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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62화 (62/267)

62화 일억 펀치!

위플래쉬의 내부 시사회.

써밋 엔터테인먼트의 임원진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확실히 재밌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기는 했다.

회귀 이전, 위플래쉬를 가족들과 함께 본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재밌다고 한 건 나뿐이었다.

부모님과 누나는 영화 내내 드럼을 치기만 해서 지루했다는 평.

하지만 나에게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재미가 있었다.

“어때요, 보스?”

“전 좋았어요. 특히 엔딩 부분이요.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오! 저랑 생각이 같으시네요!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죠. 시몬스야 유명한 배우니 그렇다 쳐도, 마일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꽤 좋은 배우를 찾은 것 같아요.”

꽤 흥미로운 눈빛으로 마일스 텔러를 보며 말하는 트렌트.

확실히 연기력에서는 깔 부분이 전혀 없던 마일스였다.

“아, 보스. 데미언에게 들었는데, 라라랜드의 남주인공 역으로도 마일스를 점찍어 두고 있다더군요.”

“음. 그런가요?”

‘내가 알기로는 아닐 텐데.’

정확히는 아니게 되는 거다.

위플래쉬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마일스 텔러.

그는 스타덤에 오른 이후 전과 다른 태도로 샤젤 감독의 미움을 사게 된다.

심지어 어떤 영화의 촬영장에는 대마초에 취한 상태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그 탓에 라라랜드의 잠정 캐스팅이 무산되고, 그 자리에 라이언 고슬링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되려나.’

뭐, 그래도 위플래쉬의 제작이 더 당겨지면서 역사는 바뀌어 버렸으니.

이번에는 마일스 텔러가 라라랜드의 남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으니까.

‘이왕이면 원래대로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으면 싶긴 한데…….’

그게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을 때보다 더 나을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불확실함과 확실함 사이에서 확실한 걸 선호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샤젤 감독에게 ‘마일스 텔러 대신 라이언 고슬링을 쓰는 건 어때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제작사 주인이 그렇게 말하면… 꼭 ‘라이언 고슬링을 안 쓰면 투자는 취소예요’라고 말하는 거 같잖아.’

이게 성공을 하고 느낀 건데.

내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갑질로 느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았다.

당장 연기천재가 되었다를 찍을 때도 내가 생각 없이 했던 말에 촬영장이 뒤집어졌던 적도 몇 번 있었다더라.

촬영이 끝나갈 때쯤 들은 건데.

내가 어느 날 ‘PD님, 그런데 저 소품은 좀 유치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가 소품 담당이 제대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고.

뭐 그런 게 내 잘못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할 필요는 절실히 느꼈다.

어쨌거나-

“아. 트렌트, 봉 감독님 신작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배급 준비에는 차질이 없나요?”

“예. 현재 3,000개 극장을 확보해 와이드 릴리스를 준비 중인 상태입니다.”

외국 감독의 영화치고는 상당히 많은 3,000개라는 극장을 확보한 건 전부 트렌트의 판단이었다.

이게 봉 감독이 아무래도 나와 같은 나라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마션의 영화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이기도 한 터라.

트렌트에게 봉 감독 신작의 배급 얘기를 꺼냈을 때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 좋게 볼 필요 없이, 트렌트의 판단대로 배급 관련을 전부 맡기겠다고.

처음에는 예전 보스도 그런 소리를 해 놓고 막상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면 불만을 표했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강조하니까 그제야 알겠다고 하더라.

아무튼, 와이드 릴리스를 준비하는 건 온전히 트렌트의 판단이라는 것.

‘북미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꽤 높게 봤다는 뜻이겠지.’

만약 과거와는 달리 봉 감독의 신작이 미국에서도 꽤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가 나중에 패러사이트로 오스카를 휩쓸었을 때처럼 각종 국뽕 유튜브에 언급되지 않을까.

‘…뭐 그래도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후우.’

[일본과 중국, 한국을 얕보다가 깊은 수렁에 빠진 상황. 작가 선우진이 한국의 위상을 뒤바꾼 사연.]

[‘선우진은 아시아가 낳은 대천재?’ 중국이 지금 한국의 대작가를 강탈하려 하고 있다!]

[‘선우의 글이 잘 팔리는 이유가 뭘까요?’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문학의 셰익스피어, 대문호 김용이 말한 선우진과 한국인!]

카톡 창을 열자 보이는 유튜브 썸네일들.

이게 뭐냐면 요즘 나와 관련해서 쏟아지는 국뽕 유튜브들이었다.

