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5화 (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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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본색

리브가 덤블도어를 뒤따라나가자 대연회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가 다시 수군거리는 말소리로 가득찼다. 리브의 돌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상당 수였지만 파킨슨이 밟힌 것에 대해 고소해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평소에 온갖 교양있는 척은 다하다니 아이고 고소해라.”

“그러게,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한게 아쉬워.”

“하지만 좀 심하던데… 괜찮을까?”

“오,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망치고 있어!”

샤를루스 포터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게 말시키지 마.” 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묻자 샤를루스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얼굴에는 기쁨의 기색이 가득했다. “이 장면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두고 싶단 말이야. 산발이 된 파킨슨이라니…” 샤를루스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에밀리는 은회안을 깜박이며 아까 리브가 손을 탁탁 털며 떨군 파킨슨의 머리카락 뭉치를 가만히 응시했다. 많이도 뜯었네. 그녀의 앞에 앉아있던 아브락사스는 충격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맥밀란, 네 친구 무섭다…”

“어… 저기 머리카락 좀 봐…”

“윽, 내 머리가 다 아파.”

“내가 리브 친구인거 알지? 뭣하면 네 머리카락도 저렇게 만들어줄거야.”

“야, 제발 그 것만은 참아주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에드가는 자신의 멘티인 오리온과 눈이 마주쳤다. 오리온의 얼굴도 살짝 굳어있었다. 유명 순수혈통 가문의 후계자인 둘은 ‘지니아 라이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리온은 현재 독신인 작은 아버지, ‘레귤러스 블랙(Regulus Black)'과 라이트 가문의 직계 외동딸이였던 ’지니아 라이트(Zinnia Wright)’와 공식적인 약혼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약혼자를 버리고 머글 남자를 택한 후 사랑의 도피를 한 것까지. 어른들이 속닥거리는 것을 들었다. 이 일은 그 당시에 순수혈통 세계를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물론 쉬쉬하고 있어서 오리온과 에드가 또래의 애들은 잘 알지 못했다. 에드가 역시 오리온처럼 어른들이 떠드는 것을 엿들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에드가가 말했다.

“너, 설마 알고 있었냐?”

“그러는 너도?”

“난 파킨슨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야.”

“부모님한테 물어봤나보지. 그 당시에는 엄청난 스캔들이었으니까"

에드가는 리브가 방학 때마다 머글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게 고아원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ㅡ리브가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으므로ㅡ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아버지 쪽의 머글 친척과 지내는 모양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리브는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고 에밀리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에드가였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며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으니 모른 척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에밀리는 그제서야 리브가 가족에게서 편지를 한 통도 받지 않는 것을 깨닫고 그 후로도 절대로 묻지 않았다.

“라이트 가문의 일원은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브릴리언트는 친가 쪽과 살고 있는건가?”

“아버지 쪽 머글 친척이랑 사는거 같던데.”

오리온과 에드가가 조그맣게 말을 주고 받았다. 에드가는 에밀리에게서 리브가 가족에게서 편지를 한 통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머글 친척들과 그리 사이가 각별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블랙, 방금 파킨슨이 말한게 사실이니?”

리들이 속닥거리는 오리온과 에드가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오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목소리를 낮추며.

“네, 아마 맞을거에요. 하지만 라이트 가문에서 정말로 그녀를 제명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라이트 가문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서 확인하기도 힘들고….”

“대가 끊긴거야? 방계 쪽도 없어?”

“네, 라이트 가문은 대대로 손이 귀해서 직계로만 근근히 대를 이어갔어요. 그래서 데릴 사위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리들은 파킨슨의 폭로를 듣고 어째서 리브가 고아원에서 자랐는지 깨달았다. 순수혈통의 마녀가 머글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했고, 외가인 라이트 가문은 멸문했으니 아무도 그녀를 거둘 수 없었겠지. 그리고 고아원에 온 것을 보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건데… 뭔가 석연치 않다. 리들은 리브가 어떤 가정사를 갖고 있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또 다시 알고 싶어졌다.

