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 악연의 두 남자 (58/154)


#58 악연의 두 남자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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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레타 왕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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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림자 상인을 만나러 들어간 여자는 분명 리오타 왕국의 왕녀였습니다.”

늦은 시각, 조사를 나갔다가 돌아온 카넬의 다급한 보고에 헤르한은 사나운 눈을 치켜떴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성녀를 판별할 법을 찾기 위해서 접선한 밀매상을 그레타 왕녀가 만나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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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내온 서신에 왕녀 일행은 이틀 뒤나 황성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카넬이 본 게 정말이라면 왕녀는 거짓 서신을 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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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잘 어울리는 여자이긴 하지.”

문제는 왕녀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벌써 황성에 도착했으면서 황실에는 그 사실을 숨긴 이유. 또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서 밀매상을 찾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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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왕녀가 리엘라 양에 대한 일을 눈치챈 것 아닐까요?”

제스가 제기한 의혹에 헤르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가능성이 낮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헤르한의 가슴을 옥죄었다. 결국엔 누군가 리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분이 끓어올라 뇌가 다 타버릴 것만 같았다.

리엘라는 이제 헤르한의 유일한 빛이고 삶의 전부였다. 고작 왕녀 따위가 함부로 손을 뻗게 둘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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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쪽에서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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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그 밀매상을 잡아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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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가야만 판별할 수 있다면서?”

헤르한은 푸른 안광을 번뜩이면서 어딘가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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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내 보물에게 오라 마라 하는데 그 소원 이루어주지. 아시온을 불러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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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는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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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요? 이 야심한 시각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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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때아닌 밤중에 들은 제안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을 되물어보았지만 황제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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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만 있다고 내가 너무 찡찡거렸나? 어제는 호수 주변을 산책하게 해주시더니…….’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나쁠 것은 없었다.

황제가 함께해주겠다고 하는 말에, 오히려 어제 시녀들과 호수 주위를 돌던 것보다 더 기대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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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루를 깨워와야겠어요. 아마 잠들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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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 그대로 두어라. 다른 시녀들을 불러올 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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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지만……. 그래도 되나요? 어딜 가든 시녀들과 동행하라고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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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만 빼고. 오늘 밤은 내가 네 옆에 있을 거니까.”

그렇게 말한 헤르한은 리엘라의 앞으로 성큼 다가와 팔을 뻗었다.

리엘라는 그게 자신을 안아주려는 몸짓인 줄 알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헤르한의 가슴에 제 이마를 기대고 파고들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단단한 팔이 제 몸을 어르는 느낌이 없었다. 리엘라의 어깨에 얹어진 건 헤르한의 팔이 아니라 헤르한이 둘러준 망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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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그런 리엘라를 놀리듯 헤르한의 낮은 웃음이 리엘라의 귓가에 어른거렸다.

헤르한의 숨이 닿은 귓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리엘라는 곧장 헤르한에게서 몸을 떼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원망의 눈빛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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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장 안아주고 싶어.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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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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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는데 실망시켜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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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거 아니라니까요!”

헤르한의 놀림에 맞수를 놓았다간 본전도 못 찾겠다 싶어서 리엘라는 그냥 망토의 모자를 눌러써 버렸다.

그런데 머리에 뒤집어쓰고 보니 겨우 눈앞이 빼꼼 보일 정도로 모자가 깊었다. 망토의 기장도 발끝까지를 전부 덮는 길이. 품이 넓고 원단도 두꺼운 벨벳이라, 앞 단추까지 여미고 나니 그야말로 속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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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꺼운 망토를 입어야 할 필요까지 있나요?”

아무리 밤이라 선선하다고 해도 아직은 여름인데, 하며 덧붙이려던 리엘라는 헤르한이 자신과 똑같은 망토를 걸치기 시작한 것을 보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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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리엘라.”

리엘라의 망토를 한 번 더 단단히 여며준 헤르한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넣어 잡았다.

리엘라는 그대로 묵묵히 헤르한을 따랐다.

호수궁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조용히 나오자, 그 앞에 누군가가 미리 준비해둔 듯한 검은 말 한 마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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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캄캄한 시간. 얼굴을 가리는 망토. 호위는 아무도 없이 우리 단 둘. 말도 한 마리뿐.’

리엘라는 헤르한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랐다. 헤르한은 리엘라의 바로 뒤에 몸을 붙이고 앉아 말의 고삐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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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거, 그냥 산책이 아닌 거죠?”

리엘라는 뭔가를 눈치채고 차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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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헤르한은 짧게 대답했다. 리엘라의 등 뒤, 제 몸을 감싼 헤르한의 몸이 잔뜩 경직된 것이 느껴졌다.

*

헤르한이 모는 말은 밤공기를 유영하듯이 아주 조용하고 매끄럽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내달았다.

꽤 속도가 붙어서인지 밤바람이 제법 날카롭게 리엘라의 살결을 스쳤다. 그게 걱정되었는지 헤르한은 한 번씩 한 손에 고삐를 몰아 쥐고 다른 손으로 리엘라의 옷자락을 여며주거나 허리를 더 깊이 끌어안아 주었다.

리엘라는 등을 받쳐주는 헤르한의 단단한 몸에 자신을 맡긴 채 말머리가 이끄는 곳을 보았다.

어쩌면 이대로 황성을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말은 바하보르덴의 성벽을 지나 어느 음습한 골목에 다다라서야 달리기를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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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데이트 장소로는 너무 음산하지 않나요?”

