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멘토링-14화 (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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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본색

1941년 10월, 호그와트의 교감이자 그리핀도르 기숙사 사감인 알버스 덤블도어의 제안에 의해 호그와트에 최초로 도입된 ‘멘토링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9월, 약 한 달동안 교수들은 반장들과 두 학생회장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효율적일 멘토와 멘티, 즉 파트너를 짝지었다. 호그와트 학생들 간의 화합을 위해 파트너는 각기 다른 기숙사 학생으로 이루어졌다. 학기가 시작되고 첫 주동안 학생들이 각자의 기숙사 사감에게 제출한 희망하는 파트너 목록이 ‘참고’되었다. 호그와트 측에서는 최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애썼지만 100% 만족하는 결과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리브는 100% 불만족한 학생이었다.

“교수님, 멘토링 프로그램에 필요해서 그러는데 성적표를 뗄 수 있을까요?”

리들은 리브에게 성적표를 전부 가져오라고 했다. 불행히도 부엉이가 방학 때 전해줬던 성적표는 고아원의 방 안에 있었다. 그래서 리브는 1학년 때와 2학년 때의 성적표 전부를 래번클로 기숙사 사감인 메리쏘우트 교수에게 받아갔다. 성적표에는 교수님들의 소견과 각 과목의 점수가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리브 이외에도 성적표를 떼가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멘토들에게 어떻게 멘티와 멘토링을 진행해야할지 참고하라는 매뉴얼 책자가 전해졌고 리브의 룸메이트인 유진 리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리핀도르 1학년 학생을 멘티로 삼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받은 메뉴얼을 살펴 보았는데 계획서를 제출하고 나중에는 결과물도 제출해야만 했다. 이거 그냥 대충 시간만 떼우기는 힘들거 같은데… 그리고 그 안에는 멘티의 성적을 보고 학습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들도 적혀있었다. 나름 체계적이다. 호그와트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니 대충할리는 없겠지.

*

대연회장은 파트너 대면식을 위해 기숙사 테이블 대신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자그마한 책상들이 깔려있었다. 걱정과 불안감으로 밤늦게 겨우 잠을 이룬 리브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헐레벌떡 대연회장으로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얼른 앉아.”

리들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고 리브는 긴장된 얼굴로 청년과 마주보고 앉았다. 그런 소녀를 여학생들이 부러움 혹은 질투가 가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매년 수석을 맡아온 우등생에 출중한 외모를 가진 리브를 그 톰 리들이 지목할 만하다고 납득하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리브를 파트너로 지목했던 남학생들은 톰 리들이라면 어쩔수 없다며 체념하고 있었다. 리브 역시 뛰어난 외모와 따스한 성품으로 알게 모르게 인기가 많은 여학생으로 이번에 많은 학생들에게 지목을 받은 학생들 중 하나였다.

리들은 책상 위에 올려진 새까만 노트를 펼치더니 사각사각 글씨를 적는다. 리들의 수려한 필체가 새하얀 종이를 수놓았다. [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 리브는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다시는 지각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리브는 말없이 성적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리들도 양피지 꾸러미를 올려놓았는데 리브가 이게 뭐냐는 듯이 쳐다보자 그게 입을 열었다.

“내 성적표야. 내가 브릴리언트 네 성적표만 본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아서… 부담갖지 말고 마음껏 봐.”

네가 언제부터 그런걸 따졌다고. 속마음과 다르게 리브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들이 흑안을 가늘게 뜨며 또다시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대답]

리브의 입술에서 “네, 리들 선배님”이라는 대답이 새어나왔다. 소녀는 리들이 올려놓은 양피지 꾸러미를 가져가 펼쳐보았다.

