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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35화 (35/269)

35화 여기는 미친 곳이야. (3)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는 건 전투의 기본이었다.

“어떻게 싸울지 말해 주마.”

지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용병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몇몇은 여전히 불안한 듯 보였지만 대부분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 젊은 고용주는 지금 같은 사태에 대비해 둔 것이었다.

“대, 대단해!”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하셨습니까?”

“저는 공자님만 믿겠습니다!”

용병들은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그의 말만 잘 따르면 분명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다시 피어올랐다.

“낮에 충분히 휴식을 취해 둬라. 전투가 시작되면 긴 밤이 될 테니까.”

지셀의 지시대로 용병들은 낮에 조용히 쉬며 체력을 보충했다.

밤이 오자 다시 팔로르들이 찾아와 램프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마치 겁먹은 것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램프는 몇 개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야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끄르르르…….

팔로르들은 다시 웃음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밤.

휘리릭!

마지막 램프가 사라지고 사위는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나무를 베어 냈어도 워낙 나무가 많은 곳이라, 희미한 달빛은 옆 사람도 제대로 비추지 못했다.

끄르르르…….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스르륵, 스륵.

드디어 팔로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팔로르들이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수백 마리의 팔로르들에게 포위당하자 용병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들 앞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서 있는 느낌에 본능적인 공포가 피어올랐다.

끄르르르…….

팔로르들이 그들 앞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제 그것들은 용병들을 죽이거나 끌고 가 먹이로 삼을 것이다.

그때 지셀이 외쳤다.

“지금이다!”

그 말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찢었다.

화아아악!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하얀 구체가 순식간에 하늘로 떠오르며 빛을 밝혔다.

백 개가 넘는 구체가 공중에 떠오르자 주변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들이 찢은 것은 바로 1서클 마법 ‘라이트’의 스크롤.

지셀이 팔로르를 상대하기 위해 상자 가득 담아 온, 비장의 한 수였다.

카아아아악!

빛을 본 팔로르들이 눈을 가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모습이 드러난 팔로르들을 보고 용병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뭔, 생긴 게 이따위로…….”

사람과 비슷한 형체지만 그 키가 무척이나 크고 말랐다.

세로로 찢어진 네 개의 눈 옆에 뾰족한 귀가 달려 있었다. 입 또한 귀밑까지 찢어져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코는 없이 그냥 콧구멍 두 개만 얼굴에 박혀 있고, 볼에는 징그러운 힘줄들이 돋아나 있었다.

손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그저 낫처럼 날카롭고 긴 뿔 같은 것만 달려 있었다.

팔에는 기다란 촉수들이 여러 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 촉수들을 늘려 램프를 훔쳐 간 모양이었다.

“어서 공격해라!”

팔로르들의 외형을 보고 주춤한 용병들에게 지셀이 소리쳤다.

“와아아아! 쳐라!”

이미 카오르와 켈베로스 용병단은 신나게 팔로르들의 몸에 무기를 찔러 넣고 있었다.

나머지 용병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에 화살이 통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팔로르들의 몸에는 무기가 사정없이 박혔다.

“크흐흐! 아주 손이 근질거렸다고! 이 개자식들아!”

카오르는 광기에 찬 웃음을 내뱉으며 팔로르들의 얼굴을 잡고 하나하나 직접 목을 찔렀다.

길리언 또한 도끼를 휘둘러 팔로르들의 머리를 가차 없이 박살 냈다.

이들은 그동안 숨겨 왔던 마나를 마음껏 뿜어내며 팔로르들을 죽여 나갔다.

카아아아아아!

갑작스러운 빛 세례에 놀랐던 팔로르들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시작했다.

팔로르들의 낫은 인간들의 갑옷과 피륙을 뚫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제 특기를 살려 어둠 속에 숨어 사냥하는 것이 특기인 놈들이지만, 마수의 숲에 사는 놈들이 어둡지 않다고 약할 리가 없었다.