헤르한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리엘라는 일부러 밝게 장난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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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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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더 무서워하시는 것 같은데요? 전 용병단 때 여기보다 더 음침한 데도 자주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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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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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뒷골목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는걸요.”

반은 진담이고 반은 허풍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내내 굳어 있던 헤르한의 얼굴에 어이없는 미소나마 떠올랐으니 리엘라는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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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군. 나도 이 김에 용감한 용병 아가씨 덕 좀 보지.”

헤르한이 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어두운 골목 안쪽에 자리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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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늘 내가 하던 말 기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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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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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만 있으라고. 너는 내가 꼭 지킨다고.”

달빛을 담뿍 받은 목소리가 리엘라의 가슴을 울렸다. 새까만 망토를 뒤집어썼는데도 헤르한은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리엘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그런 그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술집의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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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근처에서 거칠게 멈추더니 누군가가 숨을 몰아쉬며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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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저자들의 속셈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단박에 헤르한과 리엘라 앞까지 내달은 사내는 두 팔을 벌려 가게의 입구를 막고 헐떡거렸다.

리엘라는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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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엘 경?”

황제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도 눈을 부릅뜨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엘은 황제가 초대한 손님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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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경! 갑자기 무슨……. 어디서 온 거예요? 언제부터 따라온 거죠? 안 된다는 건 또 무슨 말이고…….”

리엘라가 온갖 질문을 쏟아내는 동안 이엘은 계속해서 입구를 막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거칠게 호흡하면서 그가 겨우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이는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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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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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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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를 밟았나?”

이엘은 대답하는 대신 다부진 눈을 들었다.

꼭 황제에게 맞서기라도 하는 그의 눈빛에 리엘라는 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대체 두 사람은 어째서, 대체 무얼 두고 저렇게 매번 다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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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상인의 정체도 아는 듯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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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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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아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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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은 나중에, 빠짐없이 받겠습니다.”

긍정을 뜻하는 대답에 헤르한이 ‘하!’ 하고 내뱉은 헛웃음이 골목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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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여길 빨리 뜨셔야 합니다. 지금 저 안에는 그림자 상인의 조직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폐하께서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즉시 놈들이 대사님을 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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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노린다고요?”

리엘라가 놀라 묻자 헤르한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

이엘도 아차 싶었는지 리엘라의 안색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리엘라를 겁줄 작정은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헤르한이 리엘라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를 제 뒤로 감추었다.

다시 서늘한 두 남자의 시선만이 맞부딪치는 가운데, 헤르한이 먼저 침묵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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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안에 그림자 상인 조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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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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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나중에 묻지. 지금은 다른 것을 묻겠다. 이엘 바이스. 너는 내가 리엘라를 위험한 곳에 끌고 올 만큼 멍청한 사내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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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헤르한의 날카로운 시선에 맞서던 이엘이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낮게 탄식했다.

이엘의 어깨가 허탈하게 늘어졌을 때, 그가 가로막고 있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에서 아시온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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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딱 알맞게 도착하셨군요! 마침 내부는 다 정리가 끝났…… 는데. 이 자는 왜 데리고 오신 겁니까?”

 

*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리엘라는 헤르한과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엘은 아시온과 함께 한발 뒤에서 그들을 뒤따랐다.

꼭 중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엘의 표정이 좋지 않아 신경 쓰였지만, 리엘라는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지하의 술집. 아니, 아마도 술집이었을 널찍한 실내.

리엘라는 당황스러운 광경에 절로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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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대장님이 나오시기에 예상은 했지만……!’

테이블이 엎어지고 의자가 부서진 난장판 가운데 열댓 명쯤 되는 사내들이 포박되어 있었고, 그 주변을 검을 든 또 다른 사내들이 경계하고 있었다.

검을 든 이들은 사복 차림이었지만 리엘라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전부 황실 근위대 소속의 기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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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털었던 상인은 저쪽에 있습니다.”

아시온이 가리킨 곳, 가장 안쪽에 묶인 사내는 입에 재갈을 물고 있었다.

이미 갖은 고초를 당한 듯 넋이 나간 그는 아시온이 재갈을 풀어주자마자 마구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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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다들 뉘시길래 이러는 겁니까? 예? 우린 그냥 선량한 상인일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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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상인이 왜 무기를 들고 가게 안에 뭉쳐서 숨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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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그건 호신용이라니까요. 흐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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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네 놈 억울한 사정이 진짜인지는 이제 알게 되겠지.”

아시온의 말이 끝나갈 때쯤 헤르한이 리엘라의 손을 조심스레 놓았다.

리엘라는 헤르한이 저 사내의 기억을 읽으려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는, 황제가 놓은 손을 곧바로 다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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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세요.”

저자가 무슨 죄를 지은 자인지,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 자인지도 모르면서 리엘라는 그저 헤르한만을 걱정했다.

헤르한은 다정하게 리엘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뒤에야, 다시 사내의 앞에 섰다. 그러곤 무릎 꿇은 사내의 목을 틀어쥐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재갈을 물지 않았는데도 헤르한의 위압에 억눌려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헤르한이 판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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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자였군. 판별법을 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고.”

아시온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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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여기까지 오셨는데 아쉽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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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상했던 결과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는 오히려 다른 쪽에 있었지.”

헤르한이 사내에게서 돌아섰다. 깊게 드리운 후드 아래, 번뜩이는 매의 눈이 이제 향하는 건 이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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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어쩐지 악연이다 싶더니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군.”

헤르한은 이엘의 앞에 다가가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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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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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이엘은 순순히 손을 내밀면서도, 그리 순종적이지 못한 눈빛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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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 마음은 읽지 못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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