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0화 (310/361)

310화 인피그램

실리콘 밸리. 강태준을 만나러 온 인피그램 사 엔지니어들이 호텔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누가 보기에도 얼뜨기들이 어울리지도 않은 양복을 입고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초조감에 다리를 떠는 놀런에 버니가 짜증을 부렸다.

“이봐, 정신 사납게, 다리 떨지 말라고.”

“이봐. 알트. 자넨 물 좀 고만 마시고.”

버니가 핀잔을 주자. 불안한 듯한 놀런이 홀로 중얼거렸다.

“이거 설마 사기 아닌가?”

“사기 무슨 사기?”

“그거 말이야. 예를 들면 자금 세탁용으로 쓰려는 거든지.”

“퍽이나. 걱정도 마십시오. 우리한테 뭘 뜯어먹으려고.”

“아니 그렇지 않나? 그 사람이 뭘 아쉽다고 우리한테 투자를 해?”

“그러면서 머리까지 깎고 오셨습니까?”

무슨 기대감에서일까. 깔끔하게 이발하고 나타난 놀런에 핀잔을 주자, 그가 떠듬거리며 변명했다.

“이건 마누라가 깎으라고 해서…….”

되도 않는 변명을 지껄이는 놀런의 행동에 다들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때마침 구원자처럼 들려온 딸랑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멎었다.

고대했던 주인공이 등장에 얼음이 된 일동들. 강태준이 악수를 건넸다.

“백경그룹 사주인 강태준입니다.”

“법률 자문인 설유하예요. 반가워요.”

“아 예…….”

사회초년생 같은 느낌의 엔지니어들의 모습에 강태준이 부드럽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자 긴장하지 마시고 게임부터 이야기해 보지요. 알트 씨? 대충 게임의 설계를 알고 싶은데요?”

“아 설계요?”

“저희가 투자하는 상품이 뭔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요.”

“아. 예. 이 게임은 일종의 모션 회로를 이용한 겁니다. 인터액션에 중점을 둔 게임이지요.”

듈(dual)은 단순히 두 명이서 하는 탁구 게임이지만 스포츠로서의 요소는 다 가지고 있었다.

알트가 만든 설계도를 확인한 강태준은 확신했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천재로군.’

특히 강태준이 감탄한 부분은 음향 효과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동기 신호 발생기를 검토해 각기 다른 신호를 만든다는 발상은 일반적인 창의성으로는 불가능한 수준. 어차피 회로 검토는 요식행위였던 만큼, 강태준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갔다.

“게임성 자체에 대해서는 나무랄 것이 없군요. 다만 제조와 관련해서 어떤 청사진이 있는지는 좀 들어 보고 싶군요.”

놀런과 버니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난감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놀런은 띄엄띄엄한 어조로 물었다.

“네 제조를 어떻게 할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투자를 받으려면 사업계획이라는 것이 있을 것 아닙니까?”

“아 그게 어떤 말씀이신지?”

“예를 들면 제조 단가라든지. 마케팅 방법이라든지. 공장 설립부터 인력 수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거요. 대충 그런 것도 없이 투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작 후 마케팅, 그리고 생산 시 품질 관리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 A/S 계획은 있는가. 그런 게 중요한 요소 아니겠습니까.”

난감해진 놀런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땀을 흘렸다. 순수 공돌이인 그들은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은 몰라도 사업에 관해서는 젬병이나 다름없었다. 동네 고물상에서 구한 모니터로 만들어 낸 게임을 가지고 단가 계산을 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녀석들에 강태준이 다시 물었다.

“아.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 아주 구체적인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니. 그럼 기본적인 공장 부지는 봐 뒀습니까?”

“어. 에…… 롤러스케이트장을 개조해서 쓰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본심을 떠드는 놀런의 말에 강태준이 귀를 의심했다.

“네. 익스큐즈 미?”

“그게 롤러스케이트장이 대충 1만 평방미터쯤 되는 규모라서. 악!!”

“아, 그러니까, 어바인 쪽에 부지를 봐 두었습니다. 예전에 노팅 사와 함께 있을 때 따로 봐 둔 곳이 있습니다. 저희가 부품을 공급받을 반도체 테스트 장비 제조회사가 그쪽에 있으니까요.”

버니의 재빠른 답변에 옆구리를 가격당한 놀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눈에는 약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강태준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노동자 수급은 어떻게 할 건가요?”

