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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25)화 (25/242)
  • 혼술사 도로테아 25화

    후작가의 아침 식사는 단란하기는커녕 단조롭고 고요했다.

    함께 모여 있어도 제각기 식사에 열중할 뿐.

    일체의 대화가 없음은 물론이고, 있어도 딱딱한 정무에 관련된 대화 정도가 대부분.

    때로는 아예 식사 자체를 하지 않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꼬박꼬박 식사를 하러 내려오는 후작 노부부는 물론이고, 제 아내까지 함께 대동하는 펠릭스. 거기에 에이든과 도로테아가 데려온 군식구까지.

    넓고 넓은 식탁이 꽉 들어찼다.

    “테아, 이것 좀 먹어 볼 테냐.”

    “제 취향 아니에요.”

    “고기만 먹으면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도 있단다. 야채도 조금은 먹어야지.”

    달래듯 이야기하는 후작 부인의 말에 도로테아는 멀뚱하니 음식을 내려다보다 구운 야채를 아주 조금 집어 들었다.

    그러자 곧장 장하다는 시선들이 쏟아졌다.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었다.

    어려운 주술을 성공하고도 늘 경멸 어린 시선과 두려움 섞인 시선만 받았던 ‘그때’와는 달랐다.

    고작 이것으로.

    이것으로도 이리 쉽게 쓰다듬는 손길이나 칭찬이나 사랑이 듬뿍 담긴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거였나.

    도로테아가 생전 처음 겪는 가족의 단란한 분위기를 신비하게 여기는 사이, 우드는 멍하니 앉아 음식을 씹는 듯 마는 듯하고 있었다.

    ‘간밤의 일 때문인가.’

    도로테아는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자신의 권속을 향해 속으로 혀를 찼다.

    ‘저렇게 심약해서야.’

    몸이 건장한 것에 비해 간이 심약했다.

    콜린 또한 그녀의 권속이기는 하나, 인간의 몸에 적응하고 그 생을 온전하게 이어받으려면 시일이 좀 걸렸다.

    당분간은 저택에서 끙끙 앓고 있을 그보다 우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데.

    못 미더운 시선을 던지던 도로테아가 이내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할 즈음,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와 후작에게 보고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밤에 시녀 하나가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우드가 움찔했다.

    “뭔가 문제라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무엇을 본 건지 겁에 단단히 질려서 헛소리를 하는 상태입니다.”

    도로테아의 포크가 마지막 고기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쉬운 듯 입안에 집어넣고 음미하던 조각이 목으로 넘어갔다.

    “가족들에게 돌려보내고 치료사를 부를 수 있는 돈과 그동안 일한 삯을 충분히 쳐서 건네주도록.”

    “예, 그런데 시녀의 방에서 이상한 물건들이 발견된 모양입니다.”

    “물건?”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뿌듯하게 내려다본 그녀가 자랑하듯 후작에게 내밀었다.

    “임금 삯으로 살 수 없는 귀중품이 몇 점 있었는데, 혹시 몰라 확인해 보니 저택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접시를 보고 도로테아를 칭찬하려던 후작이 날카로운 눈으로 기사를 향해 지시했다.

    “제대로 조사해 봐.”

    “예.”

    기사가 절도 있게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후작의 다정한 목소리가 도로테아에게로 향했다.

    “깨끗이 잘 먹었구나.”

    “응, 배불러요.”

    “그래, 그럼 산책이나 할까?”

    “여보.”

    부드러운 부인의 목소리에 후작이 고개를 들었다.

    “테아는 오늘 오후에 입궁하게 될 거예요. 그 준비를 해야죠.”

    “아, 그랬지. 그랬군.”

    아쉬운 듯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테아가 웃는 얼굴로 후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인과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하는 딸을 보던 벤이 걱정스레 물었다.

    “테아는 아직 어린데 벌써 궁에 들어가 폐하를 알현하다니……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네. 예법에 능하지는 않지만 차분한 성격이니 어디 가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걸세.”

