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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Chapter 1. 고아원의 트러블 메이커와 벙어리 소녀
래번클로 학생들은 마이페이스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학생들도 꽤 보였는데 ‘자스민 러브굿’도 그 중 하나였다. 항상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스민은 요란한 꽃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여학생이었다. 그 꽃이 뭐냐고 물어본 유진에게 자스민은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해바라기라고 대답해주었다. 아, 해바라기구나. 노란색의 왕방울만한 꽃을 보며 유진은 쉽게 수긍했다. 그리고 자스민은 꽃을 좋아하는지 항상 꽃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었다. 꽃말을 물어보면 그녀는 무엇이든 척척 대답해주곤 했다. 그리고 특히 약초학 시간에 두각을 드러냈다. 교수가 물음을 던지면 척척 대답하곤 했던 것이다.
또한 래번클로 학생들은 독립적이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타 기숙사생들에 비해 홀로 다니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다른 기숙사와는 달리 평범함에서 벗어난 학생들을 배척하기보다는 그들의 개성을 기꺼이 인정했다. 또한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자신의 기숙사 학생을 손가락질하면 천재는 다른 평범한 학생들보다 한 발 앞선 법이라며 두둔해주곤 했다.
“우리 기숙사는 개성을 존중해. 그래서 래번클로에는 훌륭한 발명가나 개혁가가 많았지! 플루 가루의 발명가 '이그나티아 와일드스미스'와 사랑의 묘약의 발명가 '라번 데 몽모랑시'가 바로 우리 래번클로 출신이야.”
올리비아는 이런 래번클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남과 다른 것을 개성으로 인정해준다. 독립적이고 학구열 넘치고… 래번클로는 잘난 척이 심할거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올리비아가 볼 때 그건 프라이드이자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몇 몇 학생들의 과한 잘난척은 래번클로 안에서만큼은 오래가지 못했다. 래번클로에는 똑똑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타 기숙사에서라면 비범할지 몰라도 래번클로 안에서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 년 그랬듯이, 래번클로의 신입생들은 독수리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답을 맞추지 못한 신입생들이 선배들을 기다리는 일은 학기 초 내내 반복되리라. 하지만 간혹 선배들도 퀴즈를 못 맞춰서 낭패를 보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독수리는 인내심있게 학생들이 생각하고 답하기를 기다려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신경질을 내곤 했다.(“빨리 답을 말해! 기다리느라 목 빠지겠어.”)
그래서 신입생들은 한 번 기숙사에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매 년 이맘때에 그랬듯이, 래번클로의 신입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기숙사로 들어가곤 했다. 아무래도 고민하는 머릿수가 많아지면 답을 찾는데 시간이 꽤 빨리 걸릴거라고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결과였다. 마이페이스에 독립적인 성향의 래번클로 학생들은 와해되기 쉬웠으나 이러한 신입생 시절을 거치며 동급생간의 끈끈한 친분을 형성했다. 선배들은 함께 독수리의 질문에 무어라 답할지 논하며 끈끈한 정을 쌓는거라며 웃었다.
하지만 기숙사에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야했고 휴게실에 있는 책만으로는 과제가 안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그들이 쭉 몰려다니는 것이 계속 이뤄질리 없었다. 그래서 슬슬 신입생들은 그리핀도르의 용기를 빌려와 독수리의 질문에 나홀로 도전했고… 수많은 빠꾸를 당했다. 그러면 그 불쌍한 학생은 문 앞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를 자신의 기숙사 학생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렇게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였기에 학생들은 기숙사를 나가기 전에 잊은게 없는지 가방을 여러 번 확인하는게 버릇이 되었다.
올리비아가 에밀리와 친구가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학기 초의 리브는 슬리데린 학생, 그 것도 톰 리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갔던 리브는 톰 리들을 발견하고 억소리를 내며 재빨리 기숙사로 돌아갔다. 맞아, 톰 리들은 책을 좋아했지. 고아원에서도 항상 책을 읽고 있었어. 리브는 꼭 필요할 때만 도서관을 가리라 다짐하고 일단 기숙사 휴게실에 있는 책부터 독파하기로 했다.
