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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37화 (37/269)

37화 여기는 미친 곳이야. (5)

끄르르르…….

팔로르는 은신처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끈질기게 따라오던 추적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추적자를 떨쳐 냈다고 여기고 안심한 팔로르는 은신처 입구를 막은 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에서 천천히 먹이를 먹으며 몸을 회복할 생각에, 돌을 치우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작업에 집중하던 팔로르는 자신도 모르게 고든의 입을 막은 촉수를 빼고 말았다.

고든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야!!”

태어나서 가장 크게 질러 본 소리였다.

크아아!

팔로르는 당황해서 촉수로 고든의 목을 휘감고 허공에 들어 올렸다.

고든은 숨이 막혀 왔지만, 눈을 꾹 감고 다시 한번 외쳤다.

“여기라고!!!”

크아아아!

분노한 팔로르는 고든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겨우 떼어 낸 추적자가 저 소리를 듣고 금방 찾아올 게 확실했다. 팔로르는 차라리 지금 잽싸게 먹어 치우고 숨어야겠다 결심했다.

팔로르가 낫처럼 생긴 손을 높이 들었다.

“으으…….”

고든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감았다.

죽음의 공포가 몰려오자 더 이상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가랑이 사이가 젖어 드는 게 느껴졌다.

쉬이익!

팔로르의 낫이 고든의 머리로 떨어지려는 순간, 어두운 숲속에서 무언가가 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날아왔다.

파악!

팔로르의 팔에 벨린다의 단검이 박혔다.

검날에 묻은 독 때문에 팔로르의 창백한 피부가 검게 타들어 갔다.

크아아아!

팔로르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소리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푸욱!

뒤이어 날아온 지셀의 검이 팔로르의 머리를 꿰뚫은 것이다.

콰지직!

곧이어 길리언의 도끼가 팔로르의 몸을 아예 반으로 갈라 버렸다.

“사, 살았다!”

눈앞에 나타난 세 사람을 보며 고든은 감격해서 외쳤다.

‘라이트’ 스크롤을 찢어 고든의 상태를 확인한 지셀이 웃으며 말했다.

“잘 버텼다. 고든.”

그 말에 결국 고든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쫓아와 준 지셀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근손실 때문에 눈물 따위는 흘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흐어어엉! 감사합니다. 으어어엉!”

한참 동안 통곡하던 고든에게 벨린다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옷이 좀……. 혹시 오줌 쌌어요?”

눈물이 쏙 들어가 버린 고든은 얼굴이 벌게져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벨린다는 그런 고든을 보며 깔깔거렸다.

그사이 지셀은 어설프게 돌로 숨겨져 있던 굴 입구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놈들의 은신처인가 보군.”

여기까지 왔는데 그놈들의 은신처를 두고 그냥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일행은 바로 굴 안으로 들어갔다.

크아아아!

굴 안에 모여 있던 팔로르들은 일행을 보자마자 괴성을 질렀다.

여기저기 깨지고 찢어진 꼴을 보니 조금 전 도망쳤던 놈들이 확실했다.

“전부 다 잡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여기 몰려 있었네? 일이 편하게 됐군.”

이왕 은신처도 찾았겠다, 지금 다 없애 버려야 앞으로의 여정이 편할 터였다.

지셀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죽여.”

지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벨린다와 길리언이 가차 없이 팔로르들을 베었다.

크아아아아아!

용병들을 상대하며 약해져 있던 팔로르 무리는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학살당했다.

설령 팔로르들이 멀쩡한 상태였더라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고든을 제외하면 모두 마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강자들이었으니 처리하기 어렵진 않았을 터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던 마지막 팔로르까지 척살한 뒤, 지셀은 굴 안을 둘러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벨린다와 길리언도 구석에 쌓여 있는 것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사람 뼈 아니에요?”

벨린다의 말대로, 굴 구석구석에 몬스터의 뼈뿐만 아니라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뼈들도 있었다.

“비공식적으로 마수의 숲을 탐험한 사람들의 뼈인 거 같습니다.”

길리언의 말에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마수의 숲을 탐험한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일.

지셀이 알기로는 페르디움 영지에서 마수의 숲 출입을 금지한 건 이미 몇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뼈와 함께 굴러다니는 찢어진 옷과 도구들은 길어 봐야 고작 몇 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근래에 페르디움 몰래 이곳을 탐사했던 사람이 있다는 거지…….’

짐작 가는 곳은 있지만 속단할 수는 없었다. 단순한 탐험가일 수도 있었다.

지셀은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그는 나중에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굴을 막은 뒤,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이제나저제나 지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용병들은 숲 쪽에서 기척이 나자 모두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나무 사이에서 나오는 지셀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든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셀이 있어야 했다.

“공자님이 돌아왔다!”

용병들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지셀에게 다가갔다.

그 뒤를 이어 벨린다, 길리언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 고든까지 나타난 순간.

“와아아아아아!”

용병들은 숲이 떠나가도록 환호를 내질렀다.

