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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인지와 인정 사이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지나자 진홍빛의 증기기관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여름방학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난 리브였다. 나란히 급행열차에 올라탄 리들과 리브는 마주친 인물들과 각각 안부를 나누기 시작했다. 리들은 슬리데린 선후배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다가 리브를 톡톡 건드렸다. 마찬가지로 래번클로 후배들에게 인사를 받다가 이제 유진과 재잘재잘 떠들던 리브는 청년을 휙 돌아보았다.
“올리비아, 난 반장 객실로 가야 해. 근처에 오리온이랑 아브락사스가 객실 잡아놨으니까 그리 가있어.”
“네, 그럼 이따가 봐요.”
리들이 가버리고 리브는 유진과 잠깐 대화를 더 나누다가 나중에 보자는 말을 하며 객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유진이 돌아서면서 그녀가 들고 있던 책에서 팔랑팔랑 책갈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주워든 리브는 나지막하게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유진, 이거 떨어뜨렸어.”
“어머!”
유진에게 책갈피를 건네주며 리브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들여다보았고, 이내 누군가의 사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잡지책에서 잘라낸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는 은발에 자안을 가진 미소년이 가볍게 웃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머글 세계의 것인 모양. 사진 속의 머글 소년은 리브가 잠시 빤히 쳐다볼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음…… 왠지 낯이 익은 듯한 느낌. 리브가 사진에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유진이 즐겁게 말했다.
“잘생겼지? 귀엽지? 예쁘지?”
“응, 엄청난 외모다……. 유진의 친구?”
그 말에 유진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크리스가 내 친구라면 난 정말 행복할거야! 그렇게 말하며 유진은 까르르 웃었다. 리브는 잠깐 벽안을 깜박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크리스’라면 유진 네가 좋아한다는 머글 연예인?”
리브는 몇 번 유진에게서 그 이름을 들은 것을 기억해냈다. 열애설이 났다고 말도 안된다고 소리치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했다. 유진이 좋아하는 그 머글 연예인이 이렇게 생겼구나……. 반할만 하네. 머글 소년은 실버 블론드와 보랏빛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응! 애칭이 크리스, 풀네임은 끄리스띠앙 까르띠에, 국적은 프랑스. 1927년 7월 21일생, 직업은 모델 겸 학생!”
유진은 프랑스식 발음까지 해보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기 때부터 모델 활동을 시작 했다는 데뷔 일화부터 시작해서 몇 달 전 첫 생방송에서 은퇴선언을 했다는 설명까지 이어졌다. 10대 소녀의 열렬한 팬심과 정통으로 맞닥뜨린 리브는 살짝 진땀을 흘렸다.
“크리스는 원래 신비주의 컨셉인 모델이어서 방송은 하나도 안 나왔거든……. 첫 생방송 때 갑자기 돌연 은퇴 선언을 해서 프랑스 머글세계가 한동안 시끄러웠던 모양이야. 까르띠에 회장의 손자인걸 보면 후계구도에 뛰어들 가능성도 있긴 한데…….”
심드렁하게 듣던 리브는 낯익은 브랜드 이름에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영국 왕실에 공식적으로 장신구들을 납품한다는 그 유명 보석 브랜드 카르티에(Cartier)?”
“맞아! 프랑스 식으로는 까르띠에. 우리나라 식으로는 카르티에.”
리브는 다시 유진의 손에 들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귀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재벌가 도련님이 취미로 모델일을 하는 모양이군. 리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진이 선심쓰듯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사진 줄까? 이번 기회에 크리스의 매력에 퐁당 빠져봐!”
리브는 사붓이 웃으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은 그 가치를 아는 팬이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이야.”
사실 리브는 연예인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톰 리들과 맞먹는 미모를 가진 이가 있다는 것에 잠깐 놀랐을 뿐. 그러고 보니 톰 리들의 외모가 머글 아버지의 것이었던가? 역시 세상은 넓고 머글세계에도 인물은 많구나.
“크리스가 마법사라면…… 그 중에서도 호그와트 학생이라면 정말 좋을텐데!”
리브는 굳이 유진에게 그가 마법사여도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보바통 학생이 될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놀랍게도, 절대 이루어질지 않을 것 같았던 유진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올해 호그와트에는 편입생이 한 명 있습니다. 프랑스 마법학교인 보바통에서 4학년을 수료했고 이번 학기부터 5학년으로 편입학하게 될 학생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편입생의 기숙사 배정이 있겠습니다.”
