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77화 (7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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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불안한 평화

리브가 크리스의 뺨을 치고 무섭게 화를 내는 장면은 리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약간의 통쾌함을 선사했다. 리들은 똑똑하게도 크리스가 그녀에게 벨라의 페로몬을 썼음을 눈치 챘고 종국에 정신을 차린 리브가 그를 밀어냈음을 알아차렸다. 겨우살이 밑에 있는 소녀에게 키스해도 된다는 관습이 있다고 해도 크리스의 행동은 정말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걸 명분으로 세워 리브에게 동의를 구하려했다면 그건 크리스의 크나큰 착각이고 무모함이리라. 그리고 겨우살이 따위는 상관없었다. 이 생각은 리브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리들은 둘이 키스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한 번 분노가 치솟았다. 아까 차인 게 분명한 크리스를 비웃어 줬음에도 그러했다. 그 장면만 떠오르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차마 건드리지 못한 걸……. 금단의 영역을 건드린 크리스는 물론 내어준 리브에게도 그 분노가 솟았다. 그래서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버렸다.

둘의 키스가 크리스의 독단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리브에게는 화를 내지 않으려는 리들의 선택이었다. 기특하게도 곧바로 뺨을 때리며 응징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열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닿자마자 밀어냈어야 한 거 아니야? 크리스에게 벨라의 페로몬이라는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리들은 그러했다. 어쩐지 아브락사스가 에밀리에게 벨라의 페로몬 따위에 홀리다니 그건 의지가 부족한 거라고 타박하는 게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런 리들의 속마음도 모른 채 리브는 그를 뒤따라왔다. 그리고 그 순간 리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또다시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분노가 샘솟은 것이다. 눈앞의 소녀가 괘씸해졌다.

[네가 저 자식이랑 키스를 하든 몸을 섞든 내 알바 아니니까 넌 꺼져.]

리들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리브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이것은 일종의 화풀이였다. 그녀가 상처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청년은 참지 못했다.

[이딴 게 어디가 도도하다고……. 천박하긴.]

말을 뱉자마자 리들은 아차했다. 청년은 자신이 폭언이 불러올 후폭풍이 두려워 리브의 얼굴을 채 보지도 않았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지는 뻔했다. 혹 울고 있지는 않을지. 리들의 흑안에 순간 후회라는 감정이 가득 담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둘의 키스 장면이 떠오르자 흑안에 질투라는 감정이 또다시 차올랐다. 그렇게 후회와 질투가 휘몰아치며 리들의 마음을 뒤섞었다.

“리들, 왔어? 어디에…….”

막 기숙사로 들어온 리들의 표정을 본 아브락사스가 말을 뚝 멈췄다. 리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지금까지 봐온 친구의 감으로 그는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아니 화가 나도 보통 난 게 아니었다.

“리들, 무슨 일 있었어?”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었다. 리들은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따위 키스가 뭐라고. 카르티에랑 올리비아 그 둘이 뭐라고. 올리비아 그 계집애가 뭐라고…….

“별거 아니긴. 표정이 이렇게 살벌한데…….”

하지만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감히 내 것에 손을 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에 상응한 응징을 해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리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조력자가 필요했다. 인맥은 충분했고, 추종자는 넘쳐났다. 그리고 그중에 조력자가 될 만한 급의 사람과 아닌 사람은 역시 이미 구분이 끝났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조금 미루려 했으나 당겨도 별 상관은 없으리라. 리들은 자신의 친구인 아브락사스를 응시했다. 흑안이 교활함을 담아 반짝 빛났다. 리들에게 구분 된 이들 중 아브락사스는 단연 최상급이었다.

“아브락사스.”

리들은 자신을 신뢰 가득한 눈으로 보는 아브락사스를 보며 잠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백금발의 청년은 리들을 향해 호의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화답으로 리들은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언젠가 리들이 아브락사스의 이름을 처음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며 기쁨을 가득 표현했다. 리들은 친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리브가 말했던 대로 되었음을 깨달았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만약 이름을 불러주고 진심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선배의 사람이 될 거에요. 친근감과 애정의 표시라고 했죠. 그 정도는 있어야 당신을 믿고 따르지 않겠어요?

