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179
청동 독수리상와 말씨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머뭇머뭇 안으로 들어왔다. 러브굿은 눈알을 굴리며 그런 나를 주시했다. 개미를 관찰하는 것만 같은 시선이었다.
"네가 찾는 건 여기 없어."
러브굿이 툭 말을 내뱉었다.
순간 당황한 나머지 침을 잘못 삼켰다. 사례가 들린 나는 한동안 켁켁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러브굿은 계속해서 나를 관찰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안경을 착용했다. 안경은 수제작인 듯보였는데, 분홍색지로 만들어진 안경 테두리와 새파란 샐로판지의 안경알, 그 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티커는 퍽 인상적이었다.
나는 겨우 산성 캔디를 삼키고 입가를 훔쳤다. 빨간 산성 캔디의 잔여물이 셔츠에 묻어나왔다.
"난 알아. 말포이 가문도 군대를 비밀리에 이끌고 있잖아. 넌 헤를비에를 찾으러 여기에 온 거지?"
루나 러브굿이 사차원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헤를비에를 찾으려고 마법을 좀 써야 하거든.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해줄 수 있어?"
"넌 헤를비에가 뭔지 아니?"
파란 샐로판지 너머로 러브굿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렇구나." 러브굿의 입가가 실망한 듯 쳐졌다. 그녀는 곧 입매를 단단히 굳히고 꿋꿋하게 설명했다. "그건 작고 투명한 쥐야. 정보를 훔치기에 좋은 생물이지."
나는 순간 러브굿이 모든 걸 알고 말하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혹시 이 안경은 무엇인지 아니?"
내 생각은 추호도 모르는 듯 러브굿이 기대어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쩐지 모르는 게 잘못인 기분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미안, 모르겠어."
"그래?" 이번에는 예상했다는 듯 실망하지 않은 러브굿이 또렷하게 말했다. "이건 보이지 않는 신비한 동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안경이야."
"신기하네."
러브굿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재차 물었다.
"러브굿, 내가 헤를비에를 찾는 걸 다른 아이들한테 말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래."
러브굿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경을 벗어서 용돈을 쥐어주듯 내 손에 올려놓았다.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괜찮다면 내가 이 안경을 빌려줄 수 있어. 헤를비에를 찾길 바랄게."
"…그래, 고마워."
나는 러브굿이 준 안경을 착용했다.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인 풍경 말고는 색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러브굿이 보이지 않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마력이 샅샅히 래번클로 기숙사를 훑었지만 한쪽 손가락이 없는 쥐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래번클로는 꽝이다. 나는 속으로 그 사실을 되새김질했다.
안경을 벗었다. 색지라 그런지 잠깐 썼는데도 어지러웠다. 나는 러브굿이 있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러브굿, 헤를비에는 여기에 없는 것 같은…."
러브굿은 어느새 기숙사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신출귀몰한 등장과 비슷한 퇴장이었다.
'안경은 나중에 돌려줘야겠네.'
안경을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마법이 걸린 주머니이니 만큼, 안에서 구겨질 걱정은 없을 터였다.
망토에 달린 모자를 쓰고 최대한 빨리 래번클로 기숙사를 나섰다.
운이 좋게도, 루나 러브굿 말고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그건 크리스마스 연회인 만큼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기념일이라 경계가 허술한 이틈에 마저 후플푸프도 확인해보아야 했다.
나는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후플푸프 기숙사, 오크통 앞에서 나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프로테고, 프로테고 막시마, 피안토 듀리, 레펠로 이니미컴."
푸른 막이 주위에 넘실거렸다. 잘못 오크통을 두드려서 식초나 포도주를 뒤집어 쓸 일은 없을 듯했다.
'헬가 후플푸프의 리듬에 맞게.'
가능한 거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오크통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헬가 후플푸프는 여섯 단어니까 여섯 번 치면 될 듯싶었다.
통통, 통통통통.
어째선지 문이 열렸다. 보안 상태 괜찮은 걸까.
크리스마스 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여기도 꽝.'
기숙사가 제일 숨기 좋은 거처라는 상식적인 생각은 통하지 않을 성싶다. 나는 미로 같은 호그와트에서 숨을 곳을 속으로 추려보았다. 생각보다 짚이는 곳은 많았다.
