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Prologue
눈을 뜨자 보이는 건 꽤 고급스러운 천장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몸 전체에 전기가 감도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 느낌은, 드레이코 말포이의 몸에 빙의했을 때 느껴본 적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유독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를 살폈다. 분명 신새끼는 '계약'을 이행하면 돌려보내 준다고 말했다. 그때는 분명 트럭에 치였으니까, 중환자실쯤에 식물인간 상태로 있을 거였다. 제일 확실한 가설은 여긴 병원이고 난 방금 돌아왔다는 거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입가에는 자연히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드디어.
"……."
조금 뒤, 이상한 기시감에 나는 손을 쭉 펴서 눈앞에 가져다 댔다. 내 피부는 원래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몸도 이상하게 작고. 영혼이 이동할 때의 찌릿찌릿한 감각 -그 빌어먹을 감각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은 남아 있으니, 신새끼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침대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호수, 이제서야 생생히 들리는 다른 이의 코골이, 옆에 가지런히 개어진 검은색의 교복.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다급히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유리 안에서 곱상하게 생긴 백금발 아이가 나를 노려본다. 꽤 어린 티가 나는 아이는, 12, 3살쯤 되는 것 같았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나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Fuck…."
시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시발, 멀린 개시발. 그러니까, 신새끼가 나한테 사기를 쳤어?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회춘하고 싶다고 했나? 이건 장난인가? 신새끼의 큰 그림일 수도 있다. 좋아 침착하자. 진정해야 한다.
는 무슨! 조용히 들고 있던 손거울을 집어던졌다. 쨍그랑, 바닥과 유리가 마찰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트롤의 코딱지만큼 남은 꿈을 꾸는 듯한 감각은 유리의 맑은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드르렁대는 소리가 멈추고 곧이어 놀란 얼굴의 크레이브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드레이코? 무슨 일 있어?"
나는 포동포동한 크레이브의 얼굴을 목격하고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시간도 되돌렸다 이거지?
"좋아."
죽여버리겠다.
나이도 되돌리고, 시간도 되돌리고, 상황도 되돌렸으면, 목숨 하나쯤은 더 되돌릴 수 있지 않겠어? 난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원작을 유지하려는 미친 짓을 반복할 생각은 로날드 위즐리의 마법 약 실력만큼 없었다.
'어떻게 만나지?'
신새끼는 내가 트럭에 치이고 나서, 딱 한 번 계약할 때만 만났었다. 원작을 유지해주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이상한 계약을 할 때만. 심지어 계약이 끝나고 내가 죽었는데도 신새끼는 나오지 않는다.
만나야 죽이든 말든 할 것 아니냐. 허공에 대고 욕할 수도 없는 노릇 -실제로 그랬다가 미친놈 취급당했다- 이다. 마땅한 방법은 어쩐지 생각나지 않았다. 난 지팡이로 깨진 거울의 잔해를 정리하며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원작을 유지하려고 나까지 끌어들였지.'
내가 원작을 망가뜨리면 신새끼를 엿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원작을 유지하기는커녕 자근자근 짓밟고 부시면 급한 대로 날 부르지는 않을까? 신새끼와 만나서 계약 내용을 따지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 주먹의 대화를 거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떠올렸지만, 꽤 참신한 생각이었다.
좋아, 난 오늘부터 진정한 원작 파괴범이다.
[작품후기]
크레이브: 진짜 폼프리 부인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2019. 2. 4.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