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수사 3>
“그런데 왜 심판자는 지지하는데?”
“제대로 심판하니까. 법적으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죄인들이 제대로 처벌받잖아. 심판자가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범죄율도 낮아졌고.”
“그렇다고 해도 심판자도 결국 범죄자 아니야?”
“범죄자지만···.”
“···?”
“왜 암 걸리면 방사선 치료가 부작용이 큰 걸 알아도 치료받잖아. 독한 약이 부작용이 생겨도 다른 치료방법이 없이 아프면 독한 약으로 치료받는 거.”
“심판자가 부작용 있는 독한 약이다?”
“스스로 정화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 않을까?”
“누나는 아직도 감성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왜? 너는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심판자도 이렇게 언론에서 주목하기 시작하면···처음의 의도는 물론 정의로울지 몰라도 결과는 아름답지 못할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비록 인턴이지만 정당 사무실에서 일해보니까. 여기는 정의로운 의지로 들어와도 결국 당의 목적에 휘말려서 더러워지는···같은 당원조차도 이용해 먹을 사람들이야. 같이 일하기는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게 정말 힘드니까. 누나 말처럼 심판자가 자신만의 신념으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도시 전설로만 남던지 아니면···.”
“아니면?”
“누나한테는 말 안 해.”
“왜? 말하다가 끊는 것만큼 나쁜 게 없다고.”
“그거야···.”
“너 진짜. 다음부터 초밥 없다?”
“내가 누나보다 훨씬 잘 벌 거든?”
“그러면서 벼룩의 간을 빼먹어야겠어?”
“응. 뺏어 먹는 게 더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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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로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 이지민은 표정을 찡그리지도 울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눈앞의 형사를 바라봤다.
“이지민씨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취조 시에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오히려 수사협조 불성실로 양형 가중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허형사가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이지민의 초점은 허형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시를 받았어요.”
“뭐요?”
“나는···. 나는 심판자예요. 이 더러운 땅을 정화할 그런 자격을 받았어요.”
이지민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허형사는 이지민의 발언을 막거나 타박하지 않고 진술을 한 줄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 집중했다.
취조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팀장에게 유형사가 말했다.
“이거 심신미약으로 갈려고 하는 말일까요?”
“정말 자신이 심판자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허형사는 이번에 식중독 테러도 사실 대량 인명 살상을 노린 일일 수도 있다고 언급 했습니다···.”
“보통 비타민 음료 용량이 100ml 인걸 감안하면? 허형사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피의자의 진술이나 증거가 더 필요해.”
“비타민 음료 용량을 고려하지 못해서 테러를 당한 사람들이 심한 설사와 복통만 겪고 살아난 것 같다고 잠정 판단하고 있지만···제대로 조사해봐야죠.”
“아니면···누군가 이지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심었을 수도 있겠지.”
“팀장님은 이지민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건 두고 봐야겠지.”
“후···피의자가 심신미약 주장하면 또 경찰을 언론에서 잡아먹으려고 들 텐데···.”
덜컥―.
이지민의 자신은 선택받았다는 같은 내용의 진술이 계속되자 허형사는 취조실에서 나와서 팀장과 유형사가 있던 모니터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허형사는 팀장과 유형사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예 범인의 주장을 언론에 처음부터 뿌리는 건 어떻습니까?”
“스스로 심판자라고 계시를 받았다는 저 정신 나간 소리를 언론에 알리자고?”
“확인되지 않은 진술이기 때문에 경찰에서 언론에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면 후에 알려지게 되면 후폭풍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명이준 의원 수사 때문에 경찰에 흠집을 내려는 이들이 많은데 빌미를 줄 필요는 없죠.”
“···.”
“단순히 ‘피의자의 주장이 그렇다’라고 전달만 하면 되는 겁니다. 후에 경찰에서 심판자에 대한 정보를 뭉개고 있었다는 오명을 쓸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네.”
“그래···그럼 그렇게 하자고.”
허형사를 보는 팀장의 눈초리가 날카로웠지만 허형사는 묵묵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팀장은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답변했다.
“공식적인 루트 말고 조용히 피의자의 진술한 사실만 흘리게 괜히 피의자의 발언에 경찰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팀장이 나간 후 유형사가 허형사를 붙잡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진수형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
“잘못하면 옷 벗게 될지도 몰라요.”
“보고했잖아.”
“공식적인 루트가 아니라는 팀장 말은 책임은 안 진다는 거잖아요.”
“나도 그 정도는 알아들어.”
“그런데 왜···.”
“나는 범죄자를 잡는 형사야.”
“진수형···.”