활기차게 떠드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성실한 후플푸프들은 연회까지도 성실하게 즐길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바람인가보다.
나는 마법으로 녹색과 은색이 교차하는 넥타이를 파란색과 노란색이 교차하는 넥타이로 바꾸었다. 투명 마법은 일단 누군가와 부딪히면 끝이니까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망토에 달린 모자를 코끝까지 끌어내렸다. 자의식 과잉이라기엔 내 얼굴이 너무 많이 팔려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후플푸프 기숙사를 나섰다.
왁자지껄 떠들던 소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럼 내가 후플푸프지 슬리데린이냐?"
"가끔 보면 슬리데린 같기도 해."
"조용히 해, 세드릭. 아무튼, 나는 지팡이를 꺼내들었어. 주변에는 온통 슬리데린 뿐이었지. 난 직감했어. 아, 이거 엄청나게 불리한 싸움이겠구나. 우리는 한참동안 노려보면서 말을 하지 않았어. 서로를 바라보는 조용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한 슬리데린이 저주 마법을 쏘았지."
거의 쏟아질 것 같은 말이 옆쪽에서 들렸다. 나는 티나지 않도록 빠르게 발을 놀렸다.
아이들이 나를 지나쳤다. 나는 괜히 경직되어 있던 어깨에 힘을 뺐다. 그래, 아무리 후플푸프라고 해도 상식적으로 후배 모두와 친한 기숙사는 아니ㅡ
"야, 잠시만."
"왜? 지금이 젤 중요한 부분인데."
"거기 얘, 후플푸프 신입생이니?"
ㅡ아닌 게 아닌 것 같다.
슬리데린 삼학년입니다. 속으로 대답했다.
"아니, 못 보던 애 같아서."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 숙였다. 말 없이 생각했다. 좆됐다.
"크리스마스 연회 아니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러게. 세드릭, 너 신입생 인솔 담당이잖아."
"아니, 신입생 인솔은 이미 했는데…?"
"낙오된 건가 보지."
지척까지 다가온 네쌍의 구두가 보였다. 네 명. 반장이라는 걸 보면 상급생으로 추정. 세드릭이라고 불린 애가 세드릭 디고리라고 가정한다면 네명의 아이들은 후플푸프 육학년.
"혹시 길을 잃었어? 데려다줄까?"
나는 주머니 속의 지팡이를 잡았다. 들킨다면 기억력 수정 마법으로 어떻게든 될 거다.
하지만 역시 사람에게 마법을 쏘는 건 꺼려졌기에,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고 말했다.
"길 아니까 괜찮아."
"오, 그래?"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날카로운 기색이 묻어 있었다.
"신입생 중에 저런 목소리를 가진 애가 있었나? 얘, 이름이 뭐야? 이 모자 벗어볼래?"
모자에 여자의 손길이 가까워졌다. 나는 다가오는 여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니, 난 쓰고 다니는 게 좋아."
"그렇구나."
여자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다른 이들도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계속 땅을 보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지팡이를 꺼내는 듯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나는 주머니 속의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잠깐만."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로 보아 세드릭 디고리일 것으로 추정된다.
"얘는 내가 인솔할게. 길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잠시만, 세드릭."
"난 반장이잖아. 신입생 인솔은 내 담당이야."
남자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도 잊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회색 눈동자를 휘며 다정하게 말했다.
"가자."
나는 디고리의 손에 이끌려 후플푸프 기숙사를 벗어났다.
복도를 걷는 발걸음이 거침이 없었다. 이대로 연회장까지 가는 거냐. 그건 이쪽도 곤란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며 빠져나가려는 찰나, 디고리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빈 교실로 들어갔다.
디고리가 나를 구석의 의자에 앉혔다. 그는 걱정스럽게 나를 살피며 물었다.
"갑자기 팔 잡아서 미안. 혹시 아팠어?"
"아니. 괜찮아."
"그래? 다행이네."
그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내가 자리에 일어나서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디고리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뭐, 왜 후플푸프 기숙사에 겁도 없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씩 웃었다.
"슬리데린 1점 감점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시선을 따라 나를 살폈다.
넥타이가 어느새 녹색과 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처음 쓴 마법이었는데 지속 시간이 짧은 듯했다. 다른 마법을 찾던가, 그 마법 효과를 올리던가 해야겠다.