“고든이 돌아왔다! 고든이 살아 있어!”

“공자님이 성공했어!”

지금껏 용병 생활을 하며 지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보통 귀족들과 고용주들은 용병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언제든 필요하다면 용병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였다.

심지어 자신들마저도 그런 게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아온 용병들에게, 지셀의 행동은 충격을 넘어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고용주는, 흔히 볼 수 있는 위선자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저 사람을 따르면 정말 여기에서 살아 나갈 수 있겠어.”

한 용병이 중얼거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기는 어렵지 않다.

수하들에게 밥을 잘 먹이고, 돈을 잘 주고, 일감을 잘 따다 주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하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목숨을 한 번이라도 더 구해 줄 수 있는 판단력과 지휘력이다.

지셀은 누구보다 앞서 싸우며 자신들을 지켜주었고, 따르는 자들을 포기하지 않는 심성까지 갖췄다.

용병들에게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완벽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이 가식이 아니야. 저 사람은 진심이라고.”

“맞아. 그러면 우리도 그 진심에 보답해야지.”

“살다 보니 저런 귀족도 다 있었네.”

용병들은 이제 불안한 마음을 지우고, 숲이 주는 공포에 눌려 잠시 잊었던 용병의 신념을 지셀을 보며 다시 깨우쳤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용병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모두가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도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을 실룩거렸다.

‘병신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언제까지 그게 통할 거 같아? 결국 다 죽을 거라고!’

다른 용병들의 방패 사이에 숨어 싸우는 척만 한 마누스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그가 보기에 이 숲은 정상적인 숲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몬스터들은 숲 바깥에 사는 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번에도 이겼다고 좋아할 일이야? 숲 초입인데도 저런 기괴한 몬스터들이 사는데 앞으로 뭐가 나올 줄 알고!’

지금까지야 고용주가 놀라운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뜯어보면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용주가 조금이라도 약했거나,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모두가 전멸할 만한 상황이 잦았다.

‘나는 이런 위험한 도박을 계속할 생각이 없어. 이 멍청한 새끼들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용주의 생각이 틀렸다면 자신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단 한 번만 실수해도 전멸을 피할 수 없는 곳.

그것이 마누스가 평하는 마수의 숲이었다.

‘젠장, 무사히 나가려면 몇 놈이라도 꼬셔야 하는데……. 상황을 보니 힘들 거 같군.’

혼자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서식지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몬스터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떠나겠다고 하면 고용주가 어떻게 나올지도 걱정이었다.

‘최대한 기회를 봐서 몇 놈이라도 꼬셔야 해. 위약금을 물어내서라도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의욕이 솟다 못해 넘치는 중이었다.

지금 선동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게 뻔했다. 오히려 맞아 죽을지도 모르니 자중해야 했다.

‘몇 놈 더 죽으면 다시 겁먹고 정신을 차리겠지.’

마누스는 그런 기대로 버텼다.

지금이야 안 어울리게 꼴값들을 떨고 있지만, 다시 위험이 닥치면 분명 현실을 직시할 거라 믿었다.

날이 밝자 용병들은 정비를 마치고 이동을 시작했다.

팔로르들을 전멸시켰으니 따라붙을 몬스터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가 팔로르의 영역이라고 했나? 확실히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적네.”

“가끔 보이는 놈들도 근처에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먹이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놈들 같아.”

몬스터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 수와 빈도는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 있었다.

“그래도 방심하면 뒤지는 건 똑같다고. 고용주 말이나 잘 들어.”

마음가짐이 달라진 용병들은 전투가 거듭될수록 노련해지고 기도 또한 예리해져 갔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목숨을 건 실전이 최고야. 이 정도면 영지의 병사들보다 훨씬 낫군.’

개개인의 무력만 보면 용병들이 강할지 모르나 집단전에 들어간다면 용병들은 정규군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게 정론이다.

하지만 지셀이 이끄는 용병들은 어지간한 정규군 못지않게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정신 상태가 바뀌었군.’

여전히 전투는 위험했고 사상자들이 계속 나왔지만, 용병들은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셀의 지휘에 최대한 따르려 노력할 뿐이었다.

덕분에 지셀은 처음보다 쉽게 용병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이 지셀을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가 된 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카오르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돈에 혹해서 뛰어든 어중이떠중이들이 눈빛부터 달라졌네. 완전 군대처럼 변해 버렸어. 저놈들 원래 저런 놈들이 아니거든?”

“다 우리 공자님 덕분이다.”

길리언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짧고 굵게 답했다. 카오르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염병, 누가 보면 숨겨 둔 자식인 줄 알겠네.’

입이 근질거렸지만, 말하면 한바탕하게 될 게 빤하기에 카오르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설마 내가 지금 피하는 건가? 고작 영감이랑 싸우기 싫어서?’

카오르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켈베로스 용병단의 단장이 싸우기 싫다고 하고 싶은 말을 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카오르는 고민에 빠졌다.

카오르가 끝없는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일행은 빠른 속도로 팔로르의 영역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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