이 시기의 래번클로 휴게실에는 신입생들이 유독 많았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책에 목말라 있었지만 독수리(의 퀴즈)가 두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휴게실에 비치된 책장의 책부터 읽기로 했다. 선배들은 그 모습을 보며 꼭 자신들의 1학년 시절을 보는 것 같다며 웃었다.
아, 이야기가 샜다. 리브와 에밀리는 룸메이트라서 다른 동급생들에 비해 가까운 사이이기는 했지만 단짝이 된 것은 전부 독수리로 인한 것이었다. 독수리가 맺어준 우정이라고 칭하면 되겠다. 에밀리는 유독 독수리의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기숙사는 왜 암호제가 아닌거야! 저 빌어먹을 독수리!”
“에밀리?”
리브는 문 앞에서 투덜거리는 에밀리를 발견하고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에밀리는 몹시 반가워하며 리브에게 다가왔다.
“오, 리브! 널 만나서 다행이야, 꼼짝없이 못 들어가는 줄 알았어!”
리브는 문을 두드렸고 이윽고 독수리가 질문을 던졌다.
“오늘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뭐지?”
에밀리는 리브를 간절하게 응시했다. 리브는 에밀리에게 무어라 대답했냐고 물어봤고 에밀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대꾸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마법의 약이라고 했어, 난 바본가봐!”
아… 과목이름을 대는건 절대로 래번클로다운 대답이 아니였다. 리브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교수님들의 사랑.”
“오, 따뜻한 대답이로군!”
독수리는 그렇게 대꾸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에밀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리브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군가의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리브는 에밀리가 손을 잡자 어색함과 동시에 냉기를 느꼈다. 그 냉기는 에밀리의 차가운 손으로 인한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바깥에 서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 손이 좀 차지?”
“복도가 춥잖아. 얼른 들어가자.”
그 후로도 리브는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굴리는 에밀리를 여러 번 발견했고 어김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마주치는 횟수가 늘면서 같이 수업을 가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붙어다니게 되었다.
리브는 독수리의 퀴즈에 꽤 빠르게 적응하는 신입생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주 곤경에 처한 동급생들과 선배들을 구해주곤 했다.
“불사조와 불꽃 중 어느 것이 먼저지?”
오늘도 어김없이 독수리에게 빠꾸당한 학생들은 자신은 논리적으로 답했다고 주장했다. 에밀리는 또 단순하게 불사조는 불꽃에서 태어나니까 불꽃이라고 답했다가 불사조는 불을 뿜는다는 독수리에게 막혀버렸다. 비장한 표정으로 불사조가 먼저라고 줄줄줄 설명을 늘어놓은 한 남학생은 ‘궤변이로군.’이라고 답한 독수리에게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주변에서 뜯어 말려야만 했다. 리브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음… 원에는 시작이 없듯이 불사조와 불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설득력 있군.”
물론 그녀도 대답을 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어떤 날은 꼼짝없이 스무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만 했다. 신입생이 대부분이었고 더러 2, 3, 4학년도 끼어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수리를 욕하며 자신들을 구해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바랐다.(“누가 저 독수리 고리쇠 좀 파괴해줬으면 좋겠네!”) 그런 그들을 구해주는 건 반장 세실리아 클리어워터나 필리우스 플리트윅 같은 고학년생들이었다.
“사라진 물건들은 어디로 가지?”
오늘의 구세주는 필리우스였다. 그는 독수리의 질문에 확실히 까다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 리가 분한듯 소리쳤다. 무(無)라고 했는데 독수리가 못 알아듣고 내팽겨쳤어요! 그런 소녀에게 자스민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무(Mu)가 뭐야? 그제서야 유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한자를 독수리가 알아들을 리가 없지!
“비존재로, 다시 말해 만물로.”
“훌륭한 표현이로군!”
