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를 품은 달-17화 (17/47)

#17

동이 터오기 전, 구름만 어두운 하늘을 가득히 메우더니 어느 사이엔가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눈은 시나브로 쌓여 왕이 편전으로 나설 즈음에는 급히 어도(御道,궐내에

왕이 다니던 길)를 비로 쓸어내야 했다. 훤은 어도로 내려서며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언제부터 내린 눈인가?”

“상감마마께옵서 기침하신 이후였사옵니다.”

내관의 답에 훤은 비로소 안심하며 중얼거렸다.

“그러한가? 다행이구나. 발은 젖지 않고 갔구나.”

훤은 눈을 본 순간 제일 먼저 새벽에 성숙청으로 돌아가려고 월대 아래까지 버선발로 내려섰을

월의 발이, 눈이 스며들어 시리진 않았을지 부터 생각난 것이었다. 그리고 젖지 않았을 거라

여기면서도 마음은 이미 눈에 젖어 시려져 있었다. 지금 이 눈이 계속 쌓인다면 오늘밤 침전으로

오는 월의 짚신은 이 눈을 밟게 될 것이고, 짚신이란 것은 눈을 막아주진 못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눈이 쌓여 다니는 길이 불편하지 않게 궐내의 모든 눈을 수시로 쓸도록 하라. 굳이 어도만이 아니라

신민(臣民)이 다니는 곳도 쓸어, 어느 누구 하나라도 눈에 발이 시리지 않도록!”

“분부 받자와 거행하겠나이다.”

훤은 발끝에 눈 하나 묻히지 않고 천추전으로 들었다. 온돌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온기에 조차

월이 잠든 방의 온돌을 걱정했다. 북쪽 차가운 행랑에 볕이라고는 발걸음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방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온돌을 데울 장작은 제대로 있는지도 걱정스러웠다.

당장 달려가 월의 이불 아래에 손을 넣어 확인해 보고픈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한번 일어났지만,

눈앞에 상참의를 위해 새벽부터 등청해 있는 대신들로 인해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운은

상참의가 시작되자 어지러운 마음까지 거두어 물러나 나갔다.

훤은 조강을 간략하게 끝낸 뒤, 대신들을 향해 어느 때 보다 더 위엄을 갖춰 말했다.

“소격서의 제조(소격서에서 가장 상급 직위, 종2품) 들어 있는가?”

갑작스런 왕의 호명에 소격서제조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신들이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소격서제조는

화관무직(華官?職, 이름이 높고 녹이 많은 벼슬. 즉, 중요관직)이 아니기 때문에 왕으로부터

멀리 앉아 있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신, 소격서제조 들어 있사옵니다. 윤언하시오소서.”

“원래 소격서에선 새해 정월달 첫 신일(辛日)에 원구단(圓丘壇)에서 정기적으로 제천의례를

주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새해에는 반드시 행하길 명하노라.”

“네에?”

소격서제조 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신들, 심지어 옆의 내관들까지 놀라 일시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 졌다. 그리고 방금 자신들의 귀가 무엇을 들었는지 의심이라도 하는 듯 서로의 눈치를

봤다. 사헌부의 대사헌이 큰 목소리로 간청했다.

“주상전하! 어명을 거두어 주시오소서.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분부이시옵니다. 원구단이라니요!

그러잖아도 소격서를 혁파하지 않고 둔 것만으로도 현성지군의 뇌명에 누가 되고 있사온데,

어찌 원구단에서의 제천의례를 명하시옵니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왜 아니 되는가?”

감정이 실리지 않은 조용한 왕의 목소리에 신료들은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화를 내며 물어보았다면

거기에 상응해 답을 올릴 수 있겠지만 감정 벗은 목소리는 그 어심(御心, 왕의 심중)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수긍하고 물러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왕이 물은 만큼만

답하는 것. 이것이 지금 현재의 최선이라 생각한 대사헌이 용기 내어 답했다.

