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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66)화 (66/242)
  • 혼술사 도로테아 66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게르만 백작이 이성을 잃고서 벌떡 일어나 도로테아를 향해 다그쳤다.

    초췌하긴 하지만 건장한 성인 남성이 큰 소리와 함께 바짝 다가서는 건 몹시 위협적인 그림이었다. 백작의 흥분이 도를 지나친 듯 보이자, 우드가 그를 가로막고 섰다.

    “흥분하셨습니다. 우리 아가씨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시지요.”

    “…….”

    주춤 물러서는 백작의 뒤로 불안에 젖어 든 눈을 한 채 얼어 있는 체이스가 보였다.

    도로테아는 게르만 백작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젊은 소백작을 밀어붙였다.

    “본래대로라면 화장되었을 레이몬드 영식의 빈 육신을 가져가신 것이 소백작이라면, 동생분이 살해되었다는 사실과, 영식이 누구를 만나고 있었는지도 알고 계셨겠군요.”

    게르만 백작은 아들의 실종 이후, 그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공연을 관람한 뒤에도 며칠의 시간이 더 걸렸으니까. 아마 그사이 레이몬드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시체를 빼돌린 건 백작일 수가 없었다.

    “알고 있었다고? 네가, 이미 진작부터 레이몬드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고?”

    백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백작 부자의 사정 따위야 도로테아의 알 바는 아니었다.

    아들의 사정을 뒤늦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백작이나, 동생의 죽음을 알면서도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해 홀로 처리하려 했던 장남이나.

    “차라리 화장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더 나았을 거예요.”

    이미 그의 넋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미련 한 점 없이 떠난 망자의 육신을 잡고서 미련을 떠는 건 그 어떤 도움도 될 리 없었다.

    체이스 소백작이 멍한 얼굴로 도로테아를 바라보다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래도 전,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동생이 그런 곳에서 이름도 없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육신마저 저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도록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망자의 시신이 사람들을 해치고 돌아다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시고요?”

    그의 입이 꾹 다물렸다. 미간에 잔뜩 진 주름이 그의 난감한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소백작의 조심스러운 성격상 시신을 직접 빼돌렸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 도로테아의 뒷조사를 부탁했던 것처럼, 길드에 의뢰를 넣었을 테지.

    “저는 그저, 그 애를 적어도 가문의 묘지에 묻힐 수 있도록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시신이, 살아난 거겠죠?”

    레이몬드가 사람들을 해치는 범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건 시신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목격’했다는 뜻일 터.

    체이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이 뒤에서 벌인 일들을 알게 된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앉으시는 것이 좋겠어요, 백작님.”

    “너는 도대체가. 그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어찌 내게 아무런 말도……!”

    “언질드릴 수 없었겠지요. 섣불리 말씀드렸다가는 부자간의 사이가 멀어질 테니까요.”

    어쩌면 설득하려 했을 수도 있겠지. 실패하고 만 것 같지만.

    막 풋사랑에 빠져 다른 것들을 모조리 다 잊어버린 서투른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집으로 가득 차 있었을 터.

    도로테아는 체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몹시도 탁하고 인위적인 기운이 등 뒤에 묻어났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탁기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묘하게 자신을 감췄군.’

    체이스는 도로테아의 뒷조사와 미행을 의뢰했지만 어느새 의뢰는 암살로 뒤바뀌어 있었으며, 동생의 시체를 빼돌렸지만 빼돌려진 시체는 거리를 활보 중이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빌려 그녀를 치려고 했다.

    도로테아가 사람들의 앞에서 ‘이능’을 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한 함정이었다.

    궁금해졌다.

    루크가 수사에서 빠지라는 압력을 받은 이유는, 그 사건에 게르만 백작의 영식이 관여되어 있어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황제가 직접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황제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지?

    또 게르만 백작에게 은근히 언질을 주기도 전에 도로테아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말리지 않았던 걸까.

    “영애,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죽은 내 자식이 어떻게 사람들을 해치고 다닌단 말입니까?”

