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235화 (234/242)

235화

“이, 이게 대체 무슨…….”

파비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기절해 있는 신관은 그렇다치고, 도로테아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저 피투성이의 남자는 분명 프란체스코가 아닌가.

‘황자 전하를 모셔 오라는 건, 말려 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어요?!’

홀로 정리해 버릴 생각이었으면 애꿎은 황자는 왜 불러오라 한단 말인가.

눈을 끔뻑이며 경악하던 파비안은 그녀를 지나치는 황자를 향해 주춤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전하. 그것이 실은, 제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떻게든 상황을 덮어 보려 입을 떼긴 했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이미 궁이 반파되고, 사도는 피떡이 되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으며, 칙사는 목을 졸려 기절한 상태인데.

성큼성큼 다가오는 루크를 본 파비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일에 자신을 끌어들였다며 분노할 줄 알았던 7황자는 뜻밖에도 그녀를 지나쳐 곧장 도로테아 앞에 섰다.

시선을 내리자, 소녀가 쥐고 있는 부채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접선 안쪽으로 점점이 튄 검붉은 피가 인상적이었다.

루크가 손을 뻗어 그녀에게서 접선을 낚아챘다.

도로테아는 반항 한 번 없이 순순히 자신의 부채를 그에게로 넘겼다.

“화려하게 날뛰었군. 지금 그 모습으로는 하이클레어의 이름조차 쓸 수 없을 텐데. 감히 황궁을 무너뜨리고도, 후환이 두렵지 않나?”

나직한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로테아가 생긋 웃었다.

“후환이 두려울 게 뭐가 있어.”

“…….”

“죽어 갈 뻔한 성국의 칙사를 구했으니,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일 아니야?”

루크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헛소리를 주워 담는 소녀에게서 눈을 뗐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피투성이가 된 사도의 머리채를 쥐고서 천천히 잡아 올렸다.

무심한 얼굴로 엉망이 된 사도를 훑어 내린 루크가 입을 열었다.

“아주 제대로 손을 썼군. 속도 제대로 휘저어 놨어.”

이 정도의 외상과 내상이라면, 못해도 일주일은 거동이 불편할 터였다. 그나마도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가진 사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심한 시선이 다시 도로테아에게로 향했다.

“성국을 상대하려면 이자가 황녀 곁에 있는 것이 나을 텐데.”

“하나뿐인 딸이 걱정되니? 본 적도 없는 데다 억지로 거둔 아이를 살뜰히 대해 주긴 하려나 걱정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애틋한걸?”

생글거리는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별생각 없이 손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름의 계획이 있을 테지만, 언제나 그렇듯 도로테아는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일일이 챙기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답을 듣기를 포기한 루크는 사도의 머리채를 쥔 채 질질 끌고서 기절해 있는 칙사에게로 다가갔다.

목이 졸려 얼굴이 파랗게 질리긴 했지만, 프란체스코에 비하자면 상태가 훨씬 양호했다.

그 틈을 타 도로테아 곁에 다가온 파비안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다니. 성국의 칙사를 구한 거죠. 교황을 대신해 제국을 방문한 칙사가 자칫 이곳에서 상처라도 입으면, 성국에서는 아주 기쁘게 성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오지 않겠어요?”

지금도 성녀를 끌고 갈 명분만 고민하고 있는 작자들이 아닌가.

도로테아의 말에 파비안이 찜찜한 얼굴로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그때였다.

무려 궁이 반파되었는데도, 뒤늦게야 현장에 도착한 기사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화, 황자 전하. 이것이 대체…… 무슨 일입니까.”

“보는 그대로.”

짤막한 말과 함께 루크가 손에 쥐고 있던 사도를 기사들의 앞에 내동댕이쳤다.

무려 성국의 사도, 성흔을 입은 신성한 사도의 피가 발치에 튀자 몇몇 기사들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어신 겁니까. 가뜩이나 폐하께서는…….”

“폐하께서는 나를 벌할 핑계만을 찾고 있으시겠지. 회군 명령을 전했어야 할 전령은 실종되었고, 와야 할 군은 여전히 변경에 머무르고 있으니. 귀족들의 원성을 가라앉힐 핑계가 필요하시지 않나.”

