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콜린의 얼굴 가득, 경악스런 기색이 서렸다.
- 이미 육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혼령과 인간 간의 혼혈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주 간혹, 일어나는 일이라고 들었어.”
느릿하게 손을 뻗어 라파예트를 뒤로 물린 도로테아가 허드슨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진면목을 꿰뚫고도 공포는커녕 꺼리는 기색조차 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허드슨은 몹시 즐겁게 웃었다.
그의 키들거리는 목소리가 침묵이 감도는 공간을 메웠다
“확실히, 내게 참으로 좋은 친우야. 우드 경은.”
“…….”
“그저 잘 여물어, 그 누구보다 먹음직스러워지길 바랐을 뿐인데 뜻밖에도 귀한 선물을 내 앞에 가져다주다니.”
귀한 선물이라.
도로테아는 저를 향해 입맛을 다시는 반쪽짜리 인간을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탐욕스런 시선이 그녀를 훑었다.
“너를 먹으면 좀 더 재미난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구나.”
그동안 호적수도 없는 이 요새를 휘젓고 다니며 얼마나 배를 불렸는지, 허드슨의 뒤로 길게 뻗은 그림자가 유독 짙고 커다랬다.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한 주제에, 욕심은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눈앞의 자신을 두고 잡아먹고자 한다는 헛소리가 튀어나올까.
저것이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갖췄더라면 진작 꽁지를 빼고 도망쳤을 것이다.
‘뭐, 다행이지.’
덕분에 저쪽의 눈도 가린 셈이니.
도로테아가 흘끗, 뒤를 돌아봤다.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라파예트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죽은 자’의 밤을 맞닥뜨린 노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도대체…… 저자는, 아니, ‘저건’ 무엇이란 말인가!”
저들의 계획보다 한발 앞서 요새를 지배할 준비를 모두 끝낸 허드슨으로서는 굳이 ‘밤의 모습’을 숨길 까닭이 없었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새빨간 눈과 길게 찢어진 입, 코를 찌르는 사취와 괴이하게 튀어나온 어깨뼈까지.
사람의 탈을 벗은 그의 모습은 인간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자아냈다.
뒷걸음질 치며 헛구역질하던 라파예트가 제 앞에 선 조그마한 소녀의 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드 경은, 우드 경은 어디 있느냐? 어찌 네가 이곳에 왔어?”
도로테아는 생긋 웃으며 제 품에서 미리 만들어 놓았던 호신부(護身符)를 꺼내 그에게로 건넸다.
“아버지께서는 진작 이자를 의심하고 계셨어요. 라파예트 경을 지키기 위해 제게 이것을 건네셨죠.”
알 수 없는 붉은 문양이 가득 새겨진 부적을 받은 라파예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도로테아를 바라봤다.
“네가, 어찌…….”
고작해야 어린 소녀에 불과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널 보냈단 말이냐.
도로테아가 생긋 웃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후작 영애를 보필하며 그분의 뜻에 따르는 기사니까요. 영애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미리 예견하고 계셨답니다.”
“……!”
“경께서는 곧장 카메르 백작에게로 가, 성문의 출입을 통제하라 이르세요.”
“무슨!”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후작 영애가 신임하는 기사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이미 경의 계획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불온한 일들도 모두.”
도로테아가 턱을 치켜든 채 나직이 말했다.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소녀의 말에 노인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알고, 계신다고?”
“실패한 계획을 끌어안고,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려 경의 동료들까지 모조리 저승길에 동행시키고 싶지 않다면.”
도로테아가 냉랭한 목소리로 명했다.
“카메르 백작에게 가 위급함을 알리세요. 지금 당장.”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말없이 서 있던 기사 중 하나가 라파예트를 들쳐 업었다.
이윽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떠난 것을 확인한 도로테아가 허드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굳이 라파예트 일행을 쫓을 생각이 없다는 듯, 도망가는 이들을 순순히 보내 주었다.
“고귀한 희생이로구나.”
그녀를 바라보며 꺼낸 허드슨의 첫말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마치 나비를 꾀어내는 꽃처럼 달콤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어린아이를 미끼로 던진 저들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지.”
단호한 답에 허드슨이 어깨를 흔들어 가며 웃었다.
“그렇지만 너는 여기에 이렇게 서 있지 않느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뻔히 알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덧없는 존재란 말인가.
허드슨은 먹음직스럽게 식욕을 돋우는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네 희생은 참으로 덧없구나. 내 오늘, 감추어 두었던 나의 귀여운 종복들에게 자유를 주었단다. 아마 네가 그리 사랑하는 네 아비도, 희생까지 해 가며 구하려 한 저 모자란 인간도 내 종복들의 먹이가 될 테지.”
“그렇구나.”
덜떨어진 영주가 끝까지 상황을 파악 못 하고 날뛰면 어째야 하나, 걱정했는데 본인이 본색을 드러내어 주었다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하기야 ‘지는 것’을 전혀 상정하지 않았기에 남김없이 드러낸 것일 테지만.
도로테아는 마치 자신이 인계 최강이라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연신 침을 흘려 대는 귀태를 바라보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들을 보낸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란다.”
