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스탠은 고뇌에 가득 찬 얼굴로 자신의 침대를 차지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오늘로 삼 일째,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남자는 여전히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동도 없이 곤히 자고 있는 남자가 걱정되어 가슴에 귀를 대어 보면, 미세하지만 숨이 들락날락하는 움직임과 함께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는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거든.”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를 내버려 두었다.
자느라 끼니를 놓치고, 물을 마시지 못해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본인이 데려왔으면서.”
스탠이 한숨과 함께 남자의 고개를 무릎에 뉘인 채 입가로 물을 조금씩 적셔 주었다.
“사라가 하도 가축이니, 양이니 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돌봐 줘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이 생긴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샘솟는 의무감에 루크의 옷을 갈아입혀 주고 난 스탠이 흘끗 문밖을 바라보았다.
‘다들 계속 바쁘네.’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우드는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은 저녁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창밖을 보면 훈련장과 성 이곳저곳을 바삐 누비는 그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정작 말을 섞을 수 있는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서운했지만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스탠을 떼어 놓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건 아닐 테니까. 새벽녘에 조심스레 들어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다정한 손길을, 잠결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걘 아직도 자는구나?”
열린 문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민 도로테아의 말에 스탠이 반가운 듯 외쳤다.
“사라!”
도로테아는 동생을 보며 환히 웃는 스탠을 보다 가볍게 폴짝 뛰어 침대 위로 올랐다.
“그냥 내버려 둬도 될 텐데. 목이 마르면 알아서 깨지 않을까?”
“모처럼 곤히 자고 있는데 갈증으로 깨울 필요는 없잖아. 너도 푹 자게 두는 것이 좋을 거라며.”
도로테아는 성실히 답하는 소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흐응, 하고 의미심장한 콧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복도에서 이들을 감시하던 보초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드는 혹여라도 라파예트가 상황에 승복하기는커녕, 마지막 발악으로 봉기를 밀어붙이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듯 지하 감옥에 사람을 붙였다.
그러나 노인은 다른 이들과 접촉을 하기는커녕 순순히 관에 ‘이름’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을 대로 들어 눈이 침침하고 손목이 시큰거리는 그에게는 고된 노동일 텐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깊은 눈으로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조각해 나갔다.
옆에서 훌쩍이는 영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후회하는 걸까. 혹은 속죄하는 걸까.’
이제 와서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숨이 멎는 날까지,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새겨 나간다 한들 그의 장기짝이 되어 죽은 이들은 되살아날 수 없었다.
그저 죽음을 ‘올바르게 애도하여’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인도하는 것 외에는.
“사, 사라?”
스탠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도로테아가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소년의 차림새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말했다.
“옷을 좀 더 두껍게 입는 것이 좋겠어.”
“응?”
몹시 뜬금없는 여동생의 조언에 스탠이 얼떨떨하게 제 옷을 내려다봤다.
“별로 춥지 않은데?”
“지금은 그렇지. 밤에는 추울 거야. 바깥공기는 여기와는 다르니까. 게다가 옷이 두꺼워야 이리저리 굴러도 덜 아프잖아.”
밤의 바깥공기? 이리저리 굴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에 스탠이 눈을 끔뻑였다.
도로테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세한 설명보다는 웃는 얼굴로 소년을 향해 종용했다.
“갈아입혀 줄까, 오빠?”
“돼, 됐어! 내가 입으면 돼!”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소년이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갔다.
문을 빠져나간 스탠이 우당탕거리며 옆방의 옷장 문을 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도로테아가 흘끗,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루크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것들은 아무리 숨기려 들어도 숨겨지지 않는 법이야. 제아무리 얼굴을 감추고 살았어도, 전쟁 영웅을 동경하는 병사들의 눈을 속이기란 힘들지.”
제국의 황제는 제국의 위신을 세울 요량으로 몇 번이고 소년 황자의 개선 행진을 요구했으니, 투박한 투구 아래 보이는 앳된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이 한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리 단속한다 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발 빠른 이들이라면 이미 실종된 7황자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쯤은 알게 되었을 터.
“곤란하단 말이야.”
이곳 요새는 이제야 겨우 발걸음을 뗐다.
리안이 열심히 삐약거리며 동분서주한다고는 하나, 대개의 일 처리를 우드와 함께 해 나가며 배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콜린 곁에서 어쭙잖게 일을 떠맡곤 했던 우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요새가 정리되지는 못했겠지.
‘이 상황에서 황자의 행방을 눈치챈 약삭빠른 인간들이 찔러 오는 건 달갑지가 않단 말이지.’