“조선은 명나라에 제후의 예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후의 나라에서 감히 원구단 제천의례를 행할 수

없음이옵니다.”

“그렇다면 원구단에서 제천의례를 행하는 것은 누구여야 가능한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되묻는 왕도 두려웠다. 하지만 대사헌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은 천자이신 명나라의 황제폐하만이 행할 수 있사옵니다.”

“음, 그렇군. 알겠다. 천자라······. 난 그럼 무엇인가? 경들이 충성을 맹세한 나는 그럼 무엇인가?

그렇다는 건 경들은 조선의 왕인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명나라의 왕에게

충성한다는 것이렷다?”

조선의 왕과 명나라의 왕을 동격으로 놓고 말하는 훤의 목소리는 약간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대사헌은 자신이 서서히 훤의 술수에 말려들고 있음을 느꼈지만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뜻은 결단코 아니옵니다. 천신들은 주상전하의 신하들이옵니다. 그것은 진실로 변함이

없는 것이옵고, 단지 제후의 예를 취하겠다 맹세한 태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조급하게 말하는 대사헌과는 달리 훤의 말은 여유로 가득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느니.······헌데 제후국이 되겠다 맹세하신 그 태조대왕께옵선 매년 원구단에

제천의례를 올리시었는데 이는 어찌 된 것인지······. 원구단에 제천의례를 올리는 것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면 태조대왕께오선 명나라의 황제와 똑같은 천자란 뜻이 아닌가?

아, 그리고 태조대왕을 상왕으로 두셨던 정종대왕께옵서도 매년 원구단에서 제천의례를 올리시었고,

태종대왕께오서도 그러하시었지? 이는 어찌 설명할 텐가?”

“하오나 그 당시엔 국가의 의례가 규정되기 전이었사옵니다.”

“의례가 규정되기 전이었기에 그 당시의 제천의례는 잘못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태조대왕!

정종대왕! 태종대왕! 이 상대왕들이 하신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 그 당시에도 제후국의 예가

있어 명나라에 조선백성들의 피를 짠 조공과 조선의 딸인 어린 처녀를 공녀로 보내었거늘!

이것을 본다면 분명 그 당시에도 제후의 예라는 것이 있었다. 헌데도 원구단에서의 제천의례는

성대히 행하여졌다. 어찌 설명할 텐가?”

어느덧 왕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에 밀릴 새라 대사헌도 목소리에 힘을 가했다.

“이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있사옵고 모든 의례는 그에 따르고 있사옵니다.

국조오례의에는 원구단에서의 제천의례는 규정한 바가 없사옵니다.”

훤의 말이 일시에 사라졌다. 말문이 막혀서는 절대 아니었다. 신하들도 그것을 알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한 박자의 말을 쉬고 뱉어낼 말은 신하들을 향한 공격이 담겨있을 거란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훤은 괜히 서안 위에 놓인 서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신하들의 분위기를 읽었다.

이윽고 훤은 높낮이가 일정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하듯 말했다.

“그 국조오례의를 편찬하라 명한 분은 세종대왕이시었다. 집현전의 학자들과 더불어 같이 토의하여

그 절충안을 찾으시면서 참고했던 것은 당나라와 명나라의 예서도 있었지만 고려까지의 예서인

<고금상정례>도 참고 되었다. 성종대왕에 이르러 완성이 되긴 했지만 모든 기틀은 세종대왕 때

만들어져 있었고, 세조대왕 땐 그것을 더욱 견고히 하여 거의 완성단계였다. 하지만! 세종대왕과

세조대왕, 이 상대왕들께오서도 원구단에 제천의례를 행하시었다. 국조오례의에 규정한 것과는

상관없이!”

훤은 말을 멈추고 파평부원군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대신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왕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도 제후의 예를 따지고자 한다면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존재자체가 제후의 예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명나라의 사신이 오면 제일 먼저 경국대전부터 숨기느라 바쁜 것이거늘.

조선의 가장 상급법전은 중국의 법이 아니라 바로 경국대전! 헌데 경국대전은 되는데 제천의례는

아니 된다? 허참! 이해가 안 되어이.”

