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95)

6화

이후 그는 누구도 닦달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소정원 정리를 시작했다.

하녀장은 그런 그에게 이런저런 켕기는 요소를 묻다가 주방으로 돌아왔다. 반쯤 포기한 모습이었다.

“음.”

주방 안쪽에 서서, 하녀장은 고심에 빠진 눈으로 창밖의 루를 살폈다.

그사이 루는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업자와 긴밀한 소통을 나누고 있었다. 정원수, 분수, 잉어 따위의 단어가 들려오는 걸 봐선 대대적인 공사라도 벌일 생각인 듯했다.

정원을 가꾸라고 고용된 정원사가 전문 업자를 불러 정원을 갈아엎는 꼴이라니?

‘부럽다.’

수상하지만 잘생긴 데다 돈도 많고 집도 있다니. 세계 평화에 이 한 몸 바친 나는 하녀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사는데.

‘저런 자가 그 암살자를 집에서 내쫓지 않았다는 말이지.’

설마 웨더우즈 자작 감시를 의뢰했다던 의뢰인이 루일까?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녀장을 대신해 루를 가리키며 말했, 아니, 선언했다.

“해고.”

하녀장이 스윽 나를 돌아봤다.

“누구를요? 루 씨를요?”

“수상한 자.”

“그건 본인 이야기인가요?”

본인? ……아무리 그래도 저거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

“물론 루 씨는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닙니다. 수년간 이 일을 하며 그만큼 독특한 사람은 못 본 것 같네요. 당신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해고.”

“그렇게 서둘러서 내보낼 필요 없어요, 데이지 양. 저택에 위험한 자라면 웨더우즈 자작님이 쫓아내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있지도 않은 자작이 어떻게 저 남자를 쫓아낸다는 말인가?

하녀장은 너무 안일하다.

나는 ‘새벽에 암살자가 숨어들어 왔는데, 두들겨 패서 앞집에 가둬 놨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루가 그 암살자를 곁에 두고 있었다. 둘은 웨더우즈 자작을 감시하러 온 간자임이 틀림없다.’라고 설명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수상하잖아.

사실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가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웨더우즈 저택의 하녀장이라면 내 입장도 달라진다.

‘웨더우즈만큼 이상한 집안쯤 되어야 나를 받아 주는데.’

이런 집안에서조차 쫓겨나면 나는 갈 곳이 없잖아.

돈이라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주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간자의 존재조차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게 하다니!

“게다가 반값 임금으로 정원까지 직접 공사해 주겠다는 정원사를 해고하는 건 손해 아니겠어요? 웨더우즈 가문에는 그런 돈조차 빠듯하거든요. 당분간은 두고 봅시다.”

하녀장은 이 시대 진정한 자본의 노예였다.

돈이라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간자일지도 모르는 자를 저택에 순순히 두고 보게 하다니!

“자, 그럼. 우리도 우리 일을 시작해 볼까요?”

오늘의 일정은 2층 창문 닦기였다. 참고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청소다. 천장 닦기 다음으로 힘드니까.

나는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하녀답게, 창문을 닦으면서도 간자를 감시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하나뿐인 소중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뭔들 못 할까?

간자는 정원의 죽은 잡초를 설렁설렁 뽑고 있었다.

잡초를 뽑는 자태조차 그렇게 수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감시했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시비를 걸고, 육체의 대화를 나눈 후, 진심 어린 속내를 털어놓게 유도해야 하는데.’

새벽에 암살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루를 상대로는 좀처럼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루에게서는 약간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집도 있는 주제에 빈틈까지 없다니?

‘대체 무슨 목적인 거지?’

그때였다.

루가 내내 뽑은 잡초를 정리하다 말고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할 말 있습니까?”

평범한 목청이었는데, 루의 목소리는 고막에 틀어박히듯 선명하게 들려왔다.

흰 셔츠에 연노랑 베스트까지 차려입고서 정원 가꾸는 데 매진하는 모습이 참…… 잘 어울렸다. 하기야 미인에게 뭔들 안 어울리겠는가.

육체적 대화는 못 해도, 아무 일 없던 척 구는 건 하녀장 앞에서나지.

창문에 턱을 괸 채 그에게 물었다.

“당신 누구야?”

“이름이라면 아까 루, 라고 통성명했을 텐데요. 하녀인 하녀 양.”

하녀인 하녀 양. 놀리는 게 뻔한 걸 알면서도 기분이 언짢다.

“이름 말고.”

루의 눈매가 얇게 좁혀졌다. 즐거워 보여야 할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는 뜻? 우리가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만 능구렁이처럼 굴고 대답해. 당신 누구야? 여기에는 왜 왔어?”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숨이 다 헐떡였다.

“네 팬이라서.”

뭐?

고개를 기울인 채 내 얼굴을 올려다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

“간밤에 웬 변태를 잡아다가 내 집에 묶어 놨던데. 생면부지를 당당하게 가둬 놓은 꼴이 내게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미드윈트리의 용감한 시민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지금 그것 때문에 저택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거야?”

또다.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나도 모르게 말이 길게 터졌다.

내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 어깨를 부르르 떠는 사이, 루는 얄미운 미소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리가?”

역시 순순히 입 열 생각은 없는 건가. 그렇다면 면대면으로 샅샅이 따지고 들 수밖에.

나는 열린 창문을 통해 정원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너.”

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자,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관람하던 그는 대뜸 저택 안쪽을 향해 외쳤다.

“하녀장님. 하녀인 하녀 양이 자꾸 농땡이를 피우고 제게 집적대는데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웨더우즈는 고용인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건가요?”

혀를 찰 만큼 야비한 작태에 내가 보일 반응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그 길 그대로 걸어, 저택 뒷문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

이가 갈렸다.

