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 (68)화 (68/242)

혼술사 도로테아 68화

“추워.”

메릴린의 말에 제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의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이를 덜덜 떠는 메릴린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온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는데 곁에 앉은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아마 이쪽으로 오고 있는 ‘존재’가 불러들인 어둠 때문일 거예요. 아가씨께서는 그것들이 인간의 육신에 좋지 않다고 하셨거든요.”

병을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착란과 환시를 가져오기도 한다.

짙은 탁기가 마차를 뒤덮자 메릴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벅. 저벅.

마차로 다가서는 무언가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제인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왼손에 무령(巫鈴)을 쥐고서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쿵.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마차가 흔들렸다.

마치 그 소리가 신호인 듯, 멈추다시피 느릿하게 움직이던 마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으, 아…….”

“괜찮아요. 우드 아저씨가 원래 이동 수단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거든요.”

도로테아가 어렸을 때의 우드는 문자 그대로 ‘다리’의 역할만을 맡았을 뿐이지만, 하이클레어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는 주로 탈것들을 다루어 왔다.

승마부터 마차에 전차까지. 그가 다루지 못하는 것들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여, 영애는 오고 계신 거겠죠?”

물론 메릴린에게는 우드가 얼마나 뛰어난 마부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발끝이 시릴 정도로 온몸이 위험을 경고하는 이 상황에서 아주 간절히 도로테아의 존재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무언가가 문을 쾅, 하고 두드렸다.

“꺄아아악!”

견디지 못한 메릴린이 비명을 지른 순간, 마차 밖에서 도로테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미친 듯이 달리는 속도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쫓는 악귀는 조금도 뒤처지는 법이 없었다.

한차례 문을 두드린 레이먼드의 손은 몹시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문에 붙여 두었던 파예부(破穢符)가 다행히도 제 몫을 한 모양이었다.

콜린의 품에 안겨 가볍게 마차의 위로 뛰어내린 도로테아가, 마차 안의 제인이 울리는 방울에 맞춰 영롱한 목소리로 축귀령을 읊었다.

육자대명(六字大明) 황제진언(皇帝眞言)

사주오행(四柱五行) 오귀출래(烏龜出來)

유재세 방우 재세, 극극여로 잡박세

혼력을 실은 목소리가 망자의 육신으로 스며들었다.

결박된 것처럼 그 자리에 선 채 몸을 비틀던 육신의 검은 눈에서 짙은 피가 흘렀다.

챠라랑.

마차 안에서 제인이 흔드는 무령(巫鈴) 소리가, 스며든 혼력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키아아아아!”

듣기 싫을 정도로 기괴한 비명과 함께, 그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레이몬드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어둠이 순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콜린, 지금이야.”

실체가 없는 어둠이 허공으로 빠르게 흩어지려는 찰나, 사신의 낫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어둠을 베어 냈다.

몹시도 날카롭고 긴, 마지막 발버둥의 소리가 마차를 때렸다.

덜컹하고 크게 흔들린 마차의 문에 무언가 커다란 것이 들이박은 듯한 자국이 남았지만, 짧은 저항은 지나치게 허무하리만큼 끝이 났다.

축 늘어진 육신은 더 이상 그 어떤 기운의 지배도 받지 않고 있었다.

주인 없는 육신을 탐내던 객귀들이 모여들다, 사신의 낫이 주는 존재감에 멀찍이 떨어져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끝난 거냐?”

무뚝뚝한 물음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돌리자, 뻐근한 목을 만지작거리는 우드가 마부석에서 내려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수고했어.”

“……내가 아니라 저 안에 있는 이들이나 살펴.”

이내 놀란 말들을 달래는 우드의 한숨에 도로테아는 문 위에 붙여 둔 부적을 떼어 내고서 천천히 마차의 문을 열었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는데, 마차가 덜컹거려서 불편했겠어요. 다친 곳은 없어요, 메릴린?”

창백한 얼굴의 메릴린 레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발치에 축 늘어져 있는 망자의 육신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은 넋이 나간 듯했지만 적어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확, 확실하게 끝난 건가요?”

“그럼요. 이제 저 육신을 백작가로 돌려주면 그만…….”

“아가씨.”

악귀를 퇴치하는 사이 잠시 멀어져 있던 프리드가 어느새 그녀의 곁에 다가와 경고했다.