파평부원군은 왕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평소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위였다. 그런데 까닭모를 시선을 받으며 왕이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와 닿는 시선이 차갑기 그지 없었기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져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이런 당황을 파악한 훤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묻겠다! 파평부원군이 답하라! 국조오례의의 마지막 단계에서 누구의 손이 거쳐 갔는가? 그리고

경국대전이 완성되기 직전의 갑오대전은 누구의 손을 거쳤는가?”

자신을 지목 당하자 그제야 어리둥절해 있던 파평부원군의 심장에 시퍼런 칼날이 날아와 꽂힘을

느꼈다. 이제껏 왕이 말한 원구단이니, 제천의례니, 국조오례의니 하는 말의 속뜻은 바로 왕의

장인인 국구를 향해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법과 의례의 기반이 되는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는 둘 다 성종 때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경국대전의 모체인 갑오대전과 국조오례의는 성종이 어렸을 때, 정희왕후 윤씨의 수렴청정을

받을 당시 완성된 것이었다. 즉, 당시의 성종의 장인이었던 한명회(예종과 성종의 장인. 세조의

왕위찬탈의 일등 공신이었고 조선시대 국구를 논할 때 가장 대표적인 인물)의 손을 거쳐 간 것이었다.

정희왕후는 세조의 정비로 아래에 의경세자와 해양대군, 의숙공주를 두었다. 그런데 의경세자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다가 월산군과 자을산군을 남겨두고 죽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어 5살 연상인 한명회의 큰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례를 올린 다음해에 죽고 아래의 아들 인성대군은 유년기에 죽어버렸다. 해양대군이 바로,

세조가 죽고 19살의 어린 나이로 왕의 자리에 오른 예종이었다. 하지만 이때 예종에겐 한백륜이란

다른 장인이 있었다. 그리고 한명회의 큰 딸에서가 아니라 한백륜의 딸에게서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를 두었다. 그런데 예종도 즉위한 뒤, 14개월 만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나마도 즉위기간 대부분을 정희왕후의 섭정아래에 메여있었다. 예종이 갑자기 죽자,

차기 왕은 순리대로라면 제안대군이 되어야 했지만 한명회는 정희왕후와 결탁하여 또 다른 사위인

자을산군을 왕으로 앉혔다. 제안대군이 4살이라 어리다는 핑계였지만, 자을산군도 13살의 어린

나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가 곧 성종이었다. 무엇보다 자을산군은 의경세자의 둘째아들이었고

이보다 나이가 많은 장손인 월산군이 버젓이 살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분 없는 자을산군의

왕 추대는 순전히 한명회가 국구로 세도를 이어가려는 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명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월산군이 아니었다. 상대는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아들로

세조의 총애를 받을 만큼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인물인 구성군이었다. 구성군은 세조가 ‘이시애의

난’ 때 사도병마도총사로 임명했고 그는 이 난을 평정하고 돌아와 오위도총부 총관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영의정으로 특서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28살이었다. 예종이 죽자 한명회는 종실의

중심축인 구성군이 그 어떤 존재보다 두려웠기에 성종을 왕좌에 올린 뒤 1년도 되지 않아 그에게

유배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만든 법이 왕족의 관리등용 금지법이었다. 한명회라는 국구의 세도

영위를 위해 왕권강화란 미명 아래에 만들어진 이 법은, 왕 이외의 종친들은 물론 왕의 사위인

의빈까지도 관리등용 금고법으로 갑오대전에 명시되었고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와 반대로 국구의 막강한 권한은 법으로 보장해두었다. 국조오례의에도 제후의 예를

핑계 삼아 왕의 신성권인 원구단의 제천의례를 없애고, 왕권을 떨어뜨리는 그 아래 중사 제례부터

명시했다. 이 모두가 성종이 성인이 되어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이어받기 전, 7년 동안 장인