편입생이라는 말에 연회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호그와트가 창립된 이래로 편입학의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호그와트 역사상 첫 편입생이 탄생한 것이다.
“카르티에, 크리스티안!”
덤블도어의 호명과 함께 한 남학생이 상석으로 올라가 의자에 착석했다. 남학생은 은빛 블론와 자수정빛 눈동자가 특징인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윽고 그 실버 블론드에 낡아빠진 모자가 씌워졌다. 에밀리와 대화를 하던 리브는 말을 멈추고 그 미모의 남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까 유진의 책갈피 속에서 봤던 그 모델이다. 그리고…… 뭐더라? 분명 뭔가 더 있는데.
“그리핀도르!”
모자의 외침에 그리핀도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리브는 그제서야 기억해냈다. 그 때 마법부에서 눈웃음쳤던 사람!
*
크리스티안 카르티에(Christian Cartier)는 달빛같은 은발과 자수정같은 자안이 인상적인 미모의 남학생이었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 때문인지 언뜻 소년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완연한 남자의 모습을 갖춰가는 제 또래들과는 달리 그는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서있는 듯한 모호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미모와 은빛과 보랏빛이라는 화려한 색감,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갖춘 크리스티안이 호그와트의 여심을 사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특히 그가 보석같은 보랏빛 눈동자를 가늘게 휘어 웃을 때면 여학생들은 양 뺨을 붉게 물들이곤 했다.
톰 리들의 완벽한 미모에 홀려있던 호그와트 여심은 어느새 크리스티안 카르티에의 등장으로 적절히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프랑스 태생인 남학생의 화려한 미모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리브 역시 마법부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웃음에 잠깐 홀리지 않았던가.
사실 리브는 그때의 자신이 의아했다. 처음에는 리들과 동급인 아름다운 외모에 놀란 탓이라 여겼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신은 리들에게도 그토록 정신을 놓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외모 때문이라 따지면 크리스티안 카르티에보다 톰 리들에게 먼저 홀렸어야 했다. 아니 항상 홀려있어야 마땅하다. 그와는 단 둘이 멘토링도 하고…… 거기다가 한 집에서도 사니까. 하지만 그건 아닌데……. 익숙함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인걸까?
또한 리브는 복도에서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해사한 눈웃음을 흩뿌리는 청년을 볼 때마다 아주 가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금방 기분 탓이라 넘겼지만 말이다.
“리브 너까지 카르티에에게 반한거야?”
편입생을 빤히 쳐다보는 리브에게 오리온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리브는 생각에 빠져있느라 멍한 푸른 벽안을 깜박였다. 옆의 에밀리는 아예 넋을 잃고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툭 내뱉은 말이 ‘요정같아. 귀여워!’ 였다. 리브가 사붓이 웃으며 말했다.
“단지 놀랐을 뿐이야.”
“뭐가?”
이번에 리브는 앞에 앉아있는 리들을 흘깃 보았다가 애매하게 웃으며 말했다.
“리들 선배와 동급의 외모를 가진 남자가 또 있을거 라고는 생각 못했거든.”
리브가 크리스티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건 화려한 외모에 대한 감탄보다 톰 리들과 동급인 미모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리브는 또래의 여학생들과 달리 톰 리들의 완벽한 미모에 ‘열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정’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리브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당사자가 앞에 있어서 민망할만도 했으나 본인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지극히 당연했고 리브는 사심 하나 없이 객관적인 평이라 생각하고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전생과 현생 통틀어서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저런 엄청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리브가 리들에게 홀린 적은 없다 할지라도 여자인지라 가끔 그에게 심장이 떨리곤 했다. 톰 리들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리브, 리브. 독수리가 카르티에 군(Mr. Cartier)의 외모를 표현해 보라면 어떻게 할거야?”
에밀리의 말에 리브의 얼굴이 살짝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오리온과 아브락사스에게 에밀리가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에 우리 기숙사 독수리가 리브한테 리들 선배의 외모를 표현해보라고 한적 있었거든. 그때 리브가 뭐라고 했냐면…….”
[예술가가 푸른 빛 한 조각 없는 흑단 같은 밤하늘을 깔아놓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귀하디 귀한 보석을 박아 놓았는데 밤하늘과 대조되는 새하얀 백옥,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날 흑요석, 고혹적이나 잔혹할지 모를 핏빛 루비가 별처럼 수놓아져 있어.]