이름을 불러주고 진심으로 대한다. 네 말이 맞구나. 아브락사스는 그렇게 리들의 손에 확실히 들어왔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별이라도 따 줄 기세였다. 그리고 오리온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 외에 그 누구든 그러하겠지. 그 어떤 사람이든 기꺼이 리들이 원하는 것을 갖다 바칠 테고 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올리비아 브릴리언트.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진심을 내보이고 이름을 불러준 상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들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너란 여자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가 싶으면서도 정작 보면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네가 말한 대로 했는데 왜 너만은 그렇지 않지? 다른 사람은 그토록 쉬운데 너는 정말 어려워. 그게 너무 싫어. 거슬려. 그것을 생각하자 리들은 그녀와 다정하게 있던 크리스가 떠올랐다. 이가 절로 부득 갈렸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뱉은 폭언이 스쳐지나갔다. 리들은 막막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 성격에 상처받았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리들은 자신의 막돼먹은 언행에 상처 입은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야만 했다. 순간적으로 보았던 그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그냥 보내줄 것이지 왜 나를 붙잡아서 화를 자초해. 리들은 리브에게 책임을 돌려보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이지 네 앞에만 서면 나는 이상해져. 네가 뭐라고 나는 정말……. 리들은 짜증이 났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리브도, 그 옆에 딱 붙어 있는 크리스도.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신물이 났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그 누구도 못 가져. 내 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절대로 안 돼. 내가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할 거야. 올리비아, 넌 그 자식이 없으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어. 너도 나라는 존재에 안달하도록 만들 거야. 그 순간 나는 너를 틀어쥐겠지. 반드시 그렇게 만들리라.

리브는 리들을 제외한 그 어떤 남학생과도 이리 깊은 친분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카르티에는 리브와 너무 가까웠다. 다른 치들과는 달랐다. 둘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리들은 예리했다.

“아브락사스, 그리핀도르의 카르티에 말이야.”

리들의 흑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응. 걔가 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나에게 가져다 줘.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주로 누구와 어울리는지.”

리들은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왔다. 누구도 믿을 수 없으므로.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브락사스나 오리온에게 조금씩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학년에 존슨 일행을 처리했을 때를 기점으로 꾸준히. 지금까지는 명분을 가지고 그들을 움직였지만 이제는 그 명분 따위가 없어도 움직일 수 있었다. 적어도 슬리데린 학생은 리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니 아브락사스같은 최측근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렇게 할게.”

“최대한 빨리. 너라면 손쉽게 할 수 있을거야.”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하는 첫 부탁이었다. 절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아브락사스는 결의를 다졌다. 아브락사스가 집요정을 불러 누군가의 감시를 명하는 것을 보며 리들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리들의 책상에는 여러 가지 실험기구들과 희귀한 마법약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그 중에는 나기니가 병동에서 훔쳐온 플랜젠타인 가루도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나기니가 똬리를 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요즘 부쩍 피로가 늘은 나기니는 걸핏하면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이는 리들이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들이 그동안 기숙사에 박혀서 하고 있는 실험은 마법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마법약은 리브에게 말했듯이 나기니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나기니를 독사로 만드는 마법약을 만들고 있었다. 나기니는 자신을 독사로 만들어주겠다는 리들의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기꺼이 마루타가 되었다. 누적된 피로는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들이 그렇게 매달린 덕분에 그 마법약은 최근에 완성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이 마법약의 원리는 나기니의 이빨을 독니로 만드는 것인데 그 시간이 영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독니를 자랑하다가도 평소의 독 없는 순한 이로 돌아왔다. 그래서 리들은 독을 중화시키는 플랜젠타인 가루를 최대한 적게 써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으로 플랜젠타인 가루를 적게 쓴다면 나기니의 생명에 지장이 갔다. 그래서 리들은 이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기니. 조만간 이 약을 마실 수 있을 거야.”

잠이 들어있는 나기니를 쓰다듬으며 리들이 속삭였다. 그런 청년의 손에는 작은 크리스탈병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리들은 더 이상 크리스를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리브 때문에 간신히 유지하던 조금의 관대함 마저 오늘로서 사라졌다. 리브가 자신을 책망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얌전히 있지 않은 네 잘못이야. 나를 거슬리게 한 그 녀석의 잘못이 커. 그 녀석이 화를 자초한 거야. 그리고 너도. 그러니까 이제 처리할 것이다. 리들의 흑안이 위험한 붉은 빛으로 번뜩였다.

*

크리스는 리브에게 무례한 짓을 한 대가로 한동안 그녀에게 철저히 무시를 당해야만 했다. 겨우살이 밑에 있었고 결국 이렇게 자신의 뺨을 쳤으니 이제 그만 용서하라는 크리스에게 리브는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사과를 한답치고 졸졸 쫓아오는 크리스에게 리브는 촌철살인을 날렸다.

