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195)

27화

변신 마법은 그리 어려운 마법이 아니다.

다만 변신 마법의 완성도는 시전자의 세밀한 관찰과 직관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마법 교육을 받은 모든 마법사는 변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완벽한 인간상 혹은 동물상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사는 고도로 숙련된 마법사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루는 천재였다.

“아름답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네요. 이렇게 완벽한 마법이라니.”

그의 뛰어난 마법 능력에 감탄한 하녀장이 내 얼굴에서 손을 뗄 줄 몰랐다.

나는 턱이 붙잡힌 채 옆에 놓인 거울을 힐끔 바라봤다.

‘괜찮네.’

하녀장의 말마따나, 내 몸에 덧씌워진 웨더우즈 자작의 껍질은 완벽했다.

다분히 귀족스러운 밝은 금발에 푸른 벽안. 생기 도는 피부와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신장. 살짝 파인 보조개와 가지런한 치아까지.

이 정도의 세심함은 기본이나 마찬가지다.

곱게 자란 손은 굳은살 하나 없이 깨끗했으며, 어깨와 가슴은 균형 있게 넓었고, 상대적으로 마른 허리는 튼튼했다.

웨더우즈의 핏줄답게 신장에 비해서 살짝 작은 귀. 호방하지만 다정한 눈매에 한쪽만 옅게 남은 쌍꺼풀까지.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남성의 육신과 하녀장이 바라는 웨더우즈 자작의 특징이 완벽하게 섞인 조합이었다.

나는 오늘도 루를 고찰한다.

‘대체 못하는 게 뭔데?’

한 발자국 물러선 하녀장의 시선이 조금씩 촉촉해져 간다.

“누가 봐도 근사할 거예요. 웨더우즈 가문의 가주로 손색이 없어요.”

적어도 알 따위보다는 손색없어 보이긴 한다.

“그래도 알맹이는 하녀야. 감봉당한 하녀.”

“네, 알아요. 그런데 데이지 양은 꽤 익숙해 보이네요? 보통 성별이 반전되면 여러모로 어색해하기 마련인데.”

“뭐, 나는 대범하니까. 나 같은 남자가 세상에 흔하지는 않지?”

하녀장은 조금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귀족회에서는 너무 대범하게 굴지 마세요. 하아! 걱정이 산더미로군요. 데이지 양이 과연 잘 수행해 낼 수 있을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 특히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나는 근심 가득한 하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믿음직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울에 비친 웃는 낯이 꽤 근사하다. 내 동생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첫인상을 심기에 제격인 외모였다.

“걱정이 많네. 그냥 포기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문제가 생기면 늘 그랬듯 루가 알아서 수습하겠지.”

그리 말하며 살짝 튀어나온 앞머리를 꾸욱 내리눌렀다.

이 몸의 머리칼은 곱슬기가 심하지 않은데도 자꾸 머리칼 서너 가닥이 이마로 떨어져서 불편했다.

“흠.”

앞머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뒤로 넘기며 하녀장을 돌아봤다.

“그런데 머리는 조금 더 짧은 편이 낫지 않겠어? 난 앞머리가 긴 거 귀찮은데.”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하녀장이 은근하게 시선을 돌리며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하녀장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요구했다.

“아니면 그냥 뽑아 봐. 이것들 엄청 걸리적거리네.”

하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새빨갛게 타오른 얼굴로 나를 밀어냈다.

“그, 그건. 조금 떨어져서 말하세요.”

……아하, 이것 봐라?

“그만.”

탁.

정수리로 가벼운 타격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등을 돌리자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나타났다.

티끌 하나 없이 백옥 같은 얼굴, 커다란 눈과 앙증맞은 코, 앵두처럼 붉은 입술…… 같은 흔해 빠진 묘사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그대로 옮긴 여자였다.

부채처럼 펄럭이는 속눈썹을 깜빡일 때마다 몽롱한 금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여자로 변신한 루였지만, 눈동자만은 본래의 것 그대로였다.

‘으.’

그의 실체를 아는 나로선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뻔뻔한 낯짝의 키 큰 남성을 상대하는 착각이 들었다. 실상은 그러한 착각이야말로 가짜를 꿰뚫는 진짜였지만.

모리안 세레니예.

루가 친히 웨더우즈 자작의 부인으로서 도용한 신분은, 무려 북대륙연합교국의 세레니예 백작 가문의 삼녀였다.

맨 처음 하녀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서 지은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한 국가의 귀족 여식입니다. 그런 자의 신분을 어찌 도용할 수 있겠어요? 가문의 체면을 위해 위험한 길을 갈 생각은 없어요. 귀족이 아닌 평범한 신분의 여성이면 충분합니다.”

“이 신분을 사용해도 문제없으니 사서 걱정하지 마세요, 하녀장.”

“없다니요? 문제가 없다니요? 데이지 양! 당신도 문제가 없을 것 같나요?”