루크의 담담한 말에 근위대장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실망도 기대도 없는 저 메마른 눈을 언제 보았더라.

오래전, 전장으로 내쫓기면서도 원망 한마디 없이 담담히 고개를 조아리던 소년.

늘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그 얼굴이, 장성한 지금의 황자와 겹쳐졌다.

저도 모르게 루크의 시선을 먼저 피한 근위대장은 기사들을 향해 나직이 지시했다.

“성기사들을 모두 다른 궁으로 옮긴 후, 신관을 불러 기도를 부탁하도록. 폐하께는 내가 직접 보고를…….”

“그럴 것 없네.”

어디선가 날아든 황제의 목소리에 그의 말이 끊겼다.

아마 보고를 듣고 있던 차였던지, 우드와 콜린, 필립과 그리엄을 대동한 황제가 다가와 엉망이 된 별궁의 잔해를 훑었다.

곳곳에 흩뿌려진 피와 반쯤 날아간 궁벽을 확인한 황제가 착잡한 눈으로 루크를 바라봤다.

“부상을 입었다더니, 아주 멀쩡하다 못해 몸이 근질거리더냐.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전장이 아니라 황궁이니라.”

누가 봐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금 전 사도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던 탓에, 루크의 손에서는 채 식지 않은 그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도로테아는 작고 어린 소녀였으니까.

파비안은, 아무 말 없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상황을 방관하는 도로테아를 힐끔거렸다.

도대체 뭘 어찌했기에.

소녀의 옷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피 묻은 접선은 이미 황자에게로 넘어갔고.

‘가만, 설마 전하께서는 애초부터 본인이 뒤집어쓸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문 채 변명 한마디 없는 루크를 보는 파비안의 눈이 커졌다.

“네가 황태자의 잘못을 추궁했을 때, 나에게 자격이 되는 이를 군주로 세우라고 했을 때…… 나는 곤란하면서도 네가 자랑스러웠다. 마냥 내키는 대로 칼춤을 추고 싶은 게 아니라, 제국의 황자로서 이 나라를 진심으로 생각한다 믿었기에.”

“…….”

“어찌하자고 일을 이리 만들 수가 있느냐. 황녀를 생각한다면, 그 아이의 아군이 되어 줄 사도를 이리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칙사의 목숨을 구하려고 그랬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속이 과했어.”

실망이 깃든 황제의 목소리에 루크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계집아이가 뭐라고 제가 생각 따위를 하며 움직여야 합니까?”

“뭐라.”

“부족한 군비 대신 떠맡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이름까지 주었으니 저는 제 몫을 다한 것이 아닙니까.”

“…….”

“폐하께서야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제게는 이제 더 얻을 것도 없는 아이입니다. 그리 소중하시면 직접 달래시지요.”

아무리 그래도, 이름을 부여한 딸에게 하기엔 너무나 냉랭한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황제가 얼굴을 굳혔다.

설마하니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아들과의 재회가 이토록 엉망이 될 줄은 몰랐다.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서늘한, 온기 한 점 없는 루크의 눈을 마주한 황제는 고개를 돌리고 착잡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7황자를 궁에 연금하고 당분간 근신토록 하라. 이 일은 차후 칙사가 깨어나는 대로 내게 알리도록 하고.”

언제나 그랬듯 제게서 먼저 등을 돌리는 황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루크 곁으로 기사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섰다.

“황자 전하, 궁으로 모시겠습니다.”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루크는 도로테아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발을 뗐다.

파비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루크를 바라보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우드의 그림자에 흠칫했다.

놀란 기색 없이 작은 소녀를 안아 올린 우드가 나직이 물었다.

“네 짓이냐?”

“응.”

변명 하나 없이 곧바로 인정한 소녀의 말에 그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꼭 그래야만 했나. 아버지처럼 여기던 변경백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황자가 아니냐.”

아무리 사이가 데면데면하다고는 하나, 황제는 루크의 친부였다.

그나마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족에게조차 외면받게 만들다니.

“글쎄, 오해받기 싫었다면 굳이 뒤집어쓰지 않았으면 되었을 일이야.”

