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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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프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좀 더 있으면 머리가 눈빛으로 뚫릴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보는 걸까. 말이라도 해. 내가 같이 마주 보자 눈을 돌린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말포이, 따라와라."
내 미묘한 표정에도 스네이프는 묵묵히 무표정을 고수했다. 목석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나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스네이프를 보다가, 뒤쪽의 나시사와 루시우스를 흘깃 살폈다. 눈에 담긴 수많은 걱정이 아주 잘 보였다. 나는 괜찮다는 뜻을 전하고자 노력하면서 살짝 눈인사했다.
"디키, 조심하고. 스네이프 교수님께서 치료제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그것도 꾸준히 먹고."
나시사의 다급한 덧붙임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늘 처음으로 본 풀어진 표정에 나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스네이프의 표정을 바꾸는 건 마루더즈나 해리 포터밖에 없었는데. 과연 말포이인가.
"전 그런 적이-"
"자네가 고생하는군."
"아니, 전 그런 적이-"
"스네이프, 자네가 제일 믿을 만하지. 호그와트의 보건 교사는 자네만 못했어."
"그러니까 전-"
"하긴, 호그와트의 마법 약 교수이자 최연소 포션 마스터라는 직함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니야."
루시우스가 웃는 낯으로 스네이프의 말을 족족 잘랐다. 더 이야기할 기색은 멀린의 수염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네이프도 그를 느꼈는지 한숨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그는 대화 대신 여길 벗어나기로 한 것 같았다.
"정말 가보겠습니다."
"그래, 드레이코 좀 잘 부탁하겠네."
스네이프는 누구보다 빠르게 플루가루를 뿌렸다. 펑, 초록빛 연기와 함께 사라지는 그가 살짝 원망스러웠다. 나도 버리고 가는 거냐. 나는 황망히 서서 말포이 부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저도 가볼게요."
"디키, 제일 중요한 말이 빠졌잖니."
"…사랑해요."
키들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자 귓가에 열이 몰려온 게 확연히 느껴졌다. 좋으면서도 불편한 기분에 조용히 플루가루를 뿌렸다. 호그와트 교장실. 또박또박 말하려 노력하자 울렁거릴 만큼 미친 속도가 보답으로 돌아왔다.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이상한 곳을 이동한 후의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중에 꼭 부작용 없는 순간 이동 마법을 개발할 거다. 쓸데없는 다짐을 하면서 올라온 토기를 달랬다.
"우욱…."
머리까지 핑 도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데, 찔릴 것 같은 시선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공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였다. 스네이프는 내가 마주 보자 고개를 돌리고, 다른 쪽을 보면 날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반복되는 행동이 꽤 부담스러웠다.
나는 찬찬히 스네이프가 저럴 만한 이유를 짚었다. 금방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결론이 도출되었다.
"마법 약은 싫으시다면 안 만들어주셔도 됩니다."
"됐다."
스네이프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을 잘랐다. 다시 주의를 채우는 어색한 공기에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꽤 미묘한 기분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몸에 안 받는 약 같은 건 있느냐?"
"아, 정말 괜찮은데. 안 먹어도 됩니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교수님도 바쁘시잖아요."
"무슨 소리지."
유리알 같은 검은 눈동자가 날 빨아들이듯 응시했다. 난 바로 레질리먼시라는 걸 알아차렸다. 시험 대비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고 격려한 것뿐인데.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이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너……."
"왜 그러세요, 교수님?"
아무것도 모른다. 순진한 표정으로 스네이프를 보며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신새끼. 어떻게 도움이 되는 일이 한구석도 없을까.
내가 지구에서, 그러니까 해리포터가 없는 세계관에서 살았다는 게 알려지면 혼란이 일 게 뻔했다. 그래서 신새끼는 나에게 일종의 잠금장치를 해놓았다. 내 전생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마법은 알아서 튕겨 나가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레질리먼시도 통하지 않았다.
신의 권능(신새끼의 말에 의한 거다)을 빌린 대가로, 마법을 튕겨내면 몸에 부작용이 온다. 있느니만 못하잖아. 그리 강하지 않은 레질리먼시는 조금 어지럽고 끝나지만, 숙련된 레질리먼서인 스네이프가 쓴다면 곧바로 기절할 거다.
모든 걸 밀어내듯 시야가 흐릿해졌다. 기절할 거로 생각하자마자 이런 반응이라니. 거의 조건 반사 수준이다. 갈 곳을 잃고 움찔거리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지고 다리에 힘이 쭉쭉 빠졌다.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누가 꽉 닫은 듯 열리지 않는 입을 열었다.