“치안대가 오고 있습니다.”

“…….”

도로테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꽤 큰 소란에도 주변이 조용했던 것은 ‘리리’가 주변을 모두 차단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탓에 이곳으로 접근하는 기척을 놓쳐 버렸다.

도로테아의 얼굴에 성가시다는 기색이 드러나자, 메릴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치안대라고요?”

“곤란하게 됐네요. 이대로 레이먼드의 육신을 들키면 안 될 텐데.”

“…….”

레이먼드가 이제까지 벌어진 연쇄 살인의 범인이라고 주장한들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들이 이 야심한 시각에 함께 나와 있는 것도 퍽 수상쩍어 보일 테고.

무엇보다 시신과 함께 발견되었다가는 몇 날 며칠 조사를 받아야 할 테지.

“그, 그럼 어쩌죠?”

“그러게요. 어쩌지. 치안대장님의 잔소리는 우리 할아버지보다도 더 길고 답답한데.”

두 차례나 감옥에 다녀온 전력이 있는 도로테아로서는 바라지 않는 바였다.

저 멀리 치안대의 등장을 알리는 불빛이 비쳤다.

텅 비어 있는 레이몬드의 육신을 내려다보던 메릴린이 입술을 짓이겼다.

*   *   *

야심한 시각, 한산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까지 감도는 거리.

그 거리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마차는 대놓고 수상한 기색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대장님, 저 마차 말입니다.”

치안대장의 곁을 따르던 병사 하나가 머뭇거리다 속삭였다.

“눈에 익지 말입니다.”

“뭐가?”

“분명 저런 형태의 마차를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치안대장의 눈이 고급스런 외관의 마차를 훑었다.

거리가 제법 있는 데다, 어두워 사물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긴 해도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대여 마차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음…….”

요즘 소문도 흉흉한 마당에 피해자까지 발생했던 거리에 웬 마차람?

찜찜함에 미간을 좁힌 치안대장이 곁에 있는 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스펜서 백작, 아무래도 잠시 살펴보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듣기 좋은 미성의 소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스펜서 백작’이라 불린 미남자가 궁금하다는 듯 마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거리로 나온 마차라니. 몹시 희한한 일이로군요. 하필이면 오늘 말이지요.”

달조차도 구름 뒤로 숨어 버린 탓에 거리에 빛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도 제대로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운 심야에, 불조차 켜지 않은 마차가 무엇을 하느라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마차 문이 열리고 풍성한 드레스 차림의 누군가가 내리더니, 도리어 그들에게 다가왔다.

“……!”

치안대가 들고 있는 횃불에 비친 소녀의 얼굴이 몹시도 낯익었다.

그녀는 공손한 태도로 치마를 살짝 들고 무릎을 굽혀 우아한 몸놀림으로 인사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격조했습니다.”

“하이클레어 영애……!”

이 소녀가 대체 왜 또 이곳에 있단 말인가.

치안대장이 본능적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저도 모르게 찌푸렸던 인상을 억지로 펴고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하이클레어 영애.”

“네.”

“어째서, 이런 야심한 시각에, 마차까지 타고, 여기에 계신 겁니까.”

지난번에는 무도회 중간에 뛰쳐나와 시체 현장을 발견하더니, 그다음에는 황자와 함께 불법 현장 침입 강행으로 즉시 연행되기까지.

상대의 전적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치안대장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하아,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닌데요.”

눈을 끔뻑인 도로테아가 생긋 웃어 보였다.

볼일을 마쳤으니 크게 거리낄 것은 없었으나 하필 이 시간, 이곳에서 마주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인외 존재가 날뛰는 축시(丑時:심야 1시~3시), 마지막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 짙은 구름이 낀 신날(申日)과 가장 유사한 조건을 갖춘 날.

‘기분 탓일까.’

도로테아는 골치 아프다는 얼굴의 치안대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의 곁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옅은 갈색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오래전의 인연을 떠올린 그녀의 눈이 조금이지만 커졌다.

“하이클레어 영애라.”

“…….”

“소문으로만 들었던 바로 그분이시군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내민 남자가 비로소 그녀에게 ‘이름’을 알려 주었다.

“키엘 스펜서라 합니다. 부족하지만 백작위를 갖고 있습니다만.”

인과를 중시 여기는 혼술사는 은원을 잊지 않는다.