    확실히 그렇지.

    후작의 조리 있는 말에 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납치를 당해도 멀쩡하게 집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능력도 뛰어나고, 가끔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빨려 들 듯 깊은 눈망울은 족히 스무 살은 된 듯 성숙해 보였다.

    ‘그래, 우리 테아는 어른스럽지.’

    딸이 자랑스러워진 벤이 미소 지었다.

    *   *   *

    도로테아는 제인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우드가 복도를 반쯤 와서야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기사가 한 말 말이다.”

    “응?”

    “정신 줄을 놓았다던 그 시녀. 우리가 어제 마주쳤던 아이 아니냐.”

    “글쎄?”

    아는 듯 모르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띤 얼굴에 우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간밤에 만난 ‘쥐’는 열심히 저택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들은 말들을 밖으로 옮기기 위해 서둘러 걷고 있었다.

    도로테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 저택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을 뿐이다.

    저택을 지키는 터주신은 그녀의 눈을 통해 빨빨거리던 쥐새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터주신의 눈길을 받는 것은 보통의 심약한 인간이라면 결코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멋대로 이 저택 안의 것을 밖으로 옮기려 했으니.’

    그것이 고작해야 시녀가 보고 들은 저택 내의 이야기일 뿐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누군가의 말이 아주 대단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지 않는가.

    그저 당연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뿐.

    “너…….”

    우드가 찜찜한 얼굴로 입을 뗀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저택을, 저택에 계시는 분들이……!”

    비명과 같은 외침을 지르는 시녀가 기사들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가는 것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아가씨.”

    “음?”

    “저분은 왜 저러시는 걸까요?”

    “글쎄.”

    도로테아의 눈이 밖으로 끌려 나가는 시녀의 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는 발목에 칭칭 감겨 있는 붉은 실이 저택 너머로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쥐’로 만든 누군가가 저택 밖에 있었다.

    “괜찮아.”

    도로테아가 생긋 웃었다.

    “저택 밖으로 나가면 저이도 괜찮아질 거야.”

    더 이상 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생계를 꾸려 나갈 일자리를 잃게 되긴 하겠지만 그것이야 본인의 업보가 아닌가.

    도로테아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제인은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진다니 다행이다.

    그것이 어린 하녀가 생각한 전부였다.

    *   *   *

    “궁에는 안내인들이 있으니, 혼자서 움직이지 말거라. 궁은 넓고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이란다.”

    “응. 아니, 네.”

    “혹여라도 길을 잃거든 그 자리에 서서 누군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면 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할아비가 금방 데리러 가마.”

    후작은 손녀의 손을 꼭 잡고서 다정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듣던 도로테아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순도순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노부인이 미소 지었다.

    그녀가 입을 뗐다.

    “황후 폐하를 뵌 지도 오래되었군요. 입궁할 일이 좀처럼 없었으니 소식을 듣는 것도 느리고…….”

    “원한다면 담소를 나누고 늦게 돌아와도 좋소. 당신은 어릴 적부터 그 아이를 아꼈지.”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지요. 어엿한 제국의 황후이시니.”

    씁쓸한 미소가 부인의 입가에 머무르다 사라졌다.

    도로테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옅은 웃음을 띤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사이 마차가 황궁 입구에 도착했다.

    후작의 손을 잡고 내리는 어린 여자아이.

    백금발의 소녀를 향해 궁인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누군가가 숨을 들이켰다.

    신비로운 색을 지닌 소녀는 놀라울 정도로 깡말랐고 체격도 왜소했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잘 손질된 머릿결을 갖고 있었지만 여느 귀족 자제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앙상했다.

    ‘병마를 오래 앓았다더니.’

    다들 그런 눈빛을 주고받다가도 재빠르게 고개를 숙여 모른 척했다.