“가까이 오지 마. 이 변태야.”

크리스는 리브의 말에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비틀거릴 뻔했다.

“겨우살이로 네가 한 짓을 합리화 할 생각이라면 닥치는 게 좋을 거야. 겨우살이 할아버지가 와도 상대의 동의를 얻지 않은 스킨십은 성희롱일 뿐이야.”

그 후로 자신을 아는 체 하지 않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는 자신이 얼마나 경거망동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 물을 닦고 새로 담기라도 해야지. 쏟아진 우유 앞에서 울어봐야 소용없었다.

하지만 리브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음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그녀에게 고백하거나 외출을 하자고 생떼를 부리던 남학생들은 전부 튕겨나갔다고 하니 크리스는 덜컥 겁을 먹었다. 거기다가 자신은 그녀에게 성희롱을 한 변태로 찍히지 않았는가. 이러다가 리브와 정말 절교하게 생겼다. 크리스는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그녀의 화를 풀어줘야 할 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크리스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리들과 리브의 사이가 극렬하게 대립 중이라는 것이었다.

리브와 리들의 사이는 몹시 좋지 않았다. 서로 가치관이 상극이 달리는 지라 지금까지 유지 해온 게 용했으나 이 같은 관계 유지에는 둘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둘은 서로를 적당히 눈감아 주고 적당히 참았다. 그리고 항상 적정선을 지켜왔다. 이는 둘 다 갈등을 빚는 것에는 질색을 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리들과 리브는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싫어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서는 그게 살짝 다르게 작용했다. 둘은 은연중에 갈등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내면서도 상대방을 잃는 걸 제일 무서워했다.

리브는 싫어도 싫은 소리를 안 하는 성격이었고—물론 아니다 싶으면 해야 할 말은 했다— 리들은 상황에 따라 당장은 참아도 뒤통수를 친다는 등 반드시 되갚아 주는 성격이었다. 리브는 리들에게 만큼은 싫은 소리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애쓰고 속으로 삭히곤 했다. 물론 한 번 감정이 터지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날을 세운다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리들과의 관계 유지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고 덕분에 리브는 자신이 리들의 많은 것을 눈감아 주며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리들은 리들대로 불만이 있어도 그녀에게 만큼은 뒤통수를 치지 않으려 했다. 정말 그는 리브에게 만큼은 진심으로 대했다. 그래서 곧바로 독설로 되갚아 주거나 사소한 방식으로 보복했다. 때로는 참고 이해하려 애쓰기도 했다. 리들의 사소한 보복은 정말 별것 아닌지라 리브는 헛웃음을 뱉거나 노려보는 것으로 끝내곤 했다. 이는 역시 리브와의 관계 유지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고 덕분에 리들은 자신이 리브에게 관대하게 굴며 많은 것을 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둘은 정말 뒤끝 있는 성격이었다. 리들은 슬리데린답게 적을 절대 잊지 않았고 리브 역시 과연 모자가 슬리데린으로 설득한 학생답게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 두고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갈등을 빚게 되면 폭탄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그럴 때의 기싸움은 무척 살벌했다. 리브는 수틀리면 사골 우리듯 리들의 막돼먹은 행동들—예를 들어 자신의 뺨을 때리거나 나기니를 만지게 한 것 같은—을 읊으며 분노를 토해냈고 리들은 현란한 화술을 동원해 무시무시한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리들은 꼭 리브에게 말려서 같이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를 제외하면 둘은 절대로 서로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묘하게 잘 맞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았고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브는 리들의 생각 중 일부를 이해했고—어둠의 마법에 대한 흥미같은 것—, 리들은 리브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사실 이는 ‘우리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자. 물론 나는 맞고 너는 틀리지만.’에 기인한다는 함정이 있기는 했다.

그렇게 간신히 유지해온 아슬아슬한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리브는 리들이 자신에게 뱉었던 폭언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따지지는 않았다. 입에 담기 껄끄러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리들도 마찬가지여서—그는 자신이 잘못했고 이를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둘 중 누구도 그날의 일을 입에 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날을 세웠다. 그 기세는 몹시 살벌했다.

“멍청하긴.”

“선배도 알겠지만 제 머리는 상당히 좋거든요. 이쯤 되면 멘토의 역량을 의심해봐야 할 것 같은데.”

“능력도 없는 게 잘난 척하면 정말 꼴사나운 거 알지? 주제도 모르고…….”