도로테아는 루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때로는 어설픈 다정함이 독이 될 때가 있어.”

평생을 아비와 아들이 아닌, 황제와 황자로서 서로를 대했던 사이. 그런 사이에 황제가 내리는 어설픈 동정과 친절함이 끼어든다고 한들, 루크에게 의미가 있을까?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말을 섞고 싶지 않아도, 황제가 부르면 그는 그 앞에 당연한 듯 서 있어야만 하지.”

아들도 아니고 신하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도로테아의 말에 그제야 파비안은, 자신이 루크를 만난 장소가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는 알현실이 아니라 연무장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폐하께서는 마음이 아프실 게다. 자식들도, 친우도 다 잃으셨어.”

“어중간한 사람이라 그래.”

착 가라앉은 우드의 말에 답한 도로테아가 덧붙였다.

“근데 그거 알아? 어중간한 인간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해.”

본인이 쑤신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쓸데없이 친절을 베풀어 봉합을 해 버리거든.

스스로 상처를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이야.

차라리 황제면 황제, 아버지면 아버지 노릇을 하지.

이제 와 어중간하게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있지만, 그는 지난날의 자신이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터였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본인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그렇지만 루크는 그런 그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지금의 루크에게는 피나는 상처가 멎을 시간이 좀 필요해.”

어차피 지금 힐데를 만난들, 어설프게 아이를 밀어내기만 할 테니까.

아비로부터 평생을 어중간한 애정만 받아 왔으니, 본인도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상처 입히지는 않을까.

“쟤는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어.”

도로테아의 말에 파비안이 어딘가 먹먹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던 때, 우드가 다시 물었다.

“그런 이유로 사도를 저리 만들었다고? 황자에게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려고?”

“아.”

외마디 말을 뱉은 도로테아가 활짝 웃으며 우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언제 한번 날 잡고 패 주고 싶었거든. 마침 오늘 자진해서 뒤집어써 줄 녀석도 있겠다, 날뛰어 본 거야.”

“…….”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던 감동이 한순간에 무너진 파비안은 조용히 걸음을 뗐다.

해탈한 얼굴로 황녀가 머무는 궁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물었다.

“스탠은?”

“그 아이라면 필립이 데려올 거다.”

“그렇구나.”

“아주 바쁘게도 쏘다녔군.”

한숨을 삼킨 우드가 그녀를 안고서 마차로 향하며 덧붙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도로테아가 말없이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그 집에는 이제 더 이상 손녀에게 웃어 주며 차를 끓여 줄 후작 부인은 없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

*   *   *

다이애나는 몹시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둘이나 데려온 우드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의 한쪽 손을 잡은 소년은 말쑥하게 차려입긴 했지만 어딘가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그리고 반대쪽 손을 잡고 있는 소녀는 뭐랄까.

어린아이답지 않은 여유로움이 넘쳐 났다.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 소녀의 모습에 다이애나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어머.”

“안녕하세요, 부인. 저는 사라고, 여기는 저희 오빠 스탠이에요!”

“그렇구나. 얼른 들어오렴. 내가 너희의 존재를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우드가 쓰는 방은 저택에 거주하는 기사단용 숙소로,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눈으로 충직한 기사를 탓한 다이애나는 서둘러 데인이 어릴 때 쓰던 방을 비우라 지시했다.

그러고는 능숙한 하녀들을 불러, 아이들을 맡겼다.

“우선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렴. 함께 식사할 때에는 저택의 다른 가족들도 소개받을 수 있을 거야.”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보낸 그녀가 어딘가 뻘쭘한 듯 본인의 방으로 향하려던 우드를 불러 세웠다.

“경은 저와 대화를 좀 하셔야겠어요.”

부드럽지만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우드는 왜인지 모르게 움츠러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티 테이블 앞에 앉아 말없이 차를 홀짝이던 다이애나가 조용히 물었다.

“필립에게서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경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군요.”

“예.”

“저 아이들을 경이 거두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늘 사려 깊고 친절한 다이애나답지 않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설마하니, 전쟁고아라 둘러댄 신분이 마음에 걸린 것일까.

제아무리 그녀가 관대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그녀 또한 귀족 부인이니 어디 출신인지도 알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여차하면 따로 집을 얻어 나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군.’