친구의 입에서 그때 자신이 읊었던 화려한 미사여구가 흘러나오자 리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방금 그 객관적인 평과는 다른 성격이 것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것이니까! 자신의 앞에 앉아서 옅게 웃고 있는 리들과 눈이 마주치자 리브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민망하기 그지없다.
“에,에밀리, 너 그 얘기 어디서 들은거야? 대체 언제 소문이 난거지?”
“후배들이 얘기하는거 들었어. 역시 리브 너의 표현력은 대단해……. 자, 어서 카르티에도 말해봐. 응?”
“그,글쎄……. 그는 리들 선배랑 다르게 몇 번 보지 못했으니까 잘 모르겠어.”
그래도 잘 생각해보라며 재촉하는 에밀리였고 리브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곤혹스러워 했다. 갑자기 그렇게 표현해보라고 하면 난감한데……. 그런 리브를 곤경에서 구해준 것은 리들이었다.
“카르티에는 부친이 머글이고 모친이 마녀랬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브락사스의 물음에 리들이 은근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많은 여학생들이 카르티에한테 특히 눈을 못 떼는데 말이야…….”
“그건 리들 선배한테도 그러잖아요. 제 눈엔 저 카르티에보다는 리들 선배 쪽이 훨씬 더 남자답고 심미주의(審美主義)에 걸맞는 외모라고 생각합니다만.”
리브는 오리온의 말을 들으며 과연 톰 리들 빠돌이답다고 생각했다. 리들은 수려하게 웃는 것으로 열렬한 후배의 찬사에 화답했다. 그리고 하려 했던 본론을 꺼내든다.
“혹시 벨라이거나 그 피가 섞인게 아닐까 싶어서. 그러니까… 벨라의 페로몬 말이야. 내 추측이 맞다면 아직 어려서 조절이 안되는 건가 싶네.”
어쩌면 일부러 조절하지 않고 흩뿌리는 걸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뒷말들은 삼켜버린 리들이었다.
“리들, 그럼 저 편입생이 벨라 혼혈이란 말이야?”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내 추측이야.”
아브락사스의 물음에 대꾸하며 리들은 수려하게 웃었다. 벨라 혼혈이라…… 톰 리들의 추측은 상당히 그럴듯했다. 벨라의 페로몬이라면 내가 그 때 홀렸던게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페로몬이 없다고 해도 카르티에 군의 외모는 정말…… 사람의 것이 아니야.”
에밀리가 여전히 크리스티안에게 시선을 둔채로 황홀하게 말했다. 아브락사스는 그런 자신의 정혼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빈정거렸다.
“벨라의 피가 섞였으니 당연히 사람의 것이 아니지. 겨우 페로몬에 홀리다니 정신력이 약하네.”
아브락사스의 빈정거림에 에밀리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대꾸했다.
“벨라의 페로몬은 원래 이성에게 작용하는 거라고. 이건 내 의지가 아니거든?”
“네가 페로몬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부족한거지.”
"뭐라고?“
에밀리가 발끈했지만 아브락사스는 ‘저기 부엉이가 날아가네.’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둘이 싸울 조짐을 보이자 리브는 어떻게 해야하나 둘을 번갈아 봤고 오리온은 이제 포기한 듯 했다. 물론 리들은 전부터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페로몬에 홀려서 헤벌쭉 하는거 맞잖아. 경박하게.”
“헤벌쭉? 경박? 너 말 다했어?”
“야, 리브를 봐라. 얼마나 의연해? 이게 바로 의지의 차이지.”
아브락사스의 대꾸에 에밀리는 더욱더 열이 받는 듯 했다.
“리브도 계속 카르티에 군을 쳐다봤거든?”
“리브는 태연하게 있었거든?”
옥신각신하는 둘을 보며—아브락사스는 평소와 달리 정말로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리브는 왜 자신이 저기에 거론되어야 하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하다가는 자신이 편입생의 외모에 홀렸는지, 안 홀렸는지의 진위를 판별하자고 할 기세였다. 리브는 또록또록 눈을 굴리며 어떻게 해야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구원자가 나타났다.
“오,올리비아 브릴리언트 선배 맞으시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리브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응시했다. 신입생으로 보이는 한 소녀는 래번클로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기대와 수줍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마찬가지로 래번클로 신입생 몇 명이 리브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리브는 작게 웃었다.