당시의 나는 어떻게 반응했던가?

당연히 못 들은 척 열심히 설거지에 매진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마음은 없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말다툼의 승자는 루였다.

그가 하녀장을 설득한 최후의 수단은 간단했다. ‘웨더우즈 가문에 피해를 미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의 맹세를 건 것이다.

이후 그는 거듭된 하녀장의 질문에도 맹세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도합 네 개의 맹세가 루의 팔 안쪽에 추가되었다.

‘전신에 그렇게 많은 맹세의 흔적이 각인된 이유가 있었어.’

설득하기 귀찮을 때마다 맹세로 퉁쳐 온 모양이지.

다분히 그다운 사고 회로였다. 또한 그씩이나 되는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처신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루에게는 신임은 몰라도 능력은 있었으므로.

내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던 루가 당부하듯 경고했다.

“당분간 당신은 내 여자야. 이 여자 저 여자 꼬시고 다니지 말고 조신하게 굴어.”

이른 오전부터 기가 막히는 헛소리였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딴지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여자가 아니라 내 남자겠지.”

잘못된 표현을 정정해 주니 루가 제 입을 가린 채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잘 느껴 봐, 자기야. 밑이 허하지 않아?”

“…….”

“자기는 지금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상태야. 그 말은? 여자와 남자 둘 다 꼬실 수 있다는 거지. 두 배로 조심해. 알았어?”

당당한 대거리에 나는 또 한 번 혼란을 맞이했다.

‘어쩐지 이상하게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싶었더니.’

물론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긴 한데.

여자를 꼬시느니 남자를 꼬시느니, 되는 대로 뱉은 소리와 함께 들으려니 괜히 억울했다.

“굳이 왜……. 아니,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평범한 남자의 육체로 만들면 안 되는 거야?”

생글생글 미소 지은 루가 내 팔에 착 달라붙으며 대답했다.

“으응. 하지만 모리안은 어쩔 수 없었어요. 남자의 팔짱은 끼기 싫은걸?”

우웨엑.

심기가 불편하다. 속이 좋지 않아. 귀족회에 참석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일이 벌써부터 후회되려 해.

저렇게 어여쁜 얼굴로 이렇게 불편한 병증을 일으키다니. 사람 속 뒤집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머, 어딜 자꾸 봐? 우리 자기는 보기와 달리 짐승이라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저 놀이에 어울려 주면 루만 즐겁게 만드는 꼴이었다.

대신 나는 아주 진지한 눈으로 하녀장에게 주의를 주었다.

“귀족회야말로 웨더우즈 가문의 커다란 위기가 될 수 있어. 이런 여자가 웨더우즈 자작의 부인이 되어도 괜찮아?”

괜찮지 않다고 해. 얌전한 웨더우즈 부인이 아니면 허락할 수 없다고 해.

바람과 달리 하녀장은 엉뚱한 대답을 뱉었다.

“어쩐지…… 남자인 모습이 더 자연스럽네요, 데이지 양.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요.”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잖아?”

“그렇게 멀쩡하게 대화할 수 있으면서, 왜 그동안은 모자란 사람처럼 굴었던 거예요?”

주특기인 못 들은 척으로 대응했다.

그제야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던 표정을 내버리고, 본래 편안한 얼굴로 돌아온 하녀장이 대번 진중해진 눈으로 입술을 뗐다.

“이건 사서 하는 걱정 같기도 한데…….”

“뭔데?”

“데이지 양, 외도는 안 돼요. 사생아가 생기면 복잡해지거든요.”

“아하. 혹시 하녀장도 내 아내처럼 제정신이 아닌 건가?”

하녀장은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장난입니다. 농담이고말고요. 제가 두 분께 어떤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요? 부디 큰 문제 없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랄 뿐이죠. 우리 웨더우즈 가문을 잘 부탁드립니다.”

하녀장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저택을 나섰다.

문 앞에는 호화로운 사두마차가 두 대 정차해 있었다.

저런 마차는 또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르겠네. 심지어 한 대는 짐마차였다. 모리안의 형형색색 의복이 가득한…….

시각은 이른 아침. 다행히 길가에는 오가는 사람이 적다.

나는 마차 문 앞에 서서 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부인.”

“부인이라니? 내 사랑 모리안이라고 불러 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신혼부부니까.”

싱긋 웃으며 다가온 루가 내 손을 잡았다.

하얀 손가락 사이에 붉은색 결혼반지가 도드라진다. 루의 것은 평범한 가짜 결혼반지이지만, 내 것은 조금 특별하다.

깨뜨리는 그 즉시 변신 마법이 풀리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마도구였기 때문이다.

부디 이 기능을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아. 그렇지, 자기야?”

달콤한 눈웃음 속, 선명한 조소가 내게 경고했다.

귀족회가 열리는 일주일간.

너는 분명 개고생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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