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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70화 (170/269)

170화 우리 한번 잘해 보자고! (4)

손을 맞잡은 지셀과 갈바릭은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양쪽 다 무언가를 만들기 원한다. 거기에 의욕까지 넘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갈바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쏟아 내었다.

“자, 무엇부터 하면 되오? 화장품 설비를 바꿔 드릴까? 아니면 공동 주택이란 것부터 손을 좀 봐 드릴까? 곧 수확기라 하니 농사 용품은 어떻소? 뭐든 말만 해 보시오. 우리가 영주님이 원하는 시간 내에 다 끝내 주겠소!”

“이야, 듣기만 해도 든든하네. 당연히 그것들도 해야지. 그런데 지금은 더 급하게 해야 할 게 있어.”

“그게 무엇이오?”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 거야.”

“응? 뭐라고 하셨소?”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 거라고.”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뒤, 갈바릭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고대 제국에서 썼다던 전설의 비공정 설계도라도 구한 거요?”

“아니, 그런 엄청난 건 없는데. 그거 그냥 전설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늘을 날겠다는 거요?”

갈바릭은 황당해하며 혀를 찼다.

하늘을 나는 능력은 날개 달린 것들과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엄청난 마력을 지닌 대마법사가 힘을 써서 무언가를 띄울 수는 있겠지만, 그걸 ‘기구’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서 대마법사를 초빙해 올 형편은 안될 거 같은데…….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자, 지셀은 사용인을 시켜 작은 모닥불을 하나 피웠다.

“잘 봐.”

지셀은 종이 하나를 모닥불 위에 던졌다. 당연히 종이는 빠르게 재가 되어 사라졌다.

멀뚱멀뚱 구경하던 갈바릭은 그 뒤로 한참이나 정적이 이어지자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대체 뭘 보라는 거요?”

“종이가 타면서 재가 하늘 위로 뜨는 걸 보란 말이야.”

지셀은 말을 하며 다시 종이를 집어 던졌다.

과연 종이가 타오르며 순간적으로 작은 조각들이 살짝 떠올랐다.

갈바릭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하고 물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요? 그냥 바람이 불어서 살짝 떠오른 거 아니오?”

“그런데 왜 위로 올라가?”

“그건……. 어, 가벼워서?”

고개를 저은 지셀은 잘난 척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그냥 개념을 쉽게 알려 주려고 보여 준 거다. 뜨거운 공기는 하늘로 떠오른다. 그 공기가 바로 가벼운 것들을 띄우게 되는 거지.”

“……?”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이론에 드워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불을 자주 다루는 만큼 저런 현상을 몇 번 본 기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갈바릭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 뜨거운 공기가 왜 위로 올라가는 거요? 확실한 게 맞소?”

‘나야 그건 모르지. 그게 왜 올라갈까?’

지셀이 만들려는 건 전생에 개발되었던 열기구였다.

거대한 주머니 안의 공기를 가열해 띄우는 열기구는, 전생에 군사 정찰용으로 자주 쓰이곤 했다.

당연히 지셀은 왜 공기를 가열하면 기구가 뜨는지 상세한 이론은 모른다. 그저 지나가듯 원리를 들은 게 전부였다. 자꾸 이렇게 물으면 솔직히 곤란하다.

“흠흠, 원래 세상 법칙이 그런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거지. 내가 사과를 던지면 왜 바닥에 떨어지는지 다들 모르잖아? 그냥 그게 세상의 법칙이니까. 안 그래?”

그러자 갈바릭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건 이미 위대한 지혜의 드래곤, 슈바르츠실트가 알려 주지 않았소. 이 세상의 중심에는 강력하게 모든 걸 잡아끄는 에너지가 있고, 그 힘의 방향과 크기를 조절하는 게 바로 중력 마법이지 않소이까? 마족이 강력하고 수명이 인류보다 긴 이유도 마계는 중간계보다 이 에너지가 더 강하기에……. 귀족들은 아카데미에서 이런 걸 기본 소양으로 배우는…….”

‘……이 새끼가? 슈바……. 뭐?’

