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사람···그리고 사람 2>
그리고 그 다음날.
남자는 익숙한 얼굴과 낯선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당한 것 같다고요?”
민박집 사장은 낯선 이들을 남자와 멀리 떨어진 다음 설명을 마치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도 남자는 낯선 하지만 따뜻한 방안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낯선 이들은 민박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기를 원했지만 남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자 민박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민박집 사장도 방안에서 함께 남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여긴 안전하니까.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남자는 불안하다는 듯 좌우를 살피더니 어제 자신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해준 민박집 사장의 얼굴을 보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그만 쪽지를 꺼내서 보여줬다.
“이건?”
“윽···냄새···. 그런데 사람들 이름이네요?”
냄새가 난다는 말에 위축된 표정을 지은 남자는 이내 그를 달래듯 따뜻한 보리차를 건네는 민박집 주인의 배려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거···다 죽은 사람들 이름···입니다.”
“죽은 사람들이라고요?”
“저하고 같이 갇혀있던···. 조개도 캐고 염전 일도 하고 그러다가 죽으면 아무도 안 사는 무인도에 암매장했어요.”
“암매장이라고요?”
“정말일까요? 혹시 정신이 이상하다거나···.”
“그렇다고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확인도 안 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돼요.”
남자의 말을 들은 동행인 두 명이 서로 의견이 갈린 것 같았지만 누구도 남자에게 호통을 치거나 때리려는 험한 행동을 보이지 않자 남자는 수월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원장은 우리를 돈으로만 봤어요.”
“네?”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사람 수에 맞춰서 나라에서 돈을···식비를 지원해준다고 했어요. 많이 받을 때는 매달 약 천만 원씩 그보다 인원이 적어지면 죽은 사람도 살아있다고 표시했어요.”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실사는 없었나요?”
“한번도···. 우리···원생들이 있는 숙소로 온 사람은 없었어요. 가끔 원장이 술 냄새를 풍기면서 이래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닌 거야 라면서 화풀이를 할 때 ‘아···누군가 원장에게 돈을 뜯었구나···’ 그렇게만 알았어요.”
“조개잡이, 염전 힘든 일 하셨다고 했는데 월급은 받은 건가요?”
“그···. 노동요법인가 치료라고 오히려 치료비를 받아야 한다고···.”
“그럼 가족분들이 치료비를 보내준 건가요?”
“한 달에 10만 원인가···잘 몰라요.”
“···.”
“그런데 돈을 낼 정도의 형편이 되는 친구들은 독방에 갇혔어요.”
“아니 돈을 내는데···더 힘든 독방에 갇히는 상황에 처했다고요?”
“그···잘 모르는데···뭐를 포기해야 밥도 주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뭘 포기해야 한다는 건가요?”
“재산이요.”
“재산?”
“잘 몰라요. 원장이 독한 놈이라고 소리치는 걸 들은 거라서···.”
“독방은 어떤 곳이죠?”
“햇빛도 없고 먹을 것도 안 주고 그냥 작은 골방인데···. 아무도 독방에 안 가려고 미친 듯이 일했어요.”
“먹을 것도 안 준다고요?”
“더러운 새끼들이 많이 쳐먹고 싸지르기만 한다면서···.”
“그게 무슨···.”
“독방에 작은 통으로 해결하는데 그걸 원생들이 치우게 하는 것도 못하게 하면서 그냥···.더러우니까 먹을 것도 주지 말라고···.”
“그럼···거기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포기하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죽었어요.”
“포기라면 재산 포기인가요?”
“네.”
“미친다는 건···.”
“그냥 제정신 아니니까. 재산 대리 어쩌고 하더라고요.”
“정말 죽은 사람도 있나요?”
“저는 강 씨한테 들어서 알아요.”
“강 씨요?”
“강 씨는 30년 넘게 갇힌 사람인데 그 사람이 죽은 이들을 막섬에 가져다가 묻었어요.”
“막섬이요?”
“마지막에 가게 되는 섬이요.”
민박집 안은 침묵에 눌리듯 서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도 거기 있으면 강 씨처럼 되거나 강 씨한테 묻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서 죽을 거 알면서도 그 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떨어지려고 그러려고···.”
“그래서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발견된 건가요?”
“네···. 라면이 정말 맛있었어요.”
“언제 갇힌 건가요?”
“7년···.”
시간의 무게 앞에 다시 한번 침묵이 찾아왔지만 남자는 그 침묵이 싫기라도 하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꿈이 있다면 그냥 평범하게 일하고···.”
“가족들은···.”
“기억이···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알아요. 가족은 저를 버렸어요.”
“···.”
“가족이 저를 그 악마들 소굴로 밀어 넣었어요. 그곳의 다른 이들처럼···.”
“···.”
“갑자기 이 방송을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여기에서 언급된 원장이라는 사람이 기소된 건 알지?”
“당연히 기소되고 형을 살고 있겠지. 인간이 할 짓이 아니잖아.”
“집행유예로 나왔어.”
“뭐?”
“그게 말이 돼?”
“···.”
“여기서야 한 명의 인터뷰를 보여준 거지만 죽은 사람이나 거기 갇혀있던 인원이 몇 명인데···.거기 갇혔던 사람들 인생은? 그 시간은? 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집행유예야. 방송 때야 저놈 잡아죽여라 하는 분위기였지만 공판 들어가면서 사람들 인식에서 멀어지니까. 조용히 형량 줄이고 나온 거지.”
“아니···그래도 저만한 죄를 지었는데···집행유예가 나와도 가족들은 가만히 있다고요?”