분명 내 기억으로는 한참은 지나야 이런 채널들이 생겼었는데… 지금은 내가 해외에서 하도 성공을 한 탓인지, 원래보다 빠르게 이런 국뽕 유튜브들이 만들어졌다.

아무튼.

이런 썸네일들이 왜 내 카톡 창에 있냐고?

[엄마 - 우진아? 진짜 중국 주석이 너한테 귀화하라고 했니?]

[엄마 - 엄마 친구들 난리다, 지금… 전화 오고 막 그래.]

톡, 토도독-

[나 - 엄마… 그거 다 거짓말이니까 믿지 마. 저 유튜브 영상 중에서 제대로 된 거 하나도 없어.]

[아버지 - 그럼… 김용 선생이 말씀하신 것도?]

[나 - 네. 아마 저를 모르시지 않을까요?]

[아버지 - 아이고. 어제 친구들한테 내 아들이 이 정도라고 잔뜩 자랑해 놨는데…….]

왜긴 왜야.

대체 이런 국뽕 유튜브 말을 믿는 게 누군가 했는데.

그게 우리 엄마, 아빠였던 거지.

뭐 그래도 김용 선생님이 내 얘기를 했다는 건 혹시나 해서 나도 진짜인가 찾아보기는 했다.

흠흠.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 영웅문을 쓰신 김용 선생님이신데… 그런 분이 내 칭찬을 했다는데 안 보고 배겨?

물론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말이다.

* * *

“아, 형님, 오셨어요.”

“어. 방송국에서 바로 온 거야?”

“완전 바로는 아니고요. 어제도 편집실에서 밤새워서 그런가 몸에서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모텔 들려서 좀 씻고 왔어요. 옷도 좀 갈아입고.”

양진철 PD와 최진섭 CP.

사석에서는 형 동생 관계인 둘이 인사를 나눴다.

“그래. 잘했다. 알지? 이제 예전 작가님 아니신 거.”

“그거야 잘 알죠. 으으, 괜히 그렇게 말하시니 갑자기 긴장되잖아요.”

그들이 지금 기다리는 건 선우진이었다.

며칠 전 국내 언론을 통해 LA 코리아타운에서 밥을 먹던 선우진의 모습이 보도됐었는데.

그사이 한국에 들어온 건지 오늘 그들과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후우. 나도 PD 시절 작품 망치고 국장님 뵈러 갔을 때보다 지금이 더 떨린다. 담배나 하나… 아니다. 나중에 태우자, 나중에.”

품 속으로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내던 최 CP가 다시 담뱃갑을 집어넣었다.

선우진이 비흡연자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그렇다고 선우진이 담배 냄새 가지고 뭐라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지만.

이게 사람 마음이 또 다른 게, 괜히 사소한 거로도 눈치를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스타 작가 정도가 아니라 월클이 되어 버린 선우진이지 않나?

“그나저나 20대 최고 부자라니. 1년 사이에 참 많은 게 바뀌었어.”

“대단하시긴 하죠. 재벌 아들딸들도 작가님한테는 안 되시는 거잖아요.”

지미 키멜 라이브가 끝나고.

선우진의 재산을 추정하는 기사들이 한국에 여럿 보도된 적이 있었다.

기자들에게 있어서는 꽤 쓸 만한 기삿거리였을 것이다.

원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남이 얼마나 벌었는지였으니까.

게다가 국내에만 50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하기까지 했으니.

기자들 입장에서는 일단 선우진이라는 키워드만 기사에 넣으면 알아서 조회 수가 쌓이는 거였다.

[한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20대? 바로 선우진!]

[엄친아의 기준이 달라졌다. ‘저기 엄마 친구 아들은 1년 동안 1조를 벌었다던데…….’]

[선우진의 재산은? 1조원 내외 추정.]

[기부왕, 선우진. 단숨에 역대 최고액 기부 달성!]

덕분에 많은 기사가 나왔고.

양진철 PD와 최진섭 CP 둘 모두 그런 기사를 대부분 본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선우진과 오늘 만나기로 한 상황이니.

예전에는 스타 작가라 해도 이렇게까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벌써부터 긴장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저희를 찾으신 걸까요?”

“글쎄다. 어? 오셨나 보다.”

약속 장소는 최고급 한정식 레스토랑의 룸이었는데.

식당을 통째로 빌린 것인지, 그들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룸 바깥이 분주해지기 시작한 것.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선우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님,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 작가님. 여전히 잘생기셨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두 분 다 잘 지내셨죠?”