도로테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너 또한 모르지 않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것을 배척한다.
지나치게 약한 것, 괴이한 것, 본 적 없는 낯선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힘을 쓰는 것.
“너만큼이나 나도 인내하고 참아왔단다.”
오늘 이렇게 날뛸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소녀의 말에 허드슨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너는 나를 처음 겪는 것이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너를 상대해 본 이들의 기록들을 낱낱이 알고 있단다.”
다정한 스승님께서는 ‘힘’을 타고난 이들이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했었는지 자기 전에 읊어 주시고는 했지.
한 자, 한 자…… 단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해 두려고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몇 번을 되뇌었는지, 과연 너 따위가 알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친우도 가족도 없이,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나를 제물로 바치려 드는 각다귀들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분만이 유일한 내 사람이었으니.
“나를 상대해 본 기록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세상에 사람의 태에서 탄생한 귀(鬼)가, 너뿐이라고 여겼니?”
도로테아는 친절히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가엾고 어리석은 귀태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가 두 손을 이용해 허공에 반원을 그리자, 그 느릿한 움직임을 바라보던 허드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북방은 감중년이니, 자오자는 감방지킨 휴문부장 불러내어 휴(休)문을 지키소서
영롱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허드슨의 양팔이 뒤로 확, 비틀어 꺾였다.
우드득!
관절이 꺾이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신체 곳곳에서 들려왔다.
축인간방은 간상년이니, 축오자는 생문부장 불러내어 생(生)문을 지키소서
기기긱.
고작해야 여덟 개의 문 가운데 두 개의 문을 닫았을 뿐인데 허드슨의 양팔과 양다리는 기괴하게 비틀어져 돌아오지 못했다.
사방에서 옭아매는 경(經)소리에 허드슨의 입이 괴이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너어어어-!”
그 순간이었다.
주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자극받은 창귀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작해.”
도로테아의 말에 곁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콜린이 낫을 높이 들었다.
달빛 아래 날카로운 날이 반짝일 때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귀태의 령(霊)에 매여 있던 가여운 넋들이 하나 둘 해방되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의 혼백을 베어 나가는 사이 도로테아는 팔다리가 묶인 채 바르작거리는 귀태를 향해 다가가 매섭게 뺨을 내리쳤다.
새빨간 눈에서 끈적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가 네게 감히, 창귀를 부르는 법을 알려 주었니?”
감히 산 자들을 귀의 노예로 만들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트러뜨린 무도한 존재가.
입매를 비트는 허드슨을 보던 도로테아는 답을 기다리는 대신 다시 입을 열었다.
묘동방은 진하련이니 묘오자는 상문부장을 불러내어 상(傷)문을 지키소서
목을 죄어 오는 강한 고통에 허드슨의 입에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달콤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듣는 이의 귀를 망가뜨릴 만큼 깊고 짙은 사기가 담긴 비명이었다.
“꿇어.”
단 한마디였다.
그 나지막한 한마디의 말에, 그는 이제까지의 발버둥이 무색할 정도로 무력하게 어린 소녀의 발치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주위의 창귀들을 모조리 해방시킨 콜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신기를 높이 들어, 벌벌대는 존재를 멸하려던 순간이었다.
“기다려.”
나지막한 말에 신기가 허공에서 멈췄다.
“이건 아직 쓸모가 남아 있으니.”
“케켁, 케에엑.”
길게 혀를 쭉 뺀 채 연신 가쁜 숨을 들이켜는 귀태를 향해 천천히 상체를 숙인 도로테아가 그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저 무덤에 있는 육신들은 모두 허주(虛舟)더군. 어딘가 네가 창귀를 부릴 매개를 숨겨 두었을 터.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할 혼들을 묶어 둔 봉신체는 어디 있니?”
혀와 목이 봉인된 귀태는 몸통을 바르작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답을 할 수 없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던 도로테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결론 내렸다.
“답하기 싫다니,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허드슨의 머리카락에 닿은 그녀의 손 아래 요요한 빛이 스몄다.
남의 머릿속은 헤집어 보았어도,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인 적은 없는 귀가 그 고통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손을 뗀 도로테아가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흘끗, 반쯤 망가져 있는 귀태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소녀가 이미 단단히 돌처럼 굳어진 팔 한 짝을 움켜쥐었다.
질질질.
몹시도 괴상한 장면이 밤늦은 거리에 연출되었다.
자그마한 소녀는 제 몸의 두 배는 될 법한 성인을, 팔 한 짝만 쥐고서 끌고 가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 * *
그 시각, 깊은 밤임에도 깨어 있던 리안은 알 수 없는 충동에 침실을 벗어나 복도 밖을 배회했다.
그러다 아주 멀리서, 희미하지만 생경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스으윽- 쿵! 스르르- 쿠웅!
무언가가 질질 끌려오다, 둔탁하게 어딘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소리는 점차 그가 있는 곳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이 움직이질 않아.’
왜인지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붙은 발을 내려다보던 그는 뒷목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느낌에 눈을 끔뻑였다.
