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사람···그리고 사람>
손에 잡히는 아이스박스를 몸에 묶고 손으로 미친 것처럼 바닷물을 헤집는 남자가 있다.
숨소리는 거칠고 어려워진 작업복은 몇 날 며칠을 빨지 않은 것처럼 재색을 알아볼 수 없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두운 허공을 어둠에 눈이 먼 것처럼 공허하게 하지만 온몸을 떨면서 바라보다 온몸을 쥐어짜듯 손으로 바닷물을 헤치면서 방향도 가늠하지 않고 오직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몸부림치는 한 명의 남자가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떠돌고 있었다.
그저 보이는 건 어둠뿐인 세상에서 그렇게 어둠 속에 속해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만의 사투는 어두운 바닷물을 청명하게 비추는 해가 떠오르면서 끝났다.
“아니 누가···배 지나가는 길에 부표를 띄운 거야? 흠···부표? 아이스박스인가?”
“저기 저거 사람 아니야?”
“사람이라고?”
“어 정말 사람이다.”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요즘 난폭한 불법체류자가 얼마나 많은데···본국에서 막 살인하고 도망 온 사람들도 있다더라.”
“으···그건 좀···그래도 새벽이면 추울 텐데 우선 구하고···.”
“임 씨 거기 사람부터 우선 건지고 박 씨 해양경찰청에 신고해.”
선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지시에 다들 익숙하다는 듯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숙련된 일꾼이나 오랜 시간 바다에서 보냈던 어부들은 순식간에 바닷물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남자를 건져내었다.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던 오징어잡이 배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바닷속으로 뛰어들 것처럼 팔을 부들거리면서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아이스박스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는 추레한 남자의 모습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배 위로 끌어올리면서도 경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 몸을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서 작게 그렇지만 끝없이 말하고 있었다.
꼭 주문이나 암시처럼 아니면 이 말을 전달하지 못하는 순간 죽을 것처럼 절실하게 하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밀항하다가 떠밀려온 불법체류자가 아닌지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에 선장이 항구에 도착하자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어쩌다 바다에서 표류하는지는 모르지만···해양 경찰 불렀으니까. 잘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이 날씨에 바닷물에 젖은 옷 입고 있으면 그러니까. 이걸로 갈아입고 아침 먹게 나오라고.”
선장은 겁먹은 듯한 남자의 반응에 일꾼들을 물러나게 하고 낚시꾼들에게 배를 빌려줄 때 쓰던 여분의 셔츠와 바지를 건넸다.
일상과 다른 비 일상의 상황에 웅성이던 이들은 선장의 말에 간단하게 오징어를 잡으면서 같이 올라온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를 넣은 푸짐한 해물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 맛에 이 고생을 하면서도 뱃일하러 나온다니까.”
“이 선장이 식사 때는 아주 귀신같이 챙겨.”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한 젓가락하고 빨리 정리하고 퇴선들 하자고.”
“자꾸 그물에 쓰레기가 걸려서···.”
“아니 바닷가에 놀러 와서 자기가 먹은 페트병 정도는 챙겨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울 마누라가 갯벌에서 조개 캐면 병뚜껑이 조개보다 많다고 하더라.”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몰라. 나 살 때까지만 안 망하면 되는 거지.”
“자식새끼 없는 임씨가 이럴 때는 부럽다니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딸자식 많은 박씨가 우리 중 가장 자식 농사 성공한 거 아닌가?”
어부들이 모여서 간단하지만 뜨끈하고 제대로 물이 오른 해물 덕분에 진해진 국물맛에 다들 반주를 한 잔씩 하면서 흥겹게 대화를 나눈다.
그들 사이로 비집듯 선장이 자리를 잡더니 사람들을 물리고 추레한 안색의 남자가 그 뒤에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낯선 남자의 모습에 놀랄 만도 하지만 어부들은 아무렇지 않게 잡담을 나누면서 자리를 내주었다.
가장 짧게 손발을 맞춘 사람도 10년은 넘는 어부였기 때문에 서로 눈짓만 나누어도 속내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부들의 배려 아닌 배려에 따뜻한 라면을 한 젓가락 하는 사이에 해경이 어선에 다가왔다.
어부들에게는 평소와 다른 이야기거리를 준 구조된 남자에게는 따뜻한 라면이라는 음식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해경에게 인계된 남자는 어부들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조그만 소리를 되뇌기 시작했다.
출동한 해경 중 선임인 강경장은 선장의 호의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추레한 몰골을 감추지 못하는 남자에게 다가가 무슨 소리를 되뇌는지 주의 깊게 들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적게 먹고 적게 쌉니다. 잠도 하루 이틀 안 자도 됩니다. 건강합니다. 살려주세요.”
강경장은 불법체류자일지 모르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출동해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후임이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강경장을 바라봤다.