[호그와트 슬리데린 1학년 톰 마볼로 리들(Tom Marvolo Riddle) 1926년 12월 31일 생 / 마법 ………………… O(특출함) / 마법약 ………………… O(특출함) / 마법의 역사 ………………… O(특출함) / 변신술 ………………… O(특출함) / 약초학 ………………… O(특출함) / 어둠의 마법 방어술 ………………… O(특출함) / 천문학 ………………… O(특출함)]

1학년 성적표를 찬찬히 보던 리브는 교수님들의 소견이 전부 찬사 뿐이라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석 학생인 자신이라도 이 정도까지의 찬사는 아니였다. 심지어 덤블도어 교수님까지도 그의 변신술 실력에 좋은 평만을 가득 써놓았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보니 더욱 놀랍다. 1학년 성적이 전부 특출함, 2학년도 전부 특출함, 그리고 그의 선택과목은 고대문자와 산술점이었다. 뭐야, 나랑 똑같잖아? 어디보자, 3학년 성적도 전부 특출함… 단 한 과목도 빼놓지 않고 전부 특출함이다. 거기다가 교수들의 소견은 전부 칭찬과 감탄 뿐이다. 까놓고 말해서 거의 찬양 수준이다. 이게 사람이야? 선배들이 괴물이라고 혀를 내두를만 하다.

리브는 리들이 왜 자신에게 성적표를 보여줬는지 눈치챘다. 기선제압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전 과목에서 특출함을 받는 이런 엄청난 성적을 자신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기를 죽이려는 모양이지. 아니면 선배로서 위엄을 세우려는 걸지도. 그래 너 완전 엘리트다. 리브는 그렇게 속으로 그의 교활함에 불평하면서도 리들이 엄청난 천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확실히 뛰어나다. 그것도 매우- 소녀는 청년의 경이로운 성적표에 혀를 내두르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소녀의 푸른 벽안이 살짝 커졌다.

[톰 마볼로 리들(Tom Marvolo Riddle) 1926년 12월 31일 생]

톰 리들, 그와 나의 생일이 똑같았다. 나 역시 12월 31일 생이었다. 리브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리들의 잘생긴 얼굴을 응시했다. 나와 생일이 같다니…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리브는 리들과 자신의 공통점이 발견되자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와 나는 비슷한 부모님을 두었다. 그런데 이제 생일도 같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와 다르다. 나는 그와 달라.

청년의 흑안은 소녀의 성적표를 찬찬히 훑고 있었다. 블랙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수석 학생의 성적표는 꽤 훌륭했다. 1학년부터 줄곧 전 과목 필기 만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담겨 있었다. 물론 한 과목에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지만

[호그와트 래번클로 1학년 올리비아 지니아 브릴리언트(Olivia Zinnia Brilliant) 1927년 12월 31일 생 / 마법 ………………… O(특출함) / 마법약 ………………… A(무난함) / 마법의 역사 ………………… O(특출함) / 변신술 ………………… O(특출함) / 약초학 ………………… E(기대이상) / 어둠의 마법 방어술 ………………… O(특출함) / 천문학 ………………… O(특출함)]

[호그와트 래번클로 2학년 올리비아 지니아 브릴리언트(Olivia Zinnia Brilliant) 1927년 12월 31일 생 / 마법 ………………… O(특출함) / 마법약 ………………… A(무난함) / 마법의 역사 ………………… O(특출함) / 변신술 ………………… O(특출함) / 약초학 ………………… O(특출함) / 어둠의 마법 방어술 ………………… O(특출함) / 천문학 ………………… E(기대이상)]

“전 과목 필기 만점이라… 그런데 1학년 때 약초학 성적은 E(기대이상)이네?”

리들의 시선은 여전히 양피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리브의 1학년 때 약초학 서적은 E로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리브는 2학년이 되어서는 약초학에서 특출함을 받아냈다. 리들의 얼굴을 응시하던 리브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맨드레이크에 다치는 바람에…”

리들은 맨드레이크에 대한 주의사항을 줄줄줄 내뱉는다. 그리고 이어서 또 묻는다.

“2학년 때, 천문학 성적은 왜 이래?”

특출함 다음 등급인 ‘기대 이상’을 왜 이러냐고 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 거다. 리브가 그렇게 생각하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게…”

“전 과목 필기 만점이면 천체 측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건데, 그렇지 않니?”

리브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을 꺼내려고 하지 않자 리들의 싸늘한 흑안이 어김없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는 또다시 깃펜을 들어 노트에 수려한 필체를 수놓았다. [대답 안하지?]  리브가 울상을 짓자 다시 깃펜을 든다. [표정 펴. 보는 눈이 많아.] 리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관리를 했다.