    궁에서는 그 무엇도 함부로 티를 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폐하께서 후작 내외분과 우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십니다. 영애는 응접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모를 데려오지 않았는데 홀로 응접실에 남겨 두기엔…….”

    부인이 난처한 듯 도로테아를 내려다보았다.

    시녀장이 부인의 염려를 덜어 주려는 듯 웃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시녀들을 붙이겠습니다. 영애가 좋아할 만한 다과를 미리 준비해 두었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후작 내외가 황제와의 알현을 위해 떠나고, 혼자 남은 도로테아는 자신의 안내를 자처한 시녀의 손을 잡았다.

    서늘했다.

    다정한 미소와 달리 손끝은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묘한 느낌의 아가씨였다.

    “언니.”

    걸음이 유독 빠르고 보폭이 넓었다.

    어린아이를 돌볼 줄 아는 시녀라면 결코 이런 걸음으로 아이를 끌고 가진 않을 텐데.

    어딘가 몹시 긴장한 얼굴이었다.

    “여기가 다과가 준비된 응접실인가요?”

    질질 끌려가던 도로테아의 물음에 시녀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제야 뒤를 돌아본 시녀는 꼭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가득한 손바닥이 몹시 축축했다.

    도로테아가 다시금 웃으며 물었다.

    “다과는 어디 있어요?”

    시녀가 도로테아를 내려다보다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분들의 말을 따르렴. 네게 나쁜 짓을 하진 않으실 거야. 그냥 겁만 주신댔어.”

    “겁을 줘요?”

    과자가 아니라, 겁을 준다니.

    그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도로테아가 수상해 보이는 시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찬 것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도로테아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곳으로 끌고 오도록 만든 이에 대한 두려움.

    또 이상한 일에 엮여 든 모양이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사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며 지내려는 데도 주변에서는 좀처럼 자신을 가만두질 않았다.

    도로테아가 박복한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살짝 휘저었다.

    시녀의 눈동자가 순간, 흐릿해졌다.

    “손을 놔.”

    강한 어조에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은 시녀가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의 암시일 뿐이니 곧 풀리겠지.

    도로테아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서 방향을 틀었다.

    벌써부터 몸이 지친 건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궁은 사기와 원념이 지나칠 정도로 강해 그녀의 몸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궁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지고 있는 업이 꽤 크겠는걸.’

    소멸된 콜린 따위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이나.

    “피피.”

    품에 있던 다람쥐가 찍, 하고 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올라왔다.

    “쓸 만한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이곳에서는 벗어나는 게 좋겠어.”

    쓸데없이 정화 작업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기 있는 사기들을 상대하기에도 몸이 좋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드를 데려오는 것인데.

    다람쥐가 재빠르게 엉덩이를 실룩이며 앞장섰다.

    이윽고 그들이 다다른 곳은 도토리가 잔뜩 열린 나무 아래, 고운 얼굴의 청년이 잠을 청하고 있는 곳이었다.

    *   *   *

    “쓸 만한 인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랬더니.”

    한때 사신의 신기였던 다람쥐가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두 볼 가득 도토리를 물었다.

    도로테아는 한숨과 함께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사신의 신기였을 적에는 인간의 ‘생’을 앗아 가는 순간에 얻는 힘으로 스스로를 유지해 왔다.

    지금은 그러한 생기가 없으니 오롯이 식사로 형태를 유지해야 했다.

    “전 주인이 덜떨어져서 그런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단 말이지.”

    도로테아의 투덜거림에 잠들어 있던 청년이 부스스 눈을 떴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석양을 닮은 주홍빛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그가 난감한 듯 웃으며 도로테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는 누구니, 아가?”

    도로테아는 후작에게 미리 들은 조언대로 두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쥐고서 무릎을 살짝 굽혀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 조그만 입술을 열었다.

    “그러는 너는 누구니?”

    몹시 공손한 인사에 비해 그렇지 못한 언사에 청년이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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