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회
690
Side, Lucius Malfoy
루시우스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나시사와 저택에 앉아있었다. 그래, 그의 팔에 있는 문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전까지는. 그는 문신이 달아오름과 함께 이상함을 느꼈다.
요즘에 자꾸 팔이 달아오르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건 강도 부터가 달랐다. 화끈거리는 팔이 불에 데인 것 같았다.
아, 이건 어둠의 마왕께서 부르는 신호였다.
"…씨시, 어둠의 마왕께서 부르고 있어."
"……!"
나시사가 마시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나시사가 한껏 불안함을 머금은 눈동자로 루시우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우스는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피고는 홀린 듯 입을 열었다.
"…가야 할까?"
"……."
나시사는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게 분명했다. 그래, 루시우스 자신도 그랬다.
분명 말포이 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둠의 마왕의 편에 서야만 했다. 하지만 루시우스는 그러기 싫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드레이코가 안전하려면, 어둠의 마왕의 편에 서는게 유리해."
"루시…"
루시우스는 조사하는 중이었다. 제 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이들을. 하지만 배후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이건가 싶으면, 언제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어둠의 마왕은 강력해. 씨시, 나는 죽음을 먹, 는…"
-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닙니다.
그 순간 스네이프의 말이 생각난건 기분 탓이었을까. 루시우스가 말을 멈추고 나시사를 바라보았다. 나시사는 입술을 깨물며 무얼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 동안 둘 사이에서 정적이 계속되었다. 그 정적은, 누구 하나도 깨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집요정 하나가 나타나 그 정적을 깼다.
"주인님, 편지 왔어요! 마법부에서 보낸 급한 소식이래요!"
"……줘라."
"네!"
루시우스가 편지를 받았다. 나시사도 옆에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시우스는, 팽팽 돌아가는 사고를 정지할 수 밖에 없었다.
「말포이 부부께.
드레이코 말포이가 크라우치의 저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큰 상처는 없어 보입니다. 혹시 몰라 성 뭉고 병원에 이송 중이니, 자세한 정황을 아신다면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법부, 오루 본부, 루퍼스 스크림저.」
"…루시."
"……?"
"방금 전에, 어둠의 마왕은 강력하다고 했지?"
나시사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했다. 나시사가 루시우스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슬픔이 베인 미소였다.
"드레이코는 안전할지라도 행복하지는 못하겠지."
"씨시-"
"루시, 난 싫어. 난 드레이코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난, 루시도 행복했으면 좋겠는걸."
루시우스가 나시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시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시사는 울면서도 루시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싫어. 난 싫어. 난 정말-"
"씨시."
루시우스가 순간적으로 움직여 나시사의 볼을 쓸었다. 그의 손에 나시사의 눈물이 묻어나왔다.
"울게하지 않기로 했는데, 약속 못 지켰네."
루시우스가 나시사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목에 걸린 백금색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루시우스도 나시사의 표정과 비슷한 웃음을 지었다. 울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래, 우리는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지."
"……!"
"성 뭉고 병원에 가자."
루시우스도 이게 맞는 선택인지는 몰랐다. 어쩌면 정말로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건, 그는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그 자의 부활을 알리자. 드레이코가 괜찮은지 살펴보자. 그러자, 씨시…"
루시우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팔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부르는 쪽으로 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굳게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집요정, 성 뭉고 병원으로."
"네, 주인님!"
일그러지는 느낌이 둘을 감쌌다. 루시우스와 나시사가 손을 맞잡았다.
* * *
고개를 들자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병동… 은 아닌 것 같고, 성 뭉고 병원인가. 성 뭉고 병원이 익숙해지다니.
그나저나 나는 왜 여기 있는거지. 침착하게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Shit…"
볼드모트를 못 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제 어디있는지 조차 모른다. 차가운 물을 뿌리듯 닥치는 현실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내가 또 일을 망친건가. 나는 손으로 연거푸 얼굴을 쓸고는 나오려는 한숨을 막았다. 도대체 할 줄 아는 일이 뭐지? 나는 밑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보다 볼드모트는 왜 날 죽이지 않은거지? 왜 날 그냥 내버려 둔거야? 마법부가 온다고 해도, 나를 죽일 몇 초 쯤은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왜 나는 여기있는거지? 마법부 직원이 데려다 놓은건가? 끝없이 쏟아오르는 의문에 잠식될 지경이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치료사 하나가 들어왔다.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누가 데리고 온거죠?"
"음, 마법부 직원 한분이 데리고 오시던데요."
역시 마법부인가. 나는 이를 갈았다. 통신 마법을 날린지 5분 정도 지났었는데. 살려달라는 연락(거짓말이었지만 진실이 될 뻔 했다)을 했는데도 늦었다. 진짜로 하는게 뭐지.
아니, 이것도 결국은 책임전가다. 정말로 할 줄 아는게 없는건 자기자신 이면서도. 입가에 비웃음이 올라왔지만, 굳이 표정을 가다듬지는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거죠?"
"한 삼 일 정도요?"
"삼 일…"
삼 일 정도면 볼드모트가 꽁꽁 숨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제 볼드모트를 찾아낼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로 어쩔거지? 최선을 다하기는 했어? 사람을 죽이는걸 주저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잖아. 결국에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죽는거야. 내가, 아무 것도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음, 저기, 환자분? 말포이 군?"
"…네."
"보호자 분들이 온다고 하셔서요. 면담 하실거죠?"
"네."
치료사는 친절히 링거를 다시 꽂아주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정말로 치료사의 말대로, 나시사와 루시우스가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수척한 안색이었다. 또 걱정 끼친건가.
"전 괜찮아요."
"드레이코, 너는 정말…"
"왜, 왜 거기에서 쓰러진거니? 호그스미드 외출일이잖아. 신나게 놀아야 하잖아!"
"…죄송해요."
정말로 화가나고 걱정이 가득 담긴 것 같은 두 사람을 보자니, 약간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나는 눈을 조금 내리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을 걱정시키게 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