*

덤블도어 교수를 뒤따라가며 리브는 감정을 가라앉혔고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버지는 머글이었구나. 그래서 명단에서 발견할 수 없는 거였어. 톰 리들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아버지도 머글이었다. 그럼 아버지는 역시… 어머니가 마녀이기 때문에 버린 것이었나. 역시 나와 그는 같은 부모를 두고 있었나. 아니, 파킨슨 그 빌어먹을 계집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소녀의 생각을 깬 것은 후플푸프 사감인 비어리 교수였다. 평소 엄격하기로 소문난 여교수는 큰 소리로 소녀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머글식 폭력이라니! 너에게 정말 실망스럽구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다른 학생도 아니고 네가 그런 짓을 하다니! 너의 그 무지막지한 행동으로 래번클로에서 30점 감점할 줄 알아라!”

리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서 파킨슨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말해도 자신의 행동,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걸 알고있는 리브는 입을 꾹 다문채 바닥만 응시했다. 덤블도어 교수가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며 비어리 교수를 제지했다. 리브는 이번 일이 그냥 넘어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교수들이 자신에 대한 처분을 논의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파킨슨 가문에서도 가만있지 않겠지.

리브는 덤블도어의 사무실에 들어와 그와 마주앉았다. 덤블도어 교수는 평소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하늘색 눈동자로 리브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소녀는 슬며시 그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에게 실망하셨겠지. 안다. 나는 감정을 조절했어야만 했다. 그렇게 이성을 잃어서는 안됐다. 하지만 참지 못했다. 정말로 열 세살이 되어버린걸까. 왜 참지 못한거야. 왜! 리브는 이제 자신에게 화가날 지경이었다. 기나긴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덤블도어 교수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랬니?"

다른 교수라면, 아까 비어리 교수처럼 머글식 폭력을 휘둘렀다며 곧바로 리브를 야단쳤겠지만 덤블도어는 그러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책망할거라 생각했던 리브의 벽안이 살짝 커졌다. 소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절… 혼내시지 않을건가요?”

“혼을 내는 것은 이유를 듣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

리브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을 줄줄 늘어놓으며 소녀는 다시 화가 나려는 것을 참기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그녀가 저의 어머니에 대해 끔찍한 폭언을 했으니까요. 아마 교수님도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제 행동을 마냥 나무라실 수는 없으실거에요.”

“나는 너를 아직 나무라지 않았단다.”

“…죄송해요. 제가 흥분했어요.”

리브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뜨며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파킨슨의 폭언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거람. 리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았어야 했다.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하지만 그 계집애가… 리브는 만신창이가 된 파킨슨이 떠오르자 후회의 감정이 얕아졌다. 평소에 온갖 교양있는 척은 다하고 다니더니 아이고 고소해라.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온 것은 래번클로 기숙사 사감인 메리쏘우트 교수였다. 파킨슨을 병동에 데려다주고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에 온 그녀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리브는 그런 그녀의 얼굴과 마주하자 고개를 푹 숙였다. 덤블도어 교수와 이야기를 무어라 나누던 메리쏘우트 교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리브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숙사 사감으로써 소녀의 행동을 야단치려고 했던 메리쏘우트 교수는 풀이 죽어있는 리브를 보자 마음이 약해진 듯 했다. 메리쏘우트 교수는 리브가 이미 덤블도어 교수에게 혼이 났을거라고 생각하며 야단치려는 마음을 지워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들었다.”

“소란을 피워서 정말 죄송합니다. 참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

뒤늦게 소식을 듣고 병동으로 온 교수들은 반장들에게서 사건을 전해듣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모범생인 리브가 심각한 머글식 폭력을 휘둘러서 파킨슨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리브는 평소에 착하고 순한 학생이었다. 슬러그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지 그게 정말이냐며 몇 번이나 묻기까지 했다. 파킨슨은 더욱 더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정말 그녀는 불쌍해보였다.

교수들이 교무실에 모여서 이번 사건에 대해 논의를 하려는데ㅡ“브릴리언트 양은 어디에 있죠?” “일단 덤블도어 교수가 데려가서 면담 중이에요.”ㅡ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연회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학생들은 리브의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후 교무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영리한 래번클로 학생들은 리브가 이번 사건으로 심한 벌을 받게될지도 모른다고 말을 나누었다.

“리브가 심하긴 했지만 파킨슨도 심했어.”

“나라도 내 어머니를 욕했으면 폭발했을걸.”

“만약 불합리한 처분을 당하면 어떡해? 가서 말씀드리자.”

