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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친밀감 혹은 그 이상(1부 完)
이번 학년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 끝나고 특별상 수여가 남았다. 멘토링을 통해 가장 큰 발전을 보이는 팀에게 부여되는 격려금. 이는 전교생의 관심사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리들과 리브는 우승을 하지 못했고 500갈레온은 미네르바 맥고나걸과 포모나 스프라우트 팀에게로 돌아갔다. 미네르바가 [변신술 투데이]에서 신인 루키상을 받으며 변신술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 5학년을 마치는 포모나가 이번 방학 때 마법부 산하의 약초학 연구소 인턴으로 채용되었다는 것이 큰 성과였기 때문이었다. 인턴을 보통 6학년을 마친 학생들을 뽑는 다는 점에서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리들과 리브는 우승팀처럼 화려한 성과는 없지만 멘토가 멘티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높이 사서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리브가 마법약 제조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슬러그혼의 찬사와 리브가 아플 때 리들이 지극정성이었다는 젤러 부인의 발언이 한 몫 했다.
그래서 애초에 500갈레온을 나눠 가지기로 약속했던 둘은 난감한 상황에 봉착되어 있었다. 리들이 300갈레온, 리브가 200갈레온을 가져가기로 했지만 지금 주어진 것은 300갈레온 뿐이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게 미네르바와 포모나가 낸 성과는 리브가 마법약 과목에서 특출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들은 리브의 마법약 제조실력을 탓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 상금을 모조리 가져갈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그리고 리브는 리들이 자신의 마법약 제조실력을 탓하면 반박할 말을 가득 준비하고 있었다.
상금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각기 다른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둘을 보며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요? 반반씩 나누면 되지! 그 말을 반박한 것은 오리온이었다. 멘토가 멘티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끌었다는데 어떻게 반반이 돼? 만약 나라면 리들 선배에게 상금을 전부 드리겠어. 의외로 아브락사스는 둘이 결정할 일이라며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브는 상금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는 세 명을 뒤로하고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새까만 노트를 펼쳤다. 소녀는 리들의 노트에 깃펜을 들고 문장을 끄적였다.
[지금 어떻게 하면 이 상금을 모조리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중이죠?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려요.]
둥글둥글한 글씨체를 읽던 리들이 소녀의 손에서 깃펜을 쓱 가져갔다. 그리고 노트에 수려한 글씨체를 수놓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수려한 필체가 아까울 정도로 고약했다.
[영악하고 눈치 빠른 계집애.]
리브가 미간을 찌푸리며 리들의 손에서 깃펜을 낚아챘다. 그리고 제멋대로 휘갈긴다.
[자꾸 그러시면 상금 전부 주려다가도 말 수가 있어요.]
리들은 무어라 더 쓰려는 소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한다.
“정말 전부 다 줄거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와 더불어 잘생긴 얼굴에 맺힌 수려한 미소에 리브가 벽안을 깜박였다. 리들의 붉은 입술에서 현란한 화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수혈통가의 상속녀가 겨우 300갈레온에 치사하게 굴지는 않겠지. 아무렴, 난 젬병이던 마법약 제조실력을 끌어올려준 은인인걸. 나 같은 멘토가 세상에 어딨어. 내가 마법약만 봐준 것도 아니고 다른 과목들도 다 봐준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브릴리언트, 너는 똑똑한데다가 착하고 사려 깊으니까 이런 내 노고를 알거야. 리들의 추종자들이 매료되고 홀딱 빠졌던 그 위험한 매력은 이제 리브를 현혹시키려 하고 있었다. 황홀난측(恍惚難測)한 기분에 휩싸이려던 리브는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다부지게 말했다.
“이,일단 이 손 좀 놔봐요.”
수정한다. 다부지게 말하려는 시도는 말을 더듬는 바람에 실패했다. 리브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리들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려 빙글빙글 웃을 뿐 손을 여전히 꼭 잡고 있었다. 손과 손이 맞닿은 느낌이 싫지 않았기에 리브는 상대가 무안할 정도로 강하게 뿌리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랬다고 해도 리브는 청년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을 테지만. 소녀는 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리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소녀의 작은 입술에서는 청년이 반길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전부 드릴게요. 그 말에 리들의 미소가 짙어졌다. 소녀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저를 마법약 과목 ‘특출함’으로 만들어주세요.”
