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자유, 평등, 박애 (3) (139/341)

자유, 평등, 박애 (3)

1792년 6월 30일.

곧 한여름이라지만 아직까지 이른 새벽에는 꽤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이러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닌지 몰라.

“아이고, 어서옵쇼!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요, 손님?”

“파리 혁명법원 쪽으로 갑시다.”

“옙! 바로 출발하겠습니다요!”

마부는 휘파람을 부르며 손에 쥔 고삐를 세차게 휘둘렀다.

구역과 구역을 넘고, 세느 강에 걸린 다리를 넘고 멈춰선 마부의 손에 나는 은화 몇 닢을 쥐어주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게 얼마만이지. 오를레앙 그 인간 제대로 골려먹었던 이후로 처음 같은데.

나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서 천천히 법원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정문에 다다르자, 경비를 서던 한 병사가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정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수감자 중 면회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신원이 어떻게 되십니까.”

“파리 16구 시민, 기욤 드 툴롱입니다.”

“어...어...?”

씁. 내가 온 게 얼굴이 그렇게까지 하얗게 질릴 만한 일인가.

“각, 각하. 잠시 제 사수와 말 좀 하고와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병사는 서둘러 정문 옆에 나란히 서있던 다른 부사관에게 다가갔다.

“뭐야, 너 왜 그래?”

“재, 재무총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뭐? 불심검문 이런 거냐?”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면회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어쩌지? 어떡하지? 일단 들여보낼까?”

“그랬다가 나중에 징계 받는 거 아닙니까?”

“지금 재무총감을 밖에 세워두자고? 너 미친놈이냐?”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젠장, 젠장.”

부사관은 아침 댓바람부터 난데없이 몰아친 폭풍우에 식은땀을 흘리다가 천천히 태풍의 눈을 향해 걸어갔다.

“아. 얘기는 다 끝난 겁니까?”

“각, 각하, 아무래도 이게 절차라는 것이 있어서... 잠시 기다려야하실 듯 싶습니다.”

“그 절차라는 거, 조금 빨리 진행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각하!”

두 경비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잠시, 나는 이렇다 할 검문 없이 면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각하, 어떤 죄수를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투생 브레다를 불러주십시오.”

“예, 각하.”

나는 그리 말하고 면회실의 의자에 앉았다.

조금의 기다림 이후, 절그럭 거리는 쇠사슬 소리와 함께 맞은 편 문이 열리며 건장한 남성이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투생 브레다 장군 맞습니까?”

“맞소.”

건장한 남성은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도맹그도 아니고, 파리에서 날 면회 올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신은 누구시오?”

“혁명정부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당신이 기욤 드 툴롱이오?”

“그렇습니다, 투생 브레다.”

“······내 생각보다도 더 젊구려.”

“어린 나이에 과분한 자리에 올랐지요.”

“그런데 재무총감께서 왜 날 만나러 오신 것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소만.

아, 오해하지 말아주시오. 재무총감이 온 게 싫어서 한 말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일 뿐이니. 난 지금 정말 기쁘다오.”

남자는 목재수갑을 찬 자신의 손을 틀어, 손바닥을 편 뒤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뭐, 사내 복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직원 중 한 명이 당신을 만나달라고 간곡히 요청해서...”

“사내 복지? 무슨 해괴한 단어인지 모르겠소만.”

“전 직원들의 행복도가 곧 회사의 능률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말입니다.”

“허, 재무총감은 꽤나 이상한 사람이구려.”

쓰읍. 이상한 사람이라니. 말이 좀 심하시네.

“제가 아무리 이상해도 삼백 명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만큼 이상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당신도 그런 헛소리를 믿소?”

“믿는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혐의가 그렇다는 거지. 아시겠습니까, 이상한 사람?”

“음. 뭐, 알겠소. 그래서 재무총감께서 거느리신 그 직원 분께서는 무얼 원하는 것이오? 간악한 테러리스트를 응징해달라, 그런 요청은 아닌 것 같소만.”

남자는 수갑을 찬 손으로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직원이 말하길, 투생 브레다 당신의 말을 한 번만 들어달라고 하더군요.”

“······내 말을 들어달라고? 백인 직원이 그런 요청을 했다니, 지금 날 놀리는 것이오?”

“전 직원이 백인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러면 흑인이란 말이오?”

“그 사람도 당신의 고향인 생도맹그 출신입니다.”

“생도맹그 출신이라...”

투생 브레다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날 능멸하고자하는 추악한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닐 거라 믿겠소.”

“제가 귀중한 시간을 버려가며 남을 골려먹을 만큼 악한(惡漢)은 아니라.”

“하기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자리에 앉은 사람이시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려.”

남자는 자리를 고쳐 앉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기욤 드 툴롱,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답해주시겠소?”

“우리 회사 기업비밀만 아니라면 답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당신 사실은 세상에 둘도 없을 악한이었군!?”