“말 안 해줄거야?”

리들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그를 훔쳐보고 있는 여학생들은 황홀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리브는 죽을 맛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싸늘하다. 리들은 대답 안하냐고 썼던 부분을 깃펜으로 톡톡 두드린다. 그리고 이어서 표정 피라는 부분도 다시 한 번.

“그게… 헷갈렸거든요.”

“그렇구나.”

리들의 상냥한 대답과는 다르게 흑안은 차갑게 빛난다. 청년은 다시 손을 놀려 노트에 수려한 필체를 수놓았다. [날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리브가 화들짝 놀라며 커진 벽안으로 청년을 응시했다. 소녀의 얼굴이 어두워지려고 하자 리들은 다시 한 번 표정 피라는 썼던 부분을 깃펜으로 톡톡 두드린다. 청년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다. 리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사실 전 날에 밤을 새는 바람에 잠을 거의 못잤는데… 별 관측 하다가 졸아버려서…”

리브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더듬더듬 말했다. 이런 쪽팔리는 얘기까지 꼭 들어야겠어? 정말 악취미야.

“저런, 시험 전 날에 밤샘공부는 좋지 않아. 몸에도 안 좋고…”

입으로는 걱정의 말을 내뱉지만 손은 조롱의 글을 써재낀다. [한심하네. 시험시간에 잠이 오나?] 리브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리들을 응시했다. 이 자식이- 리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여전히 눈빛은 싸늘하다. 그리고 또 다시 수려한 필체로 공책을 수놓는다.

[앞으로 나한테 거짓말 했다가는 가만 안둬. 이번에는 용서해줄게.]

리브가 눈을 치켜떴다. 네가 뭔데 날 용서하고 말고야! 멘토링이고 뭐곤 간에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다! 리브가 그렇게 속으로 이를 부득 가는데 슬러그혼 교수가 다가왔다. 리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노트를 한 장 넘겼다. 그리고 자신과 리브의 이름, ‘멘토링’, ‘마법의 약’을 술술 적는다.

“오, 그래. 톰이랑 리브는 앞으로 무엇을… 역시 마법의 약이로군 껄껄”

슬러그혼은 리들의 노트에 적힌 것을 대충 보더니 쓱 지나쳤다. 교수님, 한 장만 앞으로 넘겨보세요. 저 자식이 저한테 뭐라고 한 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하지만 리브의 마음 속 외침이 슬러그혼에게 들릴 리는 만무했다.

“마법의 약이 옥의 티네. 기초부터 차근차근 해보는건 어떨까?”

어김없이 이어지는 수려한 필체. [개판이네.] 개,개판… 뭐야?

“개판까지는…!”

욱해서 외친 리브는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주변에서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자신의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리들의 붉은 입술이 또다시 호선을 그렸다. 아, 저건 비웃음이다. 리브는 단 번에 미소에 담긴 의미를 읽어냈다.

[필기가 만점인데 마법의 약이 A라는 얘기는 기초가 개판이라는 거야.]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니 글에 리브는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네가 다 옳아요. 너 참 똑똑하시네요. 리브는 마법의 약 과목에서 유독 서툴렀다. 리브는 필기 점수로 근근히 성적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실 리브는 다른 과목의 점수가 출중한 데다가 필기 만점, 그리고 변신술에서 추가 점수까지 두둑하게 받고 들어가기 때문에 수석을 줄곧 지키고 있었다. 작년에는 오리온이 리브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블랙에게 수석자리를 뺏길지도.

리들은 팔랑팔랑 리브의 성적표를 흔들며 계속해서 무어라 말했다. 입은 예쁜 말을 뱉지만 손으로 쓰여지는 말은 전혀 예쁘지 않다. 수려한 필체가 아까울 정도로. 리들은 지금 이 상황이 꽤 재미있었다. 브릴리언트의 얼굴을 보니 전부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표정이다. 소녀의 반응을 보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리들은 다시 한번 양피지를 훑었다. [호그와트 래번클로 2학년 올리비아 지니아 브릴리언트(Olivia Zinnia Brilliant) 1927년 12월 31일 생] 계속 걸리던 것은 이거였나.