    게르만 백작은 어두운 얼굴로 연신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유약한 장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우선 두 분 다 차분히 앉아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야겠어요.”

    어차피 이미 두 사람의 손을 떠난 일이니 이제는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할 때였다.

    도로테아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   *   *

    도로테아는 초췌한 얼굴의 메릴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히고 찾아왔는데요.”

    헝클어진 옷차림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메릴린이 발끈했다.

    “하셨죠. 새벽 동이 틀 때쯤 연락을 넣으시고는 아침 식사 전에 오셨으니까요.”

    “좀 이르긴 했죠.”

    도로테아가 빙긋 웃으며 서두른 것을 인정했다.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넘쳐 나는데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지 않은가.

    “남작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는데요.”

    “그야 그렇겠죠. 아버지는 영애가 오는 것을 버선발로 나와 마중하실 분이니까.”

    메릴린은 귀 옆으로 삐져나온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고는 반쯤 체념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아아, 별건 아니고.”

    도로테아는 여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영애 덕에 빠르게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었으니, 감사한 마음도 있고, 전에도 말했듯 빚을 졌으니 그것도 갚을 겸.”

    “……?”

    “요즘 잠을 못 자고 있죠, 메릴린 양?”

    거뭇한 눈 밑은 단순히 도로테아가 이른 시간에 들이닥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혼이 없는 육신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기를 찾아 맴돈다.

    살아 있는 이를 습격하는 것도 육신이 갈구하는 본능을 못 이긴 탓이 컸다.

    그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되살아난 빈 육신과 마주한 사람은, 혼이 온전하면 온전할수록 그 혼에 생채기를 입거나 부정이 묻어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가위에도 종종 눌릴 테고.”

    “…….”

    “내가 궁금한 건, 어째서 본인이 목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냐는 거예요.”

    도로테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메릴린은 그제야 제 앞에 있는 소녀가 저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아직 채 성년도 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니까 한 번도 나보다 어리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도로테아는 유독 호의적이고 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메릴린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게르만 백작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어두운 밤이었고, 목격자라고는 저와 시녀뿐이었어요. 게다가 찰나의 순간 본 것이 정확하다고 저도 확신할 수 없고요. 무엇보다 다른 피해자들은 목격한 것이 없으니, 제 목격이 유일한 증언이 되겠죠.”

    적어도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사건의 피해자인 그녀가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도 꽤 곤란한 일이었다.

    “혹여 진술이 잘못되면 곤란할 테고, 맞다 하더라도 게르만 백작가 같은 부유한 지주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전부터 생각했지만 메릴린 영애는 의외로 똑똑한 사람이었네요.”

    “…….”

    “첫 만남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자꾸만 과소평가를 하게 돼요.”

    도로테아의 입에서 첫 만남이 언급된 순간 메릴린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여전히 한밤중에 마주했던 혼 없는 육신보다도, 살아 있는 7황자가 더 두려운 모양이었다.

    “좋아요. 그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도로테아가 의아한 얼굴의 메릴린과 눈을 마주했다.

    “그날 영애가 목격한 건 레이몬드 게르만이 맞아요.”

    “……!”

    “물론 비어 있는 육신뿐이지만.”

    특유의 느릿하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어우러져 메릴린의 귀로 스며들었다.

    제가 무엇을 들었는지 의심하는 듯 커진 눈을 보며 도로테아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뱉어 냈다.

    평소와는 달리, 꽤 넘치도록 많은 이야기를.

    *   *   *

    환자가 있는 저택은 어디나 그러하듯 묘하게 우울하고 숨 막히는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환자 본인의 생기가 그만큼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주변인들이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불안, 근심, 초조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탁기를 더하기 때문이다.

    메릴린은 도로테아의 뒤를 따라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복도를 거닐었다.

    익숙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문을 열고 나오다 그녀들과 마주쳤다.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메릴린과는 달리 도로테아는 반나절 사이에 수척해진 남자를 향해 대뜸 본론을 꺼내 들었다.

    “백작님, 이쪽이 말씀드렸던 메릴린 레어 남작 영애예요.”