이 말은 앞으로도 자신과 멘토링을 하자는 뜻이렷다. 리들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단번에 수락했다. 그리고 300갈레온이 담긴 돈주머니를 자신 쪽으로 끌어온다. 이제 리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상금을 전부 손에 넣었다는 기쁨 그 이상 이었다. 두 마리의 토끼,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손에 넣은 느낌이었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테다.
*
애니마구스 마법, 리브가 신입생 시절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변신술 영역이었다. 타고난 변신술 재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지닌 리브였지만 애니마구스 마법은 녹록치 않았다. 고난이도이면서 위험한 마법이었기에 마법부에서는 엄중히 감시를 하고 있었고 성공을 할 시에는 반드시 등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의 리브는 애니마구스가 되면 등록을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을 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건 성공한 후의 얘기이고 지금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잡힐 듯 말 듯한 감을 간당간당 유지하던 리브는 무언가에 턱 가로 막혀버렸다. 이 난관을 깨면 되는데 벽이 너무 높았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한동안 마법을 못쓸텐데! 그럼 감은 완전히 떨어질거고… 어떡하지?
리브는 이성적이고 침착한 성품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래번클로답게 똑똑했고 현명하기 까지 했다. 1,2학년 후배들은 그런 그녀를 동경했다. 리브는 마법의 모자가 슬리데린에 보내려고 했다는 것이 잊혀질 정도로 래번클로에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게 있다면 리브에게는 네 가지 기숙사가 모두 거론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어, 그리고 야망도 있군 그래. 현실적이고, 사리에 밝아. 그래도 착한 심정을 가졌군 그래.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야. 후플푸프도 너를 좋아했을게다. 그리고 용기도 있군 그래. 그리핀도르도 나쁘지 않겠어.]
마법의 모자는 소녀에게 후플푸프와 그리핀도르 역시 후보에 넣었다. 아마 모자 속에 있는 네 명의 창립자의 뇌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흥미를 보이다가 ‘얘는 내 거야!’를 외치고 있었을 테고 로웨나 래번클로는 눈을 빛내며 어떻게 하면 내가 데려갈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상냥한 헬가 후플푸프는 자신도 마음에 든다며 미소를 지을테고 고드릭 그리핀도르 역시 용기를 발견하고 살라자르와 갈등을 빚어볼까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마지막에 미소 지은 자는 로웨나 래번클로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리브는 고드릭 그리핀도르가 발견했던 용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답지 않게 무모함 한 조각까지 첨가해서. 용기는 망설임 없이 끌려나왔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는 현명함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무모함 한 조각은 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담했다.
“으…. 어떡해….”
리브는 충격에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리브는 멍하니 자신의 양쪽 손을 응시했다. 아니, 이걸 손으로 칭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이건 분명 동물의 발이었다. 하얀 털이 복슬복슬 했고 발톱…도 달려있었다. 헉, 발톱이 네 개야? 아,아니구나. 아래쪽에 하나 더 숨어있네. 아니 지금 발톱이 네 개든, 다섯 개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이걸 어떻게 되돌리지? 병동, 그래 병동을 가자. 그런데 병동에 가서 뭐라고 해?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고 물어볼텐데… 으으 큰일났다.
그렇다. 리브는 지금 애니마구스 마법의 부작용을 톡톡히 겪고 있었다. 왜 마법부에서 시도하는 마법사들을 엄하게 감시하는지, 왜 심도깊은 애니마구스 서적이 금서구역에 있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 변신된 손이 아파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분명 책에서 읽었던 부작용이었다. 시도하는게 아니었는데! 리브는 자신의 무모한 결정을 후회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병동보다 덤블도어 교수님한테 가는게 더 나을까? 그렇게 소녀가 패닉에 빠져있는데 문이 활짝 열리며 필요의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토,톰 리들! 저 인간이 여길 왜왔지? 리브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등 뒤로 보내더니 망토 안으로 숨겼다.
“네가 여기 웬 일?”