[1927년 12월 31일생]

브릴리언트와 나의 생일이 같았다. 리들이 흑안을 깜박이며 소녀의 고운 얼굴을 응시했다. 같은 고아 출신, 같은 파셀마우스, 같은 수석이라는 성적… 이제 생일까지 같다. 리들은 깃펜을 얄밉게 놀리면서도 여전히 소녀에게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역시 눈이 간다. 눈에 밟힌다. 저 반반한 얼굴 때문일까. 네가 나와 닮았기 때문일까. 리들은 또다시 궁금해졌다.

*

교수들은 지나가면서 학생들이 파트너와 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가령 그리핀도르의 샤를루스 포터같은 학생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는데 후플푸프 사감인 허버트 비어리(Herbert Beery) 교수가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포터, 파트너와 수다떠는 시간이 아니다!”

“에이 대면식인데 좀 봐주세요.”

“포터!”

에밀리는 아브락사스와 또 말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흉흉했다.

“야, 내가 성적표 갖고 오라는 말 못들었냐?”

“너야말로 내가 안갖고 간다는 말은 못들었나보지?”

“선배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갖고 오라면 가져와!”

“선배같은 소리하네! 선배로서 위엄을 보이던가! 내꺼 보려면 네 것도 가져와!”

둘은 옆에서 멘토링 계획서를 작성하는 에드가 맥밀란과 오리온 블랙이 시끄럽다고 한 소리 할 정도로 싸워대고 있었다.

“오늘 늦게온 주제에 말도 많아! 맥밀란, 너 늦잠잤지?”

“원래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 몰라?”

“집요정이 요리 망치는 소리하네!”

“우리 집요정은 가끔 태워먹던데 말포이 너희 집은 안그래?”

“한 번도 못봤는데? 어려서 그런거 아니야?”

호그와트의 여학생회장인 세실리아 클리어워터는 이미 사전에 입을 맞춰놨던 슬리데린 6학년 여학생과 대충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결과물 제출은 나중에 만나서 대충하자고, 그래도 뭐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봐.” “알겠어, 그럼 나 마법 과목 좀 알려줘. N.E.W.T.수업이라 만만치가 않아.”)

그리고 지금 리브는 열불이 나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리들이 마법의 약과 관련해서 계속해서 속을 긁는 것이었다. 그는 리브에게 몇 가지 이론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소녀가 막힘없이 대답하자 제조 쪽으로 이야기를 틀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악평, 물론 리들은 직접 말하지 않고 노트에 적는 것으로 대신했다. 참다못한 리브는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진 리들의 깃펜을 확 낚아채더니 휘갈겼다. [제가 마법약 만드는 거 보셨어요? 개판이니, 기초가 부족하니 그ㄱ…] 리들은 리브의 손목을 잡아 움직임을 봉쇄하더니 자신의 깃펜을 쏙 빼냈다. 그리고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다시 손을 놀린다. [네꺼 써.] 이 치사한 자식…

리브는 가방을 뒤져 자신의 깃펜을 꺼냈다. 그런데 리들은 리브가 깃펜을 놀리기도 전에 노트를 탁 덮어버렸다. 그리고 약올리듯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슬러그혼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마법약 교실을 빌릴게. 그 때 제조를 해보자.”

약오르다. 약올라 미치겠다! 깃펜을 꽉 쥔 리브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리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리들이 방금 한 말의 의미—어디 한 번 만들어 보라는 거겠지—를 파악한 리브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리들의 흑안이 가늘어지며 입모양으로 ‘대답’이라는 말을 만들어낸다. 리브는 “네, 리들 선배님”이라고 대답했다. 리들은 다시 노트를 펼치더니 깃펜으로 사각사각 무언가를 적었다.

[내일, 도서관,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얼마 안 남았어.]

