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175화 (175/242)
  • 175화

    일행이 성문 앞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멈춰라!”

    요새의 문 앞을 지키던 수비병이 일행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투구를 눌러쓴 이들의 형형한 눈빛에 두려움을 느낀 스탠이 몸을 움츠렸다.

    우드가 말없이 소년을 다독이는 사이, 그레함이 보고했다.

    “탈영병을 인계하러 왔소.”

    “저들은 뭐지? 당분간 민간인은 성내로 들이지 말라는 영주님의 당부가 있으셨다만.”

    “이쪽은 탈영병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과 군의 보상 등을 협의하러 오신 우드 데버 경과 그 일행이오.”

    “……?!”

    성문을 지키던 병사 중 하나가 멈칫했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듯, 우드를 보는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곁에 있는 동료의 그런 반응을 미처 보지 못한 문지기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탈영병 관련은 행정관께서 처리하실 거요. 그보다는 저렇게 어린아이들을 줄줄이 달고 와서 보상 문제를 협의한다고? 이곳은 요새요. 전시 상황으로 모두가 다 날이 곤두서 있는데, 마치 소풍이라도 나오듯 저리 태평하게…….”

    못마땅한 기색이 잔뜩 서린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의외로 그동안 가만히 뒤를 따르던 허드슨이 다짜고짜 쥐고 있던 검으로 그를 내리그었기 때문이었다.

    “히이익.”

    “무, 무슨 짓입니까, 허드슨 경!”

    동료가 한순간에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본 경비병 중 하나가 혼비백산해 소리쳤다.

    허드슨은 몹시 즐거운 기색으로 제 검에 맞아 널브러진 이를 내려다보았다. 검상을 입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발발 기어 달아나는 꼴이 퍽이나 재미있다는 눈치였다.

    그는 뚝뚝 핏물이 흐르는 검날을 만지작 대며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하이클레어 후작 각하에게 직접 작위를 받은 기사의 앞을 가로막지? 감히 일개 성의 수비병 따위가 준자작의 대우를 받아야 할 기사를 향해 입을 놀리다니. 서열이 엉망이로군.”

    “무, 무슨……! 지금은 전시요! 들어오는 모든 이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검문에 응할 의무가……!”

    하얗게 질린 채 반박하는 수비병을 보던 허드슨이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검을 높이 들고, 덜덜 떨고 있는 이들을 향해 내리그었다.

    싸울 의사조차 없는 버러지를 향해 검을 드는 손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채앵-

    다음 순간 바닥에 떨어진 것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허드슨 블랑이 쥐고 있던 검이었다.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상대의 검을 걷어 낸 우드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로 걷어찼다.

    허드슨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멀리 벗어난 제 검을 바라봤다.

    우드가 피가 뚝뚝 흐르는 상처를 부여잡은 이에게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협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오. 아이들이 있어 상황을 늦게 인지한 내 잘못이니, 우선 사과하리다.”

    “…….”

    “부상을 치료하는 것이 좋겠소. 약소하지만 받으시오.”

    품에서 꺼낸 몇 푼을 받아 든 문지기의 동료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혹여 보복을 당할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드슨의 개 같은 성질머리야 이미 진즉 알고 있던 터였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굴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그저 할 일을 하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문지기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불편한 기색이 감도는 상황에서 성문 안쪽의 책임자가 손을 들었다.

    끼기기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지.”

    여전히 말에서 내린 채로 고삐를 잡아끈 우드의 말에 가만히 서 있던 그레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뒤에 멀거니 남겨진 허드슨은 일행이 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 입꼬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이윽고 그가 허리를 굽혀 가며 광소(狂笑)하기 시작했다.

    ‘실력이 늘었어! 그때보다도 더 대단해졌다!’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왔든, 무엇을 달고 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망가진 것이 아니었어.’

    도리어 기세를 감출 만큼이나 스스로를 잘 통제할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몸에 견고한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날것의 살기는 사라졌을지언정, 그 몸 안에 서린 힘은 더욱 강대해졌다.

