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회
693
나는 쌍둥이들과의 대화를 끝으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향했다. 부인의 초상화가 맞이라도 하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해리 좀 불러주세요."
"허, 난 불러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초상화잖아요."
부인이 투덜거리면서 초상화에서 사라진다. 아마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가는 거겠지. 투덜거리면서 말하는건 들어주는 모양새에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해리가 초상화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해리는 전보다 더 수척해진 것 같은 안색이었다. 아마 볼드모트가 엄청 화냈을게 뻔했다. 나 때문에 흉터가 쑤시는건가. 좀 미안하다.
"드레이코? 왜 부른거야?"
"가브리엘이, 구해줘서 고맙다고 마차로 초대했어. 5월 말쯤에. 갈 거야?"
"으음…"
"갈 거야, 말 거야?"
엄청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다. 뭔가 약속을 깨고 싶은 어린 아이 같기도 했다. 잠시 뒤에 해리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미안, 못 갈 것 같아. 시리우스랑 리무스가 꼭 다른 애들하고 같이 다니고, 타 학교랑 붙어있지 말래. 항상 조심하라고 하고. 자기네들은 마루더즈면서. 그래도 되는거야?"
"혼자 가는 거 아닌데?"
"응?"
"나도 갈 거야."
해리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방금 전은 어기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았다면, 지금은 묘하게 단호하다. 해리가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 마냥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래, 널 해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아니잖아?"
"…알고 있었어?"
"어."
해리가 동그렇게 뜬 눈으로 빠르게 입을 연다. 걱정이 반, 다급함이 반씩 섞인 것 같은 얼굴이다. 아니, 왜 이렇게 과보호를 하는데.
"그럼, 드레이코. 저기…"
"말해."
"보, 볼드모트가 살아 돌아온 것도 알아?"
"……뭐?"
"몰랐어?"
해리가 눈을 더 둥그렇게 뜬다. 나는 혼란스러움을 감당할 새도 없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니, 알았어."
언제부터지? 뼈는? 피는 어떻게 한 거지? 모든 건 다 내가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아니 그보다 어째서 지금-
"…드레이코, 너 괜찮아?"
"……어."
"그 피는 네 피인 것 같았어."
성 뭉고 병원에서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팔에 칼에 베인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고 말이다. 내 피를 가져간건가? 그렇다면, 해리는 볼드모트가 부활한 꿈을 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뼈는 어떻게?
나는 빠르게 입을 열어 말을 내뱉었다. 내가 내뱉는 말이 아닌 것 마냥 낯선 목소리였다.
"해리, 그래서 넌 갈 거야?"
"…드레이코, 내가 말해볼게."
"뭐를?"
"장난은 서프라이즈일 때가 재미있는 법이지- 4월 언제 주인지는 나중에 알려줄게! 너무 걱정하지마! 다 잘 될거야!"
"잠까-"
해리가 찡끗 눈웃음을 치고는 초상화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말 아직 다 안 끝났는데. 나중에 볼 때 말해야겠다. 그보다 방금 굉장히 시리우스 같았어.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에 간다고 말해야겠다."
좌절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 * *
Side, Lucius Malfoy
"볼드모트가… 부활했다고요?"
"교수님, 그게 사실입니까?"
"그걸 말한 이는 저, 말포이 부부라고요."
아서 위즐리가 루시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몰리 위즐리는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행위에 나시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루시우스가 그녀의 손을 잡고는 완벽하게 무시한 채로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덤블도어가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루시우스와 나시사일세."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습니까! 교수님, 저 말포이를 어떻게-"
"어떻게 저들을 믿나!"
이 호통 소리는 무디인가. 큰 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는 나시사의 손을 루시우스가 다시 잡았다. 그가 매섭게 무디를 노려보았다. 무디는 꿈쩍도 하지 않고 목소리만 높일 뿐이었다.
"알버스, 저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저들은 죽음을 먹는 자였네! 자네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탈이야!"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나시사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이런 것까지 각오하고 온 거겠지. 같이 오지 않아도 되었는데. 루시우스가 나시사의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백금색 목걸이가 찰랑거렸다. 루시우스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딱히 믿으라고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 말은 사실입니다."
스네이프가 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그는 허탈함과 분노, 혼란스러움이 가득 뒤섞인 표정이었다. 스네이프는 차는 숨에 헉헉 거리면서도 쥐어뜯 듯 팔을 걷어올렸다.
"보십시오. 어둠의 마왕이 그린 표식이 더 진해졌습니다. 그리고 전 덤블도어 교수님의 명령으로 그 자에게 갔던 길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교장실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심지어 초상화들도 자는 척을 멈추고는 경악 섞인 침묵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블랙은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다. 블랙이 비아냥 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좋습니다. 제 친구의 희생이 헛된 거라고 칩시다. 다른 이들의 죽음이 헛된 거라고 쳐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렇다해도 저들은 믿지 못합니다. 첩자일지 누가 압니까? 거짓말 이라면요? 우리를 현혹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난 너 따위를 현혹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다. 비꼬는 솜씨는 여전하군, 블랙."
"마찬가지야, 말포이."
