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루가 디안 케트의 유산을 찾고 있다.
집사 암살자의 그러한 주장은 나름 타당한 증거에 근거했다.
“며칠 전 내게 디안 케트의 눈알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으셨다. 게다가 주인님의 침실을 정리하다가 미드윈트리 관광 소책자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도시 전설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 있었지. 짧게나마 디안 케트의 눈알이 언급되어 있더군.”
루가 책에 책갈피를 꽂는 모습이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 수상한 놈의 목적이 디안 케트의 유물이라니.’
납득이 가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루가 웨더우즈 저택에서 요리사 겸 정원사 일을 하는 이유로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런 중대한 목적이 있으면서 고용인 노릇이나 한다고?
이유라.
‘설마 웨더우즈 저택과 디안 케트의 유물 사이에 접점이 있는 건가?’
아, 이건 꽤 그럴싸하게 들리네.
나는 집사 암살자에게 펍 뒤처리를 맡긴 후 미리 챙겨 왔던 두툼한 종이봉투를 건넸다.
“이건?”
“상인 연합회가 빼앗은 자릿세. 이자까지 두둑하게 얹어서 채권자에게 돌려주기로 했어. 그렇지, 친구들?”
“…….”
“그렇지?”
“예, 옙.”
암. 빚을 졌으면 배로 갚아야지.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펍을 나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데, 웨더우즈 가문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다음 날 정오.
오늘은 어쩐지 하늘이 흐리다. 해가 지면 비가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은 습도였다.
나는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1층 도서실 옆에 자리한 웨더우즈 룸 앞에 섰다.
유서가 깊은 귀족 가문은 보통 가문의 비보와 가계도, 선조의 유산 및 초상화 등을 보관해 두는 방을 따로 마련해 두기 마련이다.
웨더우즈 가문 또한 저택 내부에 그러한 룸을 마련해 두었다.
이 웨더우즈 룸을 살피기에 문제가 있다면, 고용인들 사이에서는 하녀장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라는 점.
철컥철컥.
게다가 잠겨 있어서 제아무리 문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는다.
‘억지로 잡아 뜯으면 티가 나니, 열쇠 위치를 찾아서 새벽에 몰래 들어가는 수밖엔 없겠어.’
어쩔 수 없지.
주방으로 돌아와 직접 차를 끓였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꽃잎을 우린 차 한 잔은 정오를 즐기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였다.
“루 씨.”
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창밖으로 고개를 틀었다.
하녀장이 정원 의자에 앉은 루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드럽게 웃은 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요.”
시선을 돌린 루가 다시 독서에 빠져든다. 요리사 겸 정원사가 태평하게 독서라니?
하지만 루는 항상 여유롭다.
하녀장도 그의 여유에 특별히 딴지를 걸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바를 완벽히 수행한 후 누리는 여유였으니까.
그가 일하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가끔 팔이 네 개 달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역시 루와 책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초록빛 정원 한가운데 자리한 루를 말없이 바라봤다.
광휘 아래 그림자처럼 고상하면서 우울한 그의 낯은 책벌레보다는 약쟁이에, 신문보다는 술이 어울렸다. 혹은 극심한 외상후증후군을 겪는 병사. 또는 숲속에 은둔하는 사냥꾼.
하지만 루는 요리사 겸 정원사 겸 부자다.
편견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이토록 무섭다.
‘약 빤 검투사, 뒷세계 암거래 수장, 암약 길드의 길드장…….’
루와 어울리는 직업을 하나둘 나열하다가, 그에게서 전에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난잡하기 짝이 없는 귀를 말이다.
오른쪽 귀, 왼쪽 귀 할 것 없이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연골과 귓구멍 쪽도 비슷한 상태인 듯했다. 그런 주제에 아무런 액세서리도 달지 않아 매끈하기만 했지만.
그 귀를 보며 나는 한층 그가 더 의심스러워졌다.
구멍이 뚫린 위치가 하나같이 마의 흐름이 원활한 혈 자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통 마법사들이 고작해야 두어 개 정도 뚫어 두는 혈 자리를 그는 죄다 뚫어 두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도구를 착용한다는 거야?’
마도구는 기본적으로 희소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특히 몸에 걸칠 만한 크기의 마도구는 그 기능이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물론 루야 미드윈트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돈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문제는 그런 마도구를 착용하는 이유지.
귀에 뚫린 구멍은 양쪽을 합해 족히 열이 넘었다. 이 나라의 황제도 저보다 많은 마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을 텐데.
오늘도 나는 고찰한다.
‘루는 대체 뭐 하는 놈이지?’
팔락. 바람을 타고 책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이를 넘기는 루의 손은 곱다. 검과는 어떠한 인연도 없는 데이지의 손에 비견할 정도로 길고 멀끔한 손이었다.