“맞아. 내가 바로 올리비아 브릴리언트야. 그런데 무슨 일이니?”
리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입생들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맞군요! 선배들한테 들었어요! 전과목 필기 만점에 특출함으로 도배된 성적표!”
음, 정말로 특출함으로 도배된 사람은 리들 선배인데……. 리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신입생들의 찬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거기다가 래번클로의 명예와 위상을 드높이는 만년 수석학생!”
만년 수석이라는 말에 오리온이 살짝 눈을 찡그렸고 아브락사스와 싸우는 것을 멈춘 에밀리는 그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독수리가 인정한 미소녀! 어린 날의 로웨나 래번클로만큼이나 예쁘다고……”
“내년에 래번클로 반장이 될 거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라고……”
리브의 성적과 능력에 대한 찬사는 이제 외모에 대한 찬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소년소녀 할 것 없이 리브의 미모에 눈이 부시다는 둥 찬사를 뱉기 시작했는데 리브는 이들을 보고 잠시 모자가 슬리데린과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부와 아첨이 장난 아닌걸보니 슬리데린에 가서도 잘 지냈을 거다. 본인의 외모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리브를 보며 오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몸둘바를 모르겠는 걸.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선배님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대단한 사람이겠어요!”
“날 높이 평가해주니 고마워. 하지만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여기 있는걸.”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리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눈이 더욱 더 초롱초롱해졌다. 리들은 래번클로 신입생들에게 대외용 미소를 빙그레 지어보였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에 부정조차 하지 않으며 수려하게 웃는 그 모습에 리브는 정말 톰 리들답다고 생각했다. 겸연쩍하는 기색도 없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톰 리들 선배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전대미문의 천재학생이며 슬리데린의 반장. 내후년에 학생회장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두 분이 멘토링 파트너라면서요! 역시 브릴리언트 선배님 정도는 되어야 리들 선배님 같은 분의 파트너가 되는 건가요?”
이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리들에게 돌리려 했던 리브는 그 시도가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톰 리들의 멘티라며 자신을 더 띄우고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오는 말에 리브는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야만 했다.
“두 분……,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잘 어울리세요!”
“선남선녀 커플같아요!”
이제 누군가의 입술에서는 천생연분이라는 말까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신입생의 패기인 것인가. 리브는 경악하며 힐끗 리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톰 리들은 여학생과 얽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특히 최근의 행보를 보면 아예 치를 떨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개학한지 한 달이 좀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기숙사 소속의 여학생과 열애설이 나 있었는데 이를 무척이나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팬클럽 여학생들에게 고약한 꼴을 당하는 그 여학생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표정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그 표정이 나를 향하게 되는건 싫다. 견딜 수 없을 거야. 그건 정말 싫어.
“오해야. 리들 선배와 나는 단지 멘토와 멘티일 뿐, 절대로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리브는 또다시 리들의 눈치를 보았다. 표정이 가라앉아 있는데 혹시 화가 난걸까?
“나와 리들 선배는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고…… 그 때문에 친한거야.”
리브는 왠지 아쉬워하는 신입생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리들 선배는 나를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고 나는 그를 친오빠처럼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더 이상의 억측은 삼가주렴.”
리들은 더 이상 수려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게 가라 앉아 있었는데 리브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요즘 스캔들(scandal) 때문에 불쾌해 하던데…… 어떡해.
“리들 선배, 미안해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신입생들이 가버리고 리브는 조심스럽게 리들에게 사과했다. 새까만 양장본 노트에 무어라 적고 있던 리들이 고개를 들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왜?”
그 말투는 왠지 모르게 차가워서 리브는 다시 한 번 리들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리브가 리들의 차가운 태도에 쩔쩔매며 말을 고르는데 리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뭐가 미안한데?”
사과를 했는데 왜냐고 물어보면…….
“그러니까…… 리들 선배는 아무나하고 소문나는거 싫어하잖아요.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요.”
“올리비아 넌 아무나가 아니- 하아, 됐어.”
그 말에 리브가 벽안을 깜박였다.
“그런 이유에서 하는 사과라면 받지 않겠어.”
그렇게 말한 리들은 탁하고 노트를 덮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아브락사스는 그런 리들과 리브를 번갈아 보다가 혀를 한 번 찼다. 오리온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月後引님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