허형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지만 유형사는 허형사를 잡을 수 없었다. 형사라는 말의 무게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석간신문에 작게 나갔던 이지민 사건의 개요가 다음날 긴급속보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경찰에서 예상했던 것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감자가 된 이지민을 검찰로 넘기기 위해서 경찰서 앞을 나서자 장사진을 친 취재진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기자들이 이지민에게 마이크를 최대한 가까이 붙이면서 서로의 질문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그런 기자들이 무리하게 붙지 않도록 손이나 팔로 제지했지만 기자들의 숫자에 떠밀리듯 힘겹게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었다.
“심판자라고 주장하셨는데요. 이제까지 몇 건의 강력범죄를 저지르신 겁니까?”
“···.”
“어떤 의도로 범죄자들에게 사적 보복을 시도하신 거죠?”
“···.”
“이번 식중독 테러에 당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일반인이라고 하던데 심판자로서 죄의 경중의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여자의 주변을 떠돌았지만 이지민은 고개를 숙이지도 기자들의 질문에 따라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경찰들이 이끄는 대로 힘없이 따라가던 이지민은 호송차량에 타기 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향한 카메라와 마이크 세례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폭탄을 던졌다.
“나는 심판자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도 또 다른 심판자가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심판자가 혼자가 아닌 다수라는 겁니까? 조직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자들이 끝까지 따라붙었지만 호송 차량이 이동을 시작하자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지민을 호송하기 위해 같이 움직이고 있던 허형사조차 지금 이지민의 발언은 생각지 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 이었다. 호송차는 그런 이지민의 폭탄 발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로 했던 검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건 담당 검사의 반응은 아주 날카로웠다.
“아니 도대체 심판자에 대해서 언론에 흘릴 생각을 한 사람이 누굽니까?”
같이 일하면서 사람 좋은 모습만 보여줬던 서윤필 검사의 호통 소리에 허형사는 침묵했고 유형사는 안절부절못한 상태였다.
“피의사실 공표로 잡혀가고 싶은 겁니까?”
“그게···.”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도 못 하겠군요. 이지민 사건에 심판자와 엮였으니 이제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심판자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질테니···경찰이나 검찰이나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할 테니까요. 그걸 노린 겁니까?”
“···.”
“이제 심판자라고 주장하는 무리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무능한 경찰과 검찰이 되는 겁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식물검찰이 되고 경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고 불릴 것 같은데···이렇게 일을 키운 거···이거 도대체 누구 생각이에요?”
서검사가 말을 험하게 했지만, 지금의 사태를 생각하면 속에 있는 말을 꾹 눌러 담고 지금 해결방안을 생각하자는 발언이 나오자 허형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진술할 당시의 말과 다릅니다.”
“진술이 엇갈렸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처음 진술 때 계시를 받았다면서 자신이 심판자라고 말했습니다.”
“피의자의 발언입니다.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걸 모른다는 건 아닐 텐데요.”
“피의자의 발언을 그대로 믿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심판자라는 발언에···.”
“심판자를 잡겠다는 겁니까?”
“저는 경찰입니다. 범죄자라면 그것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범죄가 있다면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형사의 말에 서검사는 노려보듯 쳐다보다 머리를 거칠게 털더니 쓸어넘기고는 진정된 목소리로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후···언론을 탔으니까. 최대한 피의자가 한 말이 거짓이 없는지 파봐야죠. ”
“그럼···.”
“이대로 피의자 신병 인도했다고 끝이 아니란 건 알죠?”
“···?”
“재수사해야죠. 지금 피의자가 말을 바꿨는데. 경찰이나 검찰을 물 먹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단체가 있는 건지 알아봐야지 않겠어요? 처음 진술에서 많이 벗어났다면서요.”
“네”
굳은 표정의 형사들이 나가자 수사관이 검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수습 가능할까요?”
“덕분에 도시 전설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하겠네요.”
“검사님은 심판자 잡고 싶으세요?”
“나요? 그게 누구든 범죄자라면 잡을 겁니다.”
“아···.”
“왜요?”
“다시 오지로 좌천당하실까 봐요.”
“후···이번에 더럽고 힘든 수사가 잔뜩 쌓여서 아마도 오지로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뒤처리해줄 사냥개는 필요할 테니까요.”
“그럼 수사가 끝나면요?”
“수사가 끝나기 전에 수사관님은 살길 찾으세요. 저 따라서 저번처럼 오지로 전출당하지 마시고요.”
“저야 검사님하고 일심동체 아닙니까? 좌천이라고는 하지만 덕분에 건강해지지 않았습니까?”
“뭐 수사관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시작할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