잘린 부분이나 크고 작은 생채기는커녕 굳은살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그의 손이 내 얼굴을 뒤덮고 남을 정도로 크고, 군데군데 마디가 툭 불거져 있기는 하지만 루의 독보적인 신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런 손은 검을 잡지 않는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루는 역시 마법사다.
착용하는 마도구도 아마 직접 제작하겠지.
에슐라 저택에 마법을 걸었다는 증언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그는 퍽 뛰어난 마법사가 분명했다.
“그래서.”
저것 봐. 심지어는 목소리도 인상적이지.
“남의 얼굴을 한참 동안 뜯어봤으면, 감상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나.”
마치 진흙을 덧바른 바위에 불로 달군 쇠 인장을 깊이 박아 내는 듯한 목소리.
못 들은 척할까.
그래도 소통이라는 걸 하고 지내기로 마음먹은 만큼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루에게 묻고 싶은, 목구멍 위로 차고 넘칠 정도로 높게 쌓인 질문을 뒤로하고 가장 무난한 주제를 골랐다.
“꽃 심었어.”
다름 아닌 그가 내게 맡긴 작고 아담한 화분에 대해서.
고개를 돌린 루는 음영이 짙게 진 눈매를 옅게 좁히며 웃었다.
“동문서답이군. 아니면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꽃이 떠오른다는 뜻?”
그러고는 곧 그림 같은 미소를 싸악 거두며 말했다.
“당신 같은 꽃을 심기는 했네요.”
나 같은 꽃? 나 같은 꽃이 뭔데? 그리고 내가 심은 꽃이 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가 심은 건 모종도 아니고, 시장에서 대충 골라 온 씨앗 몇 개였다.
“모르면서 아는 척 금지.”
나도 모르는 꽃 종류를 루가 알 리 없었다.
“모르는 척? 흐음. 그래서 뭘 심었습니까?”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비밀.”
가소롭다는 웃음이 작게 터졌다.
“본인이 심은 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는 것만큼 한심한 일도 드물 텐데.”
탁. 루가 정독하고 있던 책을 덮자 표지에 적힌 도서명이 드러났다.
『어린이를 위한 대륙 7대 미스터리 보물편』
어째서일까.
어째서 나는 저 책에 디안 케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거라 확신하는 걸까?
뒤늦게 루를 탐색하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디안 케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에게 관심을 끊고 내 일에 집중하려 했더니, ‘디안 케트’라는 공통사를 통해 다시 연결될 줄은.
‘루는 디안 케트의 눈알만 노리는 건가? 아니면 나머지 네 개의 유산도?’
기실 루에게 직접 디안 케트를 찾느냐고 묻는다면, 예상외로 우리 사이의 불신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그와 나 둘만 엮인 일이었다면 필시 그리했으리라.
하지만 이 정보를 건넨 인물이 집사 암살자라는 게 문제다.
집사 암살자는 루의 정보를 내게 귀띔해 줄 귀중한 연결책이었다. 한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루가 암살자를 의심하고, 종국에는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나로서는 극심한 손해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이 남자가 내게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도 무시 못 해.’
이 남자, 루.
번드르르한 껍질 빼고 다 음흉한 남자.
“데이지 양에게 무언가 실수라도 한 건가요, 루 씨?”
“글쎄요. 넋 놓고 제 얼굴을 구경하는 게 한두 번이어야죠. 앞으로는 구경값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놈.
“데이지 양이 안 그래 보여도 진솔한 구석이 있군요.”
소정원을 가로질러 나타난 하녀장이 루에게로 향했던 내 시야를 차단했다.
“다 구경했나요?”
“……네.”
“그럼 이제 일하러 가세요.”
이 여자, 하녀장.
미드윈트리에서 가장 매정한 여자.
창문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막 일으키려 할 때였다.
긴 다리로 슬슬 걸어온 루가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소형 팻말을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뭐야?”
“당신이 심은 꽃에 이름을 지어서 화분에 꽂아 두세요.”
화분 이름표라는 소리였다. 기가 막혔다.
“내가 왜?”
그는 대충 들어도 언짢고, 귀찮고, 불편한 티가 물씬 풍기는 내 반문에 친절한 미소로 답했다.
“우리 데이지 양이 너무 성의 없어서 말이죠. 종을 모르면 이름이라도 지어 둬야지. 책임이라는 건 의외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나는 홀연히 사라지는 너른 어깨를 응시하다가, 손에 쥔 나무 팻말을 내려다봤다.
동물도 아니고 이름은 무슨 이름이야.
코웃음과 함께 쓰레기통에 대충 내던졌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서 버린 나무 팻말을 다시 주웠다.
“음.”
루는 성격이 나빠서 이런 걸 버리면 배로 갚을 인물이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순순히 들어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나는 화분의 이름을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팻말을 꽂았다.
팻말은 텅 비어 있었다.
결국 나는 이름 짓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