한명회의 섭정 아래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왕권을 약화시키고, 국구의 권한을 강화한 폐단. 훤은 그것을 파평부원군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원구단에서 제천의례를 거행하겠다는 것은 왕의 신성권을 되찾아 왕권을 강화하고,

아울러 국구의 세도를 약화시키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그런데 훤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다른 왕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것과는 철저하게 다른 것이었다. 훤은 어릴 때부터 세종대왕을

좋아하여 세종이 빼어났다는 가야금을 따라 배웠을 정도였다. 그런 세종대왕을 좇아 왕권을

강화해 나갈 것이고, 이는 세조대왕처럼 무단강권식 왕권강화가 아니라 문치주의식 왕권강화를

해 나갈 것이란 짐작을 가능하게 했다. 훤의 학문 깊이에서 오는 추측도 이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렇게 되면 국구뿐만이 아니라 국구의 힘으로 관직에 등용되어 있는 외척일파를 모조리 밀어내고

학문으로 무장된 새로운 인재들을 등용 할 것이란 뜻도 되었기에 파평부원군의 마음은 분노로

들끓었다. 자신을 손쉽게 쳐내기 위해 자신의 딸인 중전을 여지껏 처녀귀신으로 두고 있는 것이란

원망도 섞였다. 어차피 왕이 건강해도 외척일파를 완전히 몰아내기 전에는 중전과의 합방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국구와 세자의 외조부는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왕의 건강이 나빠져 조정에 관여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파평부원군에겐 더 도움이

되었다. 한명회가 경국대전에 명시해 놓은 국구의 막강한 권한! 이것이 현재 파평부원군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가장 든든한 힘이었다.

훤은 다시 조용히 파평부원군에게 물었다.

“어찌 답이 없는가? 마지막에 누구의 손을 거쳤는가?”

“정희왕후이시옵니다.”

일부러 국구인 한명회는 거론하지 않고 답했다. 정희왕후가 명실공이 수렴청정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훤이 이 답을 비웃으며 말했다.

“국구! 그대가 조금이라도 생각이란 것을 한다면 그리 답하진 않았을 것인데. 정희왕후께오선

한자를 모르시는 분이었다. 하여 승정원의 승지들이 한문으로 적혀있는 모든 공문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청단을 받고, 그 청단을 다시 한문으로 번역하는 번거로운 일을 하였다. 헌데 한문으로 된

국조오례의와 경국대전의 분량이 어찌되는데 그 많은 것의 손을 보셨단 말이냐?”

비록 정희왕후가 한명회와 결탁해 성종에게 옥쇄를 넘기긴 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제안대군을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인 평원대군의 양자로 입양시키고 월산군, 귀양 가 있던 구성군까지

신분을 보장해주면서 지켜낸 인물이었다. 그리고 왕권도 성공적으로 지켜낸 뒤 성종이 20살이 된

그해 더 이상의 정사에 관여하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 성종이 성군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닦아놓은

인물이기도 했다. 성종 때 조선의 모든 제도와 문물이 확립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이룩한 사람은

성종이라기보다, 정희왕후에 가까웠다. 성종이 정사를 주관하기 시작한 뒤, 세조의 측근인

훈구세력을 쳐내고 사림세력을 끌어들일 때도 그녀는 그 어떤 제재 없이 성종의 뒤에서 힘이

되어주었다. 이와는 달리 자신의 할머니는 상왕의 정사에도 사사건건 개입을 했고, 그런 왕대비에게서

빼앗듯이 왕권을 이양 받은 훤이었다. 그래서 정희왕후를 들먹였기 때문에 훤은 비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명회로부터 그나마 왕권을 지켜낸 정희왕후를, 현재 왕대비와 같은 통속인

파평부원군이 감히 입에 담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훤은 또 다시 사헌부의 대사헌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요즈음 지방관의 윤대를 받으며 느낀 바로는 유향소가 원활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특정 일파의 위세 아래 탐관오리가 득세를 하니 어찌 유향소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겠는가?

