 어디에 알려야 하지 않습니까?!”

“왜 알리나?”

“···예?”

“이삭의 민족은 지금 고점이지. 우리가 주당 1파운드 10실링에서 매입했으니 34배 이득 아닌가. 그걸 다 팔고 그 돈으로 국채를 매입하면 돈을 세 배는 더 불릴 수 있지.”

“국채요...?”

“생각해보게. 전쟁 위기가 오면 당연히 국채에 돈이 몰려.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팔아야지. 이게 애국일세.”

누구보다 눈치 빠르고, 프랑스 사정에 능통하고, 이삭의 민족과 직접 거래를 해본 이들은 장 시작과 동시에 가진 물량을 전부 팔아버렸다.

1814년 7월 18일, 월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주당 33파운드 9실링.

장 마감 – 이삭의 민족, 주당 31파운드 15실링.

*

1814년 7월 19일, 화요일.

전날 약 3퍼센트 하락으로 마감한 이삭의 민족은 장 시작과 함께 1퍼센트 상승했다.

“멍청한 새끼들. 결국 대장주는 언젠가 올라오게 되어있는 것을,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그러나 어제 런던을 휩쓴 소식이 리버풀에 전해지자.

“나! 나 팔겠소!”

“주당 28파운드! 28파운드에 팝니다! 시가보다 2파운드 싸요!”

‘런던 깍쟁이 새끼들보다 정보가 늦었다!’

‘그러면 무조건, 무조건 먼저 팔아야 한다. 어디까지 내려갈지 몰라!’

대영제국의 거대한 항구도시, 리버풀의 젠트리(부르주아)들은 런던 금융가들이 어떤 술책을 쓸지 모르니 최소한 손해는 보지 말자는 식으로 증권거래소에 몰려들었다.

1814년 7월 19일, 화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주당 31파운드 15실링.

장 마감 – 이삭의 민족, 주당 29파운드 19실링.

수요일.

맨체스터에 소식이 전해졌다.

1814년 7월 20일, 수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주당 29파운드 19실링.

장 마감 – 이삭의 민족, 주당 24파운드 3실링.

목요일.

버밍엄에 소식이 전해졌다.

1814년 7월 21일, 목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주당 24파운드 3실링.

장 마감 – 이삭의 민족, 주당 15파운드 14실링.

금요일.

브리튼 제도가 들끓었다.

1814년 7월 22일, 금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주당 15파운드 14실링.

장 마감 - 이삭의 민족, 주당 7파운드 5실링.

주사위가 던저지자, 재앙이 온 세상을 덮었다.

검은 월요일

장 개시 – 이삭의 민족, 7파운드 5실링.

장 개시 30분 후 – 이삭의 민족, 5파운드 15실링.

“우리, 우리 가족 전재산이 거기 들어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방법이···.”

“죄송합니다. 이런 하락장, 아니. 대폭락에선 저희들도 딱히 좋은 수가 있는 게 아니라...”

“선생님 제발, 제발.”

애원.

“···거짓말하지 마시오.”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거짓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선생님. 지금이라도 빼시면 대략 20퍼센트 정도는 건질 수 있을-”

“내 돈! 내 돈 돌려줘!”

“선, 선생님 일단 이거 좀 놓으시고 얘기하시··· 케헥! 케헤헥!”

“이 새끼야! 내 돈, 내 퇴직금 당장 내놓으란 말이야! 니들이 안전하다며!”

“이, 이러다 사람 잡겠습니다! 일단 손부터 놓으시고-”

“닥쳐! 내 인생을 다 거기 넣어놨는데 지금 내가 제정신일 거 같아?!!”

“야! 경찰! 경찰 불러! 저러다가 스미스가 죽는다!”

- 삐이이익!

“경찰이다! 모두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모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

폭력.

1814년 7월 25일, 월요일 아침의 풍경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제발 동앗줄 될 만한 무언가를 알려달라고 울다가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던가, 아니면 증권거래인들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다가 경찰들에 의해 진압당하던가.

- 저번 주에는 10만 파운드 가치라던 자산이 있었는데···.

- 아니, 없어요.

-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없다니까요.

- 있었는데 없어졌다?

- 아니 그냥 없어요.

[1주 만에 –70%, 대영제국 증시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울부짖는 중산층!!]

“허, 제목이 꽤 쎈데.”

“그런데 <타임즈> 얘네들도 프랑스 놈들 돈 받아서 회사 만들지 않았나?”

“그렇게 따지면 도버에 있는 무역회사는 다 매국노로 총살해야 할걸. 그치들이 프랑스 물건을 좀 떼서 팔았어?”

“그도 그렇지.”

신문 가판대를 보고 조소하는 이들의 말처럼, 프랑스와 얽혔다고 감방에 처넣기에는 이 나라에 프랑스와 안 얽힌 이가 없었다.

부족한 브리튼 제도의 식량 생산량으로 인해 수입된 프랑스산 곡물은 영국인의 피와 살이 되었고.

