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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72화 (172/269)

172화 검증은 충분히 됐습니다. (2)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바꾸자니, 살다 살다 이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 본다.

가문의 비전을 멋대로 바꾸는 건 둘째치고, 잘못되면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한단 말인가?

즈발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바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일단 자세한 내용을 들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까.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위엄있는 즈발터의 말투에도 지셀은 주눅 들지 않고 답했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바꿔야 합니다.”

“마나 연공법은 비전 중의 비전이다. 그런데 뭘 어떻게 바꾼다는 말이냐. 어디 다른 좋은 연공법이라도 구해 온 게냐?”

탁.

지셀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물끄러미 책을 내려다보던 즈발터가 물었다.

“이 책은 뭐냐?”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제 식대로 개량한 걸 적어 두었습니다.”

“허? 네가?”

즈발터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셀이 꺼낸 책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좋은 거라도 주워서 저런 얘기를 하나 했는데 직접 개량을 했다고 하니 조금 우스웠다.

즈발터는 혀를 차며 손을 휘저었다.

“됐다. 네가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어서 좀 끄적인 모양인데, 연공법을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세월에 그걸 연구하고 개량한다는 말이냐.”

즈발터는 지셀이 직접 개량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초안만 잡고 같이 연구하자는 뜻으로 착각했다.

어차피 시간 버릴 일이라 생각하고 거절을 했는데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같이 연구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미 개량을 끝낸 상태입니다.”

“하, 그럼 검증도 안 된 걸 우리보고 익히라는 뜻이냐?”

“검증은 충분히 됐습니다.”

“뭐? 무슨 검증?”

“제가 이미 익혀 봤습니다.”

“허어!”

즈발터는 크게 기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나 연공법을 바꾸는 위험한 짓을 한 것도 모자라 그걸 익히기까지 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증거였다.

“너, 너…… 몸은 괜찮으냐?”

“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개량은 이미 오래전에 해 두었던 겁니다. 전쟁 때 제 실력을 보셨지 않습니까? 다 마나 연공법을 바꿔서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

즈발터는 그 말에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확실히 망나니라 소문난 아들이 싸움을 잘해서 놀라긴 했다.

그런데 그게 몰래 수련한 게 아니라 마나 연공법을 바꿔서 그런 거였다고?

본인 입으로 한 말인데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셀은 즈발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적이 많습니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 마나 연공법은 우리 가문과 영지를 더 강하게 바꿔 줄 겁니다.”

“아니, 그래도…… 대대로 전해져 온 연공법을 어찌 제멋대로 바꾼다는 말이냐!”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죠. 아무리 선조부터 전해 내려온 마나 연공법이라도 안 좋다면 뜯어고치는 게 맞습니다.”

그 말에 즈발터는 입을 떡 벌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간 쌓아 왔던 가문의 전통과 권위를 너무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그래도 우리 가문을 천년이나 지탱해 온 마나 연공법이다! 네가 개량한 게 가문의 것보다 뛰어나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지셀은 피식 웃었다.

“아니, 솔직히 우리 가문이 천년이나 됐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니까? 아, 네가 태어난 해가 우리 가문이 천 년째 되는 해였어. 정말 경사스러운 날이었지.”

“증거 있어요?”

“그게……. 이백 년 전에 자료가 다 소실이 되어서……. 나도 네 할아버지한테 들은 거다.”

“그럼 이백 년 된 가문인가 보죠.”

“…….”

지셀의 일침에 즈발터는 입을 꾹 닫았다.

솔직히 그가 생각하기도 천 년은 말이 안 되는 거 같았다.

그냥 조상 대대로 계속 그런 말을 하며 계산을 해 왔기에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왜 계산하는지도 다들 모르고 있었다.

사실 밖에서는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욕먹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저 가문 내에서만 배우고 가르쳐 가며 나름대로 자부심을 품고 살아왔다.

지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 년이라는 건 그냥 건국 신화 같은 겁니다. 진짜일 리가 없잖아요. 다른 가문들에도 비슷한 거 하나씩 있지 않습니까? 델파인 공작가는 무슨 용의 후손이니 뭐니 하고요.”

“그건 그렇지만…….”

“너무 그런 거에 의미 두지 마세요. 솔직히 천년이든 이백 년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전쟁 나면 다 죽는 건 똑같은데. 데스몬드 백작이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지.”

즈발터도 지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다.

그에게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데스몬드 백작과의 전쟁이다.

형편이 좀 나아지고 브랜포드 후작이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저쪽이 왜 가만히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만히 있어서 더 불안했다.

지셀은 고민하는 아버지에게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이걸 익혀서 강해져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 그러면…….”

즈발터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데스몬드 백작의 위협과 마나 연공법을 익히는 건 다른 문제였다.

“깜빡 넘어갈 뻔했네! 어쨌든 안 돼! 네가 지금 괜찮더라도 부작용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너도 수련을 멈추고 정석대로 해라! 뭐든 급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야!”

“그럴 시간 없습니다. 이걸 익혀야 더 강해집니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다른 곳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솔직히 우리가 가난한 걸로 비웃음당하면 당했지, 기사들 실력으로 욕먹은 적은 없었다!”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란돌프도 끼어들었다.

“대공자님, 영주님과 저도 상급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페르디움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페르디움의 마나 연공법은 다른 가문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다른 가문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일 뿐, 지셀의 기준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뭐?”

“이미 두 분 다 벽에 막히셨지 않습니까?”

“…….”

즈발터와 란돌프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지셀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벽을 마주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는 아무리 수련을 해도 진전이 없었다.

수련하면 할수록 마치 무엇인가가 빠진 듯한, 공허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연공법을 연구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즈발터뿐만이 아니라 페르디움의 역대 가주들 모두가 느꼈던 문제였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련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되죠.”

