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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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르는 곧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날 바라보았다. 뭔가 주제를 돌리고 싶어하는 기색이 빤히 보였다. 팬시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네 생일은 언제인데?"
그걸 왜 묻는거지. 나는 팬시가 생일에 시어도르의 반짝이 마법을 등에 단 채로('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써져 있었다) 지나다니는걸 목격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뒤에 시어도르는 죽도록 맞았지만. 나는 의심의 눈빛을 지우지 않으며 시어도르를 바라보았다. 시어도르가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 뭐. 네 생일만 모르잖아. 예전에도 생일은 안 말했다며?"
"선물공세는 별로거든. 그냥 넘어가."
"다른 애들은 다 아는데?"
시어도르가 입술을 삐죽인다. 아니, 내 주위에는 왜 나이를 자각한 사람이 없는거지. 저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자기가 알아야 할텐데.
"그래, 드레이코. 네 생일만 모른단말야."
"너는 생일파티를 여는 모습을 못 봤어."
"내가 싫다고 했으니까. 부모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뭔가 진 것 같잖아."
별게 다 진 것 같다. 나는 어이없다는 뜻으로 팬시를 한 번 쳐다보고는 슬리데린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프네의 은근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지말고. 너도 다른 애들 생일은 다 알고 있잖아?"
"…너희들이 알려준거잖아."
"그래도 아는건 사실이면서."
"……."
팬시가 입을 삐죽 내민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냐. 다프네가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운 거라면, 축하는 조용하게 할게."
"…6월 5일."
"응?"
"6월 5일 이라고."
팬시와 시어도르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뭔가 계획대로 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착각일거다. 나는 떨떠름하게 기뻐하는 셋을 바라보았다.
* * *
"해그리드."
노크해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오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몸부림치는 스터를 열심히 들고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해그리드, 저 수업 받아야 하는데요."
왜 아무도 없는거지. 이 맘 때쯤에 무슨 일이 생기나. 나는 원작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해그리드가 신문기사에 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거인혼혈 이라는게 다 밝혀지는건가. 예언자 일보를 보지 않는 나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해그리드?"
문을 여는 마법을 써야하나. 나는 구석 바위에 앉아서 해그리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두막집 뒤 쪽에 매인 사냥개, 팽이 으르렁 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시발, 설마 묶어놓지도 않았어? 아마 우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해그리드, 팽 좀 진정시켜 봐요! 프로테고!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다행히 동작정지 마법은 통한 듯 싶었다. 내 코앞까지 가서 멈춘 팽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바라보았다. 해그리드가 급하게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대로 되었네요."
깔끔하게 자르려고 한 수염은 다시 지저분하게 자랐고, 악성곱슬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건지 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뺨에는 눈물자국이 선연했는데, 방금까지 울다 나온 것 같았다.
"드레이코, 괜찮으냐?"
해그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아마 내가 실망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해그리드를 대충 토닥이며 스터를 들었다. 해그리드의 눈이 조금 커진다.
"수업 안해요?"
"…드레이코, 내가 안무섭니?"
"왜 무서운데요?"
해그리드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진다. 아마 알게모르게 차별 받았겠지. 해그리드는 4학년이 되어서 위험한 수업이나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마 거인혼혈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기사가 나왔을 것이다. 해그리드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오두막집에 들여보냈다.
* * *
"나는… 네가, 그, 싫어할 줄 알았어."
수업이 끝나고 해그리드가 꺼낸 말이다. 해그리드는 퉁퉁 부은 눈을 연신 접으며 웃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기쁜거냐.
"왜요?"
"그… 난 그거니까."
"그게 어때서요?"
"무섭고 흉포하잖아."
"해그리드는 안그러잖아요."
생각이 없는 경향은 있지만요. 나는 해그리드를 위해서 그 말은 삼켜두었다. 해그리드가 다시 눈을 크게 뜬다.
"그, 그래도… 조금 더 멍청할 수도 있고-"
"수업할 정도로 동물을 잘 다루는데요?"
"상황판단을 못해서 민폐를 끼칠 수도 있-"
"저번에 벅빅이요? 그건 괜찮다고 했잖아요. 이제는 수업도 수준에 맞게 가르치고요."
"나는 마법도 잘-"
"세스트랄을 다룰 정도로 능력있잖아요. 마법이랑은 상관없죠."
해그리드가 눈가를 조금 좁힌다. 어떻게든 자신의 단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나는 구석에 박힌 편지를 발견했고.
"드레이코, 세스트랄도 볼 수 있, 아, 그건-"
"거인혼혈 주제에, 썩 꺼져. 산 속으로 나가서 뒈져버려."
편지에 손떼가 조금 묻어있다. 아마 몇 번은 읽고 또 읽었을거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해그리드를 바라보았다.
"해그리드가 부주의한건 사실이지만-"
"……."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인센디오. 불 마법과 함께 편지는 활활 타올랐다. 그걸 장작더미에 넣고는 다른 편지더미에도 불을 붙였다. 주위를 둘러보고, 탁자 위의 새하얀 종이도 발견했고.
"이건 또 뭐에요? 사직서?"
"……."
"저보고 동물하고 있을 수 있게 해준다면서요."
"그게, 드레이코-"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해그리드가 고개를 좌우로 힘껏 흔든다. 나는 간단한 부정에 간단한 마법으로 답했다. 인센디오. 사직서도 편지더미와 마찬가지로 불타올랐다.
"해그리드는 좋은 교수예요. 좋은 사냥터지기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니라면 이렇게 수업 받으러 올 필요도 없죠. 저는 해그리드 말고도 신비한 동물 돌보기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알거든요. 말포이 가문이니까요."
"……!"
"해그리드가 제일 잘 가르치니까, 그래서 수업을 받는다고 한거예요."
해그리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하긴, 이 때는 종족 간의 차별이 굉장하던 때였다. 예전은 더 심했지만. 사실 순수혈통이니 거인혼혈이니, 내 눈에는 다 비슷하게 보인다. 그리고 해그리드가 제일 잘 가르치는 것도 사실이니까. 전세계를 뒤져보아도 해그리드만큼 신비한 동물에 능통한 사람은 찾기 힘들거다. 뉴트 스캐맨더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도 안되지.
"정말 사직 할거예요?"
"……."
"그럼 실망할지도 몰라요."
고개를 번쩍 든 해그리드를 뒤로하고 오두막집을 나갔다.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스터와 팽에게 동작정지 마법을 걸어준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