“리,리들 선배야 말로 여긴 무슨 일이에요?”
리브는 태연하게 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등 뒤로 숨긴 손이 화끈화끈 계속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리들은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리브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 덤블도어 교수님께 가야겠어. 빠르게 결정을 내린 리브는 이만 가보겠다고 작별인사를 한 뒤 방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빠른 청년은 망토를 들춰내고 소녀의 두 손을 정확히 잡았다. 이질감을 느낀 리들은 리브의 손 상태를 보고 흑안을 크게 떴다. 이제 리브는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너… 손이 왜 이래?”
“아프니까 잡지 마요. 진짜 아파요.”
그 말에 리들은 리브의 손을 놔주었다.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리들이었다. 리브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 심정을 모르는 리들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리브를 무섭게 채근하기 시작했다. 어서 말 안해? 누가 너한테 주문이라도 쏜거야? 화내기 전에 빨리 말해. 리브는 정말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 진짜 말 안해? 손을 동물의 발처럼 만드는 주문이 뭐였-”
리들은 말을 뚝 멈췄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리브의 두 손은 어떤 동물의 발 같았다. 동물…. 설마…, 리들은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뱉어냈다.
“애니마구스?”
그 말에 리브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리들은 헛웃음을 뱉었다.
“너 애니마구스 부작용 몰라? 지금 이게-”
한소리 늘어놓으려던 리들은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로 식은땀을 흘리는 리브를 보며 생각을 달리했다. 혼내는 것보다 고통의 근원부터 없애는게 우선이었다. 리들은 품에서 주목나무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손 모아봐.”
그렇게 말하는 리들의 목소리는 신경질 적이었다. 리브가 빠릿빠릿 움직이지 않자 리들은 직접 위치를 조정했다. 우선 불완전하게 걸려있는 애니마구스 마법을 해제해야만 했다. 잠시 생각한 리들은 소녀의 손에 지팡이를 겨눈 채로 신중하게 주문을 외웠다.
“피니트 인칸타템.”
지팡이에서 새하얀 빛이 튀어나오며 리브의 두 손을 감쌌다. 그리고 털이 사라지며 원래의 작은 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 어리석은 여자야, 애니마구스 마법이 잘못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손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온 몸이 이렇게 되면 어쩌려고 했어?”
리들이 말을 길게하면 길게 할수록 리브는 풀이 죽었다. 청년은 좋은 소리는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며칠 전에 기억력 마법을 사용한 리들에게 어떻게 이런 위험한 마법을 함부로 남용할 수 있느냐고 했던 리브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기 까지 했다. 고개를 푹 숙인채로 손을 꼼지락 거리는 리브를 보며 리들은 마음에 안드는 듯 매섭게 말했다.
“아프다면서 손은 왜 자꾸 만져?”
리브는 물끄러미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리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 화를 내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리브는 우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손도 아프고 톰 리들은 화내고 있고… 눈시울이 붉어진 리브를 보며 리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더 혼을 내다가는 눈물을 쏙 빼놓겠다 싶어 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대야—필요의 방이 생성시켜주었다.—에 대고 주목나무 지팡이를 휘두른다. 아구아멘티. 맑은 물이 가득차자 대야에 마법약—역시 필요의 방이 제공했다.—을 흘려 넣었다.
“손 담궈. 마법 부작용에 특화된 약이야.”
대야 안에 손을 담그자 리브는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20분 정도 담그고 있으면 된다는 말에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들의 얼굴을 보니 여전히 무표정했다. 원래도 포커페이스이긴 했지만 지금은 서늘해보였다. 소녀는 또록또록 눈망울을 굴리며 청년의 눈치를 보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리브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나기니는 어디있어요? 리들이 단답형의 대답을 내놓았다. 내 방에. 그렇게 대화는 끊겨버렸다.
“…….”
“…….”
차라리 화를 내는게 낫다 싶었다. 그러면 무어라 대꾸라도 할텐데! 저렇게 지긋이 쳐다보고 한 마디도 안하니 리브는 미칠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척이나 답답했다. 이 분위기가! 리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멘토와 멘티로 묶여서, 서로에 대해 알고, 동질감을 느끼고… 그 결과 현재 자신과 그는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 저렇게 자신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눈길이 책망이라는 것도 안다. 이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안다. 리브가 손가락을 움직여 물을 첨벙거리는데 리들이 입을 열었다.