누가 드워프 아니랄까 봐, 아는 이론 얘기가 나오니 바네사보다 더 수다스러워졌다.

기본 소양이고 뭐고, 지셀은 아카데미 따위는 다니지 않았기에 슈바 어쩌고 하는 옛날 드래곤은 모른다. 벨린다도 저런 학문적인 내용은 몰라서 안 가르쳐 줬다.

그래도 중력이 뭔지는 대충 안다. 중력 마법을 수련에 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왜 그런 에너지가 있는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연구하는 건 책상물림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지셀은 전생에도 학자 노릇을 할 사정은 안 되었고, 그나마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용병 일을 하며 쌓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딴 식으로 학문적 토론에 들어가면 말싸움에 들어가야 하고, 그건 지셀이 별로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무시했다.

“자, 어쨌든 외워 둬.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온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걸로 어떻게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겠다는 거요? 불이 난 곳 근처에서 뭔가가 뜬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소이다.”

“쯧쯧, 생각을 좀 해 봐. 공기는 사방에 퍼져 있는 건데, 조금 따뜻해져 봐야 금세 주변 공기하고 섞일 거 아니야. 그러니 주변 공기하고 섞이지 않게 데운 공기를 가둬 둬야지.”

“공기를 가둔다고요?”

“그래. 아주 큰 공기 주머니를 만들어서 그 안에 공기를 채우고 가열시키면 주머니가 뜨겠지? 그 주머니에 사람이 탈 수 있는 바구니만 연결하면 된다. 그게 바로 열기구다.”

“오…… 열기구!”

드워프들은 뭔가 그럴듯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지만, 과연 가능할지 궁금함이 앞서긴 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것이오? 보아하니 영주님도 직접 만들어 보진 않은 거 같은데……. 영지에도 열기구라는 건 하나도 없지 않소?”

“다른 일 하느라 바빠서 그래. 일단 처음에는 작은 걸로 만들어 보자고. 최대한 얇은 천을 쓰고 마법사들을 이용하면 공기는 쉽게 채우고 데울 수 있을 거야. 개념은 알려 줬으니 나머지 기술적인 건 스스로 찾아서 보완해야지.”

“하늘에 뜨는 건 그리 한다 치고, 움직이는 건 어떻게 할 거요?”

“그거야 마법사들이 타서 바람 마법만 살짝 써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긴 쉽지. 위치를 고정해야 할 때는 긴 줄로 땅과 연결해 놓으면 되고. 쉽게 생각하라고.”

“알겠소! 한번 해 보겠소이다!”

드워프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조금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영주의 말대로만 된다면,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든 자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처음 듣는 이론이기에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정말 가능한 건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의욕을 불태우는 드워프들을 보며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바쁘니까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해.”

“맡겨만 주시오!”

자신만만하게 외친 갈바릭은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이걸 하늘에 띄워서 어디다 쓸 생각이오?”

성공만 한다면 쓰일 곳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개념은 다른 기술로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대답이야 갈바릭도 뻔히 아는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이 젊은 영주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전쟁 때 정찰용으로 쓰면 무척 효과적이지. 그리고 추락할 위험에만 대비하면 물자 수송용으로도 쓸 수가 있어. 귀족들 놀이용으로 쓰면 돈도 꽤 들어올 거고.”

“오, 역시 그렇구려. 알겠소. 더 필요한 건 없소이까?”

필요한 건 많았다. 새로운 합금도 만들어야 하고, 그걸 이용해 강력한 장비들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카발디 영지를 공격하기 전에 마무리하기는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애초에 원하는 만큼 합금을 생산하려면 철광석도 대량으로 필요했다.

“할 일이야 많지. 당장 급한 일이 몇 가지 있으니, 열기구를 제작하면서 같이 처리해 봐.”

“뭐든 말만 하시오. 우리의 손놀림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교하니까!”

갈바릭의 호탕한 선언에 지셀은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말했다.