    마음을 가득 채웠던 실망감이 이윽고 환희가 되어 그를 채웠다.

    “흐흐흐.”

    그가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쪽을 바라보던 그 무심한 눈,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이 가리고 있던 조그마한 소녀의 몸.

    ‘그때보다도 더 우드 데버를 뒤흔들 수 있는 패가 많아졌군.’

    눈앞에서 산 채로 불에 태워 줄까?

    잡아다 인형 같은 팔과 다리를 한 짝씩 찢어다 선물로 줄까?

    그 어린 계집을.

    마치 불면 날아갈 듯 품에 안고서 놓아주지 않던 어린 소녀를 떠올린 허드슨의 눈이 번뜩였다.

    “허드슨 경, 이 모든 것들은 상부에 보고될…….”

    “아아, 그렇군.”

    어느새 홀로 남은 허드슨을 향해 힘주어 말하는 성문 경비 책임자를 본 살귀가 싱긋 웃었다.

    “그대들은 반드시 보고해야 할 거야. 오래전 군에서 탈영했던 ‘우드 데버’가 돌아왔노라고.”

    “으아아아!”

    겨우 틀어막고 있던 상대의 상처를 쑤시는 손가락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천천히 손을 거둔 그가 살아 있는 이들을 바라보다, 이가 나가 무뎌진 검날을 보며 흥이 깨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일부러 이래 놨군.’

    검날을 망가뜨렸으니 사람을 베어도 단번에 가르는 맛이 적어질 터.

    남은 이들을 향해 굳이 검을 들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병사들을 향해 허드슨이 키들거렸다.

    “좋아, 오늘은 모처럼 기분이 좋으니.”

    “…….”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팔다리를 분지르는 정도로 끝내지.”

    오랜만에 손맛을 보게 되겠군.

    우드드득.

    허드슨의 손에 망가지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성벽을 울렸다.

    *   *   *

    “…….”

    가만히 말 위에 앉아 있던 도로테아가 뒤를 돌아봤다.

    답지 않게 날카로운 눈을 하고서 허공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스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흠.”

    “사라?”

    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우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상대를 자극했음을 알았던 탓일까.

    도로테아는 저 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멈췄다. 그러고는 조막만 한 손을 뻗어 ‘동생’을 걱정하는 스탠의 머리를 토닥였다.

    “괜찮아. 오늘은 더 이상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응?”

    죽은 자의 비명은 이보다도 더 처절하고 시끄럽다.

    ‘닫아 두지 않으면’ 그 탓에 다른 자들의 소리를 듣기 어려울 만큼이나.

    “앞으로 꽤 곤란해지겠네. 저런 종류의 살귀는 집착을 쉬이 거두지 않거든. 차라리 검을 섞지 말지 그랬어.”

    “어차피 이리될 일이었다. 네 말대로 멀쩡한 놈이 아니니까.”

    지쳐서 자꾸 늘어지는 스탠을 안아 든 우드의 한숨 같은 말에 도로테아가 흘끗 주변을 살폈다.

    영주가 머무르고 있는 저택까지, 곳곳에 굶주린 채 거리에 나와 구걸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마저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의 태반이 낡아빠진 흰색 튜닉이나 해진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한때 군에 몸담았던 자들인 것이 분명했다.

    실전 경험이 없다시피 한 요새의 영주와, 전투에서 패배한 끝에 쫓겨 온 패잔병들이라.

    그리고 그 영주를 쥐고 휘두르는 전장의 살귀까지.

    성안 가득 서려 있는 사기(死氣)가 그녀의 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죽은 자들을 보고 다루는 필연의 생에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해야 할 죽음의 향기일 테지만, 왜인지 낯설게 느껴졌다.

    ‘확실히 이제껏 나는 지나치게 안락한 생활을 누려 왔으니까.’

    마치 동화책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다정함으로 가득 차 있던 정원에, 제가 원하는 색채의 꽃을 채워 넣고 지내던 기억들.