푸우우욱!

“끄으으윽!”

팔로르들에게 공격받은 용병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삼백여 마리에 이를 정도로 수가 많았다. 어둠 속이 아니더라도 위협적인 적이었다.

흩어져 있던 팔로르들이 순식간에 저들끼리 뭉쳐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지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벨린다가 지셀의 앞을 막으며 외쳤다.

“도련님! 뒤로 물러나세요!”

펄럭!

그녀를 감싸고 있던 로브가 펄럭이자, 순식간에 수십 개의 단검이 뻗쳐 나가 팔로르들을 꿰뚫었다.

콰직! 콰직! 콰직!

스가가각!

벨린다의 옷 곳곳에 연결된 단검들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움직이며 적들의 머리를 노렸다.

수십 개의 단검이 사방을 점유하며 공격하니 팔로르들은 곧 표적을 벨린다로 바꾸었다.

“흥!”

다가온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던 벨린다가 자세를 굽혀 구두 뒷굽을 손으로 스쳤다.

철컥!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뒷굽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스각!

그녀가 발을 한번 휘두르자 팔로르의 턱이 베이며 잘려 나갔다.

카가가각!

이리저리 팔로르들의 낫을 피하며 사방에 공격을 퍼붓는 벨린다의 활약 덕분에 잠깐의 틈이 생겼다.

지셀은 눈앞의 적들을 벨린다에게 맡기고 빠르게 전장을 둘러보며 외쳤다.

“이 멍청한 놈들아! 진을 유지해라! 마구잡이로 싸울 생각 하지 마!”

지셀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진을 짜 놓은 상태로 용병들을 대기시켰다.

그런데 이 멍청한 놈들이 흥분한 나머지 다들 뛰쳐나가 진이 무너진 것이다.

“방진을 유지한 채 싸워라! 방패로 막고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상대해!”

하나의 용병단도 아니고 병사들처럼 제대로 훈련시킨 것도 아니니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셀은 수많은 용병을 거느리며 전장을 지배했던 용병왕이다.

이런 상황도 수없이 많이 겪어 보았다.

“길리언, 카오르, 광견단은 방진을 정비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라!”

순식간에 전장을 파악한 그는 직접 용병들을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지셀의 외침을 들은 켈베로스 용병단이 앞으로 나서고 나머지 용병들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카오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진이 무너진 쪽 용병들을 도우러 이동했다.

길리언 또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용병들이 다시 진을 만들 수 있게 도왔다.

켈베로스 용병단도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고 합이 잘 맞으니 충분히 팔로르들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있었다.

“더 빠르게 움직여라!”

지셀과 길리언, 카오르는 마나를 아끼지 않고 뿜어내며 팔로르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오직 벨린다만이 용병들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팔로르들을 박살 내고 있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세 사람과 켈베로스 용병단이 방해하자 팔로르들은 더욱 흉포하게 움직이며 용병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용병들도 나름대로 몬스터와 전투 경험이 있는 자들.

팔로르들의 시선이 분산되자 위급한 상황에서 조금씩 몸을 뺄 수 있었다.

“빨리 움직여!”

“방패! 방패 들어!”

“됐다! 들어와! 들어와!”

방패를 든 용병들이 앞서서 팔로르들의 공격을 막았다.

나머지 용병들이 그들의 뒤로 들어오자 방패를 든 용병들은 둥그렇게 사방을 막듯이 움직였다.

그렇게 몇 개의 진이 만들어지자 용병들의 피해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지셀이 크게 외쳤다.

“용병들은 그대로 버텨라! 광견단, 길리언, 카오르는 용병들의 틈을 메워 줘!”

지시를 내리고 지셀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용병들이 알아서 움직일 수 있게 했으니 이제 자신이 쓸어 버릴 차례였다.

지셀은 두 개의 코어를 폭발시켜 마나를 뿜어냈다.

곧 그의 눈이 붉게 빛나고, 마나가 붉은 아지랑이처럼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가각!