“당신한테 잘난 척을 지적받을 줄은 몰랐네요, 그 전에 본인을 뒤돌아보는 건 어떤지?”

둘의 기싸움은 팽팽한 실과 같아서 누군가가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리브는 물러섬이 없었고 리들은 더욱 더 몰아붙였다. 밀면 당기기도 해야 되는 데 둘은 끊임없이 서로를 밀어댔다. 청년은 무리한 과제를 내주며 소녀를 한계까지 몰아 붙였고 무언가가 부실하면 모욕을 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리브는 오기로 그것을 다 완수 해가며 지적 받으면 따박따박 말대답을 함으로써 리들의 속을 긁었다. 그러면 리들은 더욱 더 트집을 잡았고 리브는 우기기로 응수했다.

그런 둘의 살벌한 신경전을 보며 주변 친인들은 보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게 뭔지 똑똑히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에밀리와 아브락사스는 이를 두고 상처뿐인 싸움이라 명명했다. 맞는 말인 게 둘은 한 번 마주치고 나면 정신적으로 몹시 피로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독설을 곱씹으며 나름대로의 감정을 표현했다. 리브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물을 글썽이는 등 우울해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리들의 방에서는 머그컵 따위의 물건이 부서져 나갔다. 누군가 보았으면 톰 리들답지 않은 모습이라 칭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둘은 서로에게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둘 다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나는 군요.”

“너도 질리긴 매한가지야.”

리들의 흑안과 리브의 벽안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오, 좋아요. 그럼 멘토링 횟수를 줄이면 되겠군요! 이렇게 얼굴 맞대는 거 정말 넌더리가 나거든요.”

“그렇군. 멘토링 외에는 너와 마주칠 일도 없으니 말이야. 나도 너란 여자는 꼴도 보기 싫어.”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기숙사에 처박혀서 침울해했고 물건이 부서져 나갔다. 둘은 몹시 지쳐보였다. 하지만 서로에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하면 어떠겠냐는 오리온의 말에 리브는 말없이 콧방귀를 뀌었고 마찬가지로 리들은 그따위 계집애가 뭐라고 자신이 그렇게 굽혀야 하냐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주변에서도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

크리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리브와 말을 섞을 수 있었다. 청년은 다신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싹싹 빌고 나서야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리브, 제발. 다시는 안 그럴게. 뭣하면 뺨을 한 대 더 쳐도 좋아.”

안타깝게도 이제는 다 낫고도 남은지라 크리스의 뺨은 리브에게 조금의 죄책감도 주지 못했다. 한 번 더 때리면 이 분이 풀릴까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리브를 보며 크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시 뺨을 맞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리브가 픽 웃었다. 그때 둘 사이를 끼어드는 여학생이 있었다. 손에 맥밀란 가문의 인장이 박힌 편지를 들고 있는 그녀는 에밀리였다.

“크리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오, 리브 네가 자리를 피할 필요는 없어.”

자리를 피해주려던 리브는 그제서야 그 자리에 있었다. 벨라 청년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왜 그러냐고 물었고 에밀리는 잠깐 멍 때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브는 크리스가 또다시 페로몬을 흩뿌렸음을 알고 찌릿 그를 노려보았다. 크리스는 그런 리브의 시선을 모른 척 하며 에밀리를 향해 다시 웃었다.

“어……. 그러니까……. 아 맞아. 나랑 말포이의 약혼 예물 말이야.”

“무슨? 아하.”

크리스는 어머니에게 말포이 가문과 맥밀란 가문의 약혼예물 의뢰가 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거 최대한 기한을 늦게 잡아주지 않겠어?”

“…응?”

“그 예물이 완성돼서 곧 양가에 도착한다고 들었어. 문제가 생겼다고 하고 다시 만든다고 하면 될 거야. 그러면 일정이 더 늦어지겠지.”

“자,잠깐만. 에밀리?”

크리스는 당황실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상대가 그러던가 말던가 거침없었다.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카르티에 부인은 네 어머니니까 말이야. 뭣하면 내가 은밀히 부탁을 드렸다고 말씀드려도 돼.”

“에밀리, 그건 좀 곤란…….”

“어째서?”

크리스는 무척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는 대가문과의 약속을 깨라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그 약혼 예물의 당사자야! 뭐가 문제야?”

“에밀리. 그 예물의 의뢰자는 말포이 가문과 너희 가문의 어르신이야. 우리보고 의뢰자와의 계약을 어기라니……. 그러면 내 어머니의 신용이 어찌되겠어.”