“방학이 끝나고 감을 전부 잃어버린다 해도, 넌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굴면 안되는 거였어.”
정확히 자신의 마음을 집어낸 리들을 보며 리브는 움찔했다. 정말 그는 무서울 정도로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생에 읽은 원작 때문에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물론 세세한 것은 그와 가까이 지낸 탓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내 행동 패턴을 읽고, 내 심리를 알아채는 그를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역시 톰 리들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
“애니마구스 마법은 너처럼 어린 마법사가 쓸 수 있는게 아니야. 네가 아무리 똑똑하고 변신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한들 겨우 3학년이야.”
그는 사람을 잘 파악하고 약한 면을 파고든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료 시키고 추종자로 만들었겠지. 자신에게 기어오르는 인물은 사악함을 발휘해 어김없이 밟아주고. 하지만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쁜 짓은 할지언정 나쁜 사람은 아니다?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
“미네르바 맥고나걸도 그 덤블도어가 개인 수업을 해줬는데 성인이 돼서야 성공했잖아.”
나는 왜 다른 이들이 그토록 그를 찬양하고 추종하는지 이해했다. 교수들에게는 학구적인 환희를, 학생들에게는 한없는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그를 훌륭한 멘토라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 만큼은 진심인 그를,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그를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 역시 나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친밀감을 느끼고 있겠지. 우리는 상극이면서도 닮은꼴이니까. 그래서 나에게 관대한 것이겠지.
“앞으로는 무모하게 굴지 좀 마. 그깟 동물로 변신하는 마법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리브를 보며 리들이 시간을 확인했다. 20분 지났어. 그 말에 리브는 대야에서 손을 꺼내 탈탈 털었다. 리들은 손수건을 꺼내 물기어린 리브의 손을 감쌌다. 정말 손이 작아. 그렇게 생각하며 리들은 리브의 손을 꼼꼼히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 친절에, 손의 온기에 리브는 또다시 마음 한켠이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여러 번 입안에서 굴린 듯 리들의 입술에서 제법 진중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넌 이성적이고 침착하다 싶으면서도 가끔은 심하게 감정적이야.”
리들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리브의 그렇지 못한 면을 많이 봤다. 약한 면을 파고들면 쉽게 위태로워지고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리들의 눈에는 따스하고 마음 약한, 어리고 작은 소녀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은… 이걸 무어라 칭해야할까. 그 감정에 대한 생소함과 혼란을 리들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게 리들의 결론이었다.
“좀 더 마음을 의연하게 가져.”
리브의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듯 리들은 이어서 다른 화제를 꺼내든다.
“변신하고 싶은 동물이라도 있어? 털이 하얀 동물이 뭐가 있지.”
“글쎄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하긴 애니마구스는 바란다고 해서 무조건 그 동물로 변하는게 아니니까.”
애니마구스 마법은 시전자가 원하는 동물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그리 변하는게 아니었다.
“작은 동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쥐 같은거?”
“…그건 말고요.”
손수건을 말끔히 한 후 곱게 접어 품안에 넣는 리들을 보는 리브의 푸른 벽안에 어떠한 감정이 일렁였다.
톰 리들, 볼드모트, 그는 여전히 미래에 볼드모트가 될 소질이 다분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볼드모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내가 그를 따를지언정 다른 이들처럼 그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그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막지는 못했다. 방관한 적도 많았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옹호한 적도 있었다. 그에게 제동을 걸 때도, 방관을 할 때도 나는 항상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원작이 바뀔까. 방관을 하면 이러다가 볼드모트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제동을 걸면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허무해진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하지만 그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하나하나 발견할수록, 나에게 진심인 그를 볼수록… 그렇게 나는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볼드모트가 되지 않을지도 몰라.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알아. 하지만 그게 헛된 희망일지, 참된 희망일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희끄무레하고 언제 깨져버릴지 모를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 당신은 모르겠지. 이런 내 마음을. 그래, 나도 모르겠는걸. 내가 왜 이러는지.