그들은 교무실로 몰려들어 리브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래번클로 학생들이었고 후플푸프 학생들도 더러 껴있었다. 그 움직임을 알아차린 파킨슨과 친한 슬리데린 여학생들도 교무실로 달려와 리브에게 밟힌 파킨슨의 편을 들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호그와트에서 천박하게 머글식 폭력이라뇨! 브릴리언트는 심한 벌을 받아야해요!”

“마녀로서의 자질을 잃고 그런 경거망동을 하다뇨!”

래번클로 학생들은 질세라 파킨슨을 비롯한 톰 리들 팬클럽의 횡포를 전부 일러바쳤다. 그리고 파킨슨이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끔찍한 모욕을 했다며 리브를 편들었다. 우선 숫자부터가 열세였다.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슬리데린 여학생들은 머글식 폭력을 잡고 물어졌다. 이제 래번클로 학생들과 슬리데린 학생들의 싸움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전부 조용히 하도록! 브릴리언트 양과 파킨슨 양의 처분에 대해서는 교수들이 정할 것이니 전부 나가주세요.”

리브 뿐만이 아니라 파킨슨에게도 처분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듣고 래번클로 학생들은 순순히 교무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리하게 치고 빠져야 할 때를 잘 판단했다. 하지만 몇 몇 슬리데린 여학생들은 파킨슨은 피해자라고 왜 처분을 받냐고 따지다가 교무실에서 쫓겨났다. 리브와 친분이 있었지만 그녀를 옹호하지 않고 지금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리핀도르의 반장, 미네르바 맥고나걸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래, 미네르바. 너 역시 이번 사건을 목격했었지?”

“혹시 브릴리언트 양을 옹호하려는 거라면 듣지 않겠다. 방금 충분히 들었으니 말이다.”

후플푸프 사감인 비어리 교수의 엄격한 말에 미네르바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들, 저는 브릴리언트 양을 무조건적으로 감싸려는게 아닙니다. 그저 제 소견을 밝히고 싶습니다.”

디펫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확실히 브릴리언트 양이 머글식 폭력으로 파킨슨 양을 병동에 실려가도록 만든 것은 객관적으로 도가 지나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파킨슨 양 역시 도가 지나쳤습니다. 물론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파킨슨 양은 그 못지않은 언어폭력으로 브릴리언트 양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몸의 상처는 금방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낫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디 교수님들께서 이 부분을 알아주시고 처분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

“리브…!”

“리브, 괜찮니?”

“많이 혼난거야?”

홀로 기숙사 휴게실에서 벽난로의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리브를 에밀리가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소녀의 주변을 래번클로 학생들이 에워쌌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녀에게 한마디씩 뱉고 있었다. 리브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벽안을 깜박였다. 그 누구도 소녀를 책망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교무실에서 리브에 대해 옹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리브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들은 더욱더 걱정스러운 듯 했다.

“많이 혼났나봐…”

“어쩔 수 없지.”

“리브, 솔직히 걔는 당해도 쌌어. 우리는 널 이해해.”

“리들 팬클럽 계집애들이 널 보통 괴롭혔어? 그 수장격인 파킨슨을 밟아버린 것은 잘 한거야.”

“내 속이 다 시원하던데, 걔 한동안 쪽팔려서 얼굴도 못들고 다닐걸.”

리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한테… 실망하지 않았어?”

리브는 기숙사 학생들이 자신을 책망할거라고 생각했다. 벌써 래번클로는 30점이나 감점당했다. 거기다가 머글식 폭력이라니… 마녀로서의 자질을 잃은 행동이었다. 머글 세계에서 자란 애는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자신은 할 말이 없었다. 리브의 말에 웅성이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무어라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는 듯 했다. 침묵을 깬 것은 자스민 러브굿이었다. 그녀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놀라기는 했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야. 우리 기숙사는 개성을 존중하잖아. 원래 천재는 남들과는 다른 법이지.”

자스민의 말은 궤변 같았지만 리브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다. 다른 학생들도 그런 것 같았다.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스민 말대로야. 그래서 우리 기숙사에 개혁가나 발명가가 많잖아?”