결국 여기서는 7황자의 존재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선수를 쳐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두는 쪽이 더욱 안전할지도 모르지.
다리를 달랑이던 도로테아가 손을 뻗어 창백한 뺨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무슨 꿈을 그렇게 달게 꾸는 걸까.
평생의 삶이 고단했던 황자는 깨고 싶지 않은 듯,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저 아래 깊은 곳으로 숨겨 두었다.
억지로 끄집어내어 일으켜 세우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이번만이야.”
어찌 되었건 그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한 것은 도로테아니까.
“좀 더 자게 해 줄게.”
인심 쓴다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루크를 토닥여 준 도로테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대신 일어나면 내 말 잘 듣는 거다?”
그래야 예쁨받는 양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여러 의미가 담긴 소녀의 속삭임에, 순간 잠들어 있던 루크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움찔했지만 그뿐이었다.
황자는 다시 밤이 올 때까지도, 깨지 않았다.
* * *
으슥한 밤, 마차 한 대가 검문소에 조용히 멈춰 서 성문 통과를 요청했다.
요 며칠 사이 요새를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출입을 막았음을 알고 있는 문지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차로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살짝 열린 마차 창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도로테아였다.
그녀를 알아본 문지기의 눈이 커졌다.
“너는……!”
“아버지께서 당분간 요새에 있기보다는, 타 영지에 가서 기다리라 하셨어요. 여기는 위험하니 오빠와 나를 챙겨 줄 수 없다고요.”
또랑또랑 말하는 목소리를 듣던 보초병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새를 봉쇄하라고 명한 인물이 바로 우드였기 때문이다.
“여기, 통행증도 있는걸요.”
도로테아가 야무지게 내민 통행증을 본 병사 둘이서 찜찜한 듯 시선을 교환했다.
하이클레어 가문의 인장이 찍힌 통행증은 진품이 확실했다.
게다가 그들 또한 자식을 둔 어엿한 아비다 보니, 어린아이 둘을 위험한 요새에 둘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는 바가 있었고.
“한번 확인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아버지는 지하 감옥에 내려가 계세요. 전 영주님과 독대 중이라 만나기 힘들 텐데, 그럼 밤새 여기서 묶여 있어야 하는걸요?”
“…….”
잠시 고민하던 병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으로 통행증이 있는 데다, 마차를 탄 도로테아가 직접 요새를 떠나는 목적과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던가.
흘끗, 눈을 돌려 말을 모는 마부를 보아하니 확실히 검을 쥐어 본 기사가 틀림없었다.
기사까지 딸려 어린 딸과 아들을 피신시키는구나.
납득한 병사가 통행증을 돌려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조심히 가거라. 밤이 추우니 창문을 꼭꼭 닫아야지.”
“네, 감사합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창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마차가 빠른 속도로 요새를 빠져나갔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앉은 도로테아가 맞은편의 상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렇게 말하면 되나요, 언니?”
“누가 네 언니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도로테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마치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를 보듯, 미물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기저에는 경멸과 혐오가 깔려 있을 터였다.
도로테아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담요로 꽁꽁 싸맨 루크를 바라보았다.
“숨을 쉬기 어렵지 않을까요?”
“성가시게 굴지 마라. 그나마 네게 이용할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살려 두지도 않았어.”
딱딱한 목소리에 도로테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옆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스탠을 살폈다.
어린 나이에 과한 수면제를 복용했다가는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경계심이 옅단 말이지.’
처음 보는 낯선 하녀가 내미는 음료를 덥석 받아 마실 만큼.
유독 타인의 호의를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그가 애정에 굶주렸기 때문일까.
그동안 잘 먹고 지낸 덕에 윤기가 흐르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마차에 몸을 기댔다.
조세핀 아르투아는 여전히 섬뜩하리만큼 날카로운 눈을 한 채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손에 들려 있는 단도로 언제든 그녀와 스탠을 찌를 수 있다는 듯이.
‘아르투아 가문은 순혈 귀족주의가 유독 강하다고 들었는데.’
7황자의 출신이나, 허드슨 블랑의 출신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허드슨이 실종되고 리안을 중심으로 요새가 개편되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받았을 때,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은 일찌감치 알아챘을 터.
설마 7황자를 손에 넣어 황권을 차지하는 쪽으로 빠르게 방향을 바꿀 줄이야.
아르투아의 가주가 이렇게 대담한 결정력을 지닌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니, 야심이 있는 쪽은 오히려…….
“7황자 전하와 결혼하실 거예요?”
도로테아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조세핀은 좀 전부터 제 신경을 툭툭 건드리는 어린 소녀를 짜증스레 바라봤다.
