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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195)

10화

아하.

나는 펍의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렇다는데?”

아무도 서 있지 않은 방향이었다.

바텐더의 눈에 의문이 서린 직후, 조용했던 문이 밀려나면서 전에 없던 인물이 등장했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선 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 로브를 걸친 모습이었다.

“<베리드 렛>이 뭐야?”

그는 바로 집사라는 새 삶을 살아가는 자, 집사 암살자였으니까.

추측건대 그가 입은 로브는 사용하지 않는 암막 커튼을 직접 개조해 제작한 듯했다.

저자의 직업 전문성을 고려하면 퍽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집사 암살자는 내 의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마도 전쟁 전후로 급격히 성장한 정보 길드다. 덩치가 크고, 위험한 데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도 안 가릴 만큼 잔인한 놈들이지.”

흔들림 없는 음성에는 한 치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내가 그에게 바라고 또 요구한 역할이었다.

펍으로 달려오기 전, 나는 집사 암살자를 찾아갔었다.

전직 암살자답게 내 인기척을 바로 알아챈 그는 곧장 뒷문으로 나와 용건을 물었다.

“오늘은 약속한 날짜도 아닌데 무슨 일이냐?”

“살길 도모한댔지.”

“그런데?”

“같이 도모하자.”

간결하고도 적극적인 꼬임에 집사 암살자는 의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나도 너처럼 찾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무엇을?”

“살길.”

협력을 얻으려면 자신의 패를 먼저 보여야 하는 법.

나는 그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 정보를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고,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무표정하던 그는 ‘정보’라는 단어에 솔깃하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암살 길드에게 쫓기는 신세인 그가 전문가들의 추적을 떨치기 위해서는 미드윈트리를 손바닥 위에 두는 것이 중요했다.

이 근방을 주름잡고 있는 상인 연합회를 시작으로 천천히 도시를 장악해 가면, 우리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될 터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좋다. 다만 그쪽이 말한 상인 연합회와 관련해서는 계획을 조금 수정하는 편이 좋겠군.”

“어떻게?”

“듣자 하니 동네 양아치치고는 확장 속도와 체계성이 쓸데없이 잘 잡힌 듯하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뒷배가 존재하기 마련이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 있어.”

집사 암살자는 상인 연합회의 뒷배를 조사한 후 움직이길 요구했다. 어떤 배경인가에 따라서 손을 대지 않는 쪽이 현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상인 연합회가 계속 유지되면, 감자 노인은 골목에서 사라져야 할 테니까.

‘뒷배가 심상치 않으면 발을 빼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기를 잘했지.’

그런데 정말 대형 길드가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베리드 렛>? 나는 처음 듣는데.”

“암약 길드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모를 만도 하지.”

“평범한 사람?”

그렇구나. 나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구나.

집사 암살자는 제 입으로 말하고도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여겼는지, 슬쩍 미간을 구겼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베리드 렛>은 펜 로타 제국을 중심으로 전(前) 마도 연합 소속 13개국 곳곳에 꽈리를 틀고 있다. 길드 마스터는 얼굴은커녕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데다, 꼬리 잡힐 만한 짓은 안 하는 놈들이지.”

설명하던 집사 암살자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바텐더를 훑었다.

“하지만 이런 조악한 놈들과 손을 잡을 리 없을 텐데?”

그 말에 바텐더는 다급히 장식장 서랍 안쪽을 뒤적였다. 이윽고 서랍 안에서 금빛의 동그란 동전이 튀어나왔다.

“아니오! 우, 우리는 <베리드 렛>의 비호를 받는 연합회가 맞소! 여기, 이 길드 코인을 보시오.”

길드 코인은 따지자면 특정 길드와의 협력 및 소속 관계를 증명하는 보증서다.

코인의 형태를 샅샅이 살피던 집사 암살자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진짜군.”

“그러니까 맞대도! 당신들은 모두 실수하고 있는 거요. 보아하니 이 남자는 <베리드 렛>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아는 것 같은데…….”

나는 더욱 득의양양해진 바텐더에게서 길드 코인을 빼앗았다.