“천재는 평범함을 벗어나는 법이지. 물론 머리채 휘어잡는 리브는 정말 의외였지만…”

이제 그들은 머글식 싸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머글들은 그렇게 싸워? 우린 지팡이만 휘두르면 되는데 되게 힘들겠다.”

“정확히는 머글 여자들이 그렇게 싸워. 저번에 머글 백화점에 가본적 있는데 머글 여자 둘이서 그렇게 싸우던데”

“전부 그런건 아니야. 난 언제 머글 남자 둘이서 그러는거 봤어.”

“세상에, 머리가 잡혀?”

“솔직히 머글식 싸움이 별거야? 다이애건 앨리에서 아저씨 둘이 주먹 휘두르는거 봤어.”

리브는 이 상황을 보며 웃어야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핫초코가 마음 속 가득히 찬 것 같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실망했다고, 그런 애인지 몰랐다고 차갑게 뒤돌아서지 않았다. 그 것만으로도 리브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리브가 눈물을 한 방울 훔쳐내자 에밀리가 그녀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너무 걱정하지마, 잘 풀릴거야.”

“맞아, 징계는 피할 수 없겠지만 심한 벌은 안받을거야.”

“너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어.”

에밀리는 리브에게 파킨슨이 병동에서 가증스럽게 울어대는데 네가 그 꼴을 봤어야 했다며 떠들었다. “그 가증스러운 계집애가 아주 서럽게 우는데, 그거 다 불쌍해보이려고 그러는거야!” “그런데 진짜 불쌍해보이기는 했어. 머리는 산발에…” “걔 톰 리들이랑 좀 친하다고 거들먹거리고 다녔잖아. 꼴 좋던데” 기숙사 문이 열리며 반장들과 여학생회장인 세실리아가 들어왔다.

“이 놈의 독수리는 눈치가 없어, 문제 푸느라고 좀 늦었어.”

6학년 여학생 반장이 투덜거렸다. 그들은 리브에게 하나 둘씩 가까이 다가왔다. 세실리아의 표정이 제일 심상치 않았다. 학생들은 하나 둘,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리브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세실리아는 엄한 얼굴로 리브를 꾸짖기 시작했다. 머글식 폭력이라니! 그렇게 분별없는 행동을 할 줄이야. 너는 좀 더 참았어야 했어. 정말 실망스러워. 그 것도 대연회장에서… 리브는 그저 묵묵히 듣고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리브 네가…!”

“……”

“교수님들이 네 처분에 대해서 논의 중이셔. 각오하고 있어.”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세실리아는 무어라고 더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휙 몸을 틀어 침실로 올라가버렸다. 풀이 죽은 리브에게 필리우스를 비롯한 반장들이 말했다.

“너무 섭섭해하지마, 저래 보여도 세실리아가 힘을 많이 썼어.”

“세실리아는 슬리데린 반장들이랑 싸우기까지 했는걸.”

필리우스가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도 힘을 써봤는데 처분은 교수님들이 내리시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미네르바가 말을 잘 해줬거든. 그리고 넌 교수님들이 예뻐하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마. 정 그래야겠다면 대연회장은 안돼.”

*

다음날 리브는 휴게실에서 과제를 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소녀를 알아본 몇 몇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저학년 생들은 슬금슬금 피하기까지 한다. 슬리데린 여학생 몇 명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들으라는 듯이 “파킨슨 가문에서 호그와트에 항의 편지를 보낼거래!”라고 외쳤다. 리브는 그들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말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꾸 그러면 네 머리채도 무사하지 못할거야. 슬리데린 여학생들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리브는 씩 웃었다. 파킨슨을 보란듯이 밟아줬으니 아마 더 이상 날 건들지 못하겠지. 내 이미지가 망가졌지만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리들 선배님”

평소처럼 졸업생 명단이 가득한 서고로 온 리브는 리들에게 인사한 후에 책을 뽑아들었다. 표시한 부분을 펼친 리브는 명단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소녀를 빤히 쳐다보며 리들이 말했다.

“넌 찾을 필요 없지 않아?”

리들의 말에 책장을 넘기려던 리브의 손이 멈칫했다. 소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아마 오늘 안에… 전부 볼 수 있을거에요.”

