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63화 (63/267)

63화 이건 된다

1억 달러.

한화로 1,200억 원.

지금 시기에 드라마 제작비 100억 원이면 한국 기준에서는 엄청난 대작이다.

즉, 대작 드라마를 10개 쯤은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금액.

‘그래 봐야 미국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아.’

하지만 돈을 많이 투자하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장 최근 넷플릭스에서 나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의 제작비가 1억 달러 수준이다.

드라마 하나에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만큼의 돈을 쓰는 거다.

넷플릭스는 내가 만들 OTT 플랫폼의 최대 경쟁자.

당연 추후에는 나도 그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해야 했다.

“허… 1… 1,200억 원이요.”

“게다가 그게 초기 자본금이라고요?”

“네. 그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돈을 투입해야죠. 아시잖아요? 저 요즘 돈 잘 버는 거.”

그러나 1,200억 원이라는 금액은 양진철 PD와 최진섭 CP에게는 꽤 놀라웠던 모양.

둘 모두 금액을 듣자마자 입을 벌린 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돈… 예… 돈 잘 버시죠…….”

“이번에 신작도 준비 중이고, 한국이랑 중국에서 성공했던 안늙강과 칼넘강도 미국 출판을 준비 중이라서요. 아마 돈 부족할 일은 없을 거예요.”

“하하… 애초에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작가님.”

“그런가요? 아무튼. 스카우트 조건 관련해서는 여기 서류를 보시면 돼요. 물론 오늘 대답은 안 주셔도 돼요.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답변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계약서를 건넸다.

아마 조건 때문에 거절 당하지는 않을 거다.

물론 지상파 방송국 PD가 받는 연봉도 꽤 되고, 돈 이외에도 여러 장점이 있는 자리라지만.

“그것까지 고려해서 책정했으니까.”

기본급만 해도 그냥 억 소리가 아니라 ‘어어억?!?!’ 소리 나오는 건 당연했고, 작품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많은 게 돈이었으니.

합리적인 선에서는 아낄 생각이 없었다.

“허어…….”

“흠!”

계약서를 열어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 양진철 PD와 최진섭 CP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둘이었는데.

금세 표정이 뒤바뀌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언젠가 바키 시리즈로부터 배운, 대답을 언제나 예스로 받아 내는 방법을 써먹었으니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큰돈… 이럴 때는 돈을 아끼면 안 되지.’

그렇다고 내가 둘에게 마냥 퍼 주는 건 아니었고.

믿을 만하면서도 능력을 갖춘 인력인 둘이라면 주는 돈값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어쨌든.

아니나 다를까.

이내, 양진철 PD가 입을 열었다.

“저는 작가님과 함께라면 무조건 콜이죠!”

“어? 조금 더 고민하고 말씀해 주셔도 되는데.”

“아뇨. 고민은 끝났습니다. 아니,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죠. 제가 작가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저는 작가님과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양 PD님은 저런 점이 참 좋아.”

사람이 참 꾸밈 없어.

아니, 꾸미는데도 속내가 드러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흠흠.”

최진섭 CP도 아닌 척 헛기침을 하고는 있지만, 계약 조건이 적힌 서류를 바라보는 눈이 떨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둘 모두에게서 긍정적인 답이 나올 것 같았다.

* * *

“그럼 두 분 모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결국 내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인 양진철 PD와 최진섭 CP.

다만 벌써부터 SBC를 나온 건 아니었고, 현재는 퇴사를 준비 중이기만 한 상태였다.

그래도 회사 설립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견을 나눴다.

“드라마, 예능, 다큐를 가리지 않고 주위에 능력 있는 분들이 계시면 마음껏 추천해 주세요.”

“다큐 쪽도요?”

“네.”

많은 사람이 대부분 드라마나 예능, 영화 등을 보기 위해 OTT 플랫폼을 찾을 거라 생각하지만.

다큐멘터리 쪽도 꽤 수요가 있는 장르였다.

특히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꽤 많은 사람에게 먹히는 법.

“대표적으로 눈물 시리즈가 그랬지.”

