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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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죽음을 먹는 자가 호그와트에 있는걸 가정했다.
시리우스가 수상한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말할 때 그의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여러가지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 때까지만 해도 시리우스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크라우치 2세는 크라우치를 임페리우스 저주로 조종하고, 저택이나 다른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지팡이에 신호가 안왔고, 다른 이상한 낌새도 전혀 없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 것도. 그런데 어디가는 거야?"
"참 빨리도 물어본다."
"시어도르."
"…되게 늦게 물어보시네요-"
시어도르가 투덜대며 책을 집어넣는다. 뭐지? 내가 아는 시어도르 노트 맞나? 팬시도 의외였는지 눈을 크게 뜨며 시어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프네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 책벌레가 책을 집어넣었어?"
"누가 책벌레냐. 내기에서도 진 주제에."
"흥, 어차피 만년 솔로인 주제에."
"……."
시어도르와 팬시가 서로를 노려본다. 그래, 요즘들어 왜 안싸우나 했다. 다프네가 익숙하다는 듯 하하 웃었다. 전혀 생소하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시어도르가 책을 넣은게 안신기해?"
"음? 하지만 시어도르는 원래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는걸?"
다프네가 여전히 싸우는 두사람을 감상하듯 지켜보며 조용히 말한다. 하긴, 다프네는 어렸을 때부터 시어도르와 친구였다고 했으니까. 아마, 누구보다도 시어도르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일거다.
"애초에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가문의 지시여서야. 지식을 쌓으라나 뭐라나. 그리고 시어도르는 거기에 재미를 붙인거고."
다프네가 시어도르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그보다 둘이 싸우는거 말려야 하지 않냐.
"시어도르는 옛날부터 그랬어. 가문에서 무언가를 지시하면, 거기에만 집중했지. 재미를 붙이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냈어. 뭐, 춤실력은 절대 안나아지지만?"
노트 가문은 그렇게 좋은 가문이 아닌가보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도 분명 노트 가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좋은 보호자가 아니었지.
"그리고 요즘은 시어도르가 지시를 어기기 시작했어."
"……?!"
"아직 '책을 읽어라.' 정도의 가벼운 지시만 어기고 있지만?"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시어도르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봐온 시어도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벽을 치고 있었다. 저렇게 허물없는 사이가 된 것 같다가도 끝도없이 냉정해지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가문의 명령에는 굉장히 순순했었고.
반항을 시작한다…
분명 좋은 반응이었다.
"시어도르."
"아, 너 진짜- 응?"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시어도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다. 왜 그런 표정이냐. 팬시와 다프네까지 얼어서 날 쳐다보았다. 시어도르가 곧 표정을 풀고는 픽 웃었다.
"뭐래. 벌써 사춘기냐, 드레이코?"
"……."
기껏 걱정해줬더니,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어도르를 바라보았다. 시어도르가 앞으로 향하며 조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 걱정하기 전에, 너부터 챙겨."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
팬시가 뭔가 김빠진 표정을 짓는다.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줘야 했었나. 다프네가 대신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우리는-"
"말포이!"
지금 다프네의 말을 끊은거야? 다프네가 열받은게 여기서도 느껴진다. 슬리데린 중에서도 다프네의 말을 끊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데. 나는 상대방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할 말이 있어."
아, 그 시비 남학생인가. 이름이… 뭐였더라. 조금 특이한 것 같았는데.
"쟤 레이븐 클로 아냐?"
팬시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아,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나는 이름을 떠올리고나서(팬시가 말해준거지만)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다프네와 시어도르는 뭔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다프네가 떨떠름하게 말을 받았다.
"알아, 순수혈통 배척자. 선배가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당했다는 애."
"뭐, 시비만 안 걸면 시비 걸릴 일은 없다는데."
"……?"
그거 어디사는 누구냐. 나한테는 꾸준히 시비만 걸었는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팬시가 앞을 보호하듯 가로막았다.
"너한테는 볼 일 없거든?"
"…! 나도- 후… 아니, 그럼 여기서 말할게. 그래도 돼?"
클로는 어쩐지 급박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셋을 바라보았는데 숨길 수 없는 증오가 조금 서린 눈이었다. 금방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안하기는 했지만. 시어도르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조용히 말한다.
"말할 때 지나가자."
"……."
보통 이럴 때면 들어주는데. 쓸데없이 매정하다. 옆에서 다프네가 조금 웃으며 속삭였다.
"그러지마- 불쌍하잖아?"
"…다프네, 화났어?"
"아-니?"
화났군. 시어도르가 다프네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어쩌란거냐.
"네가 정해."
"……?"
"너한테 말 걸었잖아."
"난 상관없어."
"흐응, 내가 말해도 돼, 드레이코?"
"…마음대로."
다프네가 콧소리를 조금 내며 입을 연다. 시어도르가 동시에 몸을 떨었다. 본능적인 기억인거냐. 하도 많이 혼나니까 몸이 기억한 것 같다.
"왜 찾아온거야?"
"……."
"시비걸러고 온거니?"
"그러니까-"
"사과하려고?"
좀 말려봐. 시어도르와 팬시를 바라보니 둘 다 고개를 단호하게 젓는다. 화가 난 상태의 다프네를 말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설마 그 순수혈통 배척자님께서 무슨 짓을 하셨나?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것도 안하신다는 잘나신 레이븐 클로께서?"
가담할 사람은 있는 것 같다. 말리라고 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시어도르가 창의적으로 말을 비꼬았다. 팬시까지도 나를 잡으며 비장하게 물어본다.
"드레이코, 그랬어?"
"…한 번 정도 시비 걸리기는 했어."
"흐흥- 그랬구나-"
다프네가 노래하는 것 같은 어조로 말을 받는다. 별로 상관은 없었는데. 애초에 관심을 주지도 않았었고.
"난 상관 없는데. 사과도 받았고."
"그래서 받아줬어?"
"……어."
"하아아?"
시어도르가 한심하다는 뜻이 듬뿍 담긴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다프네도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바보를 보는 표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