허니 의정부에선 이를 다시 한 번 검토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훤은 외척일파와 사림세력 모두 말을 잃은 것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경연청을 나갔다. 원구단의

제천의례가 성리학에 반하는 것이라 한다면 유향소는 오히려 일반백성들에게까지 성리학의

교리를 전파하는 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울러 사림세력이 정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도

하는 지방자치기구가 유향소였던 것이다. 또한 원구단의 제천의례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유향소는 이와는 정반대 성격인 왕권견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서 왕의 심중은 확실해졌다.

왕권을 강화하기 전에는 사림들이 정계로 나와 주지 않을 것이기에 우선 왕권부터 강화하여

전 홍문관대제학의 죽음으로 숨어버린 사림세력을 정계로 끌어와 외척일파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다시금 사림세력 중심의 왕권강화로 재편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기에 왕의 원구단 제천의례에

가장 먼저 반대를 들고 일어나야 할 사림세력은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격분하여

들고 일어나야 하는 쪽은 오히려 외척일파가 되어버렸다. 왕이 나가고 난 뒤에도 각자 한참을

생각하던 신료들은 외척일파와 사림세력으로 나뉘어 삼삼오오 흩어졌다. 모두가 정신없이

이 일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할 판이었다.

상선내관은 왕이 산책하는 것을 뒤따르며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훤은 눈이 내리는 것도,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상감마마, 산책하시기에 좋지 않은 날씨이옵니다. 게다가 옆에 운검도 없이 위험하옵니다.”

“그러한가? 하하하.”

훤은 웃으며 상선내관을 보았다. 새파랗게 질린 상선내관의 표정을 보고는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선은 너무 생각이 많아. 생각이 많으니 걱정도 많지. 상선내관의 자리는 생각이 많으면

아니 되는 것이야.”

“하오나······. 조정이 많이 시끄러울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시끄러워 지지 않으면 곤란하지.”

훤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눈을 보았다. 시끄러워져야한다. 그래야 연우의 죽음을 조사하러

다닐 의금부도사의 움직임이 원활해질 테고, 그만큼 빨리 조사가 가능해질 것이었다. 외척들은

자신들의 세도가 풍전등화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일개 의금부도사에게 신경을 쓰진 못할 것이니,

의금부도사의 움직임을 그저 전상선내관의 죽음을 캐고 다니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말 것이었다.

훤은 이번의 소란을 던져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속셈이었다. 연우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왕대비뿐만이 아니라 파평부원군도 개입되어 있을 거란 확신에서 오는 결정이었다.

그들이 원구단의 제천의례를 막느라 진을 빼고 있는 동안, 그들의 뒤통수 바로 뒤에서 세자빈

사살비리를 캐내어 그들을 일시에 몰아내리란 계획. 하지만 거의 도박에 가까운 위험이 있었다.

그들을 몰아내고 그들 자리를 메워줄 사림세력 없이는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불안하기는

상선내관보다 왕이 더 심한 상태였다. 훤은 자신의 불안을 달래 듯 먼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의 스승은 지금 이 나에게 어떤 미소를 보여줄까나······.”

산책은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조계를 위해 천추전으로 들어갔다. 승정원의

승지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에게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자리에서 정사처리에만 신경을 쓸 뿐이었다. 훤도 조금 전의 조강에서의

선포는 머리에 없는 듯이 보였다. 조계가 끝난 뒤 실무관리들의 윤대가 시작되었다. 왕의 앞에

두 줄로 서로 마주보고 앉은 실무관리들 사이에 관상감의 지리학교수와 의금부의 도사도 보였다.

먼저 관상감의 지리학교수에게 왕이 말했다.

“지리학교수! 간만이구나. 관상감에선 어떠한가?”

“연말이라 다른 교수들은 바빠서 며칠 동안 퇴궐도 못하고 있기에 천신만이 송구하옵게도

상감마마를 뵈옵니다.”