“아 가용 인력은 인력사무소에서 구할 생각입니다.”

“인력사무소에서? 진심입니까? 그쪽은 떨쟁이나 절도범들이 넘쳐나는 곳인데요?”

놀런의 실언에 버니와 알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계속 실언이 반복되자 버니는 놀런을 쏘아보았다.

반쯤 죽일 기세였다.

알트는 반쯤 해탈한 듯 더는 말이 없었다. 강태준이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의 기술적 성과는 인정하지만 사업적인 경험은 없군요. 그래서야 좀 투자는 힘들겠는데요. 제조를 전적으로 그쪽에 맡기는 건 신뢰가 가지 않네요.”

“아…….”

급 실망한 둘은 이미 고개를 파묻기 직전. 하지만 다음 순간 녀석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게임은 탐이 나는군요. 라이선스를 가져가는 대신 200만 달러 어떻습니까?”

“라이선스를 넘기라는 말씀입니까?”

“완전히는 아니고 저희가 기계 생산까지 전부 도맡는 조건으로 그쪽은 일종의 디자인 샵이 되는 거지요. 판매량에 따라 건당 로얄티도 지불하겠습니다. 대략 5%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동공이 흔들리는 놀란이 귀를 쫑긋했다. 한 번에 200만 달러라니. 스페이스 배틀을 만들고 얻은 로열티가 15만 불 정도였으니 그 정도면 거의 10배가 넘는 거액이다.

제조업에 뛰어들 자본을 생각하면 굉장히 안정적인 선택.

“어때요. 이 정도면 스스로 다른 게임을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만?

강태준은 살살 꼬셨다. 하지만 한동안 말이 없던 놀런은 결국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건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쥐어짜듯 나온 소리에 강태준이 갸우뚱했다.

“이 조건이라면 그쪽에 리스크가 없을 텐데요?”

“저희 제품은 자식과 같습니다. 거기다 이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

그 말에 뭔가를 말하려던 알트와 버니 역시 입을 다물었다.

강태준은 설득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아직 상업성이 입증되지 않은 게임에 이렇게까지 배팅할 줄이야.

하지만 반대로 그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저희 회사 수석 엔지니어를 맡아 주시지요.”

“네? 그 말씀은?”

“지분을 드릴 테니. 저희 쪽에 들어오시죠. 저희 백경전자의 개발자로서 지휘를 맡아 달라는 말씀입니다. 아니면 그쪽이 저희 자회사로 들어오든지. 직위는 기술 부사장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사업을 막 시작한 인피그랩으로서는 쉬이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다는 놀런의 소망에 따라 인피그램은 자회사로 남았고 강태준은 백경 물산을 통해 인피그램의의 지분 과반(57%)을 확보한 대주주로 등극했다.

백경전자 지분의 3%를 취득하는 조건에 전격 협의했다.

‘이 정도 수준의 엔지니어들을 영입하는 조건이라면 싸게 먹히는 거지.’

앞으로 게임 산업의 동향을 알고 있는 강태준으로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딜.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구멍가게에 불과한 게임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재무가 코웃음을 쳤다.

“강 사장도 한물갔구만?”

“발리 핀볼이나 주크박스 따위를 만들겠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심지어 2인용 게임이랍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다들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미지 타격에 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백경 그룹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일단 동전을 넣고 돌리는 엔터테인먼트라 하면 빠찡코나 도박기기가 대부분이었던 만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여기 저기 말이 아주 많네요.”

“뭐 우리가 이미지로 먹고사는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꺼림칙하네. 그래.”

“그런 걸 뭘 신경 쓰나. 호사가들 소리는 신경 쓰지 마. 어떤가 차 부장? 제작 비용 산정은 끝났나?”

”네 대충 인건비 포함해서 350불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조이스틱을 트랙볼로 대체하면 20불 정도 더 세이브할 수 있고요.”

차대응이 단가를 산정해 본 결과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컨트롤 방식은 플레이어가 설명서 없이도 즉시 알 수 있을 만큼 쉬웠다.

생각보다 훨씬 싼 단가에 강태준은 내심 마음이 놓였다.

“한 대에 1,100불 정도면 850불이 남는다라 괜찮지요. 생산은 하루 생산량은 대략 100대부터 시작합시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었다.

“아니 100대요? 가능하겠습니까?”