이윽고 희끄무레한 형체가 어둑한 복도 끝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리안 경이로군요.”
복도를 가로질러 닿은 앳된 목소리가 몹시 귀에 익었다.
그 조그마한 형체의 정체를 알게 된 리안이 긴장을 풀고 도로테아를 향해 다가갔다가, 기겁을 했다.
“……!”
경악스런 얼굴을 본 도로테아가 싱긋 웃더니,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온 ‘그것’을 흘끗 내려다보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아아,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그 자리에서 처리해 버리려 했는데, 쓸데가 좀 남아 있어서요.”
생김새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낯설되, 익숙한 차림새를 본 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설마…… 허드슨 경인가?”
떨리는 목소리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태연한 얼굴을 보던 리안이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물론이고 차림새 그 어디에도 피 한 방울 묻어 있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특출한 아이라 하더라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저 대단한 허드슨 경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우드 경이 쥐여 보낸 것인가?’
아무리 영민해도 아직은 어린 소녀에 불과한데.
어찌 그는 이 어린아이에게 이토록 과한 것들을 보여 주고 맡기는 거지?
오늘따라 유독 왜소한 소녀의 몸과, 천진난만한 눈을 내려다보던 리안이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백작께서 알게 되면 네가 위험해진다. 차라리 목숨을 끊고 불에 태워 실종 처리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게야. 내가 하마.”
증거를 인멸하여, 그녀가 엮이지 않게끔 도와주겠다는 말에 도로테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특하기도 하지.”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바라보며 말하듯, 내려다보는 말에 리안이 흠칫했다.
은은한 미소를 띤 도로테아가 손을 뻗어 리안을 토닥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건’ 지금 넘겨줄 수가 없어요.”
“…….”
“잃어버린 새끼 양이 한 마리 있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지 집을 찾아오질 못하고 있거든요. 이자는 내 양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나침반이 되어 줄 예정이라.”
“나침반이라고? 이미 반쯤 죽어 있는 상태인데?”
멍한 얼굴로 되묻는 리안에게 도로테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침반에 팔이나 다리가 필요하진 않잖아요. 아직 쓸모 있어요.”
상대가 귀태임을 모르는 이상, 잔인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리안은 저런 상태의 인간(?)을 질질 끌고 오고도 태연해 보이는 소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우드 경은, 너를 어떻게 기른 거지?”
어린아이를 어떻게 길러 내면 너처럼 되어 버리는 걸까.
머뭇거리던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우드 경이 네게…….”
비정상적인 일을 시키는 건 아니니?
말도 안 되는 훈련을 소화시키고, 아이에게는 필요 없는 사고방식을 주입한다거나.
여러 말들이 입안에 맴도는 사이 도로테아가 그런 그의 속내를 짐작이라도 한 듯 웃었다.
“마주한 김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
“사람이 성장하려면 말이에요. 가르침을 받는 어린 제자에서, 어엿한 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나요?”
몹시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눈을 끔뻑이며 아무 답도 하지 못하는 리안을 지그시 바라보던 도로테아가 말을 이었다.
“스승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세상을 가르쳤듯이, 제자는 스승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바라보고 깨쳐야 할 순간이 와요.”
“…….”
“남의 눈으로 보는 시선에는 늘 한계가 있죠. 껍질을 깨고 나오려면 스승이 만들어 준 안락한 집을 직접 부수는 것이 좋을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도로테아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허드슨을 흘끗 내려다보다,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리안의 눈을 바라보며 답지 않게 친절히 말을 보태어 주었다.
“라파예트 경은 봉기(蜂起)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리안 경에게 말하던가요? 이곳 요새의 무능한 책임자 대신 변경백을 그 자리에 올려야 한다고?”
리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라고 해서 스승을 향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문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것은,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존경하는 스승에게 불경을 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상하잖아요. 라파예트 경은 어찌 그리 변경백의 ‘복귀’를 확신할 수가 있지요?”
“……!”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물론, 훨씬 더 많은 희생양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리안 경을 차기 카메르 백작으로 만들 생각도 아니라면요.”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던 도로테아가 별안간 고개를 홱 돌렸다.
뒤를 바라보던 소녀가 이런, 하고 혀를 한 번 차더니 리안을 향해 마무리 짓듯 말했다.
“의심해 보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여요. ‘제대로’ 판을 보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사지로 걸어 들어가게 될 수도 있어요. 그때 제게 건넸던 장부에 적혀 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병사들이 그랬듯이.”
“넌…… 도대체 누구지?”
홀린 듯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리안이 물었다.
도로테아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웃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여운 청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도움을 줄게요. 물론 당신이, 불편한 진실이 담긴 금단의 상자를 열고 싶다면.”
도로테아의 말에 답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리안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듣지 마. 불편한 진실 따위를 굳이 알아서 뭐하게?
태어난 순간부터 ‘불길하고’ ‘천한’ 태생이었던 너를 귀하게 여겨 준 건 네 스승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재목이라 아껴 준 스승을 의심할 생각이야?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들, 네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이윽고, 결정을 내린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