아, 졸업생 명단 뒤지는 일을 말하는 거구나. 리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들은 나중에 보자고 상냥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아, 멘토링 계획서는 내가 제출할게. 사본을 보낼 테니까 참고하고- 그럼 안녕”

리들이 자리를 떠나고 리브는 가방을 챙겨들었다. 에밀리와 말포이 쪽을 보니 여전히 옥신각신하고 있다. 아직 끝나려면 한참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그동안 책이나 읽어야겠다. 리브는 덤블도어 교수가 지난 학기에 추천해주었던 애니마구스에 관한 책을 꺼냈다. 책장을 넘기는 리브의 앞에 여학생이 다가왔다. 넥타이를 보니 초록색과 은색, 슬리데린이다. 그리고 얼굴을 보니… 낯익은 느낌에 갸우뚱하던 리브는 그 때 리들이 ‘파킨슨’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너, 당장 리들의 옆에 있는다고 너무 기고만장하지는 마.”

“……”

“리들이 네 반반한 얼굴에 조금 흥미를 가진 모양인데…”

정말이지 귀찮다. 이건 또 뭔데 시비야. 그 놈의 톰 리들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리브는 분명히 자신의 뜻을 밝히고자 했다.

“저는 리들 선배님한테 조금의 관심도 없으니 걱정안하셔도 돼요. 그리고 리들 선배님도 더 이상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셨던거 같은데…”

“너 지금 리들의 총애를 업고 나를 협박하는 거야?”

파킨슨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리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여학생은 질투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안보이는 모양이었다. 리브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교수님들이 안계신다. 그래서 얘가 나한테 와서 행패를 부리는거구나.

“말귀를 참 못 알아들으시네요. 전 리들 선배님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그러니까-”

“건방지게- 야, 너 따라나와!”

리브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굳이 따라나갈 필요까지는 없을거 같은데요. 전 더 이상 할 얘기 없어요.”

“난 네 선배야, 건방진 계집애!”

“선배가 선배다워야죠. 그리고 전 충분히 선배 대접 해드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존대말 써주지, 이 빌어먹을 계집애야. 리브는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화사하게 말했다. 리브가 따복따복 말대답을 하자 파킨슨은 점점 열이 받는 듯 했다. 저번에 자신의 지팡이를 날려버린 것부터, 리들이 와서 막아준 거까지 전부 맘에 안든다. 저 반반한 얼굴도. 파킨슨이 손을 치켜드는 순간 리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손목을 잡아챘다. 리브의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학생들의 시선이 하나 둘 향하기 시작했다.

“악! 너 이거 안놔?”

“파킨슨 선배는 순수혈통이시죠?”

파킨슨은 갑자기 리브가 순수혈통을 운운하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물론 여전히 리브를 노려보고 있는 상태였다.

“고상하셔서 머글식 폭력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실 것 같았는데… 방금 저 때리시려고 한거맞죠?”

리브의 말에 파킨슨의 얼굴이 붉어졌다. 마법사들은 결투를 해도 마법을 난사하지 머글식 폭력을 쓰지 않는다. 특히 교양을 따져대는 고상한 순수혈통들에게 이는 수치스러운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사교계에서 일어났다면 파킨슨의 행동은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았으리라. 리브는 지금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파킨슨을 보는 리브의 벽안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이거 놔!”

파킨슨의 외침과 동시에 리브가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민망함에 얼굴을 더욱 붉혔다. 리브는 얼굴에 비웃음을 띠며 그녀를 지긋이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에밀리에게 가서 먼저 가보겠다고 말해야겠다. 여전히 아브락사스와 입씨름을 벌이는 에밀리에게로 향하는 리브는 파킨슨의 저주에 가득찬 외침을 가뿐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리브는 이내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네 어미가 동족의 배신자였다는 건 알고있니?”

그 순간 리브의 몸이 멈췄다. 소녀는 스르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파킨슨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던 리브가 반응을 보이자 원하는 상황이 온 듯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이제 주변의 학생들은 두 여학생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부 파킨슨의 외침을 들었다. ‘동족의 배신자’ 저 편에서 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오리온이 은회안을 깜박였다.