래번클로 신입생들은 달수가 지날수록 독수리의 퀴즈에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독수리는 같은 질문을 던진 적도 있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족보마냥 독수리의 질문과 그 모범답안(?)이 돌곤했다. 선배들은 친한 후배들에게 그 것들을 알려주곤 했고 학생들은 독수리가 어떤 답변을 통과시켜줬는지 적어두거나 머릿속에 꼭꼭 넣어두곤 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끼리 그 정보를 나누곤 했다. 래번클로 학생들에게는 시험 족보보다는 독수리 퀴즈 족보가 더 소중한 듯 했다.
“시험이야 교과서를 외우면 되지만 독수리 퀴즈는 답안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요령을 터득했는데 대충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소리만 해도 절반 이상은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 요령을 일찍 깨달은 학생들은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선배들 역시 몇 몇 철학관련 서적들을 추천해주곤 했다. 영리하고 눈치 빠른 리브는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지나서 도서관의 핀스 부인에게 대대로 래번클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리는 책 목록을 보여 달라고 했고 1순위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것들은 철학이나 미사여구가 가득한 책들이었다.
리브는 유독 독수리의 퀴즈에 어려움을 겪는 에밀리에게 자신이 읽는 책들을 권했고 그녀는 고마워하며 기꺼이 책 추천을 받아들었다. 에밀리는 독수리의 퀴즈에 빠꾸 당하고 ‘역시 난 래번클로가 아닌가봐, 모자는 나를 그냥 후플푸프에 넣었어야 했어.’라고 여러번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리브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응시하자 그녀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후플푸프거든, 오빠도 후플푸프인데 나만 래번클로야.”
그녀는 모자가 잠시 자신을 후플푸프에 넣을지 래번클로에 넣을지 고민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에밀리는 리브에게 모자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모자가 정말로 슬리데린과 고민했냐고 물어보았다. 리브는 대체 이 질문을 몇 번 받는 걸까 세어보며ㅡ모자걸이 신입생은 항상 주목의 대상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 모자걸이는 리브까지 세 번째지만.ㅡ 그렇다고 대답했다. 에밀리는 리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혹시 집안 어르신 중에 슬리데린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리브의 얼굴에 살짝 곤란한 표정이 떠오랐다.
“글쎄, 여쭤보적이 없어서… 기숙사는 가풍도 많이 따른다던데 아마 있을지도?”
리브는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출생을 생각하자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은 집나간 아버지와 자살한 어머니. 그래,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지. 리브는 기분이 몹시 가라앉은 것을 느꼈다.
*
그렇게 리브는 자연스레 에밀리와 단짝이 되었다. 순수혈통 가문의 차녀인 에밀리는 명랑하고 활발한 여학생이었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가득 묻어나서 리브는 그녀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에밀리는 순수혈통이었지만 거만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괜히 래번클로로 배정받은게 아닌지 둔하기는 해도 두뇌 자체는 범인보다 뛰어났고 책을 좋아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라는게 흠이었지만 말이다.
리브는 1학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학년 수석, 그리고 소녀는 특히 변신술 과목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였는데 덤블도어 교수는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모양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지니아도 너처럼 변신술이 뛰어났지!”)
“리브, 부엉이 보낼게. 꼭 답장해야 해!”
리브는 에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하겠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킹스크로스 역에서 여러 친구들과 헤어졌다. 호그와트에서의 1년은 꽤 즐거웠다. 수많은 책들과 흥미로운 수업들, 그리고 좋은 선배들과 친구들. 물론 톰 리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고생했지만… 다행히 거의 마주친 적도 없었고 그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 부탁을 들어주신 모양인지 그에게 나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언제까지 평생 숨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알지만 최대한 오랫동안 숨기고 싶었다. 나의 존재를.
코올 부인은 내가 낑낑대며 짐을 들고 오자 도와주면서 학교는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재미있었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내가 말수가 늘고 표정이 밝아졌다며 기뻐했다. 덕분에 학교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모양이었다.