아마존의 눈물이나 북극의 눈물과 같이.

다큐멘터리임에도 웬만한 드라마 시청률을 훌쩍 뛰어넘었던 것들도 있었다.

내가 제작하고자 하는 다큐도 그렇게 일반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자의 국적을 타지 않는 편이니.

차후 영미권이나 유럽권을 노릴 때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나오지 못한다는 법은 또 없잖아?”

…음.

이건 너무 나갔나?

뭐 해 보고 안 되면 아예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사 와도 되니까.

도전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요.”

“……?”

“연기천재가 되었다 때도 느꼈었지만, 스태프분들의 환경이 엄청 열악하더라고요. 노동시간 대비 최저 시급을 못 받는 분들도 수두룩하고요. 제가 차릴 플랫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실제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도 있었고, 이미지 관리 차원도 있었다.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모든 걸 말해야 한다지만, 그래도 엄연히 대중의 사랑으로 돈을 버는 직업.

가뜩이나 최근 기부 뉴스로 내 대중적 호감도가 최상을 달리고 있는데.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건 사양이었다.

아무튼.

“K-드라마와 K-예능, K-다큐 등으로 기반을 쌓는 거야.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먹히는 건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온 거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야. 거기에 써밋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을 추가하고. <마지막 마법사>와 검객무쌍이 더해진다면…….”

당장 넷플릭스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발밑까지 추격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턱끝일 수도 있고.

[위플래쉬, 선댄스영화제 심사 위원 대상 수상!]

[데미언 샤젤 감독. “가장 감사한 사람은 당연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 준 선우진. 그는 나의 친우이자, 매 순간 내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다.”]

한국에 와 있는 사이.

위플래쉬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 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수상 소감에서 샤젤 감독이 나를 언급했더라.

그것도 꽤 낯간지러운 멘트로 나를 금칠하면서.

뭐 립 서비스일 수도 있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위플래쉬가 정식으로 개봉했는데.

예상대로 흥행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러 호평 속에서 수많은 관객이 위플래쉬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드럼 비트가 당신을 황홀경으로 이끌길 원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

[소설가의 무모한 할리우드 도전기, 무모한 게 아니었다?]

[작가 선우의 영화 제작사 인수 이후 첫 작품, 위플래쉬. 벌써부터 손익분기점 돌파하다!]

[강렬하면서도 고무적. 그저 음악영화일 뿐인데 액션 영화보다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아직은 북미에만 개봉한 게 전부고, 그나마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위플래쉬 제작비로 투자한 400만 달러를 벌써 회수할 수 있었다.

[트렌트 - 지금 추세라면 북미에서 2,5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이 나올 것 같아요.]

그 정도 수익이면 북미에서만 제작비의 서너 배를 회수한 것.

전 세계 흥행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15배가 넘는 총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15배면 6,000만 달러인 건가.”

수익률이 자그마치 1,500%.

물론 내 재산을 고려했을 때 6,000만 달러면 일견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위플래쉬가 채 3주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 나온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기간 대비 엄청난 수익이었다.

“괜히 쑨퀀이나 JP미디어와 진강문학사 사람들이 날 그렇게 본 게 아니었구나.”

날 볼 때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그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 * *

“양 PD, 퇴사한다는 거 진짜야?”

“아… 작가님,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양진철 PD가 죄송스러운 얼굴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눈앞에 있는 여성 작가.

몇 달 전, 조만간 작품을 같이하자고 구두로 약속을 했던 박은지 작가였다.

“아니. 이번에 하고 있는 거 끝나고 다음에 나랑 같이 하기로 했잖아?”

“윽…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양진철 PD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실 박은지 작가는 작년 타 방송사에서 한해 시청률 1위를 달성한 스타 작가.

만약 연기천재가 되었다에서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감히 양진철 PD가 말도 제대로 못 걸었을 만큼 대단한 작가였다.

그런 그녀와 구두로나마 다음 작품을 함께하자고 해 놓고는, 이렇게 아무 말 없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나 연기천재 보고 양 PD 연출 스타일 마음에 들어서 SBC랑 하려고 한 건데. 이거 진짜 서운하네?”