“가족들이 더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럼 이번에는 원장이라는 사람을 뒤쫓자는 말이죠?”
“딱 봐봐···나쁜 놈인데 제대로 형량도 안 받았어. 그럼 뭐야?”
“심판자를 만나기 딱 좋은 사람이네요.”
“그러니까. 이번에 제대로 취재해봐. 심판자를 놈 면상을 좀 봐야겠어.”
“PD님은 심판자가 정말 있다고 믿으세요?”
“내가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해? 대중이 심판자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흥미롭게 생각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도시 전설 같은 거 아닌가요?”
“도시 전설이라도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면 못할 게 뭐가 있어.”
“하긴 뭐라도 건져야겠죠?”
“이번에 방송3사 말도고 캐이블 채널이 종합편성채널로 풀리는 것 봐. 보도 채널도 새로 생기고 아무래도 위에서 압력이 장난 아니라고.”
“광고 더 떨어지고 시청률도 떨어진다고요?”
“그렇지.”
“심판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찍어다가 와야겠네요.”
“원장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특집을 찍는다고 생각하고 일거수일투족 전부 건져와 알겠지?”
“후···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진이는 정말 사표 쓴거예요?”
“걔 이번에 새로 편성되는 채널로 간다고 들었는데?”
“걔가 심판자에는 빠삭했는데 말이죠.”
“사적 제재를 용인하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고 심판자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였는데···.”
“어떻게 심판자 잡겠다는 놈이 높으신 분들 심기만 건드리고 다니는지 의문이다.”
“심판자가 그런 사람들 뒤만 캐고 다닌다고 생각한 건지 취재하다 보면 대박을 터트리···.”
“그게 대박이나? 분란만 일으키는 거지.”
“케이블 쪽이라고 해도 자리 잡았다니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야.”
“그래도 동긴데···.”
“너는 동기가 사장이 되도 축하해주는 대범한 놈이구나? 나는 후배가 케이블 채널이라고 하지만 사장이 되었다니까 심사가 편하지만은 않던데.”
“사장이요?”
“몰랐어? 걔 이제 언론사 사장이야.”
“아니 미친 누가 그런 놈을 언론사 사장으로···.”
“미친놈끼리 만나서 회사차렸나 보지.”
“와우···. 오래갈까요?”
“모르지 금융 3법 개편될 때 만해도 은행에서 보험 팔고 증권 팔 줄 알았냐?”
“그건 그렇죠. 이제 은행에 가서 예금할 때 주의 깊게 안 살피면 위험자산에 묶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너는 그래도 젊으니까.”
“선배하고 얼마나 차이 난다고요.”
“와이프가 은행 가서 수익률 높은 거 있다고 은행 믿고 가입했다고 하더라.”
“좋은 상품인가 보죠.”
“미친 이번에 정치자금 조달한다고 찌라시 도는 곳이잖아. 내가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곳 지점장하고 한판 했잖아.”
“설마···. 그···.”
“여기서 이름은 언급하지 말자···등골이 서늘하니까.”
“···그럼 해결은 된 거예요?”
“지점장한테 내가 방송국 PD라고 서로 좋게 넘어가자고 했지.”
“···?”
“원금 회수하고 한동안 그쪽 문제에 눈감기로 했어.”
“어···그것은 알고 있다 팀에서 취재하려던 건 아니에요?”
“어차피 피해자가 아직 나온 건 아니니까.”
“피해가 더 커진다는 거잖아요.”
“너는 그럼 내가 망하길 바라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그곳은 알고 있다 팀은 어떡하게요?”
“다른 건수 넘겨주면 되는 거지.”
“그래서 원장 취재하라고 하는 거예요?”
“너는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모르겠냐? 어차피 해야 할 취재야.”
“그거야···.”
“저번 취재 영상 통째로 날려버렸을 때 막아준 게 누구야.”
“선배죠.”
“내가 없는 일을 만들어서 오라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수상한 정황이 있으니까. 취재하라는 건데 그게 문제냐?”
“그것 팀한테 다른 일거리 주려고 하는 목적인 거잖아요?”
“거긴 원래 금융 쪽 말고 다른 쪽에 더 관심 많아. 사회 부조리 같은 거.”
“그러다가 서민들 등골 빼먹는 찌라시가 진짜라면···.”
“너 자꾸···.”
“아니 취재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내가 말해주는 건 네가 후배여서가 아니라 가족이라서 야. 너도 내 조카라고 동기들보다 빨리 자리잡았잖아. 그런데 이 정도 취재도 못 한다는 거냐? 그리고 가족이니까. 나같이 은행이라고 믿고 함부로 맡기지 말라고 말해주는 거잖아.”
“저야 뭐 취재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회사에서는 조카인 거 말하지 말라고 하시더니···그리고 제가 투자할만한 돈이 어디 있어요? 대출금 갚기 바쁜데···. 하여간 원장 취재만 원활하게 하면 된다는 거죠?”
“그래 심판자에 관해서 양념도 팍팍 치고 말이야.”
“그런데 심판자가 정말 있다고 생각하세요?”
“뭐가 중요해? 있다고 믿고 범죄자들이 자중하고 우리나라 범죄율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게 중요하지.”
“하긴 강력사건은 줄어들고 있어도 초범에 바로 검거가 되고 있죠.”
“문제는 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범죄들은 심판자가 나선 적이 없으니까.”
“하긴 그래서 한동안 조용했죠. 그래서 더 도시 전설 느낌이기도 하고요.”
“도시 전설이라···하긴 전설로 이대로 덮어지는 게 더 깔끔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