“지니아 라이트(Zinnia Wright), 네 어미에 대해서라면 내가 좀 알아. 라이트 가문의 직계 외동딸. 현 블랙가의 가주의 막내 동생인 ‘레귤러스 블랙(Regulus Black)’의 약혼녀. 그녀는 순수혈통 사이에서 유명했어.”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어머니는 약혼자가 있었다. 그것도 블랙가의 직계 막내 아들. 자신의 어머니는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뭐해, 동족의 배신자인걸. 아마 라이트 가문에서 제명됐을걸? 물론 그 라이트 가문도 네 어미가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 대가 끊기는 바람에 끝장나버렸지만”

리브의 푸른 벽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리브의 굳어있는 얼굴을 통해 소녀가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챈 파킨슨의 얼굴에 비웃음이 맺혔다.

“더럽고 천박한 동족의 배신자. 역시 그 어미에 그 딸이구나.”

파킨슨이 리브의 어머니, 지니아 라이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지니아 라이트’에 대해 물어보니 그들은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그녀는 순수혈통 어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마녀였다. 조부모님 세대들은 그녀를 몹시 아꼈고, 부모님 세대들은 그녀를 몹시 좋아했다. 모두에게 사랑받은 아름답고 뛰어난 마녀. 하지만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자를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해서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마녀. 그녀가 동족의 배신자인 이유는 간단했다.

“말 함부로 하지마세요!!”

파킨슨의 폭로를 듣던 리브가 부들부들 떨다가 빽 소리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약혼자를 버리고 머글 남자랑 사랑의 도피를 했는데 그게 동족의 배신자이지 뭐야? 순수혈통의 수치야.”

파킨슨의 날카로운 외침에 리브의 벽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뭐? 머글 남자…? 리브의 벽안이 커짐과 동시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몇 권 남지 않은 졸업생들의 명단. 그와 함께 점차 커져가는 리브의 불안감. 혹시 내 아버지도 톰 리들 1세처럼 머글이 아닐까. 역시 그런걸까. 자신의 어머니는 머글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일까. 그럼… 그 남자도 자신의 어머니가 마녀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매몰차게 버린걸까… 파킨슨의 폭로로 리브는 정신이 멍해졌다. 파킨슨은 계속해서 지니아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소녀의 입술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입, 다물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거야.”

“내가 뭐 틀린 말했어? 내가 아는 건 이게 다가 아니야. 전부 말해줄게.”

“난 분명 닥치라고 했어-”

파킨슨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순수혈통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으로 모자라서 순수혈통의 피를 더럽혔지. 그런데 너 부모님 돌아가셨다고 했지? 결국 둘 다 사이좋게 끝장이 난 모양이구나. 더러워 정말. 역시 그 어미에 그 딸 아니랄까봐 남자 홀리는건 똑같-”

파킨슨은 말을 전부 이어갈 수 없었다. 파킨슨의 폭언을 듣던 리브가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던 것이다. 파킨슨의 긴 머리칼이 소녀의 손에 우악스럽게 붙잡혔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파킨슨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너- 뭐라고 했어 지금?”

내 어머니가 더럽다고? 동족의 배신자라고? 모두에게 사랑받은 아름답고 뛰어난 마녀. 리브는 목을 맨 어머니를 나약하다고, 왜 나를 버렸냐고 몹시 원망했지만 동시에 자랑스러운 마음도 갖고 있었다. 교수들이 그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리브는 도저히 어머니를 사랑에 목맨 나약한 마녀로만 단정지을 수가 없었다. 사랑이 소중해 그런 선택을 했을지 몰라도 그래도 어머니는 훌륭한 마녀였다. 교수들이 리브를 보며 그녀를 추억할 만큼. 그래서 리브는 아버지마냥 어머니를 증오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정말 미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타깝고 연민의 감정이 들 뿐이었다. 리브는 어머니를 미워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그녀를 가엾이 여기는 것을 택했다. 자신을 버리고 죽음을 택한 어머니를 용서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국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이딴 계집애한테 모욕당했다. 리브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 한 번 더 말해봐! 뭐라고?”

“이,이거 안놔?”

“너 머글식 폭력이 뭔지 잘 모르지? 오늘 한 번 경험해봐. 너 잘 걸렸어.”

파킨슨은 비명을 지르며 소녀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괴력을 발휘하는 리브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리브의 흉흉한 기세에 슬리데린 여학생도,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겁먹은 얼굴로 지켜볼 뿐이었다. 리브는 악을 쓰며 파킨슨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발길질을 하는 등 머글식 폭력이 무엇인지 똑똑히 그녀에게 몸소 가르쳐주고 있었다.