“그렇겠군. 달력을 편찬하여 백성들에게 나눠주려니 바쁜 것은 당연하지. 아울러 새해의 시간과

천문을 재계산하기만으로도 바쁠 것이야. 노고가 많구나.”

관상감의 명과학교수가 바쁘다는 것만큼 훤의 어깨가 가벼운 것도 없었다. 그가 바쁘기에 중전과의

합방에 대한 압박을 덜 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관상감에선 쭉 바빴으면 하는

것이 훤의 진심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지리학교수가 들었으니 이에 준하여 말하겠다. 지도편찬은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다.

허니 면밀한 지도편찬을 하되, 기밀은 철저히 하라. 그리고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는 지도를

다음 달까지 나에게 보고토록 하라.”

“즉시 거행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천문학교수와 명과학교수에게 다음 한 해 동안의 날씨를 명확하게 추산해 보고하라 일러라.”

“알겠사옵니다.”

다른 실무관료들을 거쳐 드디어 의금부도사의 차례가 되었다. 훤은 말로 하지 않고 종이에 글을

써서 그에게 전하도록 했다. 어명을 적은 문서에는 전 상선내관의 자결을 조사하라는 어명이

적혀있었고, 수결(手決, 일종의 sign. 관직에 있던 사람이 도장과 같은 격으로 쓰던 부호 같은

것으로 현재의 서명과 같은 의미였음.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독특한 문화) 위에 옥새까지 명확하게

찍혀있었다. 이를 읽은 의금부도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말로 해도

되는데 글로 써서 내린 것도 이상하고, 옥새는 그렇다고 쳐도 왕의 수결까지 써넣은 것이

이상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말했다.

“분부 받잡고 성심껏 조사하겠사옵니다.”

내관은 그 문서를 다시 사관에게 가져가 사초에 초록하게 한 뒤에 의금부도사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문서를 품안에 고이 넣었다. 윤대가 끝나고 천추전을 나서는 의금부도사를 왕의 사령이

눈으로 잡았다. 그는 의아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 눈을 따돌리며 그를 따라 갔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도달한 사령은 그제야 주위를 한번 살핀 뒤, 의금부도사에게 품속 밀지를 꺼내주고는

등을 돌려 섰다. 의금부도사는 밀지를 읽고 깜짝 놀라서 사령의 뒷모습 보았다. 왕의 밀지 내용은

전 상선내관의 자결을 조사하는 척 하면서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가 죽은 허씨처녀의 죽음에

대해 비밀리에 조사하여 매일 왕에게 보고하라는 어명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여러 설명도

적혀있었다. 처음에 의심스러웠던 눈은 왕의 수결과 옥새를 확인하고는 단단해졌다. 조금 전

천추전 안에서 받은 문서에 있던 수결과 옥새와 똑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절대 가짜는 아니었다.

사령이 인사하고 가고 난 뒤에도 의금부도사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근처의 아궁이에 왕의 기밀문서를 넣어 태웠다. 훤이 마지막에 태우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의금부로 돌아갔다.

운은 잠에서 깨어나 선전관청으로 갔다. 그곳도 어김없이 왕의 선포에 소란해져 있었다.

처음에 원인을 몰랐던 운은 다른 선전관들의 말을 듣고 사태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내 왕의

의중을 파악했다. 다른 선전관들은 운에게 정황을 설명하면서 운의 표정에서 조금이나마 왕의

의중을 훔쳐보자 했지만 운검의 표정은 왕보다 더 변화가 없었다. 운은 그 소란과는 상관없다는 듯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검술 훈련을 끝낸 뒤, 운은 왕의 곁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우와 월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것을 확인

하는 방법은 염에게로 달려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염에게 드러내 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직까지 연우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염에겐

연우가 월로 살아있어도 비극이었고, 월이 만약에 연우가 아니어도 슬플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염이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게 알아보아야 했다. 운은 마구간으로 달려가 이전에

왕이 하사한 자신의 말인 흑마를 타고 눈발을 가르며 염의 집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말 위에서 왕의 옆을 비우는 운검의 마음은 더 조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