블랙이 증오스러운 눈길을 루시우스와 나시사에게 던졌다. 하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먹는 자들로 인해 한 번 이상의 희생을 겪어보았다. 어지간히도 증오스럽겠지. 거기에 가담한 루시우스가 생각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시사가 움츠러들려는 걸, 루시우스가 손을 다시 한 번 잡아서 막았다. 루시우스는 냉담한 눈동자로 그들을 흝어보았다.
"데달루스 디글. 정의감도 넘치고 의욕도 있지만, 실력이 뒷 받쳐주질 못하지. 스터지스 포드모어. 위험에 맞서 싸울 정도로 용기가 가상하지만, 실력은, 글쎄. 헤스티아 존스. 마법을 잘 쓰기는 하지만, 응용력이 떨어져. 아서 위즐리. 순수혈통이란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천박해. 킹슬리-"
"허허허, 루시우스, 그만하게. 같은 기사단원이잖나."
"……."
루시우스가 불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닫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루시우스의 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심지어 초상화들도 서로 수근댔고 말이다.
"기사단원이요? 죽음을 먹는 자가 기사단 이라뇨?"
"교수님! 저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제 친우를 죽인 게, 누구인 줄 알고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인가요?"
"잠깐만요."
밴스가 침착하게 손을 들어, 다른 이들의 말을 막았다. 그녀는 기사단원들 중 제일 차분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밴스가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어조로 둘에게 물어보았다.
"어째서 불사조 기사단원이 되신다는 거죠?"
떨어질대로 떨어진 기대가 밴스 덕분에 아주 조금 쯤은 올라간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평점심을 잃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가망은 있는 모습에 루시우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는 드물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복수해야할 상대가 있다."
"왜죠?"
"말포이를, 건드렸기 때문이지."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루시우스의 태도에, 밴스가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스네이프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세베루스!"
루시우스가 꽤 새삼스럽게 세베루스를 바라보았다. 세베루스는 그들을 탐색하고 있었지만, 도와주고도 있었다. 솔직히 도와준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세베루스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루시우스는 예전에도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진심이겠죠."
"그걸 어떻게 믿고 말 하는건가!"
나시사는 다른 이들의 호통 소리가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드물게 긴장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시우스가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저는, 말포이는, 강한 이들을 지지해요. 그리고 여러분은 강하지 않죠. 그렇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 보다는 훨씬 더 강해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건 사실이다. 완전히 오합지졸인 죽음을 먹는 자들보다, 이 쪽이 훨씬 더 가망이 있으니까 말이다. 루시우스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이걸 말하지 않은 이유는, 괜한 충돌을 빚고 싶지도 않았고, 그에게 돌아오는 보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 그러니까, 보, 볼드모, 트는 강해요. 여러분을 합친 것보다 몇 배는 강해요. 그래서 이럴 수록 여러분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말 하는건 가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시사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 이들에게만 예의를 차리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기사단원이 되었고. 나시사의 고압적인 면모만 알던 기사단원들은, 전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흴 욕하셔도 돼요. 말을 안 들어도 되고요. 마법을 날리셔도 돼요. 상종도 안해도 상관 없어요. 안 믿어주셔도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해 주세요."
나시사의 말은 뒤로 갈수록 더 단단해졌다. 루시우스가 가만히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펴보며, 계속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았다. 나시사의 단단한 목소리를 증명하듯, 그녀와 맞잡은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저는 그저, 볼드모트를 죽이고 싶을 뿐이예요."
루시우스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 같아선 이 사람이 자신의 아내라고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루시우스가 훌륭하다는 뜻으로 나시사의 손을 꽉 잡았다. 나시사는 할 말을 다 한건지 입을 닫았고, 이번에는 루시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씨시에게 욕하면 내가 되갚아줄거다."
"……."
다른 이들의 표정이 이상해진걸 알아챘지만, 루시우스는 진심이었다. 루시우스가 그만의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씨시가 말한대로, 너희들은 오합지졸이다. 마법 실력도 제각각이고, 솔직히 마법 전투를 하는 것도 개개인이 한다는 느낌이 강하지. 덤블도어는 너희들을 지도했겠지만, 서로 '협력해서' 싸우는 건 가르쳐주지 않은 것 같더군."
"하, 그러는 너희 죽음을 먹는 자들도-"
"난 그들을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루시우스가 냉담하게 블랙의 말을 끊었다. 다른 이들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은 태도였다. 루시우스는 그런 그들에게 삐죽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사과는 바라지 마라. 나는 사과하러 여기에 온게 아니니까. '말포이'는 사과를 할 수 없어."
- 그 자는 순수혈통의 격을 높여줄거다, 루시우스.
루시우스의 귓전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스치는 것 같았다. 그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저 당연하게 사람들을, 열등한 쓰레기들을 죽였으며, 당연하게 그 자를 섬겼다. 모든 건, 당연한 섭리였다.
하지만 어째서?
아버지, 순수혈통의 격을 높여준다고요? 그 자는, 볼드모트는 제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루시우스가 마음 속으로 그의 아버지에게 답했다.
말포이는 강한 이들을 지지한다. 하지만-
"나는, 볼드모트를 죽이기 위해 너희들에게 협력한거다."
-말포이는, 건드린 이들을 철처히 밟아준다.
그게 말포이만의 생존방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