‘수상한 데다 비열하기까지 한 놈.’

하필 하녀장을 운운해?

나는 제 발 저린 도둑놈처럼 열심히 창문 청소에 매진했다. 너무 열심히 해서 창문 하나를 깨뜨리긴 했지만, 하녀장은 나를 크게 혼내지 않았다. 이달 치 급여가 일부 삭감되었을 뿐.

덕분에 저녁 식사 시간에는 기분이 몹시 저조해졌다. 한데 식탁에는 늘 그렇듯 나와 하녀장만이 앉아 있었다.

“요리사 겸 정원사는?”

“저녁 식사는 따로 하겠다는군요. 아무래도 우리 저택은 공식 일과를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니까요. 앞으로도 저녁 식사 자리는 따로 가지게 될 겁니다.”

해가 진 후에는 볼 일 없다니. 그 점 하나는 마음에 드네.

나는 맛대가리 없는 야채 스튜를 마음 편히 목구멍 안에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오전 일과를 간단히 끝내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루와 마주쳤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원사답지 않게(정확히는 저택 주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멀끔한 외형으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녀인 하녀 양.”

무시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루는 주방의 이곳저곳을 탐색하다가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오늘 치 식재료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겁니까?”

대답은 먼저 내려와 차를 홀짝이고 있던 하녀장이 대신했다.

“우리는 식재료를 주문하지 않고 직접 시장에 나가 구입합니다, 루 씨. 그리고 오늘 치 식재료는 거기에 남아 있네요.”

루는 테이블 아래 목제 상자 안에 널브러지듯 놓인 감자, 당근, 양파를 보곤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그는 어제 고용된 이래 처음으로 고난과 역경을 겪는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런 루에게서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 이 집안은 명성만 그럴싸하지 적당히 가난한 집안이야. 넌 개고생하러 들어온 거라고.

“어쩔 수 없네요. 오늘 점심은 일단 이것으로 해결하죠. 그래도 버터나 후추, 소금, 허브, 우유는 충분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하녀인 하녀 양?”

그는 웃으며 상자를 가리켰다.

“깎으세요.”

나는 군말 없이 식재료를 깎았다.

지난 한 달 동안 거지처럼 살며 깨달은 점이 있는데, 밥 주는 사람의 말은 순순히 따르는 게 좋다는 점이다. 적어도 밥을 주는 순간만큼은.

나는 감자 껍질을 슬슬 깎으며 루를 구경했다.

찬장을 살피던 그는 처음 보는 사각 용기를 꺼내고, 그다음으로는 처음 보는 시즈닝 보관함을 꺼냈다.

‘이 주방에 저런 것도 있었나?’

먼지 쌓인 용기를 깨끗하게 닦은 그는 종이에서 꺼낸 버터를 잘라 불 위에서 천천히 녹였다. 버터를 용기에 두른 후 능숙하게 식칼을 들고선 감자를 얇게 잘랐다.

용기에 감자를 예쁘게 쌓아 올린 그는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는 그 위를 우유로 덮었다.

너무나도 능숙한 요리 솜씨라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하녀 양.”

루가 말린 허브를 잘게 부수며 나를 불렀다.

“창문 너머 담장 위의 쥐가 보이나요?”

갑자기?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창문을 바라봤다. 루의 말마따나 담장 위로 작은 회색 쥐가 오도도 뛰어가고 있었다.

“저 쥐가 당신보다 감자를 더 잘 깎겠습니다. 당신의 감자 깎는 속도는 너무 느려 터졌네요.”

“……음.”

상대는 요리사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원사가 아니라 요리사야.

하녀장의 지옥 요리 2선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

나는 감자를 더 빠르게 깎았다. 루는 내가 남은 감자를 다 깎을 동안 말없이 기다리다가, 똑같은 요리 과정을 각기 다른 용기에 두 번 더 반복했다. 남은 건 오븐에서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세요.”

혼이 나갈 만큼 훌륭한 향의 감자 그라탱을 혀에 올린 순간.

나는 뇌리를 관통하는 강렬한, ‘맛’이라는 감각에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그랬다. 믿기지 않게도, 루는 숙련된 요리사였다.

좋은 식재료와 나쁜 식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볼품없이 죽어 가던 감자가 그의 손에서 완벽한 감자 그라탱으로 탄생했다.

같은 주방에서 요리한 하녀장의 솜씨와는 감히 비교 못 할 훌륭한 맛이었다.

“잘 먹네.”

물끄러미 날 쳐다보던 루는 그 말을 남기고 정원으로 나갔다.

배가 안 고픈 건가. 나는 덩그러니 놓인 루 몫의 감자 그라탱까지 싹싹 비워 주었다.

쾌적한 삶과 만족스러운 식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인 법. 입가를 닦은 하녀장이 반쯤 홀린 목소리로 감탄을 내뱉었다.

“근 몇 년 동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가 없었어요. 루 씨의 요리 솜씨는 정말 대단하군요. 반값으로 고용한 게 미안해질 정도예요.”

감자 그라탱과 사랑에 빠진 하녀장의 눈을 보자 사그라졌던 위기감이 바짝 일어섰다.

‘안 돼. 이러다가 하녀장이 저 사기꾼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리겠어.’

상대가 상대여서 그런지 이 맛있는 요리조차 훌륭한 수작처럼 느껴졌다.

‘여우 같은 자식.’

이토록 신경 쓰이는 자와 한집에서 일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수상함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게 더 마음에 안 들어.’

자신 있다 이거잖아?

내가 생각해 둔 루의 정체에 관한 가정은 둘이다.

하나, 암살자가 그러했듯 웨더우즈 자작을 감시하기 위해 숨어들어 왔거나.

둘, 내 과거를 알고 쫓아왔거나.

‘……후자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