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07)
  • “흠!”

    그 빛을 따라 펠릭스는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어둠이 걷힌 동굴 안쪽, 엘리아도 그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는 동굴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제로석…….’

    엘리아는 그 빛을 보자마자 단번에 이름을 떠올렸다.

    북부의 유일한 광물, 제로석. 그게 얼음 동굴 안에 있었다.

    “……흐음.”

    펠릭스는 제로석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에 재빨리 옆으로 다가섰다.

    투박한 돌 가운데 제로석이 박혀 있고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게, 뭐지?”

    그는 검 끝에 힘을 실어 돌에 박혀 있는 제로석을 떼어냈다.

    제로석 안쪽 액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가, 하나를 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었다.

    “……그거.”

    “음?”

    “가져가실 거예요?”

    그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다시금 제로석 더미 쪽을 바라보았다.

    “돈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그렇긴 한데…….’

    엘리아는 초조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명, 아카데미 소속 연구원이 먼저 발견했다고 들었는데…….’

    엘리아는 아직도, 그 당시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엘리아가 서른넷이 되던 해였다. 북부의 땅은 여전히 척박했지만, 관광 사업이 꽤 부흥한 터라 영지민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관광을 왔던 아카데미 연구원이 제로석을 발견하고, 제로석 안에 있는 액체가 마나의 대체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황제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고갈된 마나로 인해 이능이 무용지물이 되어 괴로워하던 황제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제로석이 있는 북부를 헤집어놓았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엘리아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에 제로석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왜, 몸이 또 안 좋은가?”

    바로 앞에 서 있던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의 얼굴을 한 번, 제로석을 한 번 쳐다보던 엘리아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제 것도 하나 챙겨줄 수 있을까요?”

    “뭐, 좋을 대로.”

    싱겁다는 듯이 픽, 웃던 그가 검으로 돌에서 제로석을 여러 개 분리했다.

    “감사해요.”

    “그만 가지.”

    펠릭스가 제로석을 마저 챙기고 잘 갈무리하여 넣었다.

    동굴 바깥으로 나오니, 흐릿한 빛이 눈 덮인 땅 위를 비추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떻지?”

    눈꽃이 펠릭스의 머리카락 위로 스며들었다.

    “아무렇지 않아요. 어느 때보다 상쾌한걸요.”

    엘리아는 옅게 미소 지으며 눈 위를 사박사박 걸어 나갔다.

    “엘리아.”

    그녀는 펠릭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펠릭스는 벚꽃잎처럼 팔랑팔랑 나부끼는 눈꽃을 맞으며 엘리아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 아아…….”

    엘리아는 수줍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엘리아의 머리 위로 기분 좋은 그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엘리아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뽀득거리는 눈밭을 걸었다.

    “저건, 뭐지……?”

    박자를 맞추듯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들의 앞쪽으로 시커먼 마물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크르르릉!

    얼어붙은 땅이 울렸다.

    “펠!”

    보통 사람의 세 배만 한 수십 마리의 바로그가 맹렬한 기세로 두 사람을 잡으려 으르렁거렸다.

    엘리아는 난생처음으로 필사적인 뜀박질을 해야만 했다.

    * * *

    지친 엘리아를 이끌면서도 펠릭스는 그들을 뒤쫓고 있는 바로그 떼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그가 무리를 지어서, 아침에 돌아다닌다고?’

    그의 상식선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헉! 헉!”

    엘리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한참 달려가던 펠릭스와 엘리아는 절벽에 다다르자 서서히 걸음을 늦췄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고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그 무리가 계속해서 쫓아온다면 무게를 못 이겨 다리가 끊어질 수도 있었다.

    무사히 건넌다 해도 이 정도 규모의 바로그라면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펠릭스의 시선이 쫓아오고 있는 바로그를 향했다.

    이대로 도망만 갈 순 없었다.

    탁.

    그의 품속에서 제로석을 담은 묵직한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반동과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안쪽 끈이 떨어진 것 같았다.

    ‘하, 이젠 별의별…….’

    하다 하다 주머니까지 말썽이었다.

    설산에 오른 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라 펠릭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은 엘리아의 가냘픈 손가락이 느껴졌다.

    *** “……펠.”

    “먼저 건너.”

    “그렇지만, 펠……!”

    “건너기만 하면 마을이 있어. 그곳으로 가.”

    “무슨, 무슨 소리예요?”

    어느샌가 바로그가 다가와 두 사람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긴 한숨을 내쉰 펠릭스가 마물을 경계하며 천천히 허리를 굽혀 제로석이 든 주머니를 주웠다. 그 순간 마물들이 움찔거리며 행동을 멈추었다.

    그 모습이 이상해 유심히 마물들을 관찰하던 엘리아는 그의 재촉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절벽 사이에 놓인,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다리 앞으로 엘리아를 이끌었다.

    “서둘러, 엘리아.”

    “당신은 어쩌려고…….”

    “어서.”

    단호한 펠릭스의 목소리에 엘리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요, 아니요. 전 안 가요.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그 몇 마리가 달려들었다.

    스릉!

    펠릭스가 단박에 검으로 몇 놈을 베어 처리했다.

    크르릉-.

    마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입김이 퍼졌다. 달려드는 바로그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내니 남은 것들이 멈칫하며 쉽사리 덤비지 못했다.

    “금방 갈 테니, 어서 가.”

    펠릭스가 다시 한번 엘리아를 재촉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갔나.’

    “……!”

    바로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도 바로 뒤까지 다가온 엘리아의 인기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엘리아!”

    엘리아가 펠릭스에게 가까이 다가서 그의 로브 아래를 더듬거렸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제지하려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려던 순간이었다.

    엘리아가 펠릭스의 로브에서 주머니를 꺼내 바로그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그에 따라 마물들의 고개도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자는 싫어요.”

    엘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주머니에서 제로석을 꺼내 절벽 아래로 휙, 던져 버렸다.

    저벅저벅!

    제로석이 절벽으로 떨어지자 마물들이 엘리아쪽으로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그에 긴장하며 펠릭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 사람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펠릭스와 엘리아를 지나쳐 무언가에 홀린 듯 절벽 쪽으로 다가섰다.

    “어, 어??”

    그러자 엘리아는 또다시 절벽 아래로 제로석을 여러 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춤거리던 바로그가 일제히 떨어지는 제로석을 향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헉!”

    펠릭스는 그녀의 돌발 행동에 심장이 낭떠러지 아래로 훅 꺼지는 듯 했다.

    하나,

    둘,

    셋,

    우르르.

    절벽 아래 고인 강물에서 요란하게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

    “…….”

    다시금 고요해진 세상. 둘은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펠릭스가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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