    전생의 고통을 보상이라도 하듯,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던 시간들.

    도로테아는 제 몸에서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린 채 우드의 품에 안겼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지만 이제 슬슬 만날 때가 되긴 했지.”

    “누굴?”

    “이제껏 피해 왔던 작자들.”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지만, 이런 곳에서마저 죽음의 인도자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알게 되겠지.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중간계에서 사문(死門)을 연 어리석은 존재들과 저승의 존재들이 한패인지, 혹은 그저 무능력하여 힘을 빼앗긴 것뿐인지.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한숨이 나오는데 말이야.”

    생사의 무게를 고루 알아야 할 차사가 사적인 목적으로 제 힘을 유용하는 것이나, 사문(死門)을 여닫아야 할 차사가 무력하게 힘을 빼앗긴 것이나.

    어느새 영주관 앞에 다다라, 말에서 내려 그레함의 품에 안긴 도로테아가 한숨을 쉬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야.”

    “…….”

    “그러니 내 있는 힘을 다하여 고통받은 만큼 보상을 셈해 봐야겠다.”

    이미 머무르던 자작령에서 거하게 한바탕 뜯어내고 온 우드는 또다시 뜯어낼 궁리에 여념이 없는 도로테아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또 누굴 등쳐 먹을 생각에 저토록 눈을 빛내고 있는 건지.’

    그러나 제아무리 도로테아를 잘 알고 있는 우드라도, 설마 그녀가 자기를 이리 날려 보낸 신에게서 거한 보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리란 것은 알지 못했다.

    *   *   *

    이곳의 영주 카메르 백작은 어딘가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첫 대면에서부터 우드의 존재를 껄끄럽게 여기는 티를 감추지 않은 채 물음을 던졌다.

    “자네가 하이클레어 후작의 휘하 기사라고? 후작 영애를 보필하는?”

    “예.”

    “그렇다면 곧장 사령부로 합류해야지, 왜 이리로 온 겐가? 요새를 이탈한 탈영병까지 직접 잡아다 주시다니. 후작 각하의 호의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우드는 적의 가득한 목소리로 비꼬듯 말하는 카메르 백작 앞에서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요새의 성주는 나일세. 아무리 그가 사령부의 총책을 맡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자잘한 일에까지 제 사람을 갖다 붙여 감시하는 것은 월권이야!”

    “후작님께서는 요새를 감시하라 명하신 적도 없거니와, 저를 이곳에 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왜 황도에 있어야 할 자네가 손수 이 구석진 곳까지 들어온 건가?”

    그야 당연히 앞뒤 안 가리고 엉뚱한 곳을 뽈뽈 돌아다니는 주인 때문이지.

    심지어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 엉뚱하게도 생판 처음 보는 어린아이의 외양을 하고서 꺼낸다는 말이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라니.

    신에게서 세상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헛소리를 떠올린 우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임을 알아도, 도로테아의 입에서 나온다면 마냥 헛소리로 여길 수 없었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그에 준하는 어려운 일을 해야 하기에 그런 몰골을 취하고 있는 것일 터.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대답하게!”

    백작의 다그침에 우드는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 모든 일이 저 맹랑한 꼬마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핑계를 댄다 하더라도 탓할 수 없으리라.

    “후작 영애께서 실종되셨습니다.”

    “그…… 뭐?”

    카메르 백작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우드는 차분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그분의 마지막 행적이 이곳과 연결되더군요. 이곳으로 향했다고 믿을 만한 기꺼운 물증이 있습니다.”

    백작은 물론이고 곁에 있던 부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제국의 어엿한 후작 영애가, 심지어 그 하이클레어 후작가의 금지옥엽이자 제국 내 유일한 상급 정령사로 이름을 떨치는 그녀가……

    “이, 이곳에 말인가?”

    “예, 아직 전장에 나간 사령부 측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만,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국 전역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폐하께서도 최대한 쉬쉬하며 찾고 계시지만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

    “몹시 송구스러운 부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로 인해 한동안 이곳에 머무르려 합니다.”