마주한 새까만 눈이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찜찜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은 소녀의 존재가 필요했다.
혹여 이 근처를 다니던 순찰대와 마주하기라도 한다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
“그럼 언니는 황자비가 되는 건가요?”
“쓸데없는 소릴.”
조세핀이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황자비라니.
고작해야 그따위 것을 바라고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여길 왔을까.
덜떨어진 아비는 허드슨과의 연락이 끊겼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전전긍긍이었다.
황궁의 널리고 널린 고귀한 영애들을 두고, 고작해야 시녀 따위에게서 본 황자를 제 핏줄이라며 보듬는 황제 따위에게 죄를 고하겠노라는 헛소리까지 지껄였다.
‘그 욕심 많은 노인네가, 죄를 고하면 순순히 감안해 준다던가.’
그걸 빌미로 목에다 목줄을 걸고 죽을 때까지 끌려다녀야 할 터였다.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평생 머리를 조아리고 사느니, 차라리 그자의 목을 베고 그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낫지.
도로테아는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연신 자신의 팔목을 들여다보는 조세핀을 관찰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사술의 흔적은 익숙했다.
‘여기저기다 눈과 귀를 심어 놓았구나.’
하기야, 제 잘난 줄 아는 인물일수록 구슬리기는 더 쉬울 테지.
두 눈에 가득 들어찬 탐욕과 그에 비해 아둔한 머리, 혈통에 가진 쓸데없는 아집 같은 것들이 똘똘 뭉친 여자를 바라봤다.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남의 집 양을 훔치려 들면 쓰나.’
이대로 그녀와 함께 아르투아 영지로 가, 이미 뿌리를 깊이 내린 로헨의 잔당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으나……
생각에 잠겼던 도로테아가 고개를 들었다.
정령이 바람을 타고 실어다 준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었다.
이윽고, 소녀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서렸다.
* * *
그 무렵, 메릴린은 키엘과 함께 총사령부에 합류하고자 길을 떠나고 있었다.
며칠이나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부상을 입거나 탈진하는 병사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에서도 메릴린은 지친 기색 없이 그들을 다독였다.
“영애의 체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응이 몹시 빠르시지 않습니까.”
풀숲에서 튀어나온 벌레 한 마리와 맞닥뜨려도 엉엉 울며 저택에 틀어박히는 것이 귀족 영애들 아닌가.
그렇기에 병사들이 메릴린을 보는 모습은 흡사 믿음직한 지휘관을 보는 것 같았다.
부관의 진심으로 감탄한 목소리에 메릴린이 얼굴을 붉혔다.
“별거 아니에요.”
체력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그녀가 받았던 훈련의 가장 첫 번째 성과였다.
‘나라고 그런 걸 배우고 싶었겠냐고.’
그러나 한 번 ‘죽은 존재’를 맞닥뜨렸던 메릴린은 그 후에도 무수히 인간이 아니거나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와 접촉했으며,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체력 훈련을 했던 것은, 육신이 강건해지면 삿된 것들이 달려들지 않는다는 도로테아의 충고 덕분이었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 스산한 숲의 맹수 소리?
그런 것들이 한밤중에 귀에 때려 박히는 죽은 자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대단할까.
오히려 살아 있는 존재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며칠만 더 이동하면, 곧 사령부에 도착하겠군요.”
키엘이 부드럽게 말을 건넨 그 순간이었다.
주변 정찰을 보낸 정찰병이 돌아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키엘의 눈이 가늘어진 것을 본 메릴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전방에 조금 수상해 보이는 마차가 지나고 있다는군요.”
“지금 이 시각에, 이런 곳에서요?”
아직 새벽 동이 트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근처에 있는 영지라면, 고작해야 험준한 요새뿐인데 그곳은 최근 성문을 봉쇄하고 오가는 이들의 출입을 금했다 들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일행도 카메르 요새로 향하는 대신, 곧장 사령부로 가는 거고.’
의아한 듯 고개를 든 메릴린이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라더냐?”
“아르투아 영지라고 합니다. 듣기로는 카메르 요새에 들렀다 내부 문제로 발이 묶였다가, 겨우 돌아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통행증도 갖고 있고, 실제로도 귀족 영애 같기는 합니다만…….”
“뭔가 수상쩍은 기미가 있나?”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이 고작해야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와, 귀족 영애인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요.”
“아르투아라…….”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하던 키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릴린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마차를 가로막은 정찰병 두엇과, 형형한 살기를 겨우 감춘 마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달려 나온 어린 소녀가 메릴린의 품으로 폭 파고 들었다.
앳된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고개를 든 소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 주세요, 언니!”
메릴린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