성공한 중산층들은 유럽 최고의 디자인과 품격을 자랑하는 이삭의 민족 럭셔리 샵에서 구매한 정장과 사치품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고.

고위급 인사들은 프랑스로 자식새끼들 유학을 보내고 자기들은 여행을 갔다.

웰즐리인가 뭔가 하는 현 인도 총독은 아예 아내가 프랑스인이잖은가?

심지어.

“안 그래도 팍팍하게 살았는데, 이러면 우린 생활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

“우우우!! 이삭의 민족 PX를 다시 열어라!”

“당장 귀환하지 않으면 군법재판에 회부하겠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생활하던 수병들과 왕립 해군 부사관들은 갑자기 폐쇄된 PX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물가가 순식간에 1.5배 내지 2배까지 올라버렸으니.

이렇게 누굴 하나 희생자로 삼고 잡아 죽여 분노를 표출하지도 못하니 분위기가 점차 흉흉해지는 가운데.

몇몇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들도 존재는 했다.

“주당 5파운드 밑으로는 싹 다 매집해!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이건 무조건 떡상하는 기적의 자산이라고!”

대영제국이 이기면 이 주식증서를 펄럭이며 프랑스에게 ‘합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프랑스가 승리한다면 파운드가 무저갱에 처박히고 리브르가 강세를 띨 텐데 당연히 프랑스 회사 주식이 금은보화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지 않겠나.

머릿속부터 행동 양식까지 경제 동물 그 자체인 일부와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들은 이를 저점으로 여기고 매물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대표님.”

“······.”

“주가가 3파운드까지 떨어졌답니다. 5파운드에 매집했다고 해도 벌써 40% 손해입니다.”

“···프랑스에 다시 되팔 수는 없나? 거기는 아직 주가가 정상이잖나.”

“그 사람들이 왜 국산채를 놓고 외국채를 사겠습니까. 프랑스 본사 법인은 지급 유예도 아닐 텐데.”

“빌어먹을.”

소수인 이들이 모두 받아먹기에, 물량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시대를 초월해 수십 개 나라에 그 다리를 뻗은 초거대 기업을 그 가녀린 몸으로 받아낸 몇몇 중소 금융그룹은 그대로 회사 건물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증권사는... 서비스 종료다...”

“에엣-? 리얼리?”

런던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시티 오브 런던 곳곳에 붉은색 글자가 쓰여진 나무 팻말이 걸리고, 몇몇 저택이 경매로 넘어가고, 고리대금업자들의 창고가 압류한 귀금속으로 빵빵해졌다.

그렇게 중소 증권사와 금융그룹이 무너진 그 자리.

그들이 품고 있던 각종 채권과 권리 또한 그들과 함께 무너졌고.

마치 도미노처럼 거대한 국가경제가 곳곳에서 삐그덕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후대가 <검은 월요일>이라 역사서에 기록한 순간이 도래했다.

부실 증권과 채권이 무너졌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건 당연히 중소기업.

수많은 중소기업이 말라버린 자금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도산했다.

맨체스터의 방직 공장 중 2할이 작동을 중지했고, 사장님 소릴 듣던 이들은 모두가 잠든 밤에 패물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담을 넘어 아메리카행 상선에 올라 도망쳤다.

“어... 그러니까 원 소유주는 에드워드 씨였는데-”

“그러니까! 에드워드에 대한 채권을 가진 로이드, 그 로이드가 파산하는 바람에 그에게 채권을 가진 증권사가 이곳을 압류했고, 그 증권사는 또 나한테 빚진 미납 채권을 이 광산으로 대납하겠다고 했단 말이오.”

“···뭔 놈의 소유권이 이따구야?!”

리버풀의 어느 석탄 광산은 하루에도 주인이, 채권자가 서너 명씩 바뀌는 바람에 소유권자가 제대로 정해질 때 동안 임시 채굴 중단이 선언되었다.

이는 당시 영국의 채권, 주식, 증권 시장이 가진 특징 때문에 생겨난 일인데, 이때 영국은 금융상품의 15%를 현금으로 구매하면 해당 상품의 100%를 소유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즉, 105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 100원짜리 증권을 7주 보유할 수 있다는 뜻.

듣기만 해서는 말도 안 되는 제도이나 통신과 교통이 21세기보다 발달하지 않은 이 시대의 한계 상, 한 번에 최대한 많은 거래가 오고 가고 시장에 돈이 계속 흐르게끔 만들어 유연하고 효율적인 증시를 구축하기 위해 고안한 제도였다.

평시에는 이런 특징이 윤활유가 되어 증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거래를 유도했으나 <검은 월요일>이 일어난 지금, 그 특징은 독이 되어 온갖 곳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결국, 거품이었으니까.

영국을 지탱하는 중산층의 재산이 반 이상 허공으로 날아가고 각종 증권이 채무자의 파산으로 휴지조각이 되어 휘날리고,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곡물가가 폭등한다.