몇 초간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도로테아가 눈을 내리깔고서 공손히 무릎을 굽혔다.

“스펜서 백작께 인사 올립니다. 하이클레어 가문의 도로테아입니다.”

모르는 척 시침을 떼긴 했지만 눈을 마주한 순간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알아봤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잊을 수가 없지.’

다시 한번 보아도 신기할 정도로 꼬이고 험난한 관상이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지독한 ‘살’은 여전히 짙게 낀 채 그의 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치안대장은 그런 여유조차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영애가, 이 시간에, 이곳에는, 왜 계신 겁니까.”

치안대장의 말에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난 도로테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와 함께 외숙부의 집에 들렀다가 조금 늦게 귀가하게 되어서요. 서두르려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외지고 한적한 길을 골랐을 뿐이에요.”

“외숙부라니.”

“그렇지요, 콜린 외숙부님?”

도로테아가 ‘콜린’에 힘을 주어 불렀다.

보아하니 키엘 스펜서의 얼굴을 본 순간 그를 알아보고서 곧바로 숨은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마부석에 앉아 있던 콜린이 몹시 냉랭한 얼굴을 하고 느릿하게 내렸다.

“콜린 하이클레어요.”

“콜린 경께서 함께 동행하셨군요. 아무리 그래도 요즘 워낙 소문이 흉흉하니 이곳으로는 오시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겁니다.”

“……자중하겠소.”

딱딱한 목소리로 최대한 고개를 돌린 채 답하는 콜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키엘 스펜서가 환하게 웃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콜린 경을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

콜린은 손을 내민 키엘이 민망하리만치 굳은 얼굴을 하고 손끝을 살짝 잡았다 재빠르게 떼어 냈다. 마치 끔찍한 물건이라도 만진 듯한 모양새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치안대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심각한 결벽증이 있다더니.’

다른 이도 아니고, 스펜서 백작이 먼저 건넨 호의에도 달갑지 않은 반응을 드러내자 괜스레 치안대장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가 헛기침과 함께 당부했다.

“이곳은 당분간 치안대가 집중 경비를 서고 순찰을 돌 예정이긴 하지만 수차례의 사고가 난 곳이니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요.”

퉁명스런 답과 함께 돌아서려는 콜린을 붙잡은 것은 키엘이었다.

“콜린 경, 언젠가 시간이 되신다면 꼭 한번 사석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그.”

“늦은 밤이라도 좋습니다. 저녁 무렵이라면 더욱 좋겠네요.”

은근한 목소리와 어우러지는 그윽한 눈길이 콜린에게 닿자, 그의 얼굴이 대번 일그러졌다.

무언가 몹시 짜증 서린 눈으로 키엘 스펜서를 노려보던 콜린이 짓씹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부인과 아이가 있어 저녁에는 외출하는 일이 없소.”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야심한 시각인데?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도로테아가 그를 향해 호의 어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외숙부께서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십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호의에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시곤 하지요.”

“내가 언제……!”

“초대만 해 주신다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싫……!”

“스펜서 백작님의 호의 어린 제안에 몹시 감사드립니다.”

콜린의 얼굴이 분노로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도로테아는 생글거리며 외숙부의 발버둥을 무시한 채 ‘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흐르는 한 모금의 물에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는 것이 좋다던가.

그녀는 의외로 고리타분한 옛 현인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영애.”

키엘 스펜서가 웃는 얼굴로 마차를 향해 지그시 눈길을 주었다.

“저기 있는 분은 영애의 친우이신 겁니까?”

“네.”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목격한 일은 없습니까?”

“그럼요.”

그 순간, 마차의 조그만 창문이 열리고 앳된 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메릴린 영애께서 불안해하세요.”

다들 좁은 창 너머로 창백한 안색의 메릴린 레어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 치안대장과는 달리 마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키엘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도로테아는 그가 끼고 있는 검은빛의 손 장갑을 내려다보다, 잽싸게 마부석으로 도망가 버린 콜린을 보며 웃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게 된 ‘은인’의 혼은 균열을 수복하기는커녕,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더욱 엉망이 된 몸을 하고서 짙은 어둠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저녁이 아니어도 꼭, 제 초대에 응해 주셔야 합니다. 콜린 경.”

“…….”

그리고 여전히 제 외숙부이자 권속인 콜린을 탐내고 있었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