*
“그런데 정말로 아브락사스 선배랑 오리온한테 이름 안 불러 줄거에요?”
얼마 전에 리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오리온에게 한탄하던 아브락사스를 본 리브였다. 아브락사스의한탄에 오리온 역시 한숨을 내쉬며 자신 역시 그게 큰 소망이라고 답했다. 그 둘의 분위기는 굉장히 음울했는데 두 청년의 비애를 보며 리브는 조금 힘을 써주기로 했다.
“이름 불러 주는게 뭐가 대수라고… 이름은 친밀감과 애정의 표현이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특히 그 둘은 리들 선배랑 가깝고 우정을 나누는 관계잖아요.”
잘하면 아브락사스와 오리온에게 여름방학 전에 큰 선물을 안겨줄 수 있겠다 생각한 리브였다.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리들이라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져있는 상태니까.
“나랑 너는 무슨 관계지?”
뜬금없는 물음에 리브는 잠깐 벽안을 깜박이다가 짤막하게 답했다. 멘토와 멘티, 선후배 관계요. 이번에는 다른 물음이 던져진다.
“그럼 우린 어떤 관계지?”
‘무슨’과 ‘어떤’은 다르다. 단순히 앞의 대답과 같은 것을 듣기 위해 던진 질문은 아닐 터였다. 뭐라고 말해줘야 이 사람의 기분이 좋아질까. 기분이 좋아지면 순순히 이름을 부를 법도 한데. 리브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친밀한 관계죠.”
당신한테 동질감을 비롯해서 친밀감 역시 느끼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리브는 기차에 올라탄 리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리들이 기차에 올라타려는 리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 그 이상이야.”
그 말에 청년에게 손을 내밀던 리브가 벽안을 깜박였다. 청년은 소녀의 손을 붙잡고 가볍게 끌어당겼다. 기차에 올라탄 리브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마음이 가득 설레였다. 이 손의 온기 때문일까, 그 말 때문일까.
“이름을 부르는게 친밀감과 애정의 표시라면…”
빈 객실에 들어서며 리들이 수려하게 웃었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열어 달콤한 미성을 뱉어낸다.
“너부터 부를게, 올리비아.”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진저리 칠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다. 뜻은 좋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올리비아.”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머금으며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달콤하게 웃는다. 처음으로, 애정을 주지 않았던 내 이름, ‘올리비아(Olivia)’가 감미롭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설레이던 마음이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친밀감일까, 그 이상일까.
*
내 이름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한참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올리비아.]
이런 시가 있었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왠지 그 심경을 알 것만 같았다.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올리비아.]
리들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금빛 소녀는 흑빛 청년을 향해 꽃처럼 웃었다. 그리고 리들은 그 꽃을 꺾고 싶어졌다. 갖고 싶어. 하지만 꽃은 꺾으면 가질 수 있을지 언정 시들어버린다. 그럼 의미가 없다.
그래, 뿌리까지 통째로 뽑으면 돼. 그리고 바로 내 화분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저 꽃이라면 손에 흙이 묻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청년은 그 사이에 꽃이 시들어 버릴까봐, 자신의 화분에서 살지 못할까봐 불안했다. 그래서 아직은 움켜쥐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절대 놓아주지는 않을테다.
<친밀감 혹은 그 이상> 마침.
1부 完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사실 오늘은 안올리려고 했는게 걍 올렸어요 헿
* 리들 너 그러다 딴 놈이 홀랑 꺾어간다^0^
아, 근데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니 뭐.. 리브꽃 열심히 지킬듯여ㅇㅇ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구절입니다. 리들이 리브 이름 불러주는 장면을 쓰는데 딱 떠올랐지 뭐에요ㅋㅋ아마 리브는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리들은 리브를 '올리비아'라고 부릅니다ㅋㅋ
* 다음 편으로는 선작 5000기념 외전이 올라갑니다. 내일 올릴게요! 죄송하지만 분량은 짧음ㅜㅜ 너무 기대하시면 아니되요... 걍 리들과 리브의 소소한 에피소드에요ㅋㅋ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그럼 전 이만 47화 리리플 작성하러 갈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