“흐음, 하긴 파킨슨이 거짓말을 한 걸수도 있으니까”

리브의 고운 얼굴에 자리잡은 푸른 벽안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머글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랑의 도피를 한거라고,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모른척 해왔을 뿐이다. 애써 그 추측을 털어버렸다. 분명 명단에 있을거야… 하지만 남아있는 책이 줄어가면서 불안감은 더욱 더 증폭되기 시작했다.

라이트 가문은 유서깊은 순수혈통 집안이지만 극단적인 순혈주의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순수혈통이 아니더라도, 혼혈이라도 된다면 사랑하는 딸의 의견을 결국에는 수용했으리라. 아버지가 머글이라고 하찮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가 버림받은게 고작 마녀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마녀임을 포기하고 머글로 살아가고자 택한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증오스러워져서, 그 증오를 멈출 수가 없어서. 훗날 부모님의 비극을 알고 리들 가족을 몰살시키게 될 톰 리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아니, 나는 그와 달라. 아니야, 아니야. 그건 패륜이야. 이해하다니, 안돼. 그건 안돼. 리브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어요.”

리들이 명단에서 시선을 떼고 리브를 응시했다. 웬일인지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리들 역시 이제 아버지가 머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믿을 수없다. 그럴리 없다. 어머니가 마녀였다면 그렇게 초라하게 죽을 리가 없다. 나 역시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브릴리언트를 이해한다. 하지만 리들은 알고 있었다. 리브의 아버지가 머글이라는 것을… 블랙이 말해주었지. 사실 리들은 이같은 사실을 리브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는 머글이라고, 아무리 찾아도 없을거라고, 그렇게 평소처럼 조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명단을 읽고있는 소녀의 고운 얼굴은 평소처럼 평온하고 잔잔했다. 어제의 거친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순한 얼굴이었다. 소녀의 사파이어 눈동자는 항상 따스함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따스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눈으로 악을 쓰며 파킨슨을 몰아붙였다. 리들은 그걸 리브의 본색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척 하지만 너도 결국 나랑 똑같구나. 하지만 그 생각은 수정되었다. 불안감이 아닐까하고, 아마 자신이 줄어가는 명단을 보면서 했던 생각을, 그 불안감을, 브릴리언트도 똑같이 갖고 있었으리라.

마지막 책장을 넘긴 리들은 책을 꽂고 또 다른 책을 꺼내려다가, 문득 명단을 전부 다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은 것은… 지금 브릴리언트가 보고 있는 책 하나 뿐이다. 리브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리들도 불안해졌다. 저기 없으면… 리들은 이를 부득 갈았다.

“없어?”

“……”

“빨리 대답 안해?”

“…아직…까지는요.”

리들은 휘적휘적 걸어가 리브의 왼 편에 앉았다. 리들과 처음으로 딱 붙어 앉게된 리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책장을 넘기려던 소녀의 손이 멈췄다. “빨리 책장 넘겨.” “아…” 답답한지 리들은 리브의 손을 쳐내고 자신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내가 왼 쪽 페이지를 볼테니, 넌 오른쪽 페이지를 봐. 오늘 안에 이거 다 볼거야.”

리들은 어지간히 급한 모양인지 이번에는 리브에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페이지를 훑을 뿐이었다. 리들이 손을 뻗어 책장을 넘기려하자 리브가 막아세웠다. “아직 다 못읽었어요.” “속독 안돼?” 리들이 쏘아붙이자 리브가 얼굴을 찡그렸다. 네가 너무 빨리 읽는거야! 속으로 투덜대던 리브는 리들이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톰 리들 1세의 이름을 절대 보지 못할 것이다. 순간 그가 가여워졌다. 하지만 왜 나한테 화풀이야? 그래, 이해하자. 불안한거야 그는.

리브는 속도를 내서 명단을 훑기 시작했다. 내가 더 빨리 읽어서 책장을 넘겨주마. 리들은 유독 기다리지를 못했다. 리브에게 책장을 넘기는 역할을 맡기면 되는데 그 틈을 못 기다리고 자신이 넘기려고 한다. 그렇게 책장은 빠른 속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빨리 읽은 리브가 어디 어디 보라는 듯이 책장을 넘기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리들이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책장을 넘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리들의 커다란 손이 소녀의 작은 손과 겹쳐졌다. 리브의 손등 위로 청년의 온기가 전해졌다. 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리브는 문득 저번에 자신의 뺨을 위협적으로 어루만졌던 청년의 손이 떠올랐다. 청년의 손은 의외로 온기를 갖고 있었다. 따뜻했다. 뱀처럼 차가울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의외였다.