우리 둘은 동시에 피식하고 웃었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웃어보는구려. 고맙소. 그래, 농은 여기까지로 하지. 기욤 드 툴롱, 당신에게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무엇이오?”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와 의무 아니겠습니까. 자유로울 권리, 평등할 권리, 모두를 사랑할 의무 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와 의무라! 정말 달콤하기 그지없는 말이오.”

그 말을 마친 투생 브레다의 눈동자는, 이 좁은 면회실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두둥실 떠올랐다.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

“듣고 있습니다, 투생 브레다.”

“그 ‘인간’이라는 범주에는 누가 들어가오?”

그 달콤한 과실은 누구에게까지 허용돼 있는 거요? 투생 브레다는 뒷붙였다.

“‘인간’이라는 범주라... 당연히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나무로 된 면회실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재무총감, 그런 류의 말이 아닌 거 알잖소. 자유민들만이 인간이오, 아니면 노예도 인간이오, 아니면 피부가 흰 노예는 인간이고 피부가 검은 노예는 인간이 아니오? 유럽 대륙 본토에 사는 이는 인간이고,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인간이오? 아니면 인간에 준하는 그 무언가요?”

투생 브레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내게 물었다.

“부디 답해주시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었다.

마치 자기가 지닌 생명의 모든 것을 태워 일으킨 것 마냥,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은, 저 멀리 대서양의 섬, 생도맹그에서 온 한 검은 사내의 눈 안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샛노랗게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투생 브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 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불꽃을 마주보고, 나는 이어 말했다.

“이제는 그저 한 순간의 꿈이었는지, 아니면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본 적 있습니다. 모두가 피부색과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개척하며, 자신이 개척한 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받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불꽃 너머로 내 눈동자가 비춰보였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말할 테지요. 혁명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백작이니 자작이니 평민이니 운운하는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나도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3년 전, 7월 14일 전에, 민중이 바스티유를 깨트리기 전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부르짖던 누군가의 말은 허무맹랑한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그 허무맹랑한 소리는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세상은 계속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군왕과 성주, 종교의 왕들이 검을 빼들고 준마에 타 드넓은 세상을 누비던 수백 년과 달리, 지금은 시민들이 스스로 검을 빼들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비록 지금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말이라도, 미래에, 수 세대 뒤에, 아니면 백년, 이백년 뒤에는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나는, 당당하게 그 질문에 대답해보겠습니다.”

두 불꽃이 좁은 면회실을 가득히 비추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이가 인간입니다. 그 모든 이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사랑해 마지않을 인간입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렬했던 불꽃이 서서히 사라졌다.

***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오. 재무총감?”

“미네르바의 공명정대한 검인 헌법 아래서 재판을 받을 겁니다.”

“그 헌법이 나에게도 적용될 거라 보시오?”

“그렇습니다.”

“하하하! 하기야 말해 무엇 하겠소.”

곧 재판장에 설 사람답지 않게, 투생 브레다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이보시오, 재무총감.”

“듣고 있습니다, 투생 브레다.”

“나는 떳떳하오. 하늘에 한 점 우러러 나는 부끄럼이 없소.”

“혐의가 거짓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그렇다 해도 판결은 판사가 내리는 것, 제가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생각 한 적은 없소. 그저... 내가 결백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 사법부의 공명정대함을 믿습니다. 무죄라면 방면될 테지요.”

“하하, 파리에 있는 모두가 날 죽이라고 말하는데 판사가 그렇게 판결할 배짱이 있을지 궁금하구려.”

투생 브레다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 재무총감.”

“예, 투생 브레다.”

“내 재판장에 와주실 수 있소?”

“시간이 난다면 기꺼이.”

“좋소. 그 말이면 충분하오.”

투생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하는 표정과 함께 내게 다시 물었다.

“혹시 담배 피시오?”

“그렇습니다만.”

“나 한 대만 빌려줄 수 있겠소? 내 금단현상이 심해져서 이렇게 쇠약해지고 말았소이다.”

“쇠약...말입니까?”

저 근육질이 쇠약해진 거라고? 씁. 그게 맞나?

나는 품 안에 있는 답배갑을 열어 담배 한 개비와 성냥을 면회실에 나있는 구멍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고맙소. 하하, 내 이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투생 브레다는 수갑으로 꽁꽁 묶인 손으로 천천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윽, 이게 무슨...”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생도맹그 산보다 맛이 뭐 이리 없소.”

“안 필거면 다시 주십시오.”

“큼큼. 안 핀다고 한 적은 없소.”

투생이 담배를 다 필 때까지 몇 분 후,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재판 날에 뵙지요.”

“그래, 그 때 봅시다.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 오늘 와줘서 너무나도 고마웠소.”

“별 거 아닙니다, 무슈(Monsieur) 투생 브레다.”

“무슈 투생 브레다라... 고맙소. 그렇게 불러주어서.”

투생의 이가 면회실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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