“크, 역시 드워프들이야. 믿고 있었다고. 그러면 화장품 설비부터 개량하자. 계약 물량을 대려면 생산량을 더 늘려야 하거든. 바로 시작할 수 있지? 목표는 지금 생산량의 두 배야.”

생각보다 규모가 큰 주문이었지만 드워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힘들기야 하겠지만, 뛰어난 기술자인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좋소, 열기구와 화장품 설비 개량! 이 두 개부터 먼저 시작하겠소! 최대한 빨리 끝내 드리지!”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돌아서는 갈바릭을 지셀이 덥석 붙잡았다.

“어디 가?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음?”

“공동 주택도 개량할 수 있다고 했지? 마법사들이 주로 공사장에 있으니까 협력해서 한번 연구해 봐. 어차피 열기구 테스트할 때도 마법사들하고 같이 일해야 할 거 아냐? 최대한 빨리 마을 하나를 더 만들어 줘.”

“아…… 음. 주택 개량을…….”

“그래, 드워프 하면 또 건설 아니겠어?”

드워프들이 건설에 참여하면 거주지 작업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다.

그들은 산속에 굴을 파 거주지를 만들 거나 지하 도시를 만들 정도로 건축 방면에서도 뛰어난 재주를 자랑하니까.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사실이었기에 갈바릭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알겠소이다. 그럼 그거까지…….”

그런데 지셀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맞다. 곧 수확기가 다가오잖아? 마법으로 움직이는 것까지는 힘들 테니, 일반 농기구라도 더 만들어 줘. 아직 나무를 깎아서 쓰는 지역에 전부 철제 농기구를 보급해야 해.”

“저기, 그 정도는 영지의 대장장이들도 할 수 있지 않소?”

“영지에 대장장이가 거의 없어서 힘들어. 그래서 드워프들을 잔뜩 데리고 온 건데? 이왕 만드는 거 품질 좋게 만들면 좋잖아.”

“어, 음……. 아, 알겠소.”

드워프들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 뱉은 말이 있으니 여기서 못 한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저기, 그러면 바로 일을 시작…….”

갈바릭이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말을 돌렸다. 일 시작할 테니 그만 말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셀에게는 아직 할 말이 잔뜩 남아 있었다.

“아, 그리고 블러드 퓌톤의 가죽이 있는데 그걸로 기사들이 갑옷 안에 입을 내갑을 만들고……. 병장기도 부족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지셀의 요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드워프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앓는 소리를 내었다.

“당장 그것까지 하기에는……. 좀 힘들 거 같소이다.”

그 소리를 들은 지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열심히 하기로 했잖아. 대신 난 10년 뒤에 자유민으로 풀어 주기로 했고. 기술만 알려주면 진짜 노예라도 되겠다며. 열심히 일만 했는데 기술도 배우고 신분도 바뀐다? 와, 이건 절대 못 참지.”

“그, 그, 그건 그렇지만, 오자마자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오?”

“우리 영지에서 이 정도는 당연한 건데.”

지셀의 머릿속에는 드워프들을 효과적으로 굴릴 계획이 가득했다.

가뜩이나 할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지다.

시간도 촉박하고 일은 산더미처럼 쌓인 와중에 마침 드워프들이 도착했으니, 죽어라 굴려서 결과물을 뽑아내야만 했다.

안 그러면 진짜 다 죽으니까.

지셀의 속내를 모르는 갈바릭은 연신 심호흡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3개월? 아니, 최소 6개월은……. 사실 1년은 주셔야 합니다. 그 정도만 주시면 다 처리 가능합니다.”

일이 너무 많으니 절로 말투가 공손해졌다.

일정이 문제다. 일정만 넉넉하면 된다.

밤낮없이 일하면 3개월쯤 걸릴 거 같았다. 하지만 살아 있으려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해야 하니 넉넉하게 1년을 불렀다.

하지만 지셀은 갈바릭의 질문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곧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타박했다.

“무슨 소리야? 1년이라니. 우리 그렇게 시간 없어.”

“네? 그러면 기간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으신 겁니까?”

지셀은 갈바릭의 양어깨를 부여잡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한 달. 그 이상은 못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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