“사실 덤버튼 씨가 특이한 분이셨잖니. 그래서 이상한 학교가 아닐까 걱정했단다.”
아, 역시 그 때의 옷차림이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고아원에서도 나의 눈물겨운 ‘톰 리들 피하기’는 계속되었다. 다행히 톰 리들은 식사 때 이외에는 방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그리고 리브는 그가 식사를 얼마 동안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교묘하게 그가 있는 시간대를 피했다. 그가 방으로 돌아가면 리브가 쪼르르 나와 식사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리브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리브는 톰 리들이 고아원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버릇을 갖고 있는 것에 몹시 감사했다.
그리고 8월이 끝나가는 지금,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주치면 단박에 자신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작년에 모자걸이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똑똑하고 예리한 그라면 자신을 단 번에 알아보리라. 절대 마주치면 안안돼. 학교에 돌아가는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같이 나가야지. 그런데 정말 내가 존재감이 없긴 없는 모양이었다. ‘그’ 톰 리들에게서 내 존재를 숨기다니… 하지만 그 성격에 자신과 같은 고아원 출신의 호그와트 학생이 있다는 걸 알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최대한 오랫동안 숨겨야 해.
리브가 알기로 톰 리들은 고아원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럼 고아원 사람인 자신도 싫어하리라, 특히 나는 트러블 메이커인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실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고아원과의 딴판인 그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물론 예상하기는 했지만 놀라운건 놀라운거다. 톰 리들은 호그와트에서 만큼은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었다. 잘생긴 얼굴에, 예의바르고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태도, 교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모범적인 수석학생. 자신이 그가 고아원에서 이러이러한 인물이었다고 말해도 믿어줄 인물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그의 이미지 세탁은 완벽했다.
그리고 나의 톰 리들 피하기도 완벽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변수를 잊고 있었다. 아아, 에밀리의 부엉이만 아니였어도! 그래, 그러고 보니 부엉이가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지금까지 숨긴게 용했다. 아, 내 불찰이다. 그 날 하필 톰 리들이 왜 정원에 있던 걸까! 왜! 나기니는! 하필 그날! 톰 리들에게 정원에 가고싶다고 한거야! 날씨도 더운데 방에 틀어박혀있을 것이지! 빌어먹을 뱀 새끼!
그 날은 매우 평범한 날이었다. 8월 초부터 에밀리는 정말로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갈색 부엉이 ‘골드’를 통해서. 오늘도 부엉이는 어김없이 날아 들어왔다. 부채질을 하며 마법의 역사 숙제를 하던 나는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가 골드를 발견했다. 나는 얼른 다가가 창문을 열어주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금갈색 털의 부엉이 ‘골드’는 단순한 편지 셔틀이 아니라 에밀리가 몹시 아끼는 애완동물이었다. 그녀는 부엉이 백화점에서 골드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며 부모님한테 졸라서 겨우 샀다고 했다.(오빠가 부엉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은 사주지 않으려고 하셨단다.)
“골드, 잘 지냈니?”
골드는 작게 울며 리브의 책상 위에 안착했다. 소녀는 부엉이가 갖고 온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에밀리의 안부와 일상생활이 가득 담겨있었다. 여전히 이 소녀는 명랑하고 기쁨이 넘친다. 깃펜을 들어 답장을 써내려가던 소녀는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골드를 보다가 박수를 짝 쳤다.
“잠깐만 기다려.”
그렇게 말한 소녀는 부엌으로 가 자그마한 그릇에 물을 담아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소녀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자신의 방 앞에 흑발의 소년이 서있었던 것이다! 토,톰 리들! 하지만 소녀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비단 소년 때문만은 아니었다.
[톰, 저기 온다!]
소녀는 새하얀 뱀이 꼬물꼬물 자신에게로 기어오자 꺄악 소리를 지르며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그릇을 뱀에게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오지마, 오지마!!]