크리스는 누이동생을 달래듯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으나 에밀리는 볼을 부풀릴 뿐이었다. 리브는 그 모습을 보고 얼마 전에 약혼식 날짜를 잡고 있다고 책상에 머리를 박던 에밀리를 기억해냈다. 그 문제로 에밀리는 곧장 아브락사스를 쫓아가 어떻게든 날짜를 미뤄보라며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아브락사스는 처음으로 에밀리와 싸우지 않고 그녀를 잘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 후에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쉰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터였다.

“크리스, 제발 나 좀 도와줘. 응?”

“조,좋아. 일단 말씀은 드려볼게.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크리스는 에밀리가 또 무어라 자신을 채근할 것이 두려운지 잽싸게 자리를 피해버렸다. 물론 그는 어머니께 그런 말씀을 드릴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가 맡으신 큰 건 중의 큰 건인데 어찌 계약을 어기란 말인가. 말도 안 될 소리였다.

“에밀리……”

리브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집안에서 말포이랑 약혼식 날짜를 잡고 있다는 것은 내가 말해줬지? 아무래도 말포이도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한 모양이야. 8월로 잡혔어.”

리브는 축하한다고 말을 건넬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리브는 왜 에밀리가 크리스에게 약혼 예물을 미뤄 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다가는 졸업하자마자 결혼식 날짜를 잡겠어. 절대로 안 될 소리!”

약혼 예물의 완성을 미루고 약혼식도 미룰 생각이었던 것이다.

“리브, 어떡하지? 8월까지는 이제 몇 개월 안 남았는데!”

“에밀리, 음…….”

“이제 정말로 꼼짝없이 약혼녀라 불리게 생겼어. 어떡하지?”

리브는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네가 약혼 예물을 가로채서 부수지 않는 한 약혼은 피할 수…….”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에,에밀리? 내 말을 끝까지…….”

약혼은 피할 수 없는 상황 같으니 받아들이라는 리브의 조언을 채 듣기도 전에 듣고 싶은 말만 쏙 빼간 에밀리였다.

“리브, 넌 정말 똑똑해! 좋아. 내가 약혼 예물을 가로채서 부수면 다시 의뢰가 들어가겠지? 그러면 예물은 늦어질 테고 약혼식도 미뤄질거야! 좋아. 이제 난 가서 말포이랑 대책을 의논해야겠어.”

에밀리는 쏜살같이 가버렸고 리브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어디선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해사한 미성의 주인공은 크리스였다. 그는 어찌나 심하게 웃는지 숨을 헉헉 거리고 있었다. 크리스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며 ‘머플리아토’라 속삭였다.

“에밀리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결국 둘이 결혼하지 않는 건가? 이렇게 약혼이 깨질 수도 있겠네.”

“응? 약혼이 깨진다니?”

리브의 말에 크리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브락사스 말포이의 아들은 루시우스 말포이야. 에밀리의 밑에서 그런 거만한 아들이 나온다는 게 상상이 돼?”

리브는 입을 쩌억 벌렸다.

“내가 알기론 아브락사스 말포이는 슬리데린 가문의 영애와 결혼을 하거든. 사실 난 깜짝 놀랐지 뭐야. 맥밀란 가문과 말포이 가문이 사돈이라니? 후플푸프와 슬리데린이?”

“하지만 에밀리는 래번클로잖아.”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야. 에밀리에게는 후플푸프의 면모가 분명히 있어. 그런 그녀가 슬리데린 집안에 시집가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거기다 말포이의 여성편력은 유명하지. 아마 둘의 관계는 깨어질 거야.”

리브는 좋아해야하나 싫어해야하나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아브락사스 말포이는 미래의 데스이터가 될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친구인 에밀리와 얽히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뿐만이 아니야. 맥밀란 가문은 안타깝게도 모든 약혼이 깨질 거야. 그래서 가문의 위세가 기우는 건가 싶네.”

“무슨 말이야?”

“에밀리의 오빠인 에드가 맥밀란의 약혼녀가 누군지 알아?”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리브가 한 여학생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에일린 프린스를 말하는 거야?”

에일린 프린스는 슬리데린 7학년으로 유서 깊은 순수혈통 가문의 영애였다. 에드가와는 아주 어릴 적에 약혼을 한 사이로 둘은 어느 정도의 친분을 갖고 있었다. 리브는 에드가가 종종 그녀와 곱스톤 게임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녀는 곱스톤 게임에 한해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며 곱스톤 팀 주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법약 실력이 출중하다며 슬러그혼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 이름을 듣고 생각나는 사람 없어?”