“펍에 설치된 기계를 보니 일주일에 300불 정도는 쉽게 벌리더군요. 사업적으로 충분히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으니 일단 만들고 봅시다. 물량이 남으면 저희가 직접 운영해도 되고 말입니다.”

강태준이 생각하기에 이건 금광이나 다름없다. 언어의 장벽도 없는 게임이니만큼 해외에 팔기도 쉽다. 설치를 하기만 하면 그만이니. 그냥 산술적으로만 생각해도 3개월 정도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공장운영을 감독할 차대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직원들 수급은 어떻게 할까요? 기존 인력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번에 베트남에서 꽤 많은 숫자가 귀국한다지 않습니까. 병기창 소속이었던 사람들이 위주로 뽑으면 될 거 같습니다. 일단 유능한 인력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그러면 돈이 더 많이 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인력이나 품질 관리 쪽 비용을 고려하면 그쪽이 더 수지맞는 장사입니다.”

최대한 납땜이나 조립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섭외하는 편이 좋다는 판단에 강태준은 경력자를 우대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간단한 테스트 후 바로 실전투입이 가능한 사람들 위주로 선발되었고. 기존에 모니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희망자에 한해 전출을 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작업에 따라 조립작업은 톱니바퀴처럼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경험이 많지 않아 하루에 20대를 생산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한 달 만에 곧 50대를 훌쩍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불량률은 적었다 강태준이 약속했던 것이다.

“불량률이 가장 적은 팀에게는 월급의 2배의 보너스를 포상하겠습니다.”

돈보다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었고 완성되어 나온 기계들은 90% 확률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렇게 ‘듈(dual)’의 정식 출시가 임박하자 전미는 후끈 달아올랐다.

출시 직전부터 동전통이 터져 나갈 만큼 핫한 게임기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문량이 폭주한 것이다. 결과는 경이적이었다.

“초기분 전부 팔렸습니다!”

“2,000대가 전부 나갔답니다!”

듈(dual)은 출시와 더불어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조이스틱과 버튼, 블록밖에 없는 단촐한 구성이었지만 이 단순한 게임은 사람들의 마음에 직격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효과음으로 내장된 갈채 소리가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한 것도 흥행에 도움을 주었다.

“게임이 효자네 효자.”

“2인이라 제대로 안 팔릴 줄 알았더니 걱정이 기우였네요.”

내심 안절부절못했던 엔지니어들은 그제야 안심했다. 인기가 궤도에 오르자 듈(dual)은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먹었다. 출시 직후 3달간. 해당 게임의 주문량은 6,500대에 달했다. 이 탁구 비슷한 전자 게임은 곧 술 한잔을 걸친 노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게임 중 하나로 등극했다.

게임 통에 점차 캐시가 두둑하게 쌓였고 그와 동시에 인피그램 엔지니어링 팀도 회사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건 백경그룹의 막대한 자금력 덕이었다. 물량이 폭주하자, 여름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고작 6개월 만에 제품 매니저까지 승진했다. 조립작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성실성과 손재주뿐. 제품이 흥행을 거두자 각지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dual을 계기로 강태준은 전자 업계 엔지니어들을 대거 영입했다. 게임 회사는 히피적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dual’을 계기로 비디오 게임이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사장님. 아무래도. 근래 짝퉁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벌써?”

“아무래도 누군가 회로를 뜯어서 베낀 거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자 곧바로 어둠의 루트에서 손을 뻗쳐 온 것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해 복제하는 물량이 늘어나자 대책회의가 소집되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안에 산업 스파이가 있겠지. 보드를 추가로 몰래 만들어서 경쟁사에 공급한 놈들이 있거나. 능력 좋은 놈이라면 지가 직접 회로를 설계했거나.”

매출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손실이 발생할 것은 자명했다.

“산업 스파이요? 그럼 당장 때려잡아야.”

“그걸 어떻게 다 잡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벌써 해 먹고 도망간 놈도 있을 텐데?”

“걱정 마. 이럴 줄 알고 이미 조치를 해 뒀으니까.”

“네? 어떻게 말입니까?”

“이럴 줄 알고 이미 반도체 회사에 미리 연락해 놨다구. 우리가 사용하는 칩에 암호화 기능을 추가해 달라고 말이지.”

출판사를 운용하면서 한두 번 당한 일이 아닌 만큼. 강태준은 덤덤했다. 이런 일을 대비해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사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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