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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08화 (108/205)

<108화 마리오네트>

놀이터를 지나 해인이 집에 찾아가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벨을 울리자 시끄럽다는 표정의 아주머니가 옆집에서 문을 거칠게 열고 나왔다.

“해인이 엄마 다 같이 사는 곳인데···어?”

“안녕하세요.”

고등학생 그것도 남학생이 3명이나 좁은 복도에 서 있자 깜짝 놀란 듯 집으로 들어가려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종혁이가 나서서 인사를 하자 급하게 들어가려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말했다.

“누군데 해인이네 집 앞에 이렇게···.”

“제 동생이 해인이하고 같은 반이거든요. 제 동생이 해인이가 걱정된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해인이네 주말이면 항상 집에 없어요.”

“다 같이 가족 여행 간 건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옆집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무슨 일인데요?”

“해인이도 해인이지만···동생 해아 같은 경우에는 너무 말라서···여행 갈 돈 있으면 애들 식사나 잘 챙기라고 한 적이 있는데···해인이 엄마가 어찌나 불같이 화를 내던지···.”

“네?”

“해인이야···키가 커서 큰 옷을 입으면 티가 안 나는데 동생 같은 경우에는 정말 TV에서 나오는 소말리아 아이처럼 말라서···.”

“혹시 신고는 하셨어요?”

“그럴까 했는데 양 씨 아줌마가 남의 집 가정사에 막 끼어들면 나중에 고소 들어온다고 하니까···. 무서워서···.”

“양 씨 아줌마요?”

“해인이 엄마하고 친하게 지내는 아줌만데 사람이 어찌나 못된지···.”

우리는 해인이네 가족이 주말이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큰 가방을 가지고 사라진다는 사실과 아이들이 너무 말랐다는 옆집 아줌마의 증언만 듣고 아파트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와 대화를 나눈 사이에 갓난쟁이가 깨서 더는 옆집 아주머니의 시간을 뺏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믿기 힘들다.”

“그런데 애들이 마른 게 엄마 잘못은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설마 엄마가 애들을 굶길까?”

“그것보다는 해인이···해아가 마른 게 꼭 못 먹어서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잖아.”

“그런데 옆집 아줌마 말로는 애들이 너무 배고파해서 몰래 과자라도 쥐여주면 옆집에서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잖아.”

“옆집 아줌마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준 건데···때렸다는 건 어쨌든 일방적인 옆집 아줌마 말이잖아.”

“그렇지만 그 사진···.”

대화를 하면서 봤던 신발장 위 사진만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해인이네 옆집 아줌마가 갓난쟁이를 들고 활짝 웃는 모습 옆으로 또래다운 웃음을 짓고 있던 해인이와 동생으로 보이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만 있었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이렇게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1년 사이에 찍었다던 그 사진하고 너무 차이가 나잖아. 정말 전문가가 아닌 모르는 사람이 봐도 비상식적일 정도로 말랐던데···.”

같은 아이들이라는 걸 듣지 못했다면 믿지 못할 만큼 차이가 나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몰래 찍은 듯한 휴대폰 사진에 찍힌 피폐했던 아이들이 너무 인상에 깊게 남았는지 종혁이와 경수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공원 화장실 근처의 자판기로 향했다.

음료수를 뽑기 위해서 잠깐 사이 서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신음만 아니었다면 바로 돌아섰을 순간이었다.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그곳으로 숨을 쉬는 것 같은 소리.

어둡고 두렵지만 동시에 광기가 나타나는 그런 소리였다.

아악―!

아―으―!

매우 힘들어하는 신음. 그 소리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 숨어 괴로워하던 여인을···

피폐한 모습으로 공허한 눈을 마주한 순간 나는 거칠게 절벽으로 떠밀린 것처럼 아득한 공포가 나를 잠식한다.

‘이건···도저히···.’

그녀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내가 그녀의 두려운 기억을 읽는 건 멈출 수 없었다.

같은 공간 다른 시선···

오늘도 나는 웃지 못한다.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나는 오늘도 내 사랑하는 큰딸을 거칠게 때리고 있다.

한 대.

두 대.

백 대가 넘어가면서 대나무 회초리가 부러진다.

부러진 대나무 회초리를 기계적으로 테이프로 붙인 다음 다시.

한 대.

두 대.

숫자를 세기를 거부하는 머리는 어지럽고 먹지 못한 몸은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한다.

내 몸은 기계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다. 이미 받은 지령의 대부분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또 벌칙을 받아야 한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사랑하는 큰딸에게 더 이상 이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떨어진 휴대폰 새벽부터 지금까지 분 단위로 내려온 지령이 끝없이 지나가고 있지만 내 눈은 이미 눈물로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은 끝없이 문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딸 입학식에서 만난 붉은 원피스에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보이는 양 씨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씨가 주선해준 단체에서 보내는 간단한 메시지를 실천만 하면 양 씨처럼 서운대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했다.

‘신발장을 청소해라.’

‘거실을 치워라.’

‘밥을 하지 말라.’

‘아침을 7시까지 먹어라.’