“리들 선배님, 저… 손 좀…”

“아…”

리들은 소녀의 손등 위에 얹혀진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둘의 손은 부딪히거나 겹쳐졌다. 리들은 나기니의 말이 떠올랐다. 손길이 부드러울 것 같아서 언젠가 자신을 만져주면 좋겠다고 했지. 나기니는 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었다. 브릴리언트의 손은 제법 부드러웠다. 하지만 의외로 손이 따스하지 않았다. 나기니만큼 차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온기가 없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겹쳐지면 그 다음 장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시 손이 포개어졌다. 이번에는 둘의 눈이 마주쳤다. 청년의 흑안과 소녀의 벽안에 서로의 모습이 담겼다. 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리브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리들은 도저히 리브의 벽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브 역시. 그렇게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려고 하는 그들의 정신을 흔들어놓은 것은 덤블도어 교수의 목소리였다.

“리브, 여기 있었구나, 핀스 부인이 말해주었단다. 오, 톰과 함께 있었구나.”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시선 역시. 리들이 흑안을 깜박였다. 덤블도어 교수는 둘의 모습을 보며 아주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리브, 어제의 일로 나와 면담을 마저 해야겠구나.”

“…메리쏘우트 교수님이 아니고요?”

덤블도어는 그리핀도르 사감이었고 리브는 래번클로 학생이었다. 리브는 면담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기숙사 사감인 메리쏘우트 교수와 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메리쏘우트 교수님은 급한 일이 생겨서 며칠동안 호그와트를 비우실 예정이란다. 하지만 너에 대한 일도 급해서 말이다.”

“아…”

“톰, 내가 리브를 데려가도 되겠니?”

“…물론입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그대로 서고를 나갔고 리들이 리브에게 말했다.

“어서 가보도록 해, 이건 내가 마저 보도록 하지.”

“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리브는 순간 리들이 어제의 사건에 대해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천박하게 머글식 폭력을 썼다고 자신을 조롱하거나, 자신과 친분을 갖고 있는 파킨슨에게 상해를 입혔다며 한 소리 할 거라 예상했던 리브는 의외의 기분을 또 느껴야만 했다. 인사를 하고 뒤돌아선 리브에게 리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제, 재미있었어.”

리브가 걸음을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재미있었다고? 누군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하여간 악취미야. 그럼 그렇지,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만 넌 참았어야 했어. 그리고 지팡이는 폼으로 달고 다녀?”

리브가 리들을 노려보았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하지만 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픽 웃으며 얄밉게 입을 놀렸다.

“왜, 내 머리채도 잡으려고?”

리브는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멀린이시여, 저 볼드모트 머리채 잡고 지옥 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리들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에 리브는 머릿 속이 순간 멍해졌다.

“아마 별 일 없을거야. 덤블도어는 너를 총애하니까… 그리고 교수들 역시”

톰 리들은 입 발린 소리를 잘한다. 가식적이다. 그가 하는 말들은 진심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나에 한해서는 본모습을 드러내고 가면을 벗는다. 이것도… 가식일까? 답은 금방 나왔다.

“넌 평소에 이미지가 좋았으니까 아마 쉽게 넘어갈거야. 퇴학 걱정 같은건 안해도 돼.”

“……”

“네 표정이 꼭 사형 선고 기다리는 사람 같아서 말이야… 안 가?”

리브는 처음으로 그 날, 리들에게 얼굴 가득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리들이 흑안을 두어번 깜박였다. 리들은 자신이 왜 리브에게 그런 말을 해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학생이라면 이미지 관리 상 가식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지만 리들은 리브에게는 굳이 본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고로 이건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소녀의 골드 블론드를 응시하던 청년은 다시 명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책장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 래번클로 학생들이 옹호하는 모습은 리브가 평소에 어떤 아이인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에요. 물론 래번클로의 자기 기숙사생을 감싸는 성향도 첨가되었지만요.

* 손이 따뜻한 리들과 손이 차가운 리브ㅎㅎ

리리플을 원하시면 @를 붙여주세요^^ 항상 작품 설정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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