지셀의 말에 즈발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중년의 나이에서야 느낀 걸 젊은 아들이 벌써 깨닫다니!

‘혹시…… 내 아들은 정말 천재인가?’

전쟁 때의 활약을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새삼 자신을 뜯어보는 즈발터를 보며 지셀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 문제의 원인을 알아냈고 빠진 부분을 채웠을 뿐입니다. 만약 수정본을 익히신다면 벽을 넘을 수 있을 겁니다.”

“네가……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다는 말이냐.”

“우연히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셀은 만능의 변명을 사용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생에 우연히 얻었던 고대의 마법서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그 마법서에는 고대 마법사들이 어떤 식으로 마력을 모았는지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거기서 새로운 개념을 접한 지셀은 자신이 익혔던 마나 연공법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

어찌나 잘 맞았는지, 가끔은 이 마법서에서 가문의 마나 연공법이 파생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반쪽짜리라는 게 너무 아쉬웠지.’

지셀은 그 작은 깨달음을 통해 마나 연공법을 개량하고 무려 대륙 7강의 자리에 올랐다.

피나는 노력과 타고난 재능 덕도 있었겠지만, 마법서가 없었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찾아봐야겠어.’

지셀은 상념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점을 말했고 문제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힘으로 억압하거나 실력을 보여 주겠다고 깔아뭉개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보면 익히게 될 테니까.’

기사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지셀은 여유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뭐, 선택은 아버지의 몫이니까요. 더 강요는 안 하겠습니다. 책에 자세히 설명해 놨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문제가 있는 거 같으면 익히지 않으셔도 됩니다.”

“으음…….”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만약 익히기로 하시게 되면 페르디움의 기사들에게도 모두 전수해 주십시오. 지금은 쓸데없이 명예니, 전통이니 하면서 아낄 때가 아닙니다.”

“으음…….”

즈발터는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침음만 흘렸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니 내용이 궁금해 죽겠다. 그렇다고 바로 펼쳐 보기에는 체면이 발목을 잡는다.

고민에 빠진 즈발터를 보고 지셀은 피식 웃으며 고개만 꾸벅 숙이고 몸을 돌렸다.

건성으로 아들을 배웅한 즈발터는 지셀이 놓고 간 책을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들이 가져온 건데 얼마나 잘했는지 한번 볼까?”

란돌프도 옆에서 거들었다.

“뭐 굳이 익힐 필요는 없지만, 뭐라고 써 놨는지는 한번 보시죠?”

“크흠흠, 그래. 가져온 성의가 있으니까.”

즈발터는 자리에 앉아 슬쩍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지셀이 세세하게 주석까지 달아 놓아 내용을 이해하기는 무척이나 쉬웠다.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즈발터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허…….”

절로 감탄이 나온다. 보기만 해도 그간 답답하던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란돌프가 고개를 쓱 내밀며 달라붙었다.

“어떤데요? 저도 좀 봅시다. 형님.”

“아, 붙지 마. 나부터 좀 보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내용을 다 읽은 즈발터가 깊이 생각에 잠긴 채 손만 움직여 란돌프에게 책을 넘겼다.

그리고 몇 분 뒤, 란돌프도 즈발터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허…….”

“흐…….”

두 사람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실제로 익혀 봐야 효과를 알겠지만, 지셀이 가져온 연공법은 이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이걸 익히면 그간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뚫을 수 있을 거란 확신마저 들었다.

즈발터는 정신을 차리고 란돌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문제없을 거 같아?”

“놀랍습니다. 놀라울 정도입니다. 분명 이걸 익히면 더 강해질 겁니다.”

“그렇지? 그런데 지셀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 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고만 치던 놈이 어느 순간 사람이 바뀐 것처럼 달라지더니 놀라운 일만 해낸다. 자신의 아들인데도 아들 같지 않았다.

하지만 란돌프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진짜 깨달음을 얻었거나, 아니면 뭐 기연이라도 있었나 보죠.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는 겁니다.”

“으음, 그런데 정말 위험하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마나를 폭발시키는 방식은 좀 위험할 거 같긴 합니다. 그래도 몸만 건강하면 문제없을 거 같은데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 이론상은 그렇지. 이론상은……. 문제가 없다는 게 더 마음에 걸려.”

즈발터는 말을 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지셀과 엮인 일은 항상 결과가 좋았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즈발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란돌프가 옆에서 재촉했다.

“형님,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이 페르디움에서 가장 강한 건 저와 형님 아닙니까? 우리 둘이 봤을 때 문제없으면 된 겁니다.”

“하, 그래도 그놈이 만든 거라 하니 좀…….”

“대공자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둘보다 강하겠습니까? 연륜에 따른 안목은 우리가 위입니다. 애초에 전쟁 때 활약한 것도 이 마나 연공법의 폭발력 덕분인 모양이고요.”

그 말에 즈발터는 눈을 감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란돌프는 조마조마한 기색을 감추려고 애쓰며 즈발터의 결단을 기다렸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개량된 연공법을 익히고 벽을 넘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즈발터는 이내 타협하듯 말했다.

“조금씩 단계를 올려 가며 수련해 볼까?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멈추면 되잖아.”

그러자 란돌프가 주먹을 꽉 쥐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이상하면 멈추면 됩니다.”

지셀이 일부러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니, 이 마나 연공법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그걸 알아내기에는 경지가 부족했다는 것이 두 사람의 불운이었다.

즈발터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한번 익혀 보자. 기사들을 모두 불러와라. 다 같이 빨리 강해져서 나쁠 건 없지.”

순간 이유 모를 섬뜩한 예감에 등줄기가 오싹했지만, 두 사람은 그저 기분 탓이려니 가볍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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