지셀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팔로르들을 베어 나갔다.

어두운 공간에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선들이 번개처럼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붉은 선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팔로르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이 전투 중인 것도 잊은 채 중얼거렸다.

“뭐, 뭐야? 평소보다 더 강하잖아?”

“원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강하다고?”

그동안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서 지셀은 코어 하나만 사용했다.

두 개의 코어를 폭발시키는 건 몸에 무리가 가니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만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힘을 써야 했다.

팔로르들의 수가 너무 많아, 힘을 아끼다가는 용병들이 죽어 나갈 터였다.

카가가가각!

붉은 선이 번쩍일 때마다 팔로르들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켈베로스 용병단 또한 그 모습에 고무된 듯 연신 몬스터들을 밀어붙였다.

“뭐 해? 구경만 할 거야? 우리도 싸워야지!”

한 용병이 외치자 진을 짠 용병들이 적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로르들의 공격을 방패로 막은 용병들이 틈을 벌려 주면, 그 사이로 다른 용병들이 창과 검을 찔러 댔다.

물론 그들이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라 합이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다.

타이밍이 어긋나 방패가 밀릴 때도 있었고,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길리언과 카오르가 그들을 도와주니 서툴게나마 진을 유지하며 공격할 수 있었다.

“밀어붙여! 밀어붙여!”

점점 협공에 익숙해진 용병들이 방패로 진을 짠 채 팔로르들을 압박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적들의 수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크아아아아!

팔로르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는 적수가 없던 이들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종족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크아아아아!

뒤쪽에 숨어 은밀하게 용병들을 공격하던 팔로르의 우두머리가 동족들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른 팔로르보다 체구가 작아 전혀 우두머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상은 가장 강력한 개체였다.

우두머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신호를 보낸 후 뒤로 물러났다.

자신만 무사하다면 종족은 다시 번성할 수 있다.

몸을 피하려는 그때, 모든 것을 파괴하며 달려오는 한 인간이 보였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붉은 눈을 빛내며 번개처럼 다가오는 인간.

이미 몸을 피하기는 늦었다.

저 인간을 죽인 뒤 몸을 뺄 마음을 먹은 우두머리는 괴성을 지르며 낫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낫은 허무하게 빈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우두머리는 공중에서 느껴진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붉은 눈을 빛내는 인간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내리찍고 있었다.

“네놈이 대장이었구나.”

지셀은 팔로르들의 사냥을 지휘한 게 이놈이라고 확신했다.

싸우면서도 전장 전체를 눈에 담고 있었던 그의 눈에,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한 우두머리의 모습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가가가가각!

가차 없이 내리친 지셀의 검에 우두머리의 머리부터 몸이 반으로 쩍 갈려 버렸다.

두 개의 코어를 모두 폭발시킨 마나를 어지간한 몬스터가 버틸 리가 없었다.

크아아아아!

우두머리가 죽자 팔로르들은 혼란에 빠져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달라붙어!”

“와아아아아!”

“다 죽여 버려!”

지셀의 명령에 용병들이 방패를 집어 던지고 팔로르들에게 달라붙었다.

몇몇 용병이 발광하는 팔로르들의 움직임에 상처를 입었지만, 분노한 용병들은 개의치 않고 달라붙어 무기를 찔러 넣기 바빴다.

크아아악!

결국 팔로르들은 몸이 걸레짝처럼 변해 대부분 쓰러지고 말았다.

빛의 영역을 피해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팔로르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만! 쫓아가지 마라!”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어도 어둠 속에서는 용병들이 이길 방법이 없었다.

흥분한 용병들은 지셀이 만류하자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우…….”

지셀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순간, 그의 몸이 비틀거렸다. 두 개의 코어를 폭발시킨 후유증이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지셀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용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함성을 내지르며 지셀의 주위를 에워쌌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으하하하! 살았다! 살았어!”

용병들은 흥분에 차 환호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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