    놀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카메르 백작이 다시 미간을 좁혔다.

    그토록 긴급한 사안이라면, 제대로 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입성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무려 후작 영애의 실종인 데다, 사령부에 있는 후작에게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지 않나.

    “그렇다면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주렁주렁 데려오진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제 딸아이가 철이 없게도 아비를 돕고자 따라붙었다가 어느 마을로 흘러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에 탈영병들이 마을을 습격했고, 딸아이를 찾던 중 우연히 탈영병들을 쫓는 옛 전우들을 만나 이곳까지 오게 된 겁니다.”

    갈수록 늘어가는 것은 거짓과 변명이라더니.

    그 누구보다 자연스레 입에 거짓을 담은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든 우드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에 가득 드리운 어둠을 본 백작은 주춤주춤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다소 위화감이 있는 이유였지만 무려 후작 영애의 실종 건이다. 어느 정도 정보를 감추는 것이야 어쩔 수 없을 터.

    거기에 그의 태도로 보건대, 눈앞의 기사는 자신의 권위를 침해할 것 같지 않았다.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백작이 다시 말을 꺼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의 존재가 이곳 요새에는…….”

    “히사르 요새에서 도망친 패잔병들을 성에 모두 들인 까닭에 골치를 겪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불쑥 꺼낸 이야기에 카메르 백작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감돌았다.

    우드가 무뚝뚝한 얼굴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요새로 들어오기 직전 만나 뵌 엘포드 자작께서 감사하게도 성의 곡물 창고를 개방하여 일정 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당분간 보급 걱정은 줄이셔도 될 겁니다.”

    “그자가?”

    그럴 만한 작자가 아닌데.

    워낙 소심한 인물이니 하이클레어 후작가라는 후광에 놀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고 시야가 좁은 작자였다.

    제 배를 불리는 것에나 급급하지, 큰일을 위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일에 신경 쓸 리 없었다.

    “또한 녹슬고 낡은 병장기의 정비를 할 몇몇 대장장이들을 이곳으로 보내올 예정입니다.”

    “그, 그래?”

    맞닿아 있는 이웃 영지의 영주로서, 자작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는 카메르 백작이 뜻밖의 말에 당황하여 주춤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말인가?”

    “예, 그저 감사의 서신이나 보내 드리면 충분할 겁니다.”

    지금과 같이 전쟁이 한참인 상황에서, 대장장이와 같은 귀한 인재들은 영지 밖으로 유출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백작의 눈동자에 가득했던 적대감이 서서히 가라앉으려던 찰나였다.

    “각하.”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접견실로 넘어들어 왔다.

    카메르 백작의 얼굴에 대번 화색이 감돌았다.

    무려 요새의 수장과 독대하는 자리에 양해의 말 한마디 없이 성큼성큼 들어온 허드슨이 입을 열었다.

    “우드 데버 경은 저와 전장을 누비던 전우입니다. 그의 실력이 고강하니,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가!”

    좀 전까지 경계하던 기색은 어디 가고.

    고작해야 보좌하는 기사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백작의 꼬락서니가 볼만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자꾸만 성을 탈출하는 패잔병 무리들 때문에 백작님의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래, 그렇지. 오죽하면 내 자네에게까지 부탁을 하겠나.”

    “저이에게 맡기시지요. 그자들의 신병을.”

    허드슨이 싱긋 웃으며 백작의 옆에 서서 ‘명’했다.

    “실종되신 전(前) 변경백께서도 무척이나 기꺼워하실 겁니다. 자식처럼 아끼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뱀처럼 요사스런 빛을 띤 눈으로, 허드슨은 영주의 귓속에 연신 독을 흘려 넣었다.

    “변경백의 그 훌륭한 평판을 생각해 보면 그가 고작해야 패잔병들을 다루는 일에 실패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만일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가 실패하기만 한다면 죄를 물어 멀리 치워 버리면 그만이니까.

    화색이 도는 영주의 모습에 허드슨은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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