    “반갑다는 말을 하기에는 송구스러운 일이 많았다만…… 게르만 백작이오.”

    일개 남작 영애를 향해 먼저 숙이고 들어오는 백작에게 메릴린이 어쩔 줄 모르고 몸을 낮췄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들놈의 미비한 모습으로 영애에게 좋지 못한 기억을 남겼구려.”

    “…….”

    ‘아들놈’이라는 건 레이몬드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체이스를 뜻하는 걸까.

    입술을 달싹이던 메릴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도로테아는 여전히 흥미로운 눈으로 메릴린을 관찰했다.

    ‘레이디 파티마’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이고, 남자 주인공이 레이몬드 게르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메릴린은 몹시 경악했다.

    그 뒤 이어진 일련의 일과 그녀가 연속으로 휘말린 마차 사고 및 레이몬드 습격의 전말을 듣고 나서는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현실 부정에서 벗어나자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기억을 스치는지 다시금 불안과 괴로움에 빠졌다가, 그다음에는 분노했다.

    그런데…… 기세 좋게 저택까지 와서는 막상 백작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로테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백작과 마주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불쑥 메릴린을 데려온 자신에게 항의는커녕 조심스런 부탁조차 얹지 않았다.

    ‘염치라는 것이 있는 인간으로 보이던데. 아마도 가장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는 거겠지.’

    우드의 평가처럼, 잠시 가문의 일에 소홀한 틈을 타 벌어진 일이라 자책 중인 것 같았다.

    “괜찮으면 부인을 좀 만나 보겠소? 요즘 부쩍 적적해하는데 함께 대화를 나눠 주면 좋아할 거요.”

    도로테아는 결정권이 메릴린에게 있다는 듯 말없이 그녀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을 삼킨 메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작이 조심스레 문을 열어 주었다.

    은은하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짙은 약초향이 훅 뿜어져 나왔다.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서서히 말라 가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심장에서부터 손끝까지 육신을 이루는 생기가 거의 바닥나 있었다.

    부스스 눈을 뜬 중년의 여인의 입가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아주 어여쁜 아가씨들이로군요.”

    힘없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메릴린이 움찔했다.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그녀의 침대맡에 앉은 도로테아가 나직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습니다, 부인. 도로테아 하이클레어입니다.”

    얼어 있던 메릴린이 그제야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방은 정갈했다.

    평소 자주 읽는 듯 보이는 시집 몇 권과, 머리맡에 놓아두고 자주 들여다본 듯한 가족의 초상화.

    그 가운데에 순하고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몬드 게르만.

    “아아, 내 아들들이 참 훤칠하지요. 첫째는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둘째는 이제 한창 혼담이 오고 갈 나이랍니다.”

    꺼질 듯한 목소리로 ‘어머니’는 애정이 듬뿍 어린 말을 이어 나갔다.

    “어미가 되어 이렇게 누워만 있으니 미안할 따름이지요. 지금은 잠시 다른 영지에서 일을 배우고 있지만 곧 돌아올 거예요.”

    그는 돌아올 수 없다.

    백작 부인이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이제 두 번 다시 자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째 아들을 볼 수 없겠지.

    그 잔인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인은 행복한 얼굴로 초상화를 훑다 마른기침을 뱉어 냈다.

    “마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재빠르게 다가선 시녀가 익숙하게 그녀의 입에 손수건을 가져다 대었다.

    입가를 닦아 내는 손수건에 그녀가 뱉은 것으로 보이는 짙은 피가 비쳤다.

    자, 그럼.

    이미 들어야 할 이야기는 모두 들은 도로테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만 쉬셔야겠어요, 부인.”

    그녀의 인사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그녀가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기껏 와 주셨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휴식을 방해한 건 저희인걸요.”

    “우리 레이가 오면 영애들의 친절에 대해 꼭 이야기할게요. 그 아이도 좋아할 거예요.”

    줄곧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던 메릴린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감사해요, 부인. 저도 꼭 만나 뵙고 싶네요.”

    가까스로 짜낸 목소리로 뱉은 겉치레 말에, 백작 부인이 환하게 웃으며 다시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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