“계속 또 지껄여봐!!! 뭐? 더럽다고? 사이좋게 끝장났다고? 오늘 네가 내 손에 끝장날 줄 알아!!”

“미,미,미안해! 그,그만해!”

“뭘 그만해? 닥쳐!”

“제,제발… 그만-”

“뚫린 입이라고- 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어디 계속 지껄여봐!!! 지껄여 보라고!!!!”

리브는 악을 쓰며 그녀를 쥐흔들었고 파킨슨은 꺅꺅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리브는 마치 파킨슨의 머리를 전부 쥐어뜯기로 마음먹은 사람같았다. 고개가 푹 수그려진채 리브에게 머리채를 잡힌 파킨슨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고, 리브가 딱 그 짝이었다.

많은 학생들은 평소 순하고 착한 리브가 이성을 잃은 모습에 경악했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에밀리와 아브락사스 역시 이미 한참 전에 말싸움을 멈추고 사이좋게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래번클로와 슬리데린 3학년 학생들은 마법의 약 수업 전에 살벌한 얼굴로 칼을 북북 갈던 리브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려야 하는거 아니야? 저런 리브를 어떻게 말려? 내가 대신 머리 다 뜯길거 같은데. 나 무서워. 그렇게 학생들은 차마 말릴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리들도 오리온과의 대화를 멈추고 어리벙벙한 얼굴로 이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애들이 시비걸어도 가만히 인형처럼 있던 애가…  리들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저게 리브의 본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리들은 허한 웃음을 지어버렸다. 진짜… 보통이 아니네.

둘을 떼어낸 것은 덤블도어 교수와 메리쏘우트 교수였다. 방금 연회장에 들어온 두 교수는 두 여학생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ㅡ정확히는 한 여학생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ㅡ 모습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확히는 그 중 한명이 모범생으로 소문난 리브라는 사실에. 사실 신나게 당하고 있는 한 명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가장 먼저 대처한 것은 덤블도어 교수였다. 그의 지팡이에서 빛이 쏘아지며 방어벽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어김없이 리브를 파킨슨에게서 떼어놓았다.

파킨슨은 이제 주저앉아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리브는 자신의 앞에 가로막힌 방어벽을 손으로 두드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분이 안풀린 모양이었다. 리브의 손에는 파킨슨의 머리칼이 한 웅큼 쥐어져있었는데 소녀는 그것을 탁탁 털어냈다. 그리고 품에서 장미목 지팡이를 꺼내들어 이제 마법의 장벽을 해제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 모습에 학생들이 또다시 경악했다. 하지만 이내 지팡이가 휙 날아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혔다.

“누구야! 누가 내 지팡이를-”

그렇게 빽 소리치던 리브는 심각한 얼굴의 덤블도어 교수와 마주했다. 소녀의 지팡이는 덤블도어의 손에 있었다. 파킨슨은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상태로 엉엉 울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연회장에 파킨슨의 울음소리만 크게 울려퍼졌다. 리브에게 머리채를 잡힌 것으로 모자라 발길질까지 당한 탓인지 그녀의 다리에서는 상처가 가득했다.

“갈라트, 파킨슨 양을 병동으로 데려가주세요.”

리브는 여전히 흉흉한 얼굴로 파킨슨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게 뭘 잘했다고 울어. 울기는- 파킨슨은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겁을 잔뜩 먹었는지 메리쏘우트 교수에게 딱 달라붙어서 연회장을 빠져 나갔다. 덤블도어 교수는 지긋이 리브를 응시하고 있었다. 덤블도어의 하늘색 눈동자와 마주하고 나서야 리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점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덤블도어 교수가 입을 열었다.

“넌 따라오거라.”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 리들.. 리브 약올리는 솜씨 좀 보소.. 너 그러다 머리채 뜯긴다.

* 리브 폭ㅋ발ㅋ 그레이트빅엿 제대로 먹은 파킨슨

이래도 리브가 호구로 보이세요?ㅎㅎ

리리플을 원하시는 분은 앞에 @를 붙여주세요^^ 리리플은 항상 작품설정에 올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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