“···이러다간 옛 합스부르크 스페인처럼 국가 부도를 선언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무역의 원칙에는 위배되나, 어쩔 수 없지. 계엄령을 선포합시다.”

“곡물 수입이 원활할 때까지 금주법도 통과시켜야 합니다. 먹을 곡물도 부족한데 술을 빚을 새가 어디 있습니까?”

대영제국 재무부, 국무부 관료들은 담배로 산을 쌓으며 마라톤 회의에 들어갔다.

경제위기, 대폭락이야 100년 전에도 겪어봤다.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들의 100년 이른 선배들이 뉴턴조차 전 재산을 잃은 희대의 경제위기를 악으로 깡으로 수습하며 만들어놓은 매뉴얼대로, 대영제국 관료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달아오른 증시를 강제로 식힌다.

“전쟁부 장관.”

“이미 하이랜더 보병연대를 투입해 증권거래소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소.”

일단은 군대를 동원해 이 사태가 일어난 시발점인 거래소 폐쇄.

역시나 노동자 시위를 포병대의 포도탄 사격과 해병대의 총검 돌격으로 밀어버리는 낭만의 시대답다.

“첼시 항 인근의 빈민가에 경찰을 항시 배치하시오. 그리고 그 염병할 ‘빈민가 관광’도 당분간은 금지하고. 혹시나 빈민들을 자극하면 런던이 1789년의 파리처럼 폭도들로 들끓을 수 있소.”

“빈민가 관광이라 하심은.”

“그, 있잖소. 빌어처먹을 한량들이 동물원 구경하듯이 빈민가를 슥 둘러보고 동전 몇 개 던져주며 신이 된 것 같은 우월감에 심취하는 거.”

“경시청장과 얘기해서 봉쇄하겠습니다.”

경찰력으로 빈민가 봉쇄.

“부실 채권을 시중 가격의 반으로 국가가 대신 매입합시다. 국채로 돌려주면 적어도 볼멘소리는 나올망정 소요사태는 안 일으킬 거요.”

“재정이 부족합니다만.”

“베어링 은행에게 손 좀 빌리지.”

“미봉책이잖습니까.”

결국 다시 갚아야 할 돈 아닌가. 갚을 필요 없는, 온전히 국가 소유의 돈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제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할 시간.

부족한 재정은 외부에서 충당한다.

영국에게는 상식이잖아?

***

1814년 8월 중순.

청나라, 항주.

“흠.”

“뭐라고 합니까 청색 제독님?”

“귀하가 보낸 전리품에 제국이 크나큰 도움을 얻고 있음. 지금처럼 제국에 대한 귀하의 의무를 다하길 바람.

추가로 호위함과 샤락선을 여러 대 증파해준다는 군.”

“본국이 많이 팍팍하긴 한가 봅니다.”

“왜? 돈 넣었나?”

“해군 장교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보통 굶어 죽을 텐데.”

“그렇긴 하지. 그래서 이렇게 근무 외 수당을 벌어가는 거 아니겠나.”

태평양 파견 함대 함대장,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불이 피어오르는 항주 순무 서리 집무실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십만 파운드짜리 가치의 은에 갖가지 보물까지. 저걸 화물선에 실어 런던에 보내면 웨스터민스터도 좋아하겠지.”

“수병들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뽀리는 건 좋은데, 적당히 뽀리라고 하게.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 되지.”

금목걸이에 금팔찌에 보석이 박힌 반지까지 풀로 장착한 넬슨은 본국에 보내기 위해 화물선으로 옮기는 전리품 상자에 손을 넣어 한 움큼씩 제 주머니에 꼬불치는 수병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랑스가 정녕 우리 대영제국을 적으로 돌렸다지?”

“뭐, 기욤 드 툴롱도 결국은 개구리였던 거지요.”

“참... 인생사라는 게 말이야, 안타깝군그래. 그분 덕에 내가 이리 출세를 했는데, 적이 되다니.”

그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몇 번 차곤 부관에게 물었다.

“그래서, 선전포고는 언제 한다던가?”

“아마 전열함들이 전부 재생된 이후인 8월 말 아니겠습니까.”

“음. 그렇겠군. ···자네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언제 귀국할 수 있을 거 같나?”

“뭐어, 왕립 해군 대서양 함대와 지중해 함대가 전멸하지 않는 한 계속 여기 있지 않겠습니까? 청나라가 이렇게 실하면서 따 먹기 쉬운 과실이라는 게 알려졌으니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우릴 귀환시킬 마음은 없을 거 같습니다만.”

“공화국 해군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하하, 하나가 공화국 해군과 공멸하면 몰라도 대서양 함대와 지중해 함대 모두가 전멸할 리는 없으니까요.”

“하하하. 그렇지.”

그들은 잡담을 멈추고 해도와 지도, 나침반을 꺼내 선실에 늘어놓았다.

“광주를 시작으로 아래는 싹 털었으니 이제 수도인 북경을 털어보세.”

“황제가 기거하는 궁이니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겠습니까.”

대영제국 태평양 함대의 다음 목적지는 북경, 북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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