담담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다이애나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경, 아이들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저 아이들에게 가족이 되어 준다는 뜻입니다.”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도로테아야 일이 해결되는 대로 돌아갈 테지만, 스탠만큼은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떠밀리듯 맡게 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가 짠해졌고, 늘 순수하게 자신을 따라 주는 아이에게 마음이 갔다.

“비록 서툴고 모자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경께서 그러시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군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한 다이애나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답니다. 며칠간은 이곳 저택에서 ‘손님 대접’을 받는다 하더라도, 계속 손님으로 머무를 수는 없지요. 이곳이 아이들에게 집이 되기에도 애매하고요.”

아무리 하이클레어 가문이 우드에게 관대하다 하더라도, 그의 아이들을 귀족 자제로 대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주변에 적당한 집을 얻으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데…….”

머뭇거리던 다이애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참에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시는 것이 어떨까요?”

“……예?”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좋지만, 경께서 늘 아이들과 함께하기란 어려운 일이죠. 무엇보다 아버지가 마음이 맞는 반려와 평생을 함께하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은 없지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야기에 우드가 돌처럼 굳었다.

“물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을 구하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런 마음가짐은 위험하죠. 그저 이참에 서로 마음이 맞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랍니다. 물론 아이가 있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봉록과 환경, 일신의 무력을 생각해 봤을 때 영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좀 무뚝뚝하지만 성실함은 다이애나 자신이 직접 보장해 줄 수 있으니까.

“그, 저는 아직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하기야, 시간은 많으니까요.”

웃는 얼굴로 산뜻하게 대꾸한 다이애나였지만, 얼굴을 보건대 중매를 포기했다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기회를 다시 엿보겠다는 뜻이 더 강해 보였다.

당혹감에 차를 단번에 들이켠 우드에게 다이애나가 새로운 공격을 꺼냈다.

“그리고 육아도 좀 배우셔야지요.”

“……예?”

“지금이야 아이가 어리다지만, 점점 자라게 될 텐데요. 특히 남자아이보다도 여자아이는, 자라면서 섬세한 배려가 필요해요. 경께서 홀로 아이를 키우시겠다고 한다면요.”

그녀가 손뼉을 치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인 중년의 여인이었다.

“여기 벨라 부인은 남녀 쌍둥이와 세 살 터울의 어린 여아를 기른 분으로, 아이들이 자라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실 거예요.”

“…….”

설마하니 졸지에 선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육아까지 배우게 생긴 우드가 넋을 놓았다.

그를 바라보는 다이애나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벨라 부인이라 불린 여인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아 쥐고 토닥였다.

“큰일 결심하셨구려. 총각이 아이를 둘이나 거두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법인데. 그래, 아이들은 지금 주로 뭘 먹이고 있소? 자라날 때에 영양이 굉장히 중요한 법인데.”

이제까지 여관 밥과 군대 밥, 사냥해 온 고기를 구워 먹여 왔던 우드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옷은 주로 어디서 지어 입히오? 경 봉록이 부족할 것 같진 않지만, 아이의 옷이라는 게 돈만 많이 들인다고 해결되지는 않거든. 특히 여자아이는.”

도로테아가 뜯어 온 돈 덕분에 본인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둘 다 씻는 것은 따로 챙기고 있는 거겠지? 잠은 어떻게 재우고 있소?”

그런 부분을 고려해 본 적 없던 우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물론 지금은 좀 이르다 싶겠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보면 재능을 미리 찾아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그래, 아이들은 어디에 흥미가 있고 무엇을 좋아하던가?”

본인의 앞날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드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다.

“전 식사를 준비하러 가 봐야겠어요. 저녁 무렵엔 코제트도 아이들을 보러 오겠다고 했으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만찬을 열까 해서요.”

다이애나의 말에 벨라 부인에게 잡힌 우드가 눈을 끔뻑였다.

죄를 뒤집어쓰면서까지 황제와 양녀를 피했던 루크를 두고, 그 어떤 이유든 간에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나라는 놈은 어찌 그리 공감 능력이 없었단 말인가.

살다 보면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자리라는 것도 생기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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