어리둥절한 리브의 표정에 크리스는 리브가 원작에 대해서도 희미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래서 톰 리들에게도 그리 유했던 것일까. 크리스는 잠깐 쓰게 웃었다. 역시 그녀는 너무 착하다.

“그녀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어머니야.”

“…!”

“그래. 에일린 프린스는 토비아스 스네이프라는 머글과 결혼해. 아무래도 에드가 맥밀란과는 파혼을 하는 모양이지.”

리브는 에드가와 에일린의 사이가 조금도 애틋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둘은 그저 인사를 하거나 가끔 담소를 나누고 곱스톤 게임을 할 뿐 이었다. 또한 에밀리와 아브락사스랑 비슷하게 둘은 서로의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둘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았다.

“두 번의 파혼을 기점으로 맥밀란 가문이 지금의 위세를 잃는 게 아닐까 싶어. 하지만 데스이터가 되는 것 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그리고 그녀는 에드가 맥밀란과 결혼해서는 안 돼.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낳아야 하니까.”

“응……. 그렇지…….”

원작의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떠올린 리브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리브 그거 알아? 오리온 블랙은 시리우스 블랙과 레귤러스 블랙의 아버지인거. 그는 발부르가 블랙이라는 사촌과 결혼해서…….”

“정말 원작대로 흘러가겠구나.”

리브의 고운 얼굴에 어린 혼란을 읽어낸 크리스는 말을 뚝 멈췄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결국은 원작대로 흘러 갈 거야.”

“…그래, 그러겠지.”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걸. 톰 리들을 봐. 그리고 다른 인물들을 봐. 전부 원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어.”

이제 크리스는 리브의 혼란을 끊어놓으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청년은 그녀가 무엇에 흔들리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톰 리들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 그는 결국 볼드모트가 될 거야.”

============================ 작품 후기 ============================

성장 아이템 선물해주신 Lente님 감사히 쓰겠습니다^^

멘토링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 리들리브 대체 왜 저러냐고요? 여러분 챕터명을 보세여! 불안한 평화! 평화가 불안해지면 어떻게 될까여???? 둘은 갈등의 끝을 보여줄 예정입니다^0^.... 지금까지 둘은 나름대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왔어요. 원래 저렇게 싫은 소리 안하고 뒤끝있는 성격들이 한 번 싸우면.. 어.. 네 그렇죠.. 좋지 않아요....

* 리브는 리들을 왜 좋아하는거죠? 가치관도 다르고 철저히 상극이고 그런 둘이 썸타고 저렇게 매달리느냐(?) 물으신다면 '동질감' 때문입니다. 리들리브는 지니아와 올리버처럼 첫눈에 반한 격렬한 감정에서 시작핳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꺼려했지만 점점 이해하게 됐죠. 비슷한 점도 많고.. 깊은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못 놓는거에요. 둘은 무의식적으로 서로가 아니면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이 정도면 답변이 될까요?^^

* 리브 첫키스는 리들이에요. 병동에서의 도둑키스 기억하시나요?ㅋㅋ하지만 리브 본인이 모른다는게 함정...  나중에 리들이 알려주겠죠 뭐

* 그나저나 크리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네요! 사실 호불호가 아니라 거의 욕만 먹는게 크리스 장수할듯요ㅋㅋㅋ 그리고 크레기도 크레기지만 크리스를 크레이커라고 부르신거 보고 저 빵터졌어욬ㅋㅋㅋㅋㅋㅋ크리스+브레이커인가욬ㅋㅋㅋㅋㅋㅋㅋ앞으로도 크리스는 크레이커답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갈 예정입니다^0^...

* 멘토링 개인지는 현재 고민 중입니다. 드림즈 온리전을 다녀오고 제 필력에 대해 회의감이... 다들 글을 너무 잘쓰셔요! 거기다가 지금 제 선작은 쭉쭉 올라가는데 조회수는 여전히 반토막이 나섴ㅋㅋㅋㅋ큐ㅠㅠㅠㅠ휴재는 길게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쨌든 우리 완결까지 달려보고 차근차근 생각해보도록 해요!

선작, 추천, 코멘트 항상 감사드립니다!

특히 감상 코멘들 정말정말 사랑해요♡

그럼 저는 다음편에 뵙겠습니다.

독자님들 좋은밤 되세요^^

+ 리들은 이미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 부분은 제가 실수했습니다ㅠㅠ 리아카에린님 지적 감사합니다. 덕분에 수정했습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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