리브의 입술에서 쉭쉭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모습에 톰의 흑안이 커졌다. 졸지에 물벼락에, 콤보로 플라스틱 그릇으로 얻어맞은 새하얀 뱀이 성난 듯 쉭쉭거렸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가,가까이 오지마! 난 뱀이 싫어. 저리가!]
[나처럼 예쁜 뱀을 싫다고 하다니! 톰은 나한테 예쁘다고 했어!]
[예쁘기는 개뿔! 거,거기서 움직이기만 해! 가,가만 안둘거야!]
리브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미성년 마법사의 행동 제한 법령 따위보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태워버릴거야. 주문은 인센디오, 좋아. 어? 그런데 지팡이가 없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머니를 계속해서 뒤적이던 리브는 지팡이를 닦아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뿔싸! 뱀이 쉭쉭거리며 말했다.
[뭘 찾는거야? 지팡이? 그런데 너 뱀의 말을 할 줄 아네?]
[무슨 소리를, 난 그런 능력이 없-]
그 순간 리브는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거지? 그제서야 리브는 자신이 쉭쉭거리며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리브의 벽안이 커졌다. 자신은 저 뱀이 무어라 지껄이는지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뱀이 다시 꼬물꼬물 기어오는 것도 잊은 채 리브는 멍하니 서있었다. 내가 어째서 파셀통그를…?
[말도 안돼.]
리브는 다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역시 쉭쉭거리는 소리. 그 순간 리브는 자신의 발 바로 앞에 와있는 새하얀 뱀을 보고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저,저리 가라니까!!!]
혀를 날름거리는 뱀은 리브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리브는 어린 날, 새까만 독사가 자신을 물어뜯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리브는 뒷걸음질 치다가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뱀이 쉭쉭거리며 기어오더니 리브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팔에 안착했다. 소녀는 뱀의 차가운 감촉에 파삭파삭 굳어버렸다. 뱀은 새하얀 혀를 날름거리며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너 마녀지? 아까 부엉이가 들어가는거 봤어!]
소녀는 대답대신 발악하듯 팔을 흔들며 뱀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떨어져, 떨어지란 말야!!]
[왜,왜 이러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뱀이- 싫어- 떨어져!!!!]
[어지러워!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팔 좀 멈춰봐!]
소녀와 뱀의 행태를 지켜보던 소년이 다가왔다. 그리고 미친 듯이 팔을 흔들며 뱀을 떨어뜨리려는 소녀를 제지했다. 자세를 낮춰서 주저앉은 소녀의 팔을 붙잡은 것이었다. 팔의 움직임이 멈추자마자 새하얀 뱀은 재빨리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뱀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졌음에도 소녀는 뱀을 두려움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소년이 성난 듯 쉭쉭거리는 뱀을 제지했다.
[나기니, 그만. 무서워하잖아.]
[아하, 내가 싫은게 아니라 무서운거였어?]
소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40cm 가량의 새하얀 뱀이 언제 자신을 물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리브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톰 리들 따위보다 저 뱀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톰 리들은 적어도 나를 물어뜯지는 않는다. 잠깐만 뭐라고? 나,나기니? 맙소사… 소녀는 식겁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기니가 쉭쉭거렸다.
[파셀마우스가 어째서 뱀을 무서워하지? 이상한 애야.]
뱀한테 이상한 애 취급당했어. 기분나빠.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리브가 여전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뱀한테 물려 죽을 뻔했는데 너같음 안 무섭겠냐!]
리브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톰 리들의 시선을 느끼고 뱀에게서 눈을 돌렸다. 소녀의 벽안과 소년의 흑안이 마주쳤다. 침묵을 깬 것은 톰 리들이였다. 소년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안녕.”
푸른 눈동자를 깜빡거리던 리브는 간신히 입을 열어 인사에 화답했다.
“아,안녕…하세요….”
“그 물. 부엉이 주려는거 아니야? 다시 떠와야할 것 같은데.”
“마,맞아요.”
리브는 큰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허둥지둥 부엌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흑발의 소년, 톰 리들이 응시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12.08.27. 퇴고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