잠시 기억력 수정 마법을 써야 할 때인지 고민했다. 슬리데린이 후플푸프 기숙사를 침입했다는 소문이 돌아도 상관없었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침입했다는 소문은 안되겠지만.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아직 얼굴은 들킨 게 아니었다.
"말할 거야?"
"말할 거면 널 거기서 빼오지도 않았겠지. 걱정하지 마. 넥타이 색도 후플푸프에서는 안 변했어. 슬리데린 신입생 같은데, 후플푸프 기숙사 위치를 용캐 알아냈네."
비꼬는 게 아닌 순수한 감탄이었다. 디고리가 하하 웃었다.
"장난은 도를 넘으면 재미없다는 것만 알아둬. 알아? 내가 거기에 없었다면, 넌 저주 마법에 잔뜩 걸린 채 꼼짝없이 병동행이었을걸."
디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음 장난을 칠 때는 내가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아두고."
수상한 애가 기숙사에 들어왔는데 싸움을 말리는 것도 모자라 수상한 애에게 호의섞인 충고까지 늘어놓다니. 일단 슬리데린에는 없을 인물이다. 나는 원작에서 세드릭 디고리의 성품이 얼마나 좋은지 기억해냈다.
"그보다 팔 좀 내밀어볼래?"
별다른 의문 없이 팔을 내밀었다.
"아니, 그쪽 팔 말고 오른쪽."
오른쪽 팔을 내밀었다.
망토에 닿으려는 손길을 잡아챘던 팔이었다. 디고리는 망토를 걷어 올렸다. 와이셔츠의 팔목 부분이 보였다. 와이셔츠에는 산성 캔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참고로 산성 캔디는 빨간색이었다.
"다친 거야?"
디고리가 내가 묻힌 와이셔츠의 얼룩을 마법으로 지우며 물었다.
"산성 캔디야."
"너무 뻔한 변명인데."
디고리가 키득거렸다. 사실을 변명이라고 하면 이쪽도 할 말은 없었다. 나는 디고리가 다친 곳을 찾으려는 듯 내 몸을 구석구석 훑어보는 걸 내버려두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교수보다는 선배가 편할 거 아니야."
순간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왜?"
"왜냐니. 걱정돼서 그렇지."
디고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모자로 얼굴 절반을 가렸는데도 순간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었다.
"난 호그와트의 반장이잖아? 학생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 그게 반장으로서 할 일이거든. 그러니까 폐 끼친다는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와."
디고리가 싱글싱글 웃으며 빈 교실에서 나갔다.
만약 내가 정말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크게 위안이 되었을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하기에는 이 생각조차도 의미없는 짓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빈 교실을 나섰다.
위즐리 쌍둥이는 영 못미더우니까, 그리핀도르를 한번 쯤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나는 마법으로 넥타이의 색을 금색과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의심도 없이 졸고 있는 초상화의 여자를 보며 말했다.
"패드풋."
기숙사의 문이 열렸다.
쌍둥이의 강력한 주장 하에 채택된 암호였다. 그들이 초상화의 여자를 어떻게 구슬렸는지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자세하게 들은 뒤라 그리핀도르의 암호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간단히 열리는 문을 보며 나는 잠시 후플푸프의 오크통과 래번클로의 독수리상을 떠올렸다. 역시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슬리데린이어서 다행인 날이 올 줄이야.
지팡이를 휘둘렀다.
쥐는 커녕 애완 동물조차도 주인을 따라나간 듯 드문드문했다. 이로써 기숙사에 없는 건 확정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로 분해되서 사라진거냐.
[작품후기]
2020.2.23.수정완료.
+루나 러브굿 +세드릭네(4명)=179명
산성캔디가 피가 되는 마법... 루나는 처음 입가를 훔칠 때 보고 말포이가 아픈 게 진짜구나 하면서 모르는 척 넘어갔고 세드릭네는 디키디키가 손 잡아챌 때 핏자국을 보며 완전 틀린 추측을 머릿속에서 키우는 중입니다.
자체설정] 후플푸프 기숙사는 후플 기숙사 아이들 아니면 후플푸프적인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헬가의 마법이 걸려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