"엄…. 잠깐 기절 좀 할게-"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둔탁한 충격이 전해지는 것보다 눈을 크게 뜬 스네이프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시발.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새하얀 천장이었다. 호그와트의 병동인가. 본지 몇 번이나 됐다고 천장으로 장소도 구분할 수 있게 된 걸까. 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새삼 말포이 저택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깬 거니?"
"…네?"
나긋나긋한 음성이 윙윙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저 음성은 폼프리였다. 조금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다가 폼프리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다시 들어 올렸다.
"입 좀 벌려줄래?"
"네?"
"마법 약을 먹어야 하거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미묘한 박력이 느껴졌다. 내가 순순히 입을 벌리자 차가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얼얼해지기까지 한 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 다행이구나."
"이거 무슨 약입니까?"
폼프리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듯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얼핏 비장함까지 서린 얼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말포이,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아… 네."
왠지 거절할 수 없을 법한 분위기여서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저런 말을 하는데 죽음을 먹는 자들과 결투하는 것 같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폼프리는 근엄한 표정을 지은 것과는 다르게 꽤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었다. 수업은 들을 만하냐는 것부터 관심 있는 분야가 있냐까지.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어서 조금 긴장했던 게 어색할 정도였다. 물론 본론은 대화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에 나타났다. 그녀는 수차례의 심호흡 끝에 말을 시작했다.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고 있단다."
"……?"
"네가 이야기해 주어야 널 도와줄 수 있고."
"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조용한 병동에서 털어놓으라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꽤 불편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괜히 손을 꼼지락거렸다.
"…호그와트의 교수들을 믿을 수 없는 거니? 내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교수들의 실력은 모두 뛰어나고 수준급이란다. 널 도와줄 정도의 능력은 충분해. 그러니, 네가 처한 일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없을까?"
설득하듯 간곡한 어투에 나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무슨 소리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미묘하게 알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설마 알았을까? 나는 꽤 불안한 기분으로 폼프리의 절박한 얼굴만을 뜯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숨겨진 꿍꿍이 같은 걸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확인하듯 한 번 질문했다.
"제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 되지는 않았단다. 저번에 네 영혼이 빠져나갔을 때부터 알게 되었어. 그리고 네가 잠들었을 때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단다. 네 영혼은 어딘가 이상하더구나."
"……."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내가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 걸까.
치료사도 부모님도 모르는 듯싶었지만, 호그와트의 보건 교사는 그들보다도 뛰어났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그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뛰는 심장을 무시하면서 애써 태연한 듯 입을 열었다.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폼프리의 입술 부근이 움푹 들어갔다. 아마 안쪽의 살을 깨물고 있는 걸 거다. 나는 꽤 초조한 기분으로 하얀 이불을 움켜잡았다. 내가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돌아올 반응은 훤히 내다보였다.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그 사람인 척 행동하는 괴물. 딱 그 정도로 인식될 터였다.
"부모님은 저를 끔찍하게 아끼십니다. 그걸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으시지는 않을 텐데요."
가만히 있기는커녕 내 아들을 어쨌냐며 몰아세울 거다. 드레이코 말포이를 끔찍하게도 아끼는 말포이 부부는 '진짜 드레이코 말포이'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고, 말포이 가문의 영향력이 큰 만큼, 마법 세계의 경제가 조금 굳어질지도 모른다. 루시우스가 호그와트의 이사 중 대표 격이니, 호그와트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워질 날을 예상하면서 여상스레 말하자 폼프리의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누군가 책더미로 짓누르는 듯 방 안의 공기가 무겁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름 쥔 이불만을 바라보았다. 손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이런 일을 덮으면, 말포이, 너만 힘들어질 뿐이란다."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습니다."
"네가 여기 있을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니? 남을 위하다가 자기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니. 도대체 넌…!"
폼프리가 격양된 태도로 말을 잇다가 흠칫 어깨를 떨며 문장을 끊었다. 그녀는 왠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려 했지만, 나는 빠르게 대답을 해주었다. 폼프리가 한 질문의 대답은 간단한 것이었으니까. 호그와트에 있을 날은 당연히 4년 아닌가.
"4년 정도 남았습니다."
"…뭐?"
"아니, 3년인가?"
호그와트에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어쩐지 폼프리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렸다.
[작품후기]
2019. 2. 14. 수정완료.
+) 디키디키는 아닌 척 하면서 낯을 가린다.
극존칭(다나까 말투)→ 존칭(~요 말투)→ 반말순이다.
한국을 살아온 디키는 어른에게 극존칭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호구와트 교수들에게는 내적 친밀감이 많이 쌓인 편이다. 존칭과 극존칭을 섞어 쓰는 편.
세브와는 전생에 좀 많이 친해서 존칭을 주로 사용한다.
디키디키가 완전히 존칭을 사용하는 상대는 부모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