양진철 PD와 최진섭 CP가 선우진과 악수를 나눴다.

편안한 캐주얼 차림이었는데.

엄청난 부자란 걸 알고 봐서 그런가, 아니면 얼굴 때문인 건가.

어딘가 모르게 부티가 잔뜩 흐르는 모습이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실까요?”

“예, 좋죠.”

선우진의 말이 끝나자 룸 바깥에서 주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종업원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건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수행원이 함께한 모양이었다.

‘허어. 기분이 묘하네.’

예전에도 비슷하게 식사 자리를 가졌던 셋이었다.

‘연기천재가 되었다’의 계약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때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는 양진철 PD와 최진섭 CP였다.

물론 그때의 셋 중 선우진의 처지는 말도 안 되게 바뀌고 말았지만.

* * *

“OTT 플랫폼이요?”

“예. 혹시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에이, 설마요. 저희도 방송물 먹는 사람들인데. 넷플릭스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작가님께서 OTT 플랫폼을 만드신다고요?”

“네. 제가 최근 영화 제작사를 인수하신 건 아시죠? 관련해서 사업을 다각화하려고요.”

양진철 PD와 최진섭 CP를 만나려고 한 이유가 그거였다.

저 둘을 내가 만드려는 OTT 플랫폼에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원래는 넷플릭스가 그런 것처럼 영화나 미드 위주로 IP를 확보하려고 했는데.

‘이미 깡그리 다 넷플릭스와 계약되어 있단 말이지.’

괜찮은 건 넷플릭스와의 독점 계약을 맺은 지 오래라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것들뿐이었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면 대부분 2~3년 정도가 필요한 상황.

그렇다고 2~3년을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

‘우선 K-콘텐츠로 시작하는 거지.’

어떻게 보면 제대로 북미나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이전, 실험 단계에 가까웠다.

먼저 K-콘텐츠를 기반으로 OTT 플랫폼을 출범해 본다면.

차후 북미나 유럽 시장에 도전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실험하는 것만은 아닌 게.

K-드라마나 K-예능 같은 건 그래도 아시아권에서는 꽤 먹어 주는 콘텐츠였다.

K-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한국과 한류가 먹히는 아시아권에서 사용자들을 끌어오고.

검객무쌍이나 텐센트와의 협약을 통해 중화권 사용자들도 끌어오고 그럴 생각이었다.

‘사용자 수야말로 플랫폼의 가장 큰 힘이니까.’

차후, 할리우드의 여러 IP를 놓고 넷플릭스와 경쟁하게 됐을 때.

판권 금액 말고도 내세울 게 필요했다.

아무리 큰돈을 주겠다고 해도 제작사들이 이미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있는 넷플릭스를 제치고 나에게 작품을 팔지는 않을 테니까.

“제 새로운 회사에 두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물론 대우도 업계 최고로 해 드릴 거고요. 저 돈 많은 건 다들 아시죠?”

‘둘 모두 능력은 흠잡을 데가 없지.’

연기천재가 되었다로 스타 PD의 반열에 오르고, 최근에 시작한 차기작도 동시간대 1위를 달성한 양진철 PD.

그리고 몰랐던 건데, 최진섭 CP도 PD 시절 최소 중박작 이상만을 찍던 PD였더라.

스카우트할 만한 능력은 둘 모두에게 있다는 것.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와의 친분이 있다는 게 가장 컸다.

‘OTT 플랫폼을 믿고 맡기려면 저 둘만 한 사람이 없어.’

예전부터 그랬고, 최근에는 더욱 크게 느끼고 있는 거지만.

모든 걸 내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내가 전문가도 아니었고.

뭐 그렇다고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기도 그런 게, 이렇게 드라마나 예능 제작과 같은 특수한 업계에서는 그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 필요했다.

즉, 양진철 PD와 최진섭 CP만큼 내게 지금 필요한 사람들이 또 없다는 것.

아무튼.

내 말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는 양진철 PD와 최진섭 CP.

이럴 때는 생각할 겨를을 주기 전에 펀치를 날려야 했다.

“우선 1억 달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1억 달러?”

“아… 죄송합니다.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하하. 한화로는 1,200억 원 정도겠네요. 제가 차릴 OTT 플랫폼의 초기 자본금으로요.”

“……?”

“……?!”

이름하야 일억 펀치!

봉 감독에게도 한번 써먹은 적 있는.

일고초려 No.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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