사소한 지령 처음엔 따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생각하는 걸 멈춘 다음부터?

‘아이들 잠을 재우지 마라.’

‘난방을 켜지 말아라.’

‘아이들과 밖에서 노숙해라.’

‘노숙할 때 아이들에게 수돗물만 마시게 해라.’

내가 아닌 아이들을 향한 지령에 나는 괴로웠다.

이런 지령에 의문을 가지려고 하자 양 씨가 나에게 말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여기까지 지령을 지켜온 게 아쉽지 않아?”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그런가? 내가 그런 것 같기도 해···.’

어느 순간 맹목적으로 지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양 씨의 말이 틀릴 리···없어···그녀는 훌륭한 서운대에서 근무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인걸? 아이큐 148 이상에 멘사 회원인 그녀가 굳이 나와 아이들을 일부러 괴롭힐 리 없잖아?’

‘다 나를 위한 일인 거야.’

휴대폰을 손에서 때지 않고 계속 강박적으로 지령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나는···

손가락 끝부터 머리까지 점차 차가워진다.

머리가 무겁다. 생각이라는 걸 하면 눈앞을 뜨거운 무엇인가가 가로막는다.

점차 생각이 없어진다.

지령에 익숙해지면 처음 지령을 받았을 때 했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미약한 희망에 기대서 오늘도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

‘라면을 한 끼만 줘라.’

벌써 몇 달을 지속한 지령이었다. 큰딸과 작은딸이 점차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지령을 어길 수 없다.

‘1년 동안 밥과 국만 먹여라. 국에 매운 고춧가루 두 스푼을 넣어라.’

나조차 매운 걸 먹지 못하는데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작은 딸이 결국 아무것도 못 먹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점차 이런 상황에 익숙해간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말을 못 하게 해라.’

‘학교 시험에서 빵점을 맞게 해라.’

‘학교 친구 교과서를 찢게 해라.’

‘컵라면을 주고 시간은 10분을 주고 만약 못 먹으면 300대. 다 토하면 다시 먹어야 한다.’

‘노숙할 때도 큰딸은 눕거나 앉아서 잘 수 없다. 서서 자게 해라.’

같은 공간 다른 시선···

오늘도 나는 웃지 못한다.

나는 친구랑 문구점 앞에서 이야기했다고 큰딸을 100대 때렸다. 사실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더 때릴 수도 있었지만, 주변에서 경찰에 신고 한다고 말해서 멈췄다.

집에 오랜만에 애들 아빠가 집에 왔다. 애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는지 아빠가 사준 피자 먹었다. 그래서 50대 이상 때렸다.

‘나···나는 애들을 때린다. 왜? 나는 애들을 때리는 거지?’

학교에서 미술 수업시간에 그림 잘 그렸다고 자랑하는 큰딸을 100대 정도 때렸다.

‘아이들을 잘할 때마다 나는 때리고 있다. 어째서 왜?’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지친다.’

삶의 의욕이 없어진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조차 가지지 못하게 나를 독촉하는 소리가 나를 일깨운다.

띠링―.

문자가 온다. 지령이다.

‘이게 마지막일까?’

왠지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 내 표정을 봐서일까?’

큰딸이 나에게 다가와 목석같이 빼빼 마른 몸으로 나를 꼭 안아준다.

“엄마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유도 모르고 맞는 게 제일 힘들었고 두 번째는 남들은 다 하는 공부를 못하게 하는 게 힘들었고 세 번째는 먹을 게 눈앞에 있는데 못 먹는 게 힘들었어.”

“···.”

나는 큰딸의 말에 평소처럼 두 눈이 뜨거워지면서 앞을 가로막는 차갑고도 뜨거운 물을 거칠게 닦아 내렸다. 그런 내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면서 큰딸이 나를 더욱 굳게 안아왔다.

“근데 그거 알아? 엄마가 그러는 건 나를 위해서잖아. 그래서 난···참을 수 있었어.”

나는 어딘가 고장이 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생각한다는 여력 아니 생각이라는 여유 따위는 나에게 없으니까.

그저 지령을 따른다.

지령을 따르면 우리 가족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지령을 따른다.

살집이 없어서 빼빼 말랐지만 따뜻했던 체온이 내 손 아래서 점차 차가워진다. 그 차가움이 내 심장을 얼리는 것 같지만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나는 지령을 따른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허억―.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 순간 나를 부축한 종혁이와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경수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다 다가온 경찰의 손에 순순히 몸을 맡기고 뭔가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경찰의 지시에 따르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면서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꽉 막힌 것만 같았다.

어디를 향해서라도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굳은 표정으로 비틀거리던 내가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아줌마에게 거칠게 다가가려고 했다. 이런 내 모습이 옆에서 볼 때는 불안해 보였는지 나를 부축하던 종혁이와 경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말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친구들을 힘으로 밀치고 나는 불도저처럼 아줌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위협적인 내 모습에도 경찰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나의 위협적인 모습에도 표정 변화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아줌마에게서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느끼는 것처럼 그저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영혼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애들 해인이, 해아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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