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107)
  • “가겠습니다. 카타미아 국왕 전하.”

    펠릭스는 누르듯 말을 내뱉으며 왕에게 대신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보란 듯 엘리아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풋!”

    엘리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두 사람이 귀엽기도 해서 속상해하는 지브릴 앞인데도 자꾸 웃음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다음에 또 뵈요. 국왕 전하.”

    “……엘리아!”

    지브릴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펠릭스는 승리자의 눈빛으로 지브릴에게 썩소를 날리며 선박에 올라탔다.

    그의 뒤를 몇몇 기사들이 따랐다.

    루카스와 그 외 인원들은 아직 처리하지 못한 반역 세력을 마저 정리하기 위해 카타미아 왕국에 잠시 머물게 됐다.

    엘리아는 뒤로 돌아 지브릴을 바라보았다.

    일단 대성당의 반란이 진압되자 과거 왕을 따르던 귀족 세력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쯤 안심이 됐다.

    ‘펠릭스도 이곳에 자주 들를 예정이라고 했으니까, 더 마음이 놓이네.’

    부우우웅-.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엘리아는 북부로 향하는 선박에 올랐다.

    ‘제레미를, 볼 수 있어…….’

    펠릭스에게 듣기론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서둘러 북부로 돌아가 아이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저 너머에 벌써 제레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엘리아, 몸은?”

    뒤에서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엘리아는 얼른 뒤돌아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어느 때보다 좋아요.”

    그는 만족스러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엘리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두 사람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3일 전 그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땐 벅찬 마음뿐이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엘리아는 펠릭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펠. 사랑, 해요.”

    마음속 깊이 묻어뒀던 단어를 이제야 꺼냈다.

    사실 다시 과거로 돌아오고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제레미와 함께 우리 관계 역시 다시 시작해 보자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엘리아……!”

    펠릭스는 사랑 고백에 당황한 듯 놀라 눈이 커졌다.

    “사랑해요.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많이 사랑해요. 사막에서의 고백에 대답해 주고 싶었어요.”

    부끄럽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는 동안 펠릭스의 등 너머 푸른 바다가 햇살에 비쳐 반짝거렸다. 두 사람 위로 철새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수놓았다.

    뜨거워진 공기, 서로를 향한 눈빛.

    펠릭스의 팔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엘리아, 어떡하지.”

    그의 얼굴은 엘리아가 전해준 열기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했다.

    “……?”

    “……당장 안고 싶은데.”

    “어머, 페엘…….”

    엘리아의 입술이 순식간에 삼켜졌다. 입안을 침범한 굵직한 혀가 타액을 모조리 빼앗듯이 헤집어댔다.

    “사랑해. 엘리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들의 키스는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만큼 깊게 계속되었다.

    * * *

    그들의 사랑 행각은 배의 객실 안에서도 이어졌다.

    “……시, 싫어요!”

    도리질 치며 질색하는 엘리아를 바라보며 펠릭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어떻게 여기서 그런 망측한 짓을…….”

    “우아한 부인께선 가만히 계시도록 하시지요.”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몸을 웅크린 엘리아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리곤 가느다란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꼭, 꼭 여기서 해야만 하는 거예요?”

    “응. 난 꼭 하고 싶은데.”

    씨익, 짓궂게 미소 짓는 모습에 엘리아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간단하게 웃옷을 벗어 던졌다. 엘리아의 눈앞에 그의 탄탄한 상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정말 안 되는데…….’

    두 팔로 엘리아를 포박한 그가 그녀의 입술을 할짝거렸다.

    “더 가까이 오시죠, 부인.”

    나직하게 흐르는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사랑해 줄 테니.”

    짓궂은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안 되는데, 정말, 정말 안 되는데.’

    속으로 소리치던 엘리아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엘리아가 허락했음을 알아챈 펠릭스가 능숙하게 그녀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냈다.

    카타미아의 열기에도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그 위에 진하게 새겨진 흉터가 보였다.

    그의 입술이 상처에 닿자 그녀의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예뻐.”

    하지만 곧 그 모든 곳이 사랑스럽다는 듯 전해주는 그의 숨결과 키스에 온몸이 녹아내렸다.

    엘리아가 눈시울을 붉어졌다.

    “펠……!”

    펠릭스는 지켜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핥아주고 키스했다.

    그리곤 재빨리 가장 은밀한 곳에 얼굴을 묻었다.

    “읏! 아!”

    엘리아는 그날 전 생애를 통틀어 처음으로 느끼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밀려드는 수치심에 휩싸이다가도 허리가 휠 정도로 깊은 쾌락에 절로 몸을 떨었다.

    멀미를 느낄 새도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질 무렵, 공들여 그곳을 핥던 펠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단정했던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바지만 걸치고 있던 그는 곧 그것조차 벗어 던져 버렸다.

    “하아, 하아.”

    펠릭스가 잔뜩 눈이 풀린 채 늘어진 엘리아를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해. 사랑해. 엘리아!”

    “으응! 아! 하으응!”

    펠릭스는 부끄러운 듯 몸을 가린 그녀의 팔목을 잡아 제 목에 둘렀다.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펠릭스는 그녀의 내부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흐윽, 읏!”

    엘리아의 야릇한 신음이 들렸다. 버거워하는 그녀를 위해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몸짓이 그녀의 신음 소리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질주를 했다.

    엘리아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하으응…… 펠!

    이른 오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 행각은 펠릭스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자랑하듯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 * *

    “힘들어?”

    펠릭스가 침대 위에서 그를 얄밉다는 듯 밀어내는 엘리아를 바라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하아, 속도 메스껍고, 정말 지쳤어요…….”

    몇 번이고 계속된 행위 때문에 엘리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목덜미와 어깨, 가슴, 온몸 곳곳에는 울긋불긋 사랑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좀 자, 도착하면 깨울 테니.”

    “……또 안고 가지 말고, 꼭 깨워줘요.”

    “그래.”

    그가 엘리아의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준 뒤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계속되는 입맞춤에 엘리아가 살며시 눈을 뜨고 흘기자 펠릭스는 다정하게 토닥이며 재워주었다.

    “이렇게 체력이 없어서야, 더 많이 먹여야겠군.”

    펠릭스는 멀미와 시달림 끝에 쓰러진 엘리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건지 양 볼에 홍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엘리아.”

    끈적이는 그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고개를 살짝 돌린 엘리아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후후, 엘리아.”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펠릭스는 그녀의 머릿결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문득 처음 엘리아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청색 드레스를 입은 채 환하게 웃던 엘리아. 유리알처럼 푸른 눈동자, 살짝 부스스한 금발까지.

    ‘그땐 그냥 이상한 여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결혼에 크게 바라는 건 없었다. 그저 엘리아가 대공비의 자리를 채우고, 그로 인해 황제가 더는 결혼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시작부터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야.’

    엘리아와의 첫날밤을 떠올리며 나직하게 웃음 짓다가 품에 깊게 파고드는 엘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마치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부드러운 살결과 맞닿으니, 심장이 다시 빠르게 쿵쿵 뛰었다.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에 꽁꽁, 숨겨두어야 할까. 지키고 싶은데,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한편으론 불안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은 늘 그의 편이 아니었다. 모든 걸 빼앗기고만 살았다.

    ‘지켜야지. 다시는 이런 일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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