“이거 염전 노예···. 아니 염전에서 일하다가 탈출한 거 아니에요?”
“저번에 신고로 정리했다고 하던데 아직 그쪽 일 처리가 늦는 건가?”
두 해경은 서로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추레한 남자를 데리고 경찰로 넘겼다.
경찰은 추레한 남자의 말을 듣더니 구청의 사회복지과로 연락을 했지만 서로 간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만 길게 말이 나오고 남자는 결국 작고 오래된 민박집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임시 숙소로 여기로 하고 여기 신상명세 적는 카드니까. 자세히 적어서 내일까지 제출하세요. 자세한 사건 경위가 제대로 접수되지 못하면 저희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사무적인 사회복지과의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받은 일선 담당관은 사무적으로 남자에게 적어내야 하는 서류를 넘기고는 계속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떠밀리듯 발걸음을 재촉해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좁은 철창 안에서나 바라보던 세상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변화된 상황을 곱씹으면서 그저 낮은 자세로 하라고 하는 것 지시받은 사항을 느리지만 해내고 있었다.
“글···.”
오랜 시간 펜을 들지 않았던 손은 떨리고 글씨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사회복지사가 주고 간 서류를 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작성할 수 없었다.
“가족···.”
이름과 자신의 생일은 적었지만···가족 관계를 적으라는 항목에서 한참을 그대로 멈춘 것 같이 멍하니 있던 남자는 그저 허공을 바라보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선 영원한 잠이 들 듯 죽은 듯이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순간 두려움에 발작을 일으켰지만 이내 자신이 있던 공간이 어제 잠든 낡은 민박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냥 멍하니 새벽의 어스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경찰들이 민박집에 남자를 인계할 때부터 친절하게 대해줬던 민박집 주인이 머무는 안채 앞을 한참 서성이고 있는데 안채에서 문이 열리더니 민박집 사장이 나타났다.
"아이고 깜짝이야. 왜 이러고 섰어요? 일가친척이 나타날 때까지 여기에서 머문다고 정화가 그러던데···. 정화는 오늘 같이 온 사회복지사에요. 설마 통성명도 안 한 거예요? 요즘 정화가 일이 많다고 막 아우성이더니···그런데 벌써 가족하고 연락된 거예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적게 먹고···.”
“아니. 무슨···괜찮아요? 저녁 먹었어요? 민박하면서 저녁은 놀러 온 사람들이 해 먹다 보니까. 내가 저녁을 챙길 생각을 못 했네. 저녁에 김치찌개 한다고 한솥 했는데···괜찮으면 거기에 밥 한술 뜰래요?”
남자는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하려던 걸 잊고 밥이라는 소리에 민박집 안채 앞 공터에 주저앉아 몸을 엎드리더니 외치기 시작했다.
“식사시간. 식사시간.”
그런 남자의 모습에 민박집 식구나 다름없는 골든 레트리버가 크게 짖기 시작하자 민박집이 떠나라 동네 개들이 같이 짖기 시작했다.
“아니···우선 앉아서 여기 평상에 앉아 있어요.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밥···던져 준다?”
“밥 가져다줄게요. 여기 있어요. 그렇게 땅바닥 말고 여기 평상에 이렇게 앉아요.”
“어···. 살려준다?”
“밥 주니까. 살려주는 거 맞죠? 여긴 조금만 목소리를 크게 내도 동네 시끄럽게 개들이 짖으니까. 조용히 대답해도 되요.”
“아···미안···아니··죄송···.”
“괜찮아요. 금방 가져다줄게요.”
말이 길어질 것 같자 민박집 사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집밥을 한상 차려서 평상에 차리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민박 와서도 고기 구워 먹는다···나가서 사 먹는다···그래서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도 왕년에 식사가 맛있는 민박집으로 유명했어요. 내가 손맛이 좋다고 단골도 많았는데 그중에 김치찌개는 내가 만들었지만···진짜 끝내준다니까요. 한번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생각했다. 언제나 바닥에 주저앉아 손이나 입으로 주워 먹던 비린내 나던 사료가 아닌 매콤하고 달콤한 칼칼한 김치찌개를 자신만을 위해서 차려진 이상을 보면서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그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 더는 빗물을 마시고 차가운 창살보다 더 매서운 경멸 어린 눈초리에서 벗어나 한 명의 사람으로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자가 따뜻한 밥이 다 식어가도록 눈물만 흘리고 있자 민박집 주인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기 전에 밥한 술 뜨라고 하면서 달콤한 수정과를 가져다주었다.
수정과 특유의 달콤하면서 시나몬 향이 남자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 같았다.
“으윽···감···감사···.”
“먹고 말해요. 천천히 채 하지 않게···.”
남자의 행동에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민박집 주인은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급하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