“진짜라고? 그럼 이건 지금부터 내 거.”

바텐더는 이를 갈았다.

“겁도 없군,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내 말을 못 들은 것이오? 우리가 습격당했다는 사실이 <베리드 렛>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건 너희가 혀를 가볍게 움직였을 때지.”

길드 코인으로 바텐더의 입술을 툭툭 두드리며 경고했다.

“똑똑하게 굴어, 바텐더. 사촌은 멀고 이웃은 아깝다는 말 몰라? 모른다고? 그럼 법은 멀지만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베리드 렛>의 법은 멀지만 이웃인 내 주먹은 가까워. 너희 목숨은 내 기분 한 끗에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해.”

펍 내부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사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집사 암살자가 특유의 진중한 낯으로 입술을 뗐다.

“상대가 <베리드 렛>이라면 너무 위험하다. 당하면 배로 갚는다는 속설도 과장이 아니야. 정보 길드는 기본적으로 신뢰와 돈을 통해 팽창하지. 이렇게 작고 볼품없는 곳도 지부는 지부이니 건들지 않는 편이 이득이다.”

아무래도 그는 오늘 일에서 발을 뺄 생각인 듯했다. 상대가 대형 암약 길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태도였다.

“네 주인보다 위험해?”

하지만 나에게는 집사 암살자가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새로운 상인 연합회를 통솔할 인물로서 그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정보와 암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암살자가 암살 임무 다음으로 혹은 대등하게 수행하는 임무가 바로 도둑질 그리고 정보 습득이었으니까.

“둘은 다르다. 주인은 개인이고 <베리드 렛>은 형체만 없을 뿐, 작은 국가나 다름없어.”

“안 들키면 되잖아. 놈들 모르게 움직이면 돼.”

나는 주머니 안쪽에서 꺼낸 작은 유리병을 그에게 던졌다.

“이건…….”

“네게서 빼앗았던 <자비로운 한 입>. 단 한 알에 골로 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알약이지.”

“보관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

“구하기 힘든 물건이잖아. 함부로 버리면 안 되지. 물론 가장 귀한 건.”

나는 귓불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

“너의 맹세를 거는 마도구겠지만.”

집사 암살자에게는 내게 사용하려다 실패한 맹세를 거는 마도구가 남아 있었다. 그 물건을 사용하면 강제로 이들의 입을 묶을 수 있으리라.

내 뜻을 간파한 집사 암살자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사이 나는 상인 연합회 간부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었다.

“걸리적거리는 놈은 <자비로운 한 입>으로 죽여. 정 못 믿겠다면 그냥 다 죽여 버려도 좋아. 이 도둑놈들 바람대로 <베리드 렛>이 눈치챌지도 모르지만. 눈치채 봤자 죽은 놈들 시체밖에 더 치우겠어?”

윗선에 알리려면 알려. 대신 알리면 너희도 죽는다.

흔적도 없이, 단번에.

내 의사를 단번에 알아들었는지 <베리드 렛>의 가호로 되살아났던 바텐더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말을 그렇게 길게 할 줄도 알았나?”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나는 집사 암살자의 결정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다행히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지금부터 이쪽은 내가 맡지. 대신 조건이 있다.”

“말해 봐.”

“이쪽은 내 방식대로 움직일 거다. 네 참견은 내가 납득하는 선에서만 받아들인다. 동의하나?”

오히려 좋아. 귀찮은 일 덜어 내는 거니까.

나는 <베리드 렛>의 길드 코인을 그에게 던지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새로운 상인 연합회가 결성된 기념으로 첫 번째 임무를 진행하자.”

“임무? ……그쪽에게 필요하다던 물건을 말하는 거군.”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미드윈트리에 숨겨져 있다는 디안 케트의 유산을 찾아야 해.”

“……도시 전설로 내려오는 디안 케트의 유산이라면, 눈알 말인가?”

“맞아.”

순간, 집사 암살자의 눈빛이 변했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는 짧은 고뇌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싶어 곁에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왜?”

가만히 바닥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곧 나와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단순한 우연인가 싶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주인님도 그 물건을 찾고 계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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