“진짜 진짜 죄송합니다, 작가님. 제가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휴. 말로만?”

“네?”

“양 PD 퇴사 이유부터 말해 봐. 올 초에 연기천재로 그렇게 대박을 친 PD가 갑자기 방송국을 나간다고? 케이블에서 얼마를 부른 거야?”

“예? 아뇨. 케이블 가는 건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뭔데? 양 PD, 여기서 숨기면 나 진짜 서운하다? 지금 내가 화내도 되는 상황인 거 알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 버린 양진철 PD였으니.

하는 수 없이 양진철 PD는 박은지 작가에게 퇴사의 내막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꽁꽁 싸맬 비밀이 아니기도 했고.

이미 SBC에서 그와 친한 동기 몇 정도에게는 먼저 밝히기도 했다.

아무튼.

“뭐어? 진짜? 와아. 선우진 작가 스케일 엄청 크네? 하긴, 뉴스 보니까 아주 그냥 돈을 갈퀴로 쓸어담더만.”

“흠흠. 아무튼 그렇게 된 겁니다.”

“잠깐만. 그러면 작가들 대우도 엄청나겠네?”

“예? 예, 뭐… 그렇겠죠?”

“그러면 나는? 나 정도면 회당 얼마 쳐 줄 건데?”

그렇게 물으며 눈을 반짝이는 박은지 작가였다.

온갖 기사에서 뭐 1조를 벌었다, 그거보다 더 될지도 모른다 떠드는 선우진.

그런 그가 드라마 제작에 뛰어든다는 게 흥미가 동했던 것.

거기에 당장 SBC에서 탄탄대로를 달릴 게 예정되었던 양 PD를 퇴사하게 만들 정도니.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풀려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도 이번 기회에 회당 1억 좀 찍어 보자는 거지.’

작년 업계 톱을 달리고 있는 한 원로 작가가 처음으로 회당 1억 원의 고지를 넘었었는데.

아무리 종편 프리미엄 덕분이라지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어… 진심이세요?”

“그럼. 내가 언제 빈말하는 거 봤어? 그리고 나 프로 의식 투철한 사람이야. 내 몸값만 높게 쳐준다면 당연 거기로 가야지.”

“음. 이게 그런데 제가 현재 완전히 퇴사한 것도 아니고, 아직 작가님 대본을 본 것도 아니니 얼마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기가 좀…….”

“허. 앞에 말은 핑계고, 이거 작품 보기 전에는 못 말하겠다 그 뜻이지?”

“하하.”

박은지 작가의 물음에 부정하지 않고 멋쩍게 웃는 양 PD.

대본 보기 전에는 고료 얘기 못 하겠다는 게 맞다는 뜻이었다.

박은지 작가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알겠어. 뭐 작가는 글로 말하는 거니까. 자, 여기.”

제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는 박은지 작가.

확인해 보니 드라마 시놉시스와 1화 분량 정도의 대본이었다.

“내가 요즘 쓰는 건데, 감이 좋아. 실망하지는 않을걸?”

“한번 읽어 봐도 될까요?”

“응. 그러라고 준 건데, 뭐.”

박은지 작가의 허락에 양진철 PD가 시놉을 펼쳤다.

‘…오?’

얼마 읽어 내리지도 않아 표정이 변하는 양진철 PD.

일찍이 선우진의 ‘연기천재가 되었다’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높게 알아봤던 그였다.

그런 그의 작품 보는 눈.

‘여주는 톱스타… 대신 백치미가 조금, 아니 많이 섞였고. 남주는 외계인? 조선시대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어라, 이거 꽤 신선한데?”

그것이 지금 말해 주고 있었다.

이 글.

될 것 같다고.

‘우진 작가님이 대본 괜찮은 거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셨는데… 이 정도면 우진 작가님도 좋아하실 거 같은데?’

그가 조만간 받게 